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 중에서 열다섯 번째가 겸謙입니다. 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15 겸謙
겸謙 형亨 군자君子 유종有終
겸겸謙謙 군자君子 용섭대천用涉大川 길吉
명겸鳴謙 정길貞吉
로겸勞謙 군자君子 유종有終 길吉
무불리无不利 휘겸撝謙
불부이기린不富以其隣 리용침벌利用侵伐 무불리无不利
명겸鳴謙 리용행사利用行師 정읍국征邑國
첫 번째 효사爻辭는 겸謙 형亨 군자君子 유종有終입니다. 겸謙은 겸손謙遜이요 겸양謙讓입니다. 겸의 도는 젊은 시기亨부터 익히고 수행하여 군자君子가 마지막終에 갖추는有 덕목입니다. 군자의 미덕은 겸에서 일어나며, 군자는 겸양에서 인격의 꽃을 피웁니다. 군자의 마지막 공부이며 수행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두 번째 효사爻辭는 겸겸謙謙 군자君子 용섭대천用涉大川 길吉입니다. 겸겸謙謙은 겸도謙道의 중복으로 최고의 겸양을 말합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군자라면 사고와 행동이 늘 일치해서 어떤 일을 도모해도 이룰 수 있습니다. 큰 내를 건너는 것처럼 일견 무모해 보이는 위대한 일도 해낼 수 있으니用涉大川 길합니다吉.
세 번째 효사爻辭는 명겸鳴謙 정길貞吉입니다. 명겸鳴謙도 끝내는貞 길합니다吉. 명겸이란 현실세계에서 특히 변론이나 연설, 대인관계에서 겸謙의 도道를 이뤘음을 의미합니다. 명겸의 도를 아는 사람은 적절한 처세의 도를 이미 깨우친 사람이며, 때로는 목적을 위해 거짓을 행하기도 하고, 화려한 연설로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잔재주가 아니라 겸양에 기반을 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일을 하니 길합니다吉.
네 번째 효사爻辭는 로겸勞謙 군자君子 유종有終 길吉입니다. 로겸勞謙(일할 로)은 사람이 노력을 통해 얻는 겸양의 도리입니다. 천부적으로 군자의 품성을 타고나지는 못했지만, 부단히 공부하고 노력하여 겸謙의 도道를 깨달은因而知之 군자가 바로 로겸의 군자입니다. 이렇게 학문과 겸양으로 인격을 완성한 군자가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니 길합니다吉.
다섯 번째 효사爻辭는 무불리无不利 휘겸撝謙입니다. 휘겸撝謙(찢을 휘)도 불리不利할 것이 없다无는 말입니다. 휘겸이란 생각과 행동이 세상에 걸릴 것이 없이 자유로우면서도, 겸도謙道를 깨달아 누구에게도 폐가 되지 않는 경지를 말합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겸의 도를 행하니 불리함이 없음은 당연합니다.
여섯 번째 효사爻辭는 불부이기린不富以其隣 리용침벌利用侵伐 무불리无不利입니다. 위에서 네 가지 겸謙의 형태를 살펴보았는데,『주역』이 주목하는 현실정치의 세계에서 단연 필요한 겸손은 명겸鳴謙입니다. 여섯 번째 효사와 일곱 번째 효사는 명겸에 대한 실례를 들어서 부연한 설명입니다. 불부이기린不富以其隣(이웃 린)은 이웃과 더불어 부를 누리지 않는다는 말이므로 이웃의 부를 탐내는 것, 도적질하는 것, 질서와 평화를 깨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명겸의 입장에서는 타도의 대상이자 응징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침략하여 응징해도利用侵伐(침노할 침, 칠 벌) 불리할 것이 없습니다无不利.
일곱 번째 효사爻辭는 명겸鳴謙 리용행사利用行師 정읍국征邑國입니다. 리용침벌利用侵伐을 국가 단위로 확대한 것이 리용행사利用行師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자기 나라를 넘보는 이웃나라를 정벌하는 것征邑國이며, 국가 간의 평화를 깨는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명겸鳴謙의 도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 힘의 정치는 명겸의 역할이라는 것이『주역』의 마지막 교훈입니다.
겸謙은 겸손謙遜이요 겸양謙讓이니, 군자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들 가운데 하나입니다.『예기禮記』에서도 군자를 “널리 들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겸양할 줄 알고 선을 돈독하게 행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여, 겸양을 군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앞세웠습니다.『주역』에 따르면 불합리한 것을 받아들이고, 정의가 아닌 것을 용서하는 건 겸손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가르치는 것이 종교라면,『주역』은 확실히 종교와는 거리가 먼 실천적 교훈을 전해주는 경전입니다.『주역』은 겸손을 네 가지로 나눠 설명합니다. 타고난 근기根氣에 따라 도달할 수 있는 겸손의 경지가 다르고, 현실정치의 와중에서 펼쳐 보일 수 있는 겸손 또한 별도로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종교인의 겸손과 정치인의 겸손이 다르고, 도를 닦는 사람과 학문을 하는 사람의 겸손이 다르며, 초월을 꿈꾸는 사람의 겸손과 생활인의 겸손이 다릅니다.
겸겸謙謙은 겸이 두 번이나 겹친, 겸손 자체에 대해서마저 겸손하게 된 성현 군자의 겸손함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군자라면 매사에 하늘의 섭리와 땅의 도리를 펼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이루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겸손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해당하는 이러한 경지는 태어나기 전부터 덕을 갖춘 하늘이 내린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습니다.
로겸勞謙은 보통사람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삶은 그 마지막이 길할 수밖에 없습니다.
휘겸撝謙은 어떤 면에서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겸손의 경지가 아닙니다. 생과 사를 초월해 세상살이에 아무런 걸림이 없는 사람의 겸손이 휘겸인데, 이는 산에 사는 신선의 경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정치 등의 현실생활에서는 어울리지 않은 겸손입니다.
현실정치에 필요한 겸손이 명겸鳴謙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인간관계를 잘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해서 만사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주역』에서는 이것을 치자治者가 가져야 할 능력으로 봅니다. 목적을 위해 잠시 후퇴하거나 적에게 거짓으로 굴복하는 것도 명겸에는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실정치에서 가장 바람직한 겸양의 형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