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창비아동문고 144
권태응 지음 / 창비 / 199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사랑하는 시 17

 


서로 다른 사랑이 만나서
― 감자꽃
 권태응 글
 창비 펴냄,1995.10.10./7000원

 


  자주빛 꽃이 피면 자주감자이고, 하얀빛 꽃 피면 하얀감자라고 하는데, 이제는 이 틀이 깨졌다고 해요. 자주빛과 하얀빛 섞인 꽃이 피기도 하고, 자주빛과 하얀빛 섞인 감자가 나기도 한다고 해요. 또, 꽃빛과 감자빛이 다르기까지 하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끝없이 막개발 일삼으면서 지구자원을 함부로 쓰는데다가 유전자를 건드리는 과학문명까지 퍼뜨리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감자꽃 모르면서 감자를 먹는 사람 아주 많습니다. 감자잎 모르면서 감자를 즐기는 사람 매우 많습니다. 씨감자를 모르면서도 감자요리 하는 사람 참으로 많아요.


.. 키가 너무 높으면, /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 키 작은 땅감나무 되었답니다 ..  (땅감나무)


  옛날 살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그리 멀지 않은 1970년대, 1960년대, 또 1950년대 사람들은 감자를 먹는다 하면, 씨감자를 묻어서 키웠습니다. 감자싹과 감자잎과 감자꽃을 보면서 감자를 캐내어 먹었어요. 김치를 담가 먹든 날배추로 먹든, 배추씨를 뿌려서 배추풀 키우고, 배추잎 돋고 배추꽃 피어나는 모습 모두 지켜보면서 배추포기를 얻어 김치도 담그고 날배추도 먹었습니다.


  쌀밥을 먹고 싶으면 볍씨를 심지요. 볍씨를 심어 벼포기 자라도록 돌봅니다. 벼꽃을 보고 벼이삭 패는 모습 보아요. 그러고 나서 잘 익은 벼를 낫으로 베어요. 낫으로 벼를 베고는 햇볕에 말려요. 햇볕에 잘 말린 다음 벼알을 털지요. 벼알을 털고는 절구로 찧어서 겨를 벗기고, 물을 부어 쌀알 불린 다음, 장작으로 아궁이에 불을 때어 솥밥을 짓습니다.


  가시내만 하는 집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내는 안 해도 되는 집일이 아니었습니다. 가시내도 사내도 집일을 함께해요. 그리고, 가시내도 사내도 볍씨를 알고 벼꽃을 알며 볏짚을 알지요. 가시내도 사내도 새끼를 꼴 줄 알지요. 새끼를 꼬아 짚신 삼을 줄 알지요. 바구니도 엮고 지붕도 이어요. 스스로 삶을 짓고 엮으며 돌보던 옛날 살던 사람이에요.


..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  (감자꽃)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은 집을 스스로 짓지 않습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은 옷을 스스로 깁지 않습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은 밥이 될 쌀이나 푸성귀를 스스로 심어서 거두지 않습니다.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은 집을 지으려면 무엇을 마련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책을 읽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옷을 깁는 법을 제대로 모를 뿐더러, 옷감이나 천이나 실을 어떻게 얻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오늘날 사람들은 학교를 오래 다니고 교과서나 교재나 책은 많이 읽었다 할 만합니다. 지식 부피나 정보 숫자는 옛날 살던 사람과 견줄 수 없도록 많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식이나 정보로는 많거나 클는지 모르지만, 제대로 안다고 하기 어려워요. 올바로 안다고 하기 힘들어요.


  왜 그런가 하면, 꽃은 흙땅에서 피어나지, 책에서 피어나지 않습니다. 꽃내음은 흙땅에서 피어난 꽃 곁에 서서 가만히 코를 대고 맡아야 알지, 책으로 읽어서는 알 턱이 없습니다. 꽃빛은 흙땅에서 자라는 꽃을 두 눈으로 마주보면서 느낄 때에 안다고 할 수 있지, 책이나 도감은 아무리 잘 만들었어도 꽃을 알도록 이끌지 못해요.


.. 참새는 참새 아기 / 제일 귀엽고, / 참새는 참새 새끼 / 품에 안고 / 코록코록 밤새도록 / 자고 지고 ..  (코록코록 밤새도록)

 


  서로 다른 사랑이 만나서 곱게 어우러집니다. 암꽃과 수꽃이 만나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품습니다. 서로 다른 사랑이 만나서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사내와 가시내는 사랑으로 아이를 낳고, 사랑으로 살림을 꾸립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마을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사랑으로 피어나는 꽃이기에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사랑으로 자라는 풀이요 나무이기에 사랑스레 껴안습니다.


  노래 한 가락 사랑으로 부릅니다. 춤 한 사위 사랑으로 춥니다. 이야기 한 타래 사랑으로 들려줍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사랑입니다.


.. 고추밭에 갈 적에 / 건너는 또랑물. // 찰방찰방 맨발로 / 건너는 또랑물. // 목화밭에 갈 때도 / 건너는 또랑물. // 찰방찰방 고기 새끼 / 붙잡는 또랑물 ..  (또랑물)


  1918년에 태어나 1951년에 몸이 아파서 저승길로 간 권태응 님은 1948년에 동요집 《감자꽃》 한 권 내놓습니다. 감자처럼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를 감자꽃 한 송이에 담아 노래를 부르듯 동시를 한 줄 두 줄 적었습니다.


  1948년에 처음 태어난 동요집 《감자꽃》은 1995년에 동시집 《감자꽃》으로 새로 나옵니다. 그리고, 권태응 님 싯말에 가락을 입혀 여러 가지 어린이노래가 태어납니다. 〈감자꽃〉도 〈또랑물〉도 〈북쪽 동무들〉도 〈땅감나무〉도 어린이노래로 다시 태어나요.


.. 산 너머 있어도 우리 동무. / 강 건너 있어도 우리 동무 ..  (우리 동무)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노래를 불러 줍니다. 어른들끼리 주고받는 노래는 아이들한테 못 불러 줍니다. 처음부터 어린이 눈높이를 생각하며 살가이 지은 노래만 골라서 아이들한테 들려줍니다. 이원수 님 싯말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날마다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즈음 부릅니다. 권태응 님 싯말에 가락을 붙인 노래도 곧잘 아이들한테 들려줍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즐겁게 듣습니다. 아이들은 노래를 여러 차례 듣다가 따라서 부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노랫말까지 헤아릴까요? 모르지요. 헤아릴 수 있고, 그냥 가락만 들을 수 있어요. 이원수 님 싯말 〈햇볕〉을 가락에 실어 부르면, 권태응 님 싯말 〈북쪽 동무들〉을 가락에 담아 부르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멥니다. 글로만 읽을 적에도 울컥 하는 느낌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쉽고 수수한 말로 노래를 하듯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가장 단출하고 투박한 말로 사랑스레 노래를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니까 마음이 뭉클합니다.


.. 할아버지 책 자랑은 어려운 한문 책, / 그렇지만 그것은 중국의 글이고. // 아버지 책 자랑은 두꺼운 일본 책, / 그렇지만 그것은 일본의 것이고. // 언니의 책 자랑은 꼬부랑 영어 책, / 그렇지만 그것은 서양의 글이고. // 우리 우리 책 자랑은 우리 나라 한글 책, / 온 세계에 빛내일 조선의 글이고 ..  (책 자랑)

 


  흙을 만지는 시골사람은 중국말도 일본말도 미국말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흙말을 합니다. 학자들은 한국말을 ‘한국語’라 하면서 굳이 ‘말’ 아닌 ‘語’를 쓰려 하고, 고장말이나 마을말이나 시골말을, 이러한 이름 그대로 수수하게 일컫지 않고 ‘方言’이라는 한자를 끌어들입니다. 학자들은 ‘말’이라는 한국말을 참 안 좋아해요. 다들 ‘言語’라고만 읊습니다.


  그래요, 학자라서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도 이런 학자들 말을 들려주어야 할까요. 아이들한테 말을 하나하나 물려주듯 가르칠 적에도 이런 학자들 말을 알려주어야 할까요. 아이들이 커서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쯤 되면, 또 대학생쯤 되면, 이런 학자들 말을 익히거나 써야 할까요.


.. 북쪽 동무들아 / 어찌 지내니? / 겨울도 한 발 먼저 / 찾아왔겠지. // 먹고 입는 걱정들은 / 하지 않니? / 즐겁게 공부하고 / 잘들 노니 ..  (북쪽 동무들)


  아이들은 굳이 신문을 안 읽어도 됩니다. 아이들은 신문보다 흙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한자를 몰라도 되고 영어를 몰라도 됩니다. 아이들은 한자나 영어보다 꽃을 알아야 하고 나무를 알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날씨를 알고 제비를 사랑하며 개구리를 아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버이 돈이나 땅문서나 아파트나 자가용을 물려받아야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오직 한 가지, 사랑을 물려받아야 할 뿐입니다.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돈이든 땅문서이든 아파트이든 자가용이든 물려줄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오로지 하나, 사랑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모든 말은 사랑에서 태어납니다. 모든 말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흙’이라는 낱말도, ‘꿈’이라는 낱말도, ‘꽃’이나 ‘풀’이나 ‘숲’이나 ‘나무’라는 낱말도, 사랑에서 태어났어요. ‘밥’도 ‘이웃’도 ‘동무’도 ‘놀이’도 사랑을 먹으며 자란 낱말이에요.


  곧,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놀고픈 어버이나 어른이라면, 어떤 낱말을 골라서 어떤 동시를 짓고 어떤 동화를 쓰며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는지 아주 환한 노릇입니다. 아이들하고뿐 아니라, 어른들끼리도 서로서로 어떤 말에 이녁 사랑을 실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도 더할 나위 없이 환해요.


.. 밭마당에 매여서 여물 먹는 소 / 삽작에 웃고 섰는 누나와 아기 ..  (우리 집 그림)

 


  서로 다른 사랑이 만나는데, 서로 같은 사랑으로 어우러집니다. 서로 다른 삶이 만나는데, 서로 같은 삶으로 손을 잡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는데, 서로 같은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아름다움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빚습니다. 착한 꿈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일굽니다. 참다운 삶을 생각하기에 사랑을 보살핍니다.


  밥 한 그릇에 우주가 깃든다면, 밥 한 그릇은 사랑입니다. 볍씨 한 알에 우주가 담긴다면, 볍씨 한 알은 사랑입니다. 말 한 마디에 우주를 드러낸다면, 말 한 마디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사랑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랑은 어떻게 이루거나 누린다고 생각하나요?


.. 우리 집 할아버진 / 병환으로, / 맛난 음식 보시고도 / 못 잡수니 걱정. // 이웃집 할아버진 / 가난해서, / 세 끼 음식 제대로 / 못 잡수니 걱정 ..  (틀리는 걱정)


  따순 손길로 따순 마음을 나눕니다. 따순 눈길로 따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이들한테 이런 학습 저런 교육 시키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들은 밥과 옷과 집을 어떻게 스스로 마련해서 누릴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됩니다. 먼먼 옛날부터,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마련한 사람들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먼먼 옛날부터,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안 마련한 권력자와 임금님은 늘 쓰레기를 만들었습니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쓰레기를 하나도 빚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도 쓰레기를 안 빚을 수 있을 테지만, 도시사람으로서 쓰레기 하나 없이 살아가기란 아주 어렵습니다. 게다가, 도시에서 살고 나면 모두들 쓰레기 안 만들 생각을 안 하지요.


  돈을 벌어야 하기에 쓰레기를 만들고, 돈을 벌어서 쓰레기를 치워요. 돈을 벌어야 밥을 사다 먹을 수 있고, 돈을 벌어서 밥쓰레기를 남겨요. 지구별에 전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도시가 자꾸 생기면서 커지기 때문이에요. 지구별에 전쟁과 싸움이 사라지도록 하자면, 도시를 줄이거나 없애야 해요. 쓰레기를 낳는 도시 물질문명은 차별과 불평등과 반민주와 부정부패를 불러들입니다. 쓰레기가 없는 시골에서는 차별도 불평등도 반민주도 부정부패도 깃들 수 없습니다.


  두멧자락 숲속에 어떤 반민주가 있겠어요. 깊디깊은 숲속에 어떤 차별이 있겠어요. 스스로 풀을 뜯고 냇물 마시며 바람을 들이켜는데, 어떤 불평등이 싹트겠어요.


.. 둥글넓적 기다란 / 커단 호박은 // 왼 식구가 한 그릇씩 / 먹고도 남지 ..  (호박국)

 


  밥을 나누는 곳에 평화가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살아가는 길을 생각하기 때문인데, 밥그릇만 나눈대서 평화가 찾아들지는 않아요. 밥을 짓는 길을 함께 살펴서 함께 땀흘리고 함께 밥을 끓여서 나눌 때에 평화가 찾아와요. 함께 흙을 만지고, 함께 풀을 보듬으며, 함께 나무를 돌볼 때에 평화가 싹터요.


  교도소를 시멘트 아닌 흙과 풀과 나무로 지어 보셔요. 시멘트로 지어 꽁꽁 가두는 교도소만 있으면 범죄는 끝없이 늘어납니다. 흙과 풀과 나무로 지은 곳에 사람들을 들여놓고 스스로 흙을 일구어 먹을거리 마련하도록 이끌면, 또 시멘트바닥 아닌 흙바닥에서 잠을 자도록 꾀하면, 온누리에는 아무런 범죄도 잘못도 생기지 않습니다.


  학교를 시멘트 아닌 흙과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배움터로 다시 꾸며야 합니다. 학교를 시멘트 감옥처럼 지어서 시험지옥과 시험노예로 아이들을 길들이니까,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들과 똑같이 차별과 불평등과 반민주와 부정부패로 치닫고 말아요. 아이들은 시멘트 감옥 같은 학교 교실 아닌, 흙 밟고 풀 쓰다듬으며 나무 껴안는 배움터인 숲에서 지내야 해요.


  아이들은 지식 아닌 삶을 배워야 하고, 어른들은 지식 아닌 삶을 가르쳐야 해요. 서로 즐겁게 살고 싶다면,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고 싶다면, 서로 아끼며 살고 싶다면,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생각해야 해요.


.. 괴로움 속에서도 별 쳐다보기 ..  (없는 살림일수록)


  권태응 님 《감자꽃》을 읽습니다. 노래를 부르듯 《감자꽃》을 읽습니다. 노래를 부르면서 《감자꽃》을 읽습니다.


  구수한 감자를 먹으며 감자와 같은 마음이 됩니다. 향긋한 감자를 먹으며 감자와 같은 생각이 됩니다. 과자를 즐겨먹으면 과자와 같은 마음 되겠지요. 소주나 양주를 퍼붓듯이 마시면 소주나 양주 같은 마음 될 테지요. 화학조미료 가득한 바깥밥 자주 사다 먹으면, 화학조미료 같은 마음 되어요.


  먹는 대로 몸이 되고 마음이 됩니다. 바라보는 대로 마음이 되고 생각이 됩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이 되고 사랑이 됩니다. 서로 다른 사랑이 만날 때에 삶이 아름답게 빛나지만, 서로 다른 사랑이 살가이 어우러지거나 얼크러지지 못하면, 미움과 다툼이 불거집니다.


  공장 아닌 밭에서 나야 하는 감자입니다. 도감 아닌 밭에서 보아야 하는 감자입니다. 지식 아닌 삶으로 마주해야 하는 감자입니다. 《감자꽃》 시인 권태응 님은 이 땅 아이들이 사랑스레 자라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기를 꿈꾸면서 싯말 찬찬히 길어올렸습니다. 4346.6.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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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14 18:38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답고 어여쁜 동시집이에요.
운율이 딱딱 맞아 읽다보면 저절로 노래를 부르는 듯 해요.~
'목화'를 읽으며 아 목화가 일년에 두 번 꽃이 피는구나, 생각하고 '밥 얻으러 온 사람'의
'등에 업힌 그 아기/ 몹시 춥겠네. /뜨신 국에 밥 한 술/ 먹고 가시오.'를 읽다가 마음이 찡해졌어요. 저녁때가 오니까 '햇보리밥'도 참 좋네요. ^^

함께살기님의 추천 덕분에 이렇게 아름답고 정다운 <감자꽃>, 읽게 되어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현웅님의 삽화 그림도 참 좋아요.~^^

숲노래 2013-06-14 21:37   좋아요 0 | URL
옛날 그림 참 좋아요. 그래서 옛날 그림 몇 가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았어요.
요즈음에도 이렇게 그림 그릴 줄 아는 화가 있을까 궁금할 만큼 참 좋아요.

백창우 님이 가락을 붙인 노래로 들어 보면 또 새삼스레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