『노자를 읽고 장자에게 배운다』 중에서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一念之間의 차이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로 대표되는 서양의 현대 심리학은 인간에게 잠재의식이 있다고 본다. 잠재의식은 바다 밑에 숨어 있는 빙산처럼 당신이 깨어 있을 때는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잠이 들어 경비가 소홀해지고 의식이 모호해지면 모습을 드러낸다. 서양 사람들은 꿈을 연구하여 인간 심리를 이해하려고 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심리치료도 발전했다. 그러나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서양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가 자기에게 한 건의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 방법이 자신에게 효과가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이 참고해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만나기만 하면 정신과 의사가 내린 처방을 서로 교환한다.
당신이 정신과 의사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의사와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했다. 당신이 처음 병원에 간 날, 의사는 당신에게 몇 시에 도착했느냐고 묻는다. 당신은 10시 정각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의사는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시간을 딱 맞췄다며 당신을 강박성 인격장애로 분류한다. 두 번째로 병원에 간 날, 의사는 또 묻는다. 이번에는 약속 시각보다 30분 이른 9시 반에 도착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의사는 약속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왔다며 당신을 불안성 인격장애라고 분류한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몇 시에 도착했을까? 당신은 10시반이 돼서야 겨우 도착한다. 30분이나 지각을 한 것이다. 30분이나 늦게 갔다는 것은 갈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결국 가는 것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는 저항성 인격장애에 해당한다. 즉 당신이 미국에서 정신과 의사와 상담 시간을 정했다면 정각에 가든, 일찍 가든, 아니면 늦게 가든 결국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된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그들의 눈에 정상인은 없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사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구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가 스스로 구제하는 것이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자신을 도우려면 먼저 인간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 인간 심리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장자의 견해를 보도록 하자. 사실 인간의 마음은 예측하기 어려운데 장자는 인간의 마음을 아주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
“당신이 갖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는 마음이 한없이 불타오르지만 막상 그것을 버릴 때는 차갑기가 얼음과 같다. 마음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깊은 연못처럼 물결이 일지 않고 평온하지만 한 번 물결이 일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순식간에 전체로 퍼진다.”
장자는 이렇듯 생동감 넘치는 말로 찰나에 변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했다. 하지만 마음이 바뀌면 생각도 바뀌는 법이니 이렇게 되면 당장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장자』의 「도척편盜跖篇」은 다른 편들에 비해 유독 비판성이 강한 글이라서 소동파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장자가 쓴 것이 아니라 후세의 사람이 첨가한 내용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러나 그러한 의심과 상관 없이 「도척편」에 나오는 고통과 기쁨에 대한 짧은 이야기는 참고할 만하다.
공자에게는 유하혜柳下惠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동생은 큰 도적으로, 이름이 도척盜跖이다. 훔친다는 뜻의 도盜를 이름에 쓰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과거에는 이름을 지을 때 일종의 관습이 있었다. 장래에 그 아이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그 바람을 이름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사실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척跖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도적이 되고 난 뒤 자신이 직접 도盜자를 더해 도척이 된 것이었다. 공자가 유하혜에게 말했다.
“형이 아우를 이끌고, 아비가 자식을 인도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자네는 유명한 현인이자 학자인데 아우는 어쩌다 도적이 됐단 말인가? 마땅히 말렸어야지.”
하지만 동생이 어떤 인물인지 잘 아는 유하혜는 이렇게 말했다.
“말릴 도리가 없었네. 내 아우의 마음은 용솟음치는 샘물 같고, 의지는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과 같다네. 다른 사람과 사귈 때 한 가지 방법이 듣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지. 끊임없이 솟아나는 계책을 막을 수가 없고, 녀석의 생각은 바람처럼 자유로워서 종잡을 수가 없네.”
그래서 유하혜는 아우가 도적이 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공자가 다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게나. 나는 원래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니 내가 가서 자네 이름을 대고 자네 아우를 만나보겠네.”
공자와 학생들 몇 명을 태운 마차가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리고 노나라의 공구孔丘가 장군을 뵈러왔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은 도적이지만 듣기 좋으라고 장군이라고 칭한 것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만난 두 사람은 선과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선과 악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벌은 과연 있는지 논쟁했다. 당연히 이런 문제에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당신이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쌍이다
선행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고 했을 때 내가 그에 반대되는 실례를 찾아서 반박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도척은 상당히 유식해 보였다. 그러리란 예상은 당연히 하고 있었지만 공자는 말로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도척은 다음과 같은 아주 그럴듯한 말로 공자를 반박하기도 했다. 도척이 말했다.
“당신이 인간세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별다를 것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눈으로는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고 귀로는 더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며 입으로는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바라는 바가 늘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지요. 이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흔히 수명을 논할 때 상수上壽는 백, 중수中壽는 팔십, 하수下壽는 육십이라 한다죠. 그런데 어디가 아프거나 근심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서라도 당신이 한 달 동안 입을 벌리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은 겨우 4, 5일에 불과합니다. 한 달이 30일이니 당신은 그중 겨우 4, 5일만 웃으며 살고 나머지는 각종 근심 걱정에 시달린다는 말입니다.”
도척의 생동감 넘치는 비유에 공자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갔다. 그는 제자들이 준비한 마차를 탔고, 제자들은 그에게 고삐를 건넸다. 그런데 공자는 고삐를 세 번이나 놓쳤음에도 도척에게 받은 충격으로 이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노나라에 돌아간 공자는 우연히 유하혜를 만났다. 유하혜는 혼이 나간 듯한 공자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내 아우를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공자가 대답했다.
“휴, 호랑이굴에 들어갔지 뭔가. 하마터면 그 호랑이한테 잡아먹힐 뻔했다네.”
『장자』의 「도척편」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 이야기는 옳은 일을 하든 나쁜 일을 하든 어차피 인생에는 기쁨보다는 고통이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 고통은 주로 외부의 영향을 받은 감정에서 기인한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데다 쉽게 흔들리므로 우리는 인간세상의 가치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반드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의 차이다.


인생에서 고통과 기쁨은 일념지간의 차이이다.

고통과 기쁨을 알아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 노장의 지혜 ‥‥‥


장자는 도척의 말을 빌려 우리가 고통을 피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려준다. 그러나 인생의 고통과 기쁨은 모두 일념지간의 차이에 불과하다. 고통과 기쁨을 알아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통과 기쁨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장자는 어떤 이야기로 이를 설명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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