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원마루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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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배움책 30



작은 씨앗을 보살피는 흙과 같이

―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글

 원마루 옮김

 포이에마 펴냄, 2014.12.1.



  이월로 접어들어 하루하루 흐르면서 이월 한복판으로 접어들 무렵부터 우리 집 뒤꼍에서 쑥삭이 돋습니다. 쑥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 키보다 훌쩍 크게 자라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주 조그마하면서 앙증맞습니다. 이 조그마한 싹이 나중에 우람한 풀줄기로 커서 꽃을 피우고 잎을 떨구다가 시들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요.


  작은 쑥잎은 더 작은 씨앗에서 깨어납니다. 더없이 자그마한 씨앗에서 조그마한 쑥잎이 돋습니다. 흙은 아주 자그마한 쑥씨를 품어서 따스하게 어루만지는데, 이 따스한 품을 고맙게 맞아들인 쑥씨는 그야말로 무럭무럭 자라고, 쑥대가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꽤 많은 흙이 쑥대를 붙잡아 주어야 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면서 쑥대는 천천히 시들어서, 그동안 저를 붙잡느라 힘써 준 흙한테 다시 돌아가 ‘새로운 흙’이 생기도록 온몸을 내놓습니다.


  다른 풀씨를 보아도 쑥씨와 비슷합니다. 모든 풀씨는 대단히 작습니다. 깨알보다 훨씬 작은 풀씨입니다. 아주 작은 먼지조각으로 보이는 풀씨예요. 흙은 이 모든 풀씨를 고이 아낍니다. 풀씨를 고이 아끼면서 보듬고 돌보는 흙은 나중에 풀한테서 너른 사랑을 돌려받습니다.



.. 이 지구를 파괴하는 건 탐욕과 이기심이지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은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온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이 우리의 선생으로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어쩔 수 없이 장시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은 부모의 역할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만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밥을 먹이고, 병치레하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 아이를 재우는 일을 비롯해 전통적인 부모의 역할을 포기하고 있다 … 서구 사회에는 돈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 돈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흘러가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  (17, 18, 20쪽)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흙과 같습니다. 작은 씨앗이라고 할 아이들을 아끼고 돌보면서 섬기는 어버이는 흙과 같은 마음결입니다. 작은 씨앗인 아이들은 어버이를 흙처럼 반기고 고마워 하며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이리하여, 작은 씨앗은 흙을 믿고 기대면서 무럭무럭 자라요. 흙은 작은 씨앗을 사랑하고 어루만지면서 무럭무럭 자라도록 북돋우지요.


  풀은 흙이 있어서 자랍니다. 흙은 풀이 있어서 기름질 뿐 아니라, 비가 아무리 퍼부어도 쓸리지 않습니다. 드세거나 거친 비바람에 흙이 좀 쓸리면, 때로는 많이 쓸리면, 흙은 아파 하거나 슬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작은 풀씨가 해마다 나고 지고 자라고 시들면서 새로운 흙을 빚으니까요. 오랜 나날에 걸쳐서 흙은 제자리를 되찾습니다.


  높은 봉우리는 높이가 낮아지지 않습니다. 백두산도 한라산도 지리산도, 봉우리 높이는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새로운 풀씨가 끝없이 자라고 돋아서 시들어서 흙한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흙이 쓸리고 쓸려도 새로운 흙이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이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당신을 보며 묻는다. “제 손을 잡아 주실 수 있나요? 이 세상에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죠?” … 강제력을 동원해서는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 스스로 배우고 싶어 해야 한다 … 정부가 요구하는 학업 프로그램 탓에 아이들은 놀며 배울 기회를 점점 더 빼앗기고 교사들은 과도한 서류 작업에 짓눌리고 있다 … 1000년에 걸쳐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 곁에 앉아 인생을 배웠다. 노인들의 말을 듣다가도 어디론가 뛰어가 흥미로운 걸 찾아 놀곤 했다. 이것 역시 배움이다 ..  (25, 33, 37, 43쪽)



  그런데 사람들이 억지로 삽차를 써서 흙을 파헤치면, 이때에는 흙이 앓는 소리를 냅니다. 이때에는 풀씨가 죽는 소리를 냅니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뒤흔들거나 괴롭히면 풀씨도 흙도 모두 고달프면서 아파서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은 풀씨와 흙이 앓다가 죽는 소리에 귀를 닫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과 제도권과 법률과 정치경제는 모두 풀씨와 흙이 아파서 죽어 가는 모습에 눈을 감습니다.


  피를 말리는 싸움을 붙이는 물질문명입니다. 피가 뒤도록 다투게 몰아세우는 현대사회입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작은 풀씨와 너른 흙은 모두 괴롭습니다. 물질문명 현대사회에서 아이와 어른 모두 고단하면서 힘에 부쳐서 쓰러지고 맙니다.



..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 주기보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아기의 두뇌 발달에 미치는 효과를 운운하는 연구 결과에 귀를 기울인다 … 제3세계 국가에서 아이들을 징병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놀란다. 하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도 제3세계에 있는 아이들 못지않게 잔인한 민병대의 일원으로 우리 가정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기업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어떤 친구를 사귀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라고 일러 주는 것이 과연 타당한 걸까 … 아이들에게 평생 남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부모가 주는 사랑이다 ..  (49, 69, 84, 92쪽)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님이 글을 쓰고, 원마루 님이 한국말로 옮긴 《아이들의 이름은 오늘입니다》(포이에마,2014)를 읽습니다. 책이름에서도 드러나지만, 아이들 이름은 ‘오늘’입니다. 아이들 이름은 ‘어제’도 ‘모레’도 아닙니다. 아이들은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면 어른들 이름은 무엇일까요? 어른들은 ‘어제’일까요? 어른들은 ‘모레’가 되면 될까요? 아니에요. 어른들도 이름은 아이들과 똑같이 ‘오늘’입니다. 모든 사람은 ‘오늘’을 삽니다. 모든 사람은 오늘을 살면서 어제를 돌아보고 모레를 내다봅니다. 모든 사람을 오늘을 지으면서 어제를 사랑하고 모레를 꿈꿉니다.



.. 무조건 복종하는 아이로 만드는 게 양육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아이들이 확신을 갖고 인생을 탐험하게 돕되 자신의 한계도 알게 해야 한다 … 하루하루가 새로운 출발이어야 하고 과거는 깨끗이 용서받아야 한다 … 아이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을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하고 잠재적으로 위험성이 있는 약을 주는 것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일한 길을 선택하는 것에 불과하다 … ‘정상’이라는 것이 있기나 하는 걸까? 어린아이를 ‘비정상’으로 분류하는 대신 변화의 뿌리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떨까 ..  (123, 125, 140, 146쪽)



  어버이가 할 몫은 삶을 지어서 아이와 함께 누리고 가꾸는 길입니다. 아이가 할 놀이는 삶을 짓는 어버이 곁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웃고 노래하는 길입니다.


  어버이는 삶을 짓습니다. 아이는 놀이를 누립니다. 어버이는 일을 합니다. 아이는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살림을 가꿉니다. 아이는 웃음을 짓습니다. 이리하여, 어른(어버이)과 아이는 한집을 이루어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지요. 아름다운 보금자리에서는 사랑스러운 싹이 터서 새로운 숲이 우거집니다.


  학교에 맡겨야 할 교육이 아니라, 집에서 삶을 지으면 되는 하루입니다. 사회생활을 잘 해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삶을 슬기롭게 가꾸어야 할 아이들입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예술에 이바지를 할 아이들이 아니라, 내 보금자리에서 숲을 돌보면서 사랑과 꿈으로 하루를 누려야 할 아이들입니다.



.. 나는 모든 아이가 태어날 때 창조주의 흔적을 안고 태어난다고 믿는다 …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 마음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 … 규칙이나 금지 따위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부모가 사랑을 보여주면 아이들에게는 안정감이 선물로 따라온다 ..  (163, 179, 185, 186쪽)



  우리 모두 씨앗을 심어요. 우리 모두 텃밭을 일구어요. 도시에는 텃밭 삼을 땅이 없다구요? 그러면 자가용을 내다팔아요. 자가용을 내다팔고 땅을 한 평이든 두 평이든 내 몫으로 장만하고, 아이 이름으로 마련해요. 자가용은 돈을 더 모아서 나중에 다시 장만해도 돼요. 그러나, 내 땅은 바로 오늘 장만해야 해요. 도시에서도 한 평짜리 자투리땅부터 장만해요. 그리고 이 땅에 씨앗을 심어요. 두 평을 장만할 수 있으면 한 평에는 풀씨(푸성귀 씨앗)를 심고, 다른 한 평에는 나무를 심어요. 이윽고 석 평과 넉 평을 더 장만하고, 자꾸자꾸 땅을 넓혀서 열 평과 백 평을 이루도록 해요. 시골에서는 백 평이나 천 평씩 꾸준히 땅을 넓혀서 아름다운 숲으로 가꾸어요. 도시에서도 텃밭과 조그마한 숲정이를 이루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웃고 노래할 터전으로 가꾸어요.


  땅값이 비싼가요? 땅값이 비싸면 이 땅값을 댈 만큼 즐겁고 씩씩하게 돈을 벌어요. 아니면, 땅값이 싼 곳으로 집을 옮겨서 ‘부동산’ 아닌 ‘보금자리’가 될 곳을 찾아야지요. 그대로 머무르지 마셔요. 그대로 고인 물이 되지 마셔요. 우리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씨앗을 손수 심어서 가꿀 수 있는 땅뙈기’에 보금자리를 지어야 합니다. 우리 집을 우리가 손수 지어야 합니다.


  건물까지 손수 지으면 가장 나으나, 건물은 남이 지은 데에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땅만큼은, 씨앗만큼은, 바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과 함께 심어서 숲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교육을 학교한테 맡기지 마셔요. 삶을 사회한테 맡기지 마셔요. 사랑을 정치한테 맡기지 마셔요. 살림을 경제한테 맡기지 마셔요. 꿈을 인문학한테 맡기지 마셔요. 이야기를 종교한테 맡기지 마셔요. 놀이를 스포츠한테 맡기지 마셔요. 노래를 영화나 예술한테 맡기지 마셔요. 모든 배움(교육)과 삶과 사랑과 살림과 꿈과 이야기와 놀이와 노래를 우리가 손수 지어서 기쁘게 누려요. 바로 오늘 이곳에 내 삶을 날마다 새롭게 짓는 길이 있어요. 4348.2.22.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배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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