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성 관절염degenerative arthritis이 무엇입니까?

 

 

절구 모양의 골반 골과 공 모양의 둥근 대퇴골femur(넙다리뼈) 머리가 이루는 고관절hip joint(엉덩관절)은 오른쪽 왼쪽에 각각 하나씩 모두 두 개가 있으며, 골반을 통해 전달되는 체중을 지탱하고 걷기와 달리기 같은 다리운동이 가능하도록 해줍니다. 부드러운 막성 조직의 관절막으로 두텁게 둘러싸여 있으며 매우 안정적이면서 운동 범위가 큰 관절입니다. 그러나 상당한 외력에 의해 관절이 빠지거나 관절 주위에 골절이 생길 수 있으며, 퇴행성 관절염degenerative arthritis이나 골조직의 혈액순환 장애로 인한 뼈에 혈액공급이 안 돼 뼈가 괴사壞死하는 무혈성 괴사(무혈성 골괴사)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관절과 마찬가지로 관절 내측은 활액막synovial membrane으로 덮여 있어 관절액이 만들어집니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을 보호하고 있는 연골의 점진적 손상이나 퇴행성 변화로 인해 관절을 이루는 뼈와 인대 등에 손상이 일어나 염증과 통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관절의 염증성 질환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빈도를 보입니다. 나이, 성별, 유전적 요소, 비만, 특정 관절 부위 등의 요인에 따라 발생하는 일차성(특발성) 관절염과 관절 연골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외상, 질병 및 기형 등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이차성(속발성) 관절염으로 분류됩니다.

일차성(특발성) 퇴행성 관절염의 확실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나이, 성별, 유전적 요소, 비만, 특정 관절 부위 등이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차성(속발성)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 연골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외상, 질병 및 기형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세균성 관절염이나 결핵성 관절염 후 관절 연골이 파괴된 경우, 심한 충격이나 반복적인 가벼운 외상 후에 발생되는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이차성이라고 진단되어도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며, 동일 원인에 노출되었다 하더라도 모두 관절염으로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서 일차성과 이차성의 구별이 분명한 건 아닙니다. 원인은 부위별로도 어느 정도 차이를 보일 수 있는데, 척추의 경우에는 직업적으로 반복되는 작업이나 생활습관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고관절에 있어서는 무혈성 괴사와 고관절의 불안정성, 아탈구, 탈구, 또는 비구 이형성증을 포함한 발달성 병변인 고관절 이형성증dysplasia of the hip이 많은 원인을 차지하며, 발목 관절의 경우 발목 관절의 골절 또는 주변 인대의 손상이 퇴행성 관절염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이 됩니다.

가장 흔한 초기 증상은 관절염이 발생한 관절 부위의 국소적인 통증이며 대개 전신적인 증상은 없는 것이 류마티스 관절염rheumatoid arthritis과의 차이점 중 하나입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다발성 관절염을 특징으로 하는 원인 불명의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초기에는 관절을 싸고 있는 활막에 염증이 발생하지만 점차 주위의 연골과 뼈로 염증이 퍼져 관절의 파괴와 변형을 초래합니다. 이에 반해 퇴행성 관절염의 통증은 초기에는 해당 관절을 움직일 때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다가 병이 진행되면 움직임 여부에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관절운동 범위의 감소, 종창(부종), 관절 주위의 압통이 나타나며 관절 연골의 소실과 변성에 의해 관절면이 불규칙해지면 관절운동 시 마찰음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증상들은 일반적으로 서서히 진행되며 간혹 증상이 좋아졌다가 나빠지는 간헐적인 경과를 보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고령에서 질환이 발생하고, 노화와 연관된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의 발생 위험을 증가시키기는 하나 다른 능동적 요소가 있는 만큼 노화 자체가 원인은 아닙니다.

퇴행성 관절염은 관절 연골의 퇴행성 변화에 의해 발생되므로 이를 완전히 정지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따라서 치료 목적도 통증을 경감시켜 주고, 관절의 기능을 유지시키며, 변형을 방지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변형이 이미 발생한 경우에는 이를 수술적으로 교정하고 재활치료를 시행하여 관절의 손상이 빨리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고, 환자가 동통을 느끼지 않는 운동 범위를 증가시킴으로써 환자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나쁜 자세나 습관, 생활이나 직업, 운동 활동 등 과부하가 되는 것은 가급적 바꾸어야 통증 경감은 물론 관절의 손상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비만이 체중 부하 관절의 퇴행성 관절염 발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특히 무릎 관절 부위의 유병률과 밀접한 관계를 보이므로 체중 감량이 퇴행성 관절염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지팡이 등의 보조 기구를 사용하여 관절에 가해지는 부하를 줄여주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퇴행성관절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확실한 약물은 개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통 및 항염 작용을 지닌 많은 약품들이 개발되어 현재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가 대표적인 약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장기 투여의 가능성이 있으며 소화기계 및 혈액응고기전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전문의의 처방에 따른 신중한 투약이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소화기계의 부작용을 줄여주는 새로운 기전의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가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이 약제들의 경우에도 심혈관계 부작용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가 요구됩니다. 합성 진통 마취제의 일종인 오피오이드 계열의 약물도 사용되고 있으나 고 연령층에게서 변비, 의식 혼동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신중히 사용해야 합니다.

관절염의 증상으로 근육의 위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근육 강화와 운동 범위의 회복은 관절의 부하를 감소시킬 수 있어,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을 이용한 운동치료나 물리치료를 초기 치료로 병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릎의 퇴행성 관절염에 대하여 허벅다리 앞쪽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이 동통 감소와 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고, 목이나 엉덩이 관절의 경우 간헐적 견인요법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온열요법, 마사지, 경피 신경자극 요법 등의 물리치료가 증상 완화와 근육 위축 방지에 효과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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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에는 어려운 문제가 일어났다

 

 

1921년 5월 임시정부의 노동국 총판을 사임한 안창호는 여운형과 함께 국민대표회의 개최에 참여했습니다. 국민대표회의에 참여하면서 안창호는 1922년 이광수, 주요한 등에게 연락 경성부에 수양동맹회修養同盟會와 평양에 동우구락부同友俱樂部의 발족을 지시했습니다. 그는 단체의 기준과 회원자격, 단체명까지 구체적으로 이광수와 주요한 등에게 지시하고 거사자금을 보내 설립에 착수하게 했습니다.

한편 미국 내 국민회에서는 이승만파와 안창호파, 박용만파간 분쟁이 격화되면서 하와이 지방 국민회 총회가 해체되었습니다. 안창호는 한발 물러섰고, 이승만 계열은 대한인동지회를, 기타 일부는 하와이 한인 교민단을 조직하고, 안창호 계열만이 대한인국민회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1923년 임시정부의 개조파와 창조파 대표자 124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정부의 존폐 여부를 논하는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여기서도 창조파와 개조파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5월 15일 국민대표회의는 63회 회의에서 결렬, 폐회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임시정부 내무부장 김구는 임정 개조파와 창조파를 상해에서 추방, 해산을 명했으나 안창호에게는 불이익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안창호는 1924년에 북중국 만주방면을 시찰, 여행하며 이상촌理想村 후보지를 탐사하고 난징에 교육구국운동의 일환으로 한서문漢西門 안 쌍석고雙石鼓에 집을 세내어 동명학원東明學院을 설립했습니다. 동명학원은 구미와 중국의 대학에 유학하려는 뜻을 품고 본국으로부터 오는 청년들을 위해 어학語學, 덕육德育 기타 준비 교육을 하기 위한 기관이었습니다. 안창호는 학생들에게 민족혼과 어학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교를 설립했는데, 초기에는 수십 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흥사단 단원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이 바른 교육을 받으면 민족에게 보탬이 되겠지만 반대로 그들이 불행하게 되면 외국에 있는 동안에도 국내에 들어가서도 민족의 힘을 감손하는 큰 해가 될 것이므로 이들 청년들을 바른 사상으로 지도하고 또 학업의 편의를 돕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창호는 학생들에게 국민으로서의 책임감, 협동생활의 원칙, 민족지도자로서의 자세, 착실주의着實主義 등을 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안창호는 난징과 소주蘇州의 중간에 있는 진강鎭江에 주목했습니다. 진강은 양쯔강 연안의 도시로 기후와 풍토가 좋았습니다. 그는 진강 부근에 모범 농촌도시를 건설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독립이 회복되기까지는 재외 동포가 환국하는 것이 심히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만주, 러시아령, 북아메리카, 하와이 등지에 흩어져 사는 수백만 명의 민족이 본국의 문화와 연락이 되지 않은 채 여러 해 혹은 여러 세대를 간다면 그들은 아주 그들이 거주하는 나라의 문화에 화하여서 한민족의 정신을 잃어버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야만몽매野蠻蒙昧한 인종으로 퇴화하여버릴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국보다 높은 문명을 가진 북아메리카나 하와이 같은 지역에 사는 동포는 국혼國魂을 상실하기가 쉽고, 만주나 러시아령 같이 모국의 문화보다 낮은 지역에서 빈궁한 생활을 하는 동포는 모국의 문화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토착민보다도 정도가 떨어져서 무산무지無産無知)한 유랑민流浪民을 이룰 근심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재외 동포로 하여금 이런 두 가지 불행에 빠지지 않게 하는 길을 그는 해외에 한 곳, 재외 한족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를 건설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참으로 중심지가 되려면 경제적으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창호는 “물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매양 말했습니다. 성현이나 지사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일반 대중은 자신의 재물이 있는 곳에 늘 마음이 끌린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무슨 회를 조직할 경우에도 거기 거액의 입회금을 내고, 정기적으로 의무금도 내어서 그 회에 자신의 재물이 들어있을 때에 비로소 그 단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고, 그 단체가 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하여져서 이것이 망하지 않고 잘되기를 힘쓸 생각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흥사단 입단 문답에서도 그는 입단금과 회비를 강조했습니다. 진강에 한민족의 중심지를 건설한다고 하면 될 수 있는 대로 다수 동포의 출자로 토지를 매입하고, 가옥을 건축하고, 생산기관, 금융기관까지 만들어 도시가 재외 동포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게 하는 것이 안창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진강이나 난징 혹은 화華北이나, 중국인의 문화와 산업이 상당히 발달된 도시의 근방에 기지를 택하여, 중국인 도시의 모든 시설과 편의를 이용하면서, 한편으로 한민족 자신의 독특한 문화와 산업기관도 세워서 중국인에게 대해서는 호조호익互助互益의 친선한 관계를 수립하기를 바랐습니다.

북아메리카에 수십 년 동안 살면서 상당한 재산을 만들고 자녀를 가진 동포들 가운데 안창호의 이런 계획에 공명하여 출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국에는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동포가 수만 명 집단적으로 사회를 이뤄 우리 문화 속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이런 요구에 응할 수 있는 국토는 중국 외에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안창호가 이상향理想鄕 기지로 주목한 곳은 난징, 진강 외에도 북쪽의 호로도葫蘆島, 금주錦州 경내, 만주의 경박호鏡泊湖 연안, 동경성東京城 부근 등지였습니다. 그는 이 여러 지방들을 몸소 답사하여 그 산천 풍토를 보았습니다. 지미地味(土理), 풍경, 마실 물까지 상세히 조사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정치적 사정으로 인해 그의 계획은 마침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1931년 9월 18일 류타오후사건柳條湖事件을 빌미로 시작된 일본 관동군關東軍의 중국 만주지방에 대한 침략전쟁인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만주와 장성 부근은 물론 일본 제국 군대의 상해 상륙으로 진강 기타 장강 연안도 안전지대 되지 못했습니다. 류타오후사건이란 1931년 9월 18일 일본 제국의 관동군이 중국의 만주를 침략하기 위해 벌인 자작극이었습니다. 만주 침략을 위한 작전의 시나리오는 관동군 작전 주임참모인 이시하라 간지, 관동군 고급 참모인 이타가키 세이시로, 관동군 사령관인 혼조 시게루 등 단 세 명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이들을 중심으로 ‘만몽영유 계획’이 모의되었습니다. 침략의 구실을 만들기 위해 관동군은 1931년 9월 18일 밤 10시 30분경 류탸오후에서 만철 선로를 스스로 폭파하고 이를 중국의 장쉐량 지휘하의 동북군 소행이라고 발표한 후 관동군은 만주 침략을 개시했습니다.

만주사변으로 인한 이상향 건설 계획의 좌절은 안창호에게 있어서는 매우 마음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가 거의 10년을 두고 생각하고 또 각지로 편력하면서 흙과 물을 맛보면서 그리던 꿈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본국으로 잡혀 돌아와서 4년 징역을 치르고 출옥해서도 이상향 건설 계획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계획은 해외의 그것과는 성격이 달랐습니다.

안창호는 1924년에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동포들은 그를 매우 반겼습니다. “선생님, 다시는 북미를 떠나지 마시오. 선생님이 떠나시면 또 우리 동포들의 마음이 떨어지고 헷갈리오.” 이것은 동포들의 눈물겨운 진정이었습니다.

흥사단에는 어려운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 마당에 수양은 다 무엇이냐. 있는 힘을 다해서 곧 독립 운동을 시작하자” 하는 일파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광수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3.1운동이 일어나도 흥사단은 단으로서는 나서지 아니하였다. 단우들이 개인적으로 나섰다. 도산을 비롯하여 미국에서나 상해에서나 다수의 흥사단우가 요인으로서 독립 운동에 힘을 썼다. 그러나 흥사단으로서는 그 비정치성을 끝까지 지킨 것이었다. 그래서 흥사단의 기본 적립금과 준비 적립금에는 손을 대지 아니한 것이었다.

 

흥사단의 참 주지主旨를 깨닫지 못한 일부 단우들이 이를 불만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정치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자칭 신파라 하고, 흥사단의 전통을 고수하려는 다수를 완고한 수구파라 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수양이란 유치한 청소년이나 몽매한 무식쟁이들이 할 일이고, 자기들과 같이 대학을 나온 지식층에게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안창호는 소위 신파를 운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일찍이 상해에서 장문의 서한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서한의 내용은 “우리 민족의 유일한 목적은 안전한 독립 국가를 건설하여 이것을 빛나게 유지, 발전함이니, 이 밖에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 하고 그러하기 위하여 우리는 건전한 인격을 수양하고 신성한 단결을 조성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고는 저것이 있을 수 없다는 인과 관계를 역설하고, 그러므로 우리 흥사단의 인격, 단결, 수양 운동이 곧 유일무이한 독립 운동이요, 또 모든 정치 운동의 모체라고 하였다.”

안창호는 수양이 곧 독립이라는 사상을 서한에서 밝혔습니다. 그의 서한은 1936년 수양동우회사건 검거 중에 발견되어 수양동우회 유죄의 가장 큰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안창호는 독립 국가의 건설을 건축에 비유하여 기초를 잘 다지지 못한 건축은 오래 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한 기초란 수양된 국민, 국민의 자격을 의미합니다. 흥사단 약법의 목적에 ‘우리 민족 전도대업前途大業의 기초를 준비함으로 목적함’의 ‘기초’가 바로 그것을 의미합니다. 건축에 대한 안창호의 또 다른 비유는 건축과 재목에 관한 것입니다. 재목이 없이 아무리 설계를 잘 하더라도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재목을 구할 것이 없으면 씨를 심어 조림造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양이란 바로 기초이며 조림인 것입니다. 그래서 재목이 없더라도 건축을 짓자는 말에 안 된다면서 그것은 오직 공론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100년을 자란 뒤에야 비로소 재목이 된다 하면 오늘 심은 나무는 100년 후에는 재목이 될 것입니다.

안창호는 이런 점을 동포들에게 설명 강조하고 자신이 언제 미국을 떠나더라도 단에 동요가 있지 않도록 동지가 서로 다스리는 정신을 역설했습니다. 이렇게 흥사단을 정비한 후 안창호는 13개월간의 방문을 마치고 1926년 4월 22일 미국을 떠나 상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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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탈구subluxation가 무엇입니까?

 

 

아탈구subluxation를 불완전탈구라고도 합니다. 관절을 이루는 뼈의 머리 부분으로 볼록하게 되어있는 부위인 골두骨頭와 관절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뼈 중에서 오목면을 이루는 관절와joint pit가 마주 대하는 관절면의 일부가 아직 접촉을 유지하고 있는데 완전하지 못한 상태로 관절면이 불완전하게 접촉하는 것입니다.

경추의 아탈구 현상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목에 통증이 심하고 손과 발 다리도 저리고 팔과 어께도 아프면 경추 1, 2번 주위의 인대 손상에 의한 증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턱을 앞으로 쭉 빼는 자세를 오래 취했다든지 한쪽으로 갸우뚱 한 자세로 오래 있었다든지 정렬을 깨는 자세로 오래 있었을 경우 경추를 지지하는 근육과 인대들의 균형이 깨져서 나타납니다. 인대 손상일 경우에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하며 최소 6주 이상 착용해야 합니다.

팔꿈치 아탈구elbow subluxation는 두 살 전후의 어린이의 팔을 갑자기 잡아 당겨서 생기는 팔꿈치의 탈골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로 nursemaid's elbow라고도 하는데 ‘보모의 팔꿈치’라는 뜻입니다. 보모가 아이의 팔을 갑자기 당겼을 때 생긴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입니다. 팔꿈치에 탈골이 생기면 아이는 매우 아파하며 팔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팔을 쭉 펴고 약간 안쪽으로 팔이 돌아간 상태로 웁니다. 치료방법은 아이의 팔꿈치를 한 손으로 잡고 팔꿈치를 굽힌 후에 다른 손으로 앞 팔을 약간 밖으로 비틀면 딸각하는 느낌이 들면서 치료가 끝납니다.

경추 1, 2번이 아탈구가 되면 현기증, 매스꺼움, 음식을 삼킬 때 목에서 걸림, 어깨통증, 두통 등 인대 손상에 의한 증상에 비해 통증이 더 심합니다.

흉추 아탈구의 경우 증세는 보통 이따금 척추에서 은은한 통증이 오는 걸 느끼는데 통증이 시작되면 하루 종일 혹은 이틀 동안 지속되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멀쩡해집니다. 그런 후 몇 주 내지는 한두 달 있다가 다시 통증을 느낍니다. 앉아있을 때 특히 통증을 느끼며 의자에 기대어 있으면 그나마 좀 견딜 만합니다. 누워있으면 괜찮고. 척추에 가장 좋지 않은 자세가 앉는 자세입니다. 서 있는 자세보다 더 척추에 무리를 주는 자세가 앉은 자세입니다. 평소의 앉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줍니다. 등에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 중 심각한 경우는 가슴 속에 있는 장기의 질환입니다. 장기의 질환이 아닌 경우에는 근육이나 흉추 골격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흉추에 디스크 질환이 생기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보통은 자세 불량으로 인한 근육통입니다.

흉추 아탈구로 인한 통증은 근육의 뭉침 현상을 동반하는데 자세에서 오는 문제가 일반입니다. 척추가 옆으로 활처럼 굽은 상태인 측만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앉아서 일하다가 한 시간에 한 번쯤 일어나서 잠시 걸으면 뭉친 근육이 풀리면서 통증이 사라집니다. 한 자세로 오래 있게 되면 척추에 지나친 압력이 가해지고 혈액순환도 제대로 안 되어 통증이 생깁니다. 컴퓨터를 오래 사용해야 한다면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사용하고 모니터의 중앙을 눈높이 맞춰야 합니다. 그래야 고개를 숙이지 않고 일할 수 있습니다. 의자가 너무 높아도 좋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평상시에 스트레칭이나 규칙적인 운동을 해야 합니다. 운동은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줍니다. 수영은 권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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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대한민국 독립자금과 시사책진회

 

 

 

임시정부는 실력양성론과 외교독립론이 대립하면서 침체에 빠졌습니다. 1921년 독립 운동전선 내부에서는 임시정부의 활동과 전체 독립 운동의 방향전환을 논의하기 위한 국민대표회의 개최 문제가 제기되었고, 논의는 1922년 5월 국민대표회주비회國民代表會籌備會가 국민대표회의 ‘소집선언서’를 발표하고 임시의정원에 후원을 요청하는 ‘인민청원안’을 제출함에 따라 구체화되었습니다. 1922년 8월에는 강석훈, 이한호, 박태열, 김성득, 방달성, 박진, 정유린, 박관해, 최찬학, 장덕진 등이 연서하여 국민대표회주비회 후원을 약속하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민족의 대동단결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임시의정원에서는 의원 상호간 심한 의견 차이만 노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에 입당하여 활동한 한형권韓馨權이 레닌으로부터 독립자금을 받아온 20만루블 사용 문제까지 겹치면서 독립 운동전선 내부에서는 심각한 정쟁과 파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동휘는 김립金立과 함께 1919년 5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북간도지방에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을 조직하여 활동한 영향력을 배경으로 군무총장을 지내고, 1920년에는 국무총리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안창호, 이승만, 여운형 등과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방법론을 두고 대립했습니다. 이동휘는 오직 무력으로 일본군을 격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무장으로서 일본군과 싸우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20년 소련에서 독립 운동 자금으로 200만 루블을 제공할 의사를 전해오자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한형권, 여운형, 안공근을 파견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동휘는 자의적인 결정으로 한형권만 모스크바로 파견했습니다. 이동휘는 한형권이 레닌으로부터 1차로 받아온 60만 루블 가운데 40만 루블을 김립에게 전달하여 좌익 혁명가들의 정치활동비로 쓰게 했지만 이동휘의 개입으로 그 돈이 고려공산당에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그 돈이 고려공산당에도 전달되지 않아 임지정부에선 내분이 일어났습니다. 이승만이 이동휘를 공박했고, 이동휘는 이일 때문에 사퇴했습니다. 이동휘는 이미 사퇴를 준비하고 있었고 자금을 빼돌리기 위해 국무총리직을 유지했을 뿐이었다는 것이 훗날 알려졌습니다. 김립은 임시정부 경무국장 김구에 의해 암살되었고 이동휘가 이끌던 독립군단은 1921년 6월 28일 연해주沿海州의 자유시自由市 이만에서 러시아 적군敵軍들과 싸운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 혹은 흑하사변黑河事變에서 그가 믿었던 적군들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맞고 말았습니다. 이동휘는 시베리아에서 병사했습니다.

한형권은 1922년 11월 모스크바에서 2차로 나머지 20만 루블을 받아 윤해尹海와 함께 상해로 돌아왔습니다. 이 돈이 1923년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 사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임시정부와 고려공산당 사이에 알력이 발생했습니다. 김립이 일부 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김립은 임시정부에 반환하라고 주장한 오면직吳冕稷과 노종균盧宗均에 의해 상해에서 암살되었습니다. 이 일로 임시정부에 내분이 발생했고 고려공산당도 이르쿠츠크파, 상하이파로 갈라지게 되었으며, 레닌이 약속한 나머지 140만 루블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독립 운동전선 내부에서 정쟁과 파쟁이 일어나자 현안으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성된 것이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입니다. 시사책진회의 회원은 임시정부 및 독립 운동 단체들의 주도적인 인물들로, 안창호를 포함하여 이동녕, 김구, 최일, 노백린, 여운형, 민충식, 이시영, 조소앙, 신익희, 김덕진, 최일, 한진교, 최여식, 조완, 홍진, 차리석, 정영준, 원세훈, 김인전, 연병호, 김철, 유기준, 안정근, 남형우, 김용철, 오영선, 이기룡, 손정도, 이탁, 도인권, 최대윤, 민병덕, 조상섭, 이진산, 이유필, 중숙, 옥관빈, 이필규, 양기하, 양헌, 현순, 천세헌, 장붕, 김홍서, 곽영, 윤기섭, 김현구, 김만겸, 심상완, 최준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상호간 노선의 차이가 크고,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이 심각했을 뿐만 아니라 도중에 임시의정원 의원과 이승만 옹호파들이 전원 탈퇴함으로써, 시사책진회는 1922년 8월 11일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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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모근trapezius muscle이 무엇입니까?

 

 

 

승모근trapezius muscle(혹은 등세모근)은 후두골(뒤통수뼈)로부터 아래로 흉추(등뼈)에 이르기까지 길게 내려오며, 옆으로는 견갑골scapula(어깨뼈)까지 걸쳐 있는 길고 얕은 근육으로 견갑골을 움직이고 팔을 지탱해주는 근육입니다. 승모근은 크게 윗부분, 중간부분, 아랫부분으로 나뉘고 견갑골의 움직임은 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윗부분은 견갑골을 올리고 중간부분은 견갑골을 뒤로 당기며 아랫부분은 견갑골을 내리는 작용을 합니다. 또한 견갑골, 쇄골, 오탁골 등으로 이뤄져 상지를 버티는 여러 개의 골격인 상지대(팔이음뼈)를 머리뼈cranium와 경추 및 흉추에 연결시킴으로써 팔을 지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흉곽 뒷면에 좌우대칭으로 제2∼제7늑골rib에 걸쳐 있으며, 길이 9∼10cm의 넓적한 삼각형 모양인 견갑골의 기능은 몸통의 뒤쪽과 팔을 연결하는 것으로 몸통 앞쪽의 빗장뼈와 함께 상지대를 형성하여 몸통과 팔을 연결하고 힘과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모니터를 바짝 들여다보며 키보드를 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을 주면서 으쓱 들어 올리게 됩니다. 이렇게 세 시간 이상 작업하다 보면 어깨부터 등까지 쑤시고 결리게 됩니다. 증상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심해지면 많이 쓰는 쪽 어깨가 뻐근하고 무거워지면서 물건을 들기도 힘들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어깨 관절에 통증이 나타나는 것은 어깨 관절에 누적된 피로 때문입니다. 잘못된 자세가 어깨 관절 주위 근육에 피로가 쌓여 굳어지게 합니다. 근육이 굳으면 그 속의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액순환이 잘 안 됩니다. 혈액은 근육의 허기를 해소해 피로를 풀어주는 에너지원입니다. 좁아진 혈관 탓에 영양을 공급 받지 못한 근육은 더 깊은 고통을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깨 주위에는 다른 부위보다 특히 복잡 다양한 근육들이 관절을 보호하고 있으므로 어깨에 지나친 스트레스, 피로가 쌓이면 미세한 근육들이 쉽게 굳어져 관절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예방하기 위해서는 어깨 피로가 없을 때에도 흉추의 돌기에서 시작하여 외하방으로 이어져 견갑골의 외내연에 붙은 능형근rhomboid muscles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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