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이야기 철수와 영희를 위한 대자보 시리즈 2
김인국.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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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72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

―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

 김인국·손석춘 이야기

 철수와영희 펴냄, 2014.5.18.



  한국말사전에서 ‘독재(獨裁)’를 찾아보면 “특정한 개인, 단체, 계급, 당파 따위가 어떤 분야에서 모든 권력을 차지하여 모든 일을 독단으로 처리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다시 ‘독단(獨斷)’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남과 상의하지도 않고 혼자서 판단하거나 결정함”을 뜻한다고 나옵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이나 박정희나 전두환이나 노태우 같은 이들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이들 뒤를 이은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노무현 같은 이는 어떠할까요. 그리고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이는 어떠하나요. 한국 현대사에서 대통령 자리에 선 이들 가운데 너른 목소리를 귀여겨들으며 정치를 펼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더 헤아려 보면, 조선 왕조도 독재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계급을 나누던 사회도 독재라고 할 만합니다. 신분과 계급에 따라 질서를 세우는 정치나 사회란 틀림없이 독재입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서 억누르거나 짓누르는 모든 틀은 독재입니다.



.. 교회가 바라는 바는 오직 한 가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투거나 미워하는 일 없이 다정하게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제발 아프게 때리고 찌르고, 뜨겁게 지져대지 말고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자는 것뿐입니다 … 원래 개도 안 물어 가는 물건이 돈인데, 돈 많은 사람들은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러고, 돈 없는 사람들도 돈 때문에 “박근혜! 새누리!” 그런단 말입니다 … 1970년대에는 신부들만 해도 참 씩씩하고 자유로웠어요. 그런데 가난하던 교회 살림에 여유가 생기면서 신부들도 잘 안 움직이거든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겠어요? 돈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  (5, 80, 81쪽)



  지난날에는 씨받이로 독재정권을 물려주었습니다. 지난날에는 사람들한테 ‘임금님 바라보기’만 시켰습니다. 오늘날에는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습니다. 오늘날에는 사람들한테 ‘대통령 바라보기’를 시킵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선거를 할 수 있기에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선거하는 곳에 몽둥이나 총칼을 쥔 군인·경찰이 없으면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국가보안법이 버젓이 있는 이 나라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이웃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지며 끔찍한 일이 벌어져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을 뿐 아니라, 새 핵발전소를 더 지으려 하는 이 나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 얼거리가 민주라고 할 만한가요.


  주권이 사람들한테 있으니 ‘민주’라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여느 사람들한테 있지 않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주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이런 권력자한테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주권이 재벌한테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권이 건물임자나 집임자나 땅임자한테 있습니다. 여느 사람이 누리는 주권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더더구나 한국에서는 주권을 기자와 지식인과 작가와 교수가 거머쥐기도 합니다.



.. 그 사람들은 고엽제 피해가 우리 때문에 생긴 줄 아는 걸까요? 우리가 자기들 월남에 보내고, 자기들 머리 위에 살인적인 고엽제를 마구 뿌려서 그런 몹쓸 불행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물어 보고 싶어요 …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제복을 벗어라!” 이게 단골 구호예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여태껏 군복을 안 벗어요. 팔십 노인들이 말입니다. 제대한 지가 벌써 오십 년이 넘는데 … 사람들이 지금 선거부정을 몰라서 안 움직이는 게 아닐 겁니다. 저마다 크고 작은 욕망 때문에 안정을 희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난 선거에서도 나타난 결과입니다. 자기 작은 이익만 지키면 내어줄 수 있는 것 다 내어주겠다는 게 지금 민심인데 저희가 그런 마음에 일일이 보조를 맞출 순 없어요 ..  (14∼15, 15, 23쪽)



  한국에서 농사짓는 시골사람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농사꾼이 농협에 쌀과 곡식과 열매를 안 팔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농약이나 비료나 항생제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농사꾼이 시골에서 비닐과 기계를 안 쓸 수 있는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공장 일꾼이나 사회 일꾼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공장 일꾼인 노동자가 파업을 할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버스를 멈추거나 철도를 멈출 권리가 없습니다. 노동자가 가게를 닫거나 발전소를 멈추거나 전화국을 닫거나 수돗물을 끊거나 회사를 쉴 권리가 없습니다.


  한국에서 아이들한테 주권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갈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대입시험 지옥에서 벗어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교과서를 외우지 않아도 될 권리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텔레비전과 인터넷게임에서 홀가분할 권리가 없습니다.



.. 함부로 살아도 제 이익만 지킬 수 있다면 된다는 마음이 너무나 커졌어요 … 사제들은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보다, 대중이 들어야 할 말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서 너무 앞질러간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일차 임무는 대선 무효, 대통령 해고를 선언하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든 권좌를 고집하든 그것은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각자 심판받을 일입니다 … 대통령이든 시민이든 나중에 역사의 법정 앞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 백성들이라고 힘없이 당하는 일방적인 피해자이기만 하지 않다는 거죠. 권력자들의 악행을 보았으면 대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사람들이 진실을 들어도 그것을 마주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박정희가 친일을 한 사실, 애꿎은 사람들을 죽인 사실, 수많은 성적인 탈선을 한 사실, 뭐 이런 사실을 얘기해 줘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  (39, 40, 82쪽)



  민주선거로 독재자를 뽑는 나라입니다. 민주선거로 독재자가 태어나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은 청와대에 갇힌 채 바깥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달셋방에서 지내며 이웃을 사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장이나 군수가 다세대주택에서 층간소음을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법관이나 변호사가 저잣거리에서 저잣마실을 하고는 집에서 아이들한테 밥을 차려 줄까요? 집에서 빨래는 누가 할까요? 집에서 청소는 누가 할까요?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척척 집어넣기만 하면 될까요?


  마을살림은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요? 두레나 품앗이란 무엇일까요? 경제성장이나 경제발전이란 무엇일까요? 4대강 사업은 무엇을 하려는 짓이었나요? 시화호와 새만금은 어떤 지식인과 교수가 앞장서서 밀어붙인 짓이었나요?


  쌀개방이나 자유무역협정을 할 적에, 농사꾼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담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새마을운동을 벌일 적에, 시골사람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시골 젊은이를 죄 도시로 빼앗아 공장 일꾼으로 값싸게 부려먹은 사회와 정치와 교육 얼거리는 누구 머리로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 지금 염수정 추기경은 복음이 갖고 있는 현실적이고도 사회적인 측면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 만일 추기경이 바라는 대로 살아가게 되면 우리는 교황이 개탄해 마지않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무관심의 세계화에 풍덩 빠지고 말 겁니다 … 송구스럽습니다만 추기경은 현실을 제대로 보시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속은 썩었는데 껍데기만 보고 좋다고 하시는 거지요 … 새 교황이 나왔지만 구태에 찌든 사람들은 여전히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 교회 지도자들의 언어가 이상한 별나라에서 들려오는 말처럼 알아듣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 글 쓰고 말하는 언론인들도 사람인데 왜 무섭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언론인의 펜은 두 마리의 개를 감시하라는 펜이지 아부하라는 펜이 아닙니다 ..  (47, 49, 54, 64, 94쪽)



  《새로운 독재와 싸울 때다》(철수와영희,2014)라는 책을 읽습니다. 옥천성당지기인 김인국 님하고 대학교수 일을 하는 손석춘 님이 주고받은 이야기로 엮은 책입니다. 성당지기는 성당에서 사회를 읽고, 성당 바깥으로 나와서 사람을 읽습니다. 성당지기는 ‘새로운 독재’가 이 나라에 굳세게 버틴다고 느끼는 한편, 천주교회에서도 ‘새로운 독재’가 무시무시하게 버틴다고 느낍니다.


  독재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독재를 하면 독재자는 얼마나 즐거울까요. 독재를 하는 보람은 얼마나 누릴 만할까요. 독재자는 목숨이 다해서 죽는 날에 어떤 마음이 될까요.


  독재를 부추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독재를 이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독재를 부르는 사람은 누구일는지요. 독재가 멈추지 않도록 불러들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교황이 아직도 교황궁에 들어가지 않고 여러 신부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구중궁궐에 갇혀 세상과 영영 멀어질까 봐 안간힘을 쓰시는구나 싶던데요 … 123년 전에 이미 교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고약한 천민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고 있는 우리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아무런 성찰을 안 했어요 … 찾아가는 곳마다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자본이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예요. 용산에서 삼성물산을 봤는데, 4대강 사업 공사현장에 가도 삼성, 제주 강정에 가 봐도 삼성이 있어요 … 경상도에 가서 새누리당 찍지 말라고 하는 것만큼이나 생활 안에서 되도록 삼성과 거리를 두도록 하자는 게 무척 어렵겠지요. 신자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우리 일상 전반을 워낙 공고하게 지배하는 삼성이니까요. 삼성카드 쓰지 말자, 삼성 갤럭시 쓰지 말자고 하면 깜짝 놀라요 ..  (69, 71, 78, 79쪽)



  오월비가 내립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갓 모내기를 마친 논에 포근히 감겨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모내기를 앞둔 논에 살뜰히 스며듭니다. 오월에 내리는 비는 보리베기를 앞둔 들에 싱그러이 젖어듭니다.


  빗물은 어디에나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은 들과 숲에도, 고속도로와 발전소 지붕에도 골고루 떨어집니다.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면서 맑은 숨결이 되고, 빗물을 머금은 흙은 더욱 기운을 내어 풀과 나무가 푸르게 자라는 밑힘이 됩니다. 비가 그친 뒤 해가 나면서 들과 숲은 한껏 빛나고, 하늘과 구름은 한결 맑아요.


  삶이란 밝은 빛이고 맑은 숨결입니다. 사랑이란 밝은 노래이고 맑은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서로서로 아끼고 보살피면서 살아갑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두레와 품앗이로 어깨동무하면서 살림을 가꿉니다.


  민주라 한다면, 참다운 민주라 한다면, 빗물과 같은 틀을 빚습니다. 착한 민주요, 아름다운 민주라 한다면, 햇볕처럼 따스하고 흙처럼 고소한 얼거리를 이룹니다. 즐거운 민주요 기쁜 민주라 한다면, 들과 숲처럼 사람살이를 살찌우는 밑바탕이 될 테지요.



.. 어머니는 지금까지 제가 세상 속으로 뛰어들 때마다 하느님이 시키신 일 하느라 고생한다고 격려하세요 … 강물처럼 유장한 역사 안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신앙이 켜켜이 쌓이고 쌓인 끝에 맺어진 열매가 예수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의 씨가 물려지고 물려진 끝에 가장 아름답게 싹튼 자리가 예수의 몸입니다 ..  (89, 91쪽)



  민주선거로 민주를 이루려면 우리 보금자리가 언제나 민주여야 합니다. 민주선거로 민주를 빛내려면 우리 살림살이가 늘 민주여야 합니다. 참다운 민주가 이루어지는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때에 민주를 한껏 북돋웁니다. 착한 민주로 즐거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될 적에 민주를 더욱 살찌웁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삶터를 수수하게 가꾸는 마을에서 아름다운 어른이 자라요.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한 슬기롤 빛내어 일구는 마을에서 사랑스러운 어른이 살아요.


  민주를 이룬 마을이라면 우두머리가 없어도 됩니다. 모든 마을사람이 저마다 마을지기입니다. 민주를 이룬 나라라면 우두머리, 이를테면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한 사람조차 없어도 됩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 지기이고 님이며 하느님입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 없다지만,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아무나 될 수 없다지만, 교황이나 추기경이나 주교나 신부는 누구나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도 아름다운 나라살림이 될 때에 나라가 아름답습니다. 지리산에서 돌을 던져 맞은 사람이 시장이 되고 군수가 되며 뭣뭣이 될 때에 나라가 사랑스럽습니다.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보아야 한다면 늘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읽어야 하면 오직 하나를 보아야 합니다. 삶을 보아야 합니다. 알아야 하면 누구라도 하나를 알아야 해요. 사람을 알아야 합니다.


  꽃을 보아요. 풀을 읽어요. 나무를 배워요. 하늘을 보아요. 흙을 읽어요. 냇물을 배워요. 숲을 보아요. 들을 읽어요. 바람을 배워요.



.. 슬픈 일은 대통령만 〈조선일보〉의 논설과 칼럼을 보는 게 아니라, 우리 교회의 고위급 성직자들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 되는 신문은 조중동 딱 세 개로 국한됩니다 … 사람들이 성경의 눈으로 신문을 보게 될까요? 아니면 신문의 눈으로 성경을 보게 될까요 … 텔레비전 드라마나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쌍용자동차나 기륭전자,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관심 없게끔 만드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어 보여 안타깝습니다 .. (95, 97쪽)



  어리석은 독재 정치에 사로잡힌 나머지 즐겁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길하고 동떨어진 슬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바보스러운 독재 정치에 길든 탓에 참답거나 착하거나 넉넉한 삶하고 등진 아픈 이웃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언제 웃을까요? 즐거울 때에 웃겠지요. 이웃이 아프거나 힘들 때에 웃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노래할까요? 기쁠 때에 노래하겠지요. 이웃이 슬프거나 고단할 때에 노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웃습니다. 아픈 이웃을 달래면서 웃음을 되찾도록 웃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래합니다. 슬픈 이웃을 다독이면서 노래를 되찾도록 노래합니다. 웃음은 웃음을 낳고 노래는 노래를 낳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꿈은 꿈을 낳아요.


  왜 자꾸 독재자가 ‘민주선거’로 뽑힐까요. 우리는 왜 ‘민주선거’를 치르면서도 독재자를 뽑고 말까요. 바로, 우리 삶이 아직 민주가 아니고 평화가 아니며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삶을 민주와 평화와 자유로 가다듬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참민주로 선거를 하고, 참다운 이슬떨이를 뽑아서 일을 맡길 수 있습니다. 심부름꾼이 되려는 정치 지도자가 나오려면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흐를 수 있어야 합니다. 4347.5.2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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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4-05-21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아픕니다. -,.-!!

숲노래 2014-05-21 16:24   좋아요 0 | URL
이제껏 이런 '민주선거'를 되풀이했는데,
이번에는 그칠 수 있을는지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