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문학과지성 시인선 81
이창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82



시를 읽는 날

―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

 이창기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1989.5.30.



  아이들과 읍내로 저자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제비를 봅니다. 나는 올해 첫 제비를 사월 삼일에 봅니다. 아직 우리 집으로는 찾아들지 않았으나, 다른 마을에는 찾아들었구나 싶고, 바다와 가까운 우리 마을보다 읍내에 더 일찍 찾아왔네 싶어서 놀랍니다. 그러나, 가만히 헤아리니 신안 같은 섬마을에는 이른 삼월에도 제비가 찾아듭니다. 완도나 진도도 퍽 일찍 제비가 찾아들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울음소리만 들어도 ‘아, 제비네.’ 하고 알아챕니다.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홱 고개를 돌리면 아주 잽싼 날갯짓으로 바람을 휙 가르면서 제비가 벌써 저만치 날아갑니다.


  아이들은 “제비? 어디? 어디?” 하며 두리번거리지만, 제비는 벌써 저쪽으로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래도 찌익짹 찌익짹 하는 소리가 울려퍼지니, 아이들도 제비가 돌아왔구나 하고 알아챕니다.



.. 앨범 속에서뿐이다 / 내가 벌거벗고 사진을 찍는 것도 / 검은 교복을 입고 버짐처럼 웃는 것도 / 십여 년 전에 죽은 털이 짧은 벙어리 개를 / 끌어 안고 하모니카를 부는 저녁도 모두 ..  (앨범 속에서)



  보려고 하는 사람은 늘 봅니다. 보려고 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늘 마음으로 먼저 알아채거나 느낍니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늘 못 봅니다. 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기에 늘 코앞에서 마주하더라도 하나도 안 알아채거나 못 느낍니다.


  내가 제비 날갯짓을 알아채는 까닭은 늘 제비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에 깃드는 제비를 언제나 눈여겨보기 때문이고, 마음 가득 제비를 그리기 때문입니다. 꾀꼬리를 늘 생각하면 꾀꼬리 노랫소리나 날갯짓을 보며 바로 알아챕니다. 뻐꾸기를 늘 생각하면 뻐꾸기 노랫소리나 날갯짓을 보며 바로 느낍니다.


  우리 집 작은아이는 늘 자동차를 생각하기 때문에, 마루에서 놀다가도 군내버스가 마을 어귀로 지나가는 소리가 나면 “와, 버스다! 버스 지나간다!” 하고 알아챕니다. 택배 짐차가 대문 앞으로 지나가거나 우리 집 앞에 서면 “택배 차다!” 하고 찻소리만으로도 알아채요.



.. 해가 지는 속도로 길을 걷는다 / 내 사랑하는 발바닥아 ..  (비상구를 향해 날아가다)



  이창기 님 시집 《꿈에도 별은 찬밥처럼》(문학과지성사,1989)을 읽습니다. 꿈에서도 별을 읽고, 삶에서도 별을 읽습니다. 별을 보려고 하기에 내 마음속에 온갖 별이 가득 뜹니다. 별을 느끼려고 하기에 내 가슴속에 갖은 별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꿈을 꾸려 하기에 잠을 자면서도 꿈을 꾸고, 눈을 뜨며 지내는 아침저녁으로도 언제나 꿈을 꿉니다.


  마음에 따라 살고, 마음에 지은 생각대로 하루를 열어요. 마음이 있기에 일을 하거나 놀이를 하고, 마음에 따라서 하루가 흐릅니다.



.. (선데이서울은 가명으로 간통이나 이별을 하고 / 투데이서울은 야구를 하고 책임자는 처벌된다) ..  (이상한 나라의 노래)



  사람들은 별을 으레 밤에만 봅니다. 낮별을 보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그러나 별은 밤낮으로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별은 하루 내내 우리를 지켜봅니다. 그저 우리 몸뚱이는 밤에만 별을 환하게 알아챌 뿐이에요. 먼먼 온별누리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별이지만, 우리는 고작 밤에만, 게다가 밤에도 전깃불을 더 밝게 비추어 아예 별을 잊어버리는 하루로 지나갑니다.


  별을 잊기에 삶을 잊지만, 별을 잊는 줄 모르기에 삶을 잊는 줄 모릅니다. 별을 못 보기에 삶을 못 보지만, 별을 못 보는 줄 모르니까 삶을 못 보는 줄 몰라요.



.. 나는 우리 집 개를 해피라고 부른다 /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난 해피 / 검둥 개와 누런 개 슬픈 개와 추운 개 배고픈 개 새끼 / 다섯 마리의 어미를 해피라고 / 부른다 밥을 먹고 피똥을 싸는 ..  (해피 엔드)



  나는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새가 깃들어 지내는지 잘 모릅니다. 아무튼 온갖 새가 많이 삽니다. 아침저녁으로 온갖 새소리를 듣습니다. 하루 내내 집안과 집밖에서 숱한 새노래를 듣습니다.


  아이들도 이 소리와 노래를 함께 듣겠지요. 귀로도 듣고 마음으로도 듣겠지요. 눈으로도 보고 마음으로도 보겠지요. 가슴으로도 느껴, 마음 가득 기쁨을 채우겠지요.


  따로 시집을 펴야 시가 흐르지 않습니다. 눈을 떠서 새를 볼 수 있고, 별을 볼 수 있으며, 하늘을 볼 수 있으면 모두 시입니다. 굳이 시집을 장만해서 읽어야 시가 흐르지 않습니다. 귀를 열어 노래를 들을 수 있고, 귀를 활짝 열어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귀를 모두 열어 숨결을 들을 수 있으면, 우리 삶은 언제나 노래입니다.



.. 외상술을 마시고 화장실에서 미란다를 먹고 온 골목의 아가씨는 / 입가에 하얀 분말을 묻힌 채 트림을 하며 미련없이 멸치대가리를 / 떼어내어 한쪽 모서리에 가지런히 쌓아갔다 간간이 ..  (여행 보고서―K市에서)



  밤이 깊습니다. 큰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쉬를 가립니다. 다시 제자리에 눕습니다. 이불깃을 여밉니다. 이 아이가 밤오줌을 가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지난날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늘 내가 떠올리는 삶은 오늘 이 아이가 보여주는 몸짓입니다. 오늘 함께 누리는 삶을 바라보고, 오늘 함께 짓는 삶을 헤아리며, 오늘 함께 사랑하는 삶을 느낍니다.


  까르르 웃는 몸짓이 노래이면서 시이고 삶입니다. 밥을 끓이는 소리가 노래이면서 시이고 삶입니다. 등허리를 펴려고 토닥토닥 두드리다가 자리에 눕는 하루가 노래이면서 시이고 삶입니다. 들풀을 뜯어 밥상머리에 나란히 둘러앉아 냠냠 짭짭 먹는 손길이 노래이면서 시이고 삶입니다. 우리 삶은 늘 모두 노래이면서 시입니다. 4348.4.4.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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