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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 - 이슬람세계에 대한 오해와 이해
바삼 티비 지음, 유지훈 옮김 / 지와사랑 / 2013년 1월
평점 :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들
신간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지와 사랑, 원제: Islamism and Islam)의 저자 바삼 티비는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들’이란 제목의 글에서 무슬림과 서방세계 모두가 이슬람주의의 사상과 관습에 대한 몰이해가 있다면서, ‘급진적 이슬람교’를 추종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전투적인 작태로 치부하거나, 이슬람답지 못하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들을 파문하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티비는 ‘급진적 이슬람교’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혹 가장 보수적인 무슬림을 가리켜서 급진적이라고 말한다면 그 또한 몰이해라고 말합니다. 티비는 무슬림에 대한 이런 오해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이슬람주의와 관련된 쟁점에서 정치가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정책을 잡거나 학자들은 쟁점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함을 경고합니다.
티비는 이슬람세계에 ‘급진적 이슬람교’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정치를 종교로 승화시킨 초국가조직의 전체주의적 이슬람주의가 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질서를 이슬람교에 접목시켜 신정정치를 꿈꾸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이슬람교란 이런 것이다 하고 운운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자신 독실한 이슬람교 가정에서 성장하고 진보주의 입장에서 이슬람교를 옹호하는 학자로서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치적 속셈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스스로를 신실한 신도로 생각하고 그에 걸맞은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데 대해 냉소합니다.
티비는 서방세계의 정책 입안자들과 영향력 있는 학자들이 이슬람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그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을 소외된 소수민족이자 “급진적 무슬림”으로 낮잡아 부르거나 이슬람화 정책을 “또 하나의 근대화” 로 부풀리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서방세계의 주요 정치가들이 과거에 범한 잘못은 이슬람주의가 번성하는 것을 실용적 차원에서 대응하기 위해 자신들이 이슬람주의자들을 포섭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에서 정권을 잡아 통치권을 내세우면 이슬람주의자들이 고분고분 따를 것이라 생각한 데에 있었습니다. 극단주의자들의 조직이 그러했듯이 이슬람주의자들도 통치권을 주면 제풀에 사그라지거나 현실에 적응하게 될 것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알고 있듯이 이슬람세계에서의 포스트이슬람주의의 조짐은 여태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저자는 이슬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꾸며낸 전통의 모태가 되는 이슬람교의 전통을 먼저 파악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에서 이슬람교의 전통을 파악하기 위한 여섯 가지 주제를 제시합니다. 그 여섯 가지는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의 기본적인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운
동이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전체주의와 파시즘, 공산주의, 동시대 이슬람주의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전체주의, 파시즘, 그리고 공산주의의 초기 사상들은 종교와 무관했던 반면 이슬람주의는 그렇지 않았다는 차이일 뿐입니다.
“이슬람주의”는 본래의 사상을 이데올로기로 전환할 때 “주의ism”를 붙인다는 보편적인 관행을 반영합니다. 예컨대, 카를 마르크스의 이름에 “주의”를 덧대면 유럽 휴머니스트 마르크스의 사상을, 본래의 것과 늘 일치하는 사상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레닌주의자들이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로 발전시킨 것으로 마르크스의 원래 의제와는 사뭇 다른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의 정치화란, 이슬람교 신앙과는 일치하지 않는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 종교가 이용되는 과정을 일컫습니다. 정치적 종교가 세속적 목적을 추구하는 수단이 된 것으로 저자는 이런 점에서 이슬람주의와 이슬람교가 다르다고 재차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슬람주의가 종교를 정치적으로 해석한 것이란 점을 보탰습니다. 이는 이슬람주의가 종교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가 이런 결론에 도달은 것은 그가 30년간 이슬람주의를 연구하면서 전 세계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들이 자신들을 진정한 신도로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