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야
세 살 작은아이가 여섯 살 누나를 자꾸 괴롭힌다. 큰아이가 마루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려 하니, 다른 짓 하며 놀다가 어느새 마루로 뾰로롱 와서는 크레파스 상자를 가로챈다. 요놈 보게나. 너 누나가 좋으니 누나 곁에서 알짱거리면서 이렇게 놀지? 가만히 한참 지켜보다가 작은아이한테 말한다. “보라야, 네가 쓰는 그 크레파스, 보라 것 아니고 아버지 것이야. 너, 아버지 것을 가지고 그리면서 누나하고 같이 안 그리는구나. 그 크레파스 얼른 아버지한테 줘.” 작은아이는 이 말을 듣자마자 누나를 부른다. “누나야, 같이 그리자!”
두 아이한테는 두 아이 몫 크레파스가 있지만, 작은아이가 이래저래 몰래 씹어먹으며 많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번에 새 크레파스를 장만했는데, 또 이렇게 하는구나 싶어, 이번에는 아예 ‘아버지 것’으로 못박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적에 으레 아버지도 함께 그림을 그리니까, 이 아이들로서는 ‘아버지 것 새로 산 크레파스’를 곁에서 함께 빌려서 함께 쓰는 셈이 된다.
아이들이 안 싸우게 하는 법이란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누구 것’ 아닌 ‘아버지 것’ 또는 ‘어머니 것’이라 하니까, 아이들 사이에 다툼질이 1초도 안 되어 마무리되곤 한다. 4346.9.16.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