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익주의Stoicism 
 

스토익주의Stoicism의 출발은 기원전 3세기 초 제노Zeno의 가르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의 가르침이 일관되게 전수된 것은 아니었고, 기원후 2세기 후반 이후 스토익주의의 간판스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가르침의 경우 제노의 가르침과는 같지 않았다.
제노는 유물론자였고 그의 주요 사상은 견유학파와 헤라클리투스의 이론을 혼용한 것이었는데 그를 따른 제자들이 차츰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들이더니 유물론을 버렸으므로 유물론을 유추할 근거가 나중에는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은 스토익주의 철학보다는 윤리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윤리와 관련이 있는 신학에 관해서 말한다.
스토익주의는 대부분 시리아 사람들이 동조했으며 나중에 로마인이 가세했다. 탄Tarn은 저서 <그리스인의 문명 Hellenistic Civilization>에서 갈데아인Chaldean이 스토익주의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으며 길버트 머레이는 "알렉산더 이후 거의 모든 집권자들 다시 말하면 모든 왕은 자신들을 스토익이라고 말했다"고 기술했다.

스토익의 창설자 제노는 기원전 4세기 후반에 사이프러스Cyprus에 있는 시티움Citium에서 태어난 페니키아인Phoenician이었고, 그의 집안은 상업에 종사했던 것 같았으며, 제노가 아테네에 온 것은 장사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철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공부했는데 견유학파의 가르침이 특히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는 철학적으로 절충주의를 선택할 줄 안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플라톤을 추종한 사람들은 그의 융통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그런 행위는 아카데미에 대한 표절이라고 비난했다.
스토익주의자들은 소크라테스를 가장 이상적인 성자로 여겼는데 재판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당당함, 탈옥하라는 친절한 권고를 물리친 점, 죽음에 임박해서도 여유있게 침착한 태도를 보여준 점, 자신을 기소한 사람에게 불의를 행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경고한 점, 이런 것들은 바로 스토익주의가 추구한 내용들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아는 대로 춥거나 더위에 상고나하지 않았고, 음식과 옷차림에 무관심했는데 이런 것들도 스토익주의가 추구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플라톤의 아이디어들에 관한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스토익주의자들은 그가 주장한 혼이 불멸하다는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후기 스토익주의자들은 혼을 비물질이라고 생각했지만 초기 스토익주의자들은 헤라클리투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혼은 물질인 불로 구성되었다고 믿었다.
이런 사고는 에픽테투스Epictetus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에서도 나타났는데 그들은 불을 만물의 네 요소들 물, 먼지, 바람, 불 가운데 한 요소로 인식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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