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8.19.

 : 휴가철 끝난 바다와 제비나비



휴가철이 저문다. 우리 마을에도 휴가를 맞이해서 찾아온 ‘도시사람(이 마을에서 태어난 뒤 도시로 떠나 혼인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이 꽤 많았으나, 이제 모두 아이들을 자가용에 태우고 도시로 돌아갔다. 시골은 휴가철이 되어야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여느 때에는 아주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이요, 휴가철에는 더위를 식히거나 깨끗한 숲을 누리고 싶은 도시사람이 몰려들어서 시끌벅적한 시골이다.


이제 휴가철이 저무니 바닷가도 조용하리라 느낀다. 아이들은 칠팔월 여름 내내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기를 바랐으나, 지난 몇 해 동안 휴가철이면 너무 시끄럽고 북적거리고 지저분해서 올해에는 휴가철에 바다에 갈 엄두를 도무지 낼 수 없었다. 칠월 첫무렵부터 바닷가에는 얼씬을 안 했으나 달포 만에 바다내음을 맡으로 가는 길이 된다.


자전거는 면소재지를 지나서 발포 바닷가 쪽으로 달린다. 십이 킬로미터를 달리면 되는 길이다. 오르막에서 큰아이가 문득 묻는다. “아버지, 바다에 갈 적에 자전거 말고 택시 타면 안 돼?” “왜, 택시가 타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다 보면 힘들어서 발판을 구를 수 없어.” “그래, 그렇구나. 벼리는 힘들면 발판을 안 구르고 가만히 서면 돼. 아버지가 혼자서 달리면 되니까.” “알았어. 근데, 왜 바다에 갈 적에 우리는 자전거를 타?” “우리는 자전거라는 멋진 탈것이 있으니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바람소리를 듣고 하늘에 뜬 구름도 실컷 보면서 갈 수 있어.”


자전거는 ‘잉개들’이랑 ‘돌돌들’을 옆으로 끼고 달린다. 잉개들이랑 돌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이곳에 있던 ‘들’이다. 매립지 들이 아닌 ‘그냥 들’이다. 오래된 들이기에 오래된 이름이 그대로 있다. ‘잉개들’이랑 ‘돌돌들’은 어떻게 붙은 이름일까? 이 이름이 붙은 까닭을 아는 이웃님이 있을까?


돌돌들이 끝나고 수덕마을로 접어든다. 이제부터 수덕산 기슭을 옆으로 끼고 오르막을 넘는다. 두 봉우리 사이에 언덕길이 있는데, 산이기는 하되 260미터를 살짝 넘기에 그리 가파르지 않다. 그래도 두 아이를 태우고 샛자전거랑 수레를 끄는 자전거로서 땀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기스락 밭에서 마을 아지매 여러 분이 밭일을 하신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언제나처럼 큰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밭일을 하시던 아지매들은 살짝 허리를 펴고 “어디서 이런 이삔 소리가 나나!” 하고 얘기하신다.


참말 그렇다. 아이들이 외치는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말 한 마디도 더없이 예쁘다. 밝게 웃으면서 외치는 인사말 한마디로 밭일 아지매는 새 기운을 얻고, 나도 이 오르막에서 새롭게 기운을 차린다.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을 맞이하는데, 우리는 늘 내발마을 쪽 옛길로 접어든다. 오르막 끝부터 발포 바닷가(해수욕장) 가는 새로운 길은 자동차가 제법 드나들고 땡볕이라서 안 좋다. 내발마을로 들어서면서 돌아가는 옛길은 길가에 나무가 우거져서 싱그러운 숲길과 같다. 더욱이 이쪽 길로 돌아서 바닷가로 가면 자동차하고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나무그늘이 드리운 곳에서 자전거를 세우면서 다리를 쉬고, 두 아이가 물을 마시도록 한다. 자, 한 번 더 고개를 넘으면 바닷가이니, 함께 노래하면서 즐겁게 가자.


마지막 고갯마루를 넘으니 바다가 보인다. 큰아이가 먼저 소리치면서 동생한테 “보라야, 이제 바다야! 바다에 다 왔어!” 하고 알린다. 바람이 꽤 세게 분다. 오늘은 볕도 있고 바람도 있으니 여러모로 놀기에 좋겠구나 싶다.


바닷가에 관광객은 얼마 없다. 채 열 사람이 안 된다. 그러나 관광객은 아주 큰 소리를 지르면서 논다. 이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우리대로 놀면 된다. 자전거는 평상 사이에 눕힌다. 이런 휴가철에 평상에 엉덩이라도 댔다가는 ‘평상 대여비’를 달라고 한다.


바다에 닿은 아이들은 먼저 모래밭에 신을 벗고 맨발로 모래를 판다. 다음으로 바닷물에 천천히 들어가서 온몸을 적신다. 이러면서 바닷물을 두 손으로 떠서 자꾸 마신다. 얘들아, 바닷물은 짤 텐데? 큰아이는 거침없이 꽤 깊이 들어가면서 물살에 몸을 맡긴다. 작은아이도 누나 곁에서 놀고 싶지만 물결이 찰랑일 적마다 어푸푸 하면서 뒤로 물러선다. 이윽고 큰아이는 물살이 끝나는 쪽으로 나와서 물결이 일렁일 적에 폴짝폴짝 뛰어넘기를 한다.


한참 몸을 적시며 논 뒤, 몸을 말리려고 모래밭에서 뒹군다. 두 아이는 있는 힘껏 모래를 판다. 이러다가 모래밭에 드러누워서 모래로 덮어 달라고 한다. 모래에 덮이는 아이들이 까르르 노래한다.


늦은아침을 먹이고 나왔으나 아이들이 곧 배고프다고 할 듯하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먹일 수 없으니, 이제 모래를 씻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런데, 공중화장실 앞에 있는 물꼭지에 쇠파이프를 길게 붙여서, 이 물꼭지로 모래를 씻기 아주 어렵도록 바꾸어 놓았다. 일부러 샤워실만 쓰도록 하려고 이렇게 했구나 싶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모래를 다 씻어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춥다고 한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큰옷을 목까지 덮어쓴다. 큰아이한테는 마른천 한 장을 어깨에 둘러 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면소재지 들어서는 어귀에서 제비나비 한 마리를 본다. 아슬아슬하게 낮게 난다. 가만히 보니 자동차에 치여서 다친 듯하다. 비틀거리면서 난다. 이러다가 찻길 한복판 노란 금에 내려앉는다. 큰아이가 “거기 앉으면 안 돼. 위험해!” 하고 소리를 치지만, 나비는 아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큰아이는 “나비 어떻게 해. 저기에 저렇게 있으면 차에 밟힐 텐데.” 하고 자꾸 말한다. 아버지는 이제 다리에 힘이 풀리지만, 자전거를 세워서 오르막을 도로 올라간다. 나비를 살리고 보자.


나비가 내려앉은 옆에 자전거를 세운다. 숨을 돌리고 길을 살핀다. 자동차가 안 지나가기를 바랐는데 때마침 자동차 한 대가 올라온다. “아, 왜 이럴 때에?”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자동차는 ‘자전거가 선 자리 옆으로 크게 돌아가 준다’는 뜻인지 아예 건너편 찻길로 달려 주지만, 이러면서 한복판 노란 금을 밟는다. 노란 금에 내려앉은 제비나비는 그만 자동차 바퀴에 밟힌다.


자동차가 지나간 뒤에 얼른 달려간다. 제비나비 날개를 가만히 쥔다. 발을 가늘게 떤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자동차 바퀴에 밟히면서도 용케 몸은 안 밟히고 날개만 밟힌 듯하다. 그러나 더 날갯짓을 하지 못한다. 처음 노란 금에 내려앉을 적에도 더 움직일 수 없겠다 싶은 날갯짓이었다.


“다음에는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스럽게 태어나렴.” 하고 말한다. 큰아이도 내 말을 받아서 나비한테 속삭인다. “나비 한 번 더 볼래.” 하면서 나비 옆에 앉아서 날개와 몸을 쓰다듬어 준다.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는 분들이 빠르기를 늦추어 주기를 빈다. 시골길에서 80킬로미터나 100킬로미터로는 제발 달리지 말고, 60킬로미터나 40킬로미터도 아닌, 30킬로미터 즈음으로 천천히 달려 주기를 빈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에서는 50킬로미터도 무척 빠르다. 자전거로 시골길을 달리다 보면, 자동차에 치이거나 밟혀서 죽은 개구리와 메뚜기와 사마귀와 나비와 벌과 뱀과 도룡뇽과 참새와 제비 주검을 끔찍하게 많이 본다. 길죽음으로 이 땅을 떠난 가녀린 목숨들한테 고운 바람이 불기를 빈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ppletreeje 2015-08-22 13:31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언제나 아름다운 글과 아름다운 사진들, 감사드려요~~*^^*

숲노래 2015-08-22 14:06   좋아요 0 | URL
곰곰이 생각하면
이 모든 사진은
저 스스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모습을 찍기도 하지만,
아이들한테 선물로 주고 싶어서 찍어요.

그래서 엊그제 바다마실을 다녀오며
제비나비가 죽어 가는 모습을 찍을 적에
눈물이 흘렀고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바람이 되었습니다...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