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할아버지와 도서상품권



  올해 설날에 음성으로 아이들과 마실을 다녀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나 듣는다. 내 아버지이자 아이들 할아버지는 퍽 예전부터 동시를 쓰셨고, 내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 신춘문예에 뽑히기도 했다. 이제는 시골자락에서 조용히 지내는데, 내 아버지가 꽤 예전에 쓴 어느 동시를 2015년 ‘우리은행 책상달력’에 실었다고 한다. 한 해 열두 달이니까 열두 가지 싯말 가운데 하나로 실린 셈인데, 책상달력에 내 아버지 시를 한 줄 실으면서 ‘글삯’으로 10만 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나마 이 글삯을 맞돈(현금)이 아닌 도서상품권으로 주었단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책상달력에 넣는 ‘글 한 줄’이지만, 한쪽에 통으로 들어가는 글이다. 책상달력 한쪽에 통으로 넣는 사진 한 장이라면 값을 얼마쯤 칠까?


  아무튼 ‘시골에 사는 일흔 넘은 할아버지’한테 도서상품권 열 장을 보내 주면서, ‘시골에 사는 늙은이’가 이런 도서상품권을 어디에서 어떻게 쓰느냐 하고 물으니, 내 아버지더러 이 도서상품권을 ‘인터넷에 등록해서 어찌저찌 하면 된다’고 알려주더란다. 인터넷을 조금 하실 줄 알지만 잘 하실 줄 모르는 아버지는 ‘알았다’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는데, 아무리 보아도 도서상품권을 쓸 자리가 없단다.


  시를 쓰는 할아버지한테 글삯으로 준 도서상품권 열 장을 내가 물려받는다. 나는 이 열 장을 들고 고흥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하룻밤을 푹 쉰 뒤 인터넷을 켜서 등록하는 길을 살핀다. 내 아버지보다 젊은 내가 이 도서상품권을 인터넷으로 등록하는 데에 자그마치 20분이 넘게 걸린다. 등록하는 사이트를 찾느라 몇 분이 걸리고, 사이트를 찾아서 가입을 했더니, 도서상품권과 도서문화상품권이 다르다면서 등록이 안 되어, 다른 사이트를 살피니 예전에 가입한 아이디가 있다 해서 이래저래 다시 비밀번호랑 찾아서 등록을 하려는데, 키보드보안 프로그램이니 무어니 하면서 거푸 인터넷창이 닫히고 다시 열고 되풀이한다. 가만히 보니 ‘크롬’으로는 등록이 안 된다. 한참 뒤에 깨닫고는 ‘익스플로어’를 돌려서 겨우 등록을 하는데, 등록을 한 뒤 인터넷서점에서 책 결재를 하려는데 또 몇 분이 걸린다.


  도시에서라면 도서상품권이든 도서문화상품권이든 문화상품권이든 다 좋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참 힘겹다. 그나저나, ‘우리은행 책상달력’ 글삯은 왜 도서상품권으로 줄까? 은행에 돈이 없기 때문인가? 시를 쓰는 할아버지한테 줄 10만 원이 없는데 책상달력은 무슨 돈으로 찍었을까? 4348.2.21.흙.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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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22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숲노래 2015-02-22 04:53   좋아요 0 | URL
책방이 가까운 곳에 있다면... 책방에 가서 쓸 테지만... 이것을 쓰기란 이제는 만만하지 않은 일이 되었어요...

희망찬샘 2015-02-22 09:55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넷 등록 처음 할 때 애먹었던 기억이 있어 화악 와 닿네요. 시골 할아버지께 현금을 드렸더라면 정말 요긴했을텐데... 상대를 생각해 보는 헤아림이 부족한 세상입니다.

숲노래 2015-02-22 10:20   좋아요 0 | URL
네, 다른 분들도 애먹기는 마찬가지로군요 ^^;;;;

생각해 보면,
돈이 없을 만한 곳도 아닌 `은행`인데
은행 달력을 만들면서
그 달력에 들어갈 `큰 자리`를 차지하는 글을 써 준 사람한테
글삯(원고료)을 도서상품권으로 준다는 생각부터
참으로... `은행스러운`지 모르겠지만...
거석하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