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의 숨겨진 삶
짐 더처.제이미 더처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95



늑대가 사라진 숲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 늑대의 숨겨진 삶

 짐 더처·제이미 더처 글·사진

 전혜영 옮김

 글항아리 펴냄, 2015.12.7. 22000원



  숲에서 늑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는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좀처럼 생각해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늑대를 숲에서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우나 이리나 곰이 사라진 숲은 어떤 모습이 될는지 생각해 보기도 어렵습니다. 범이 사라진 숲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생각해 보기 어렵지요. 작은 짐승을 잡아서 먹는 큰 짐승이 숲마다 마음껏 돌아다니던 때를 살지 않았으니, 이러한 큰 짐승이 없는 오늘날 숲에서는 이러한 큰 짐승이 널리 있는 숲을 그리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헤아려 볼 만합니다. 큰 짐승이 있는 숲에는 그야말로 온갖 짐승이 두루 있습니다. 큰 짐승이 없는 숲에는 그야말로 몇몇 짐승만 있습니다.


  ‘포식자’라고 하는 큰 짐승은 먹이사슬에서 거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얼핏 생각한다면 이 포식자가 없으면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작은 짐승은 ‘살기 좋다’고 여길 테지만, 찬찬히 생각한다면 이런 얼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포식자가 없는 먹이사슬에서는 작은 짐승이 끝없이 불어나다가 스스로 무너지기도 하고,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짐승은 뒷걸음치기도 하는데,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짐승은 거의 풀을 먹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먹이사슬 꼭대기 쪽에 있는 포식자가 사라지거나 줄어들면 ‘풀도 함께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먹이사슬 얼거리가 깨지기 때문에 모두 뒤틀리거나 망가집니다.



소투스 무리의 중간 서열 늑대 모토모. 모토모는 우리가 일을 할 때면 빤히 쳐다보곤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도,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지도 않았으며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35쪽)


늑대 무리는 서열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소리와 몸짓이 혼합된 여러 가지 소통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지배와 복종을 표현하며, 질서를 꾸준히 강화시킨다. 늑대는 소통을 통해 서열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러한 언어를 포악하고 악한 것으로 해석하는 실수를 범하곤 한다. (70쪽)



  짐 더처 님하고 제이미 더처 님이 함께 빚은 《늑대의 숨겨진 삶》(글항아리,2016)을 읽으면서 늑대와 숲과 사람은 어떻게 이어진 삶인가를 곰곰이 짚어 봅니다. 이 책은 늑대 무리 사이에서 늑대를 오래도록 꾸준히 지켜본 끝에 태어납니다. 한두 해라든지 몇 해쯤 지켜본 뒤에 나온 책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늑대를 먼발치에서 구경하고 나온 책도 아닙니다. 늑대 무리가 일구는 삶을 건드리지 않되 늑대 무리 한복판에 오두막을 마련해서 조용히 늑대 무리하고 이웃이 되어 살며 바라보고 마주한 이야기를 글하고 사진으로 엮은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은 “숨겨진 삶”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이제껏 사람들이 늑대라고 하는 숲짐승을 제대로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알려 하지 않으면서 엉뚱한 생각만 했다는 대목을 건드리거든요.




어린 늑대들에게서 놀이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새끼는 굴에서 나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많은 생물학자는 유년기의 놀이가 근력을 키우고 협동력을 향상시키며, 사냥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게 하고, 새끼가 서열 구조에서 자리를 매기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94쪽)


레오폴드와 몇몇 사람은 자연에서 늑대의 존재가 파괴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늑대를 제거하자 자연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149쪽)



  늑대는 무리를 지어서 산다고 합니다. 늑대는 홀로 떨어져서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늑대는 ‘그리 센 짐승’이 아니기에 여럿이 힘을 모아서 사냥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잇감을 헤아려서 알맞게 무리를 지키거나 거느린다고 하지요.


  늑대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미국에서 퍼진 이야기가 무척 많다고 느낍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드넓은 들판에서 울타리를 치고 소나 양 같은 짐승을 기르면서 ‘늑대한테 잡아먹힌 소나 양’ 때문에 앙갚음을 하려고 늑대를 마구 사냥하던 이야기가 많이 퍼졌을 테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늑대가 사냥을 해서 잡아먹는 짐승 숫자보다 ‘농장에서 자연스레 죽는 짐승’ 숫자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늑대로서도 농장 짐승을 모조리 잡아서 죽인다든지 많이 잡아서 죽인다면, 늑대 무리를 지킬 수 없을 테니까요. 사람이 건사하는 농장이 있어도 이 농장에 있는 짐승이 늘 어느 만큼 숫자를 지키도록 하겠지요. 더군다나 오늘날 과학과 조사로 살피니, 미국에서는 늑대 무리를 숲에 다시 들이고 난 뒤에 다른 숲짐승 숫자가 오히려 더 늘었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사냥꾼은 ‘사냥할 짐승이 줄었다’고 해요. 왜 그러한가 하면, 늑대 무리가 사라진 미국 숲에서 ‘풀 먹는 숲짐승’은 포식자 걱정이 없이 느긋하게 지내느라 몸놀림이 뒷걸음을 치면서 숲을 망가뜨리기에 개체 숫자가 늘 수 없었지만, 포식자가 다시 나타나면서 몸놀림이 다시 ‘진화’를 했고, 이러면서 숲이 차츰 살아날 뿐 아니라, 개체 숫자가 껑충 뛰어올랐다고 해요. 이러니 사냥꾼으로서는 예전에는 느긋하게 옐크 같은 숲짐승을 쉽게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옐크가 ‘늑대라는 포식자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진화를 한 탓’에 사냥하기에 무척 까다롭다고 합니다.




늑대를 죽이기 위해 대자연에 수천 톤의 독성 물질을 뿌린 이유가 무엇일까? 늑대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가축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떻게 늑대를 멸종시키려고 수천수만 달러를 쓸 수 있을까? 오늘날 자연재해로 죽는 소와 양이 늑대의 공격을 받아 죽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데도 목장 주인이 오직 늑대에게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54쪽)



  한국에서도 숲에 늑대나 범이 다시 살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한국은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가 마을로 몰래 내려와서 밭을 다 파헤치거나 망가뜨린다고 하는데, 울타리를 높이 세우든 울타리에 전기가 흐르게 하든 독약이나 덫을 놓든 뾰족한 수가 되지 않습니다. 총을 쏘아 이런 짐승을 잡는다고 해서 달라질 일도 없어요.


  한국에서도 늑대나 범 같은 짐승이 숲에서 살면 어떠할까요? 그러면 멧돼지나 노루나 고라니나 멧토끼도 섣불리 마을로 내려오지 못하겠지요. 숲에 먹잇감이 줄어들어서 멧돼지나 노루 같은 짐승이 마을로 내려온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 늑대가 사라진 숲이 망가져서 ‘숲짐승 스스로도 먹이가 사라진 얼거리’를 돌아볼 수 있다면, 한국에서도 ‘포식자 노릇을 할 짐승이 사라진 탓’에 ‘풀을 먹는 숲짐승 스스로 누릴 먹이’가 숲에서 차츰 줄거나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몇몇 특정 지역에서 엘크 수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지만 늑대가 재도입되고 난 후 처음 12년 동안 엘크는 총 9만 마리에서 12만 마리로 오히려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에는 14만 613마리로 집계되었다. (207쪽)



  늑대가 다시 무리를 지어서 마음껏 살 수 있는 옐로스톤 국립공원 둘레에는 늑대 무리뿐 아니라 수많은 여러 숲짐승이 차츰 골고루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숲이 새롭게 깨어났다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이 새로 깨어난 숲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볼거리’가 늘어난 만큼, 국립공원이나 관광지 ‘수입’이 눈에 띄도록 부쩍 늘었다고 합니다.


  호텔을 짓거나 놀이시설을 갖추었기에 늘어나는 관광객이 아닙니다. 숲이 숲대로 되살아나도록 마음을 기울여서 살짝 손길을 뻗었을 뿐인데, 이러한 손길이 숲을 살리면서 마을도 사회도 모두 살리는 길이 되었다고 해요. 굳이 경제논리를 살필 까닭은 없지만, 경제논리를 따지기 좋아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돌아본다면, 경제논리로서도 숲을 제대로 살리고 숲짐승이 고루 어우러지도록 하는 길이야말로 우리 모두 아름답게 거듭나는 길이라고 할 만합니다.





늑대 도입 이후 그 지역에 버드나무와 사시나무가 다시 활발하게 자라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먹이와 집 지을 재료가 많아지자 비버의 개체 수 또한 늘어났고, 넓은 습지가 조성되면서 개구리와 백조, 캐나다두루미가 몰려들었다. 한때 개울둑은 엘크에 의해 풀이 사라지고 침식되었는데, 그 때문에 곤충이 들끓는 야생화가 너무 많이 자라나 고창증을 유발했다. (212쪽)



  《늑대의 숨겨진 삶》이라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뚜렷합니다. 사람만 살려고 하면 사람도 죽습니다. 이웃(사람을 비롯해 모든 짐승과 벌레와 풀과 나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살려고 하면 사람도 삽니다. 이웃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도 어떤 숨결이거나 목숨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웃을 알려고 한 걸음을 내딛을 적에 비로소 이웃을 비롯해서 우리 스스로 어떤 넋인가를 슬기롭게 깨달을 만합니다. 4349.1.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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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1-01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많은 생각을 품게 하네요!!

숲노래님!
그래도 새해이니 새해인사 올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댁네 평안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복 된 하루,하루 되소서^^

숲노래 2016-01-01 10:51   좋아요 0 | URL
책읽는나무 님 보금자리에도 언제나 고운 노래와 웃음이 넘치는
새해가 되기를 빌어요. 고맙습니다 ^^

박현규 2016-01-01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이쁘네요...ㅋ

숲노래 2016-01-01 10:51   좋아요 0 | URL
네 사진이 아주 훌륭하도록 이쁩니다

빈수레 2016-02-15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장룽저 늑대토템이란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몽골에서 늑대와 생활하며 발견한 늑대의 지혜,용맹스러움
그리고 늑대가 초원의 생태를 보호하고 있다는 진실을
알려주어 늑대에 대한 경외감을 갖게되었습니다.

이책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숲노래 2016-02-15 10:53   좋아요 0 | URL
저도 <늑대토템>이라는 책을 찾아보아야겠네요.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