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에게 있어 창작은 단순하고 지적이며
개념 미술Conceptual art은 사상이나 개념을 미술품의 본질적 구성 요소로 간주하며 기록의 형태를 우선적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간주한다. 개념 미술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등장한 장르이지만 그 기원은 마르셀 뒤샹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베르타 스미스는 <개념 미술>에 적었다.
“뒤샹은 창조적인 행위를 여러 가지 오브제나 활동에 미술이란 명칭을 부여하는, 극히 기본적인 행위로 바꾸어놓았다. 그에게 있어 창작은 단순하고 지적이며 많은 부분 임의적인 결정의 ‘결과’이다. 뒤샹은 다양한 방식의 언어적, 시각적 장난과 의도적인 우연, 평범하고 하찮은 물건, 타인과 자신의 미술을 겨냥한 도발적인 제스처,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작품의 수단과 주제로 사용했다.”
블랭빌 근교 태생의 프랑스계 미국 예술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의 할아버지, 형 자크 비용과 여동생 쉬잔은 화가였고 형 뒤샹-비용은 조각가였다. 뒤샹은 1903년 파리로 가서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잠시 수학했고, 1905~10년 <쿠리에 프랑세즈 Courrier Francais>와 <르 리르 Le Rire>에 풍자만화를 그렸다. 1909년 살롱 데 쟁데팡당에 처음 참가했으며 1909년 이후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를 중심으로 한 서클 멤버들과 입체주의 운동에 참여한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그는 피카비아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뉴욕 다다를 창설했다.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는 아모리 쇼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그는 이 작품을 살롱 데 쟁데팡당에서 거부당하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입체주의 전시회에 처음 소개했으며, 또한 1912년 뒤샹이 창립 회원으로 참여한 섹시옹 도르의 첫 번째 전시회에서 소개했다.
1913년 2월 17일부터 3월 15일까지 뉴욕 렉싱턴 애비뉴 25번가에 있는 제69 연대 무기고armory에서 유럽의 아방가르드 미술과 미국의 현대 미술을 모아 연 전시가 아모리 쇼Armory Show이다. 그 뒤 이 전시회는 시카고와 보스턴에서 잇달아 열렸다. 전시회의 공식 명칭은 ‘국제 현대 미술전’이었다. 이는 통계상 1,600여 점이라는 많은 작품이 전시된 대규모 전시회이자 또 한편으로는 아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새로운 미술을 과감하게 선보인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