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 한 제노
머레이는 저서 <스토익 철학 The Stoic Philosophy>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제노는 실재 세계를 주장했다.
'실재란 너의 말은 무슨 뜻이냐?' 하고 회의주의자가 묻자
'내 말은 확고한 물질을 말한다. 내 말의 뜻은 이 탁상은 확고한 물질이다.'
'그럼 신은? 혼은?'이라고 회의주의자가 묻자 제노는
'온전히 확고하다. 탁상보다 더욱 더 확고하다'고 대답했다.
'그럼 미덕, 정의 혹은 법칙도 확고한 물질들이냐?'고 묻자
'물론이다. 아주 확고하다'고 제노가 대답했다.
럿셀은 저서 <서양 철학사>에서 제노가 너무 서둘러 자신의 형이상학 이론을 정립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고 적고 있다.
스토익의 주요 사고는 우주적 예정론Determinism과 인간의 자유였다.
제노는 우연이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면서 만물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운행된다고 주장했으며, 우주에 곧 화재가 발생해 만물은 다시 불로 환원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토익은 기독교의 교리처럼 불로 환원되는 현상을 세계의 종말로 보지 않고 한 주기cycle의 마감으로 이해했으며 이런 주기는 계속 반복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사건은 과거에 이미 일어난 적이 있었던 것들이고 또 미래에도 일어날 일들이라고 했는데 여기까지는 데모크리투스의 이론과 다름이 없으며 스토익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관점에 불과했다.
스토익주의는 자연의 법칙이 만물을 다스린다고 믿었으므로 18세기의 신학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법칙을 신의 의도로 믿었다.
제노는 신을 전능자로 인식하면서 신을 제우스Zeus라고 부르기도 했고, 세네카Seneca는 제우스를 보통 사람들이 믿고 있는 신들에 비해서 더욱 더 전능한 신으로 믿었다.
스토익주의자들에게는 신이 훌륭한 휴양지에서 피서를 즐기며 인터넷을 통해 우리 인생을 관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세계의 혼으로서 우리의 혼은 그의 신성한 불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힌두교와 불교에서 세계의 혼을 바다로 비유해 우리의 혼은 물 한 방울인데 방울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의 혼은 전체 혼의 일부분이란 말과 유사하다.
이런 신학은 진전된 것으로 신과 인간을 한데 묶어두는 것을 의미하며, 윤리적 면으로는 세계의 혼은 자연의 법칙이 가진 지고의 선이므로 우리의 혼이 자연의 법칙을 따르면 조화로 나타나 선하지만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 부조화로 나타나서 악해진다는 논리가 성립되어 종교에서 다루어야 할 윤리의 문제도 함께 해결되는 것이다.
스토익주의는 우리의 의지will가 자연의 의지 혹은 자연법칙과 같을 때 미덕virtue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 부덕vice이란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스토익주의자들은 사악한 자들도 자연의 법칙대로 행위하지만 그들은 자의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자발적인 방법 즉 강제에 의해 행위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클린테스Cleanthes가 비유한 바에 의하면 사악한 자들은 수레에 묶여 있는 개와 같아서 수레가 가는 대로 끌려다닌다고 했고, 그런 행위도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토익주의는 덕을 유일한 선으로 간주하면서 건강, 행복, 그리고 소유를 덕의 내용에서 제외시켰다.
덕은 우리의 의지 문제이기 때문에 가난하다고 덕이 없으란 법이 없으며, 독재자가 우리를 감옥에 쳐넣는다고 우리의 덕이 상실되는 것도 아니고, 사형에 처하더라도 덕이 있으면 소크라테스처럼 고상하게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스토익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부덕 혹은 악이 오히려 그것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덕을 추구해야 한다는 필연성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적절한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했는데 여러분은 기독교가 왜 스토익의 주장을 환호하며 반겼는지 이제 이해할 줄 안다.
스토익은 우리에게 덕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우리 스스로가 자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미결로 남았다가 신의 결재를 받은 후에야 알 수 있게 된다고 주장했다.
현대인들이 덕의 여부를 미결로 남겨두어야 한다면 덕의 장점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각할 수 없는 덕이라면 과연 덕이겠느냐는 의심이 생긴다.
스토익은 주관주의 혹은 개인주의를 추구했는데 어떤 열정에 한해서만 사악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열정을 사악한 것으로 믿었고, 아내 또는 자식이 사망했다고 그런 것이 자신의 덕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심히 괴뤄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