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98 : 실타래를 엮듯 꽃마음

 


  실타래를 엮듯 책을 읽습니다. 이 책 하나 읽다가 다른 책 하나로 이어집니다. 다른 책 하나 읽으며 새로운 책을 만납니다. 어느 책 하나 쓴 사람이 지은 다른 책으로 눈길을 잇고,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담아 내놓은 출판사에서 펴낸 다른 책으로 손길을 뻗습니다.


  사람을 사귈 적에는 이 사람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이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모습을 찬찬히 돌아봅니다. 일 때문에 만났든, 스치다가 만났든, 어찌저찌 만났든, 서로 즐겁고 함께 기쁘기에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삶은 언제나 이야기로 이루어지고, 책이란 또 삶처럼 이야기로 엮고 맺는구나 싶습니다.


  최협 님이 대학생이던 때에 서울 청계천에서 ‘가난한 동네 사람 삶자락’을 공부하려고 판잣집에 달삯 내고 들어가 살며 쓴 일기를 마흔 해 지나고 나서 다시 만나 책으로 엮은 《판자촌 일기, 청계천 40년 전》(눈빛,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마흔 해 앞서 대학생이던 최협 님으로서는 ‘처음에는 공부하고 연구할’ 마음이었을 테지만, 마흔 해 지난 오늘날에는 이 ‘판자촌 일기’는 학술보고서나 논문 아닌 이야기책이 됩니다. 아니, 맨 처음부터 이 ‘학술조사’는 학술조사 아닌 ‘판자촌 일기’였겠지요. 가난한 동네 사람들 삶을 스스로 누리면서 날마다 스스로 새 이야기 길어올렸겠지요. “같은 골목길 앞쪽에 사는 남자가 자신의 고향 친구 셋과 술을 마신 후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돌아왔다. 고향 친구들을 만나 보니 모두 고향에서 논을 사들여 재산을 늘렸다 하는데, 고향을 떠난 자신은 아직도 이런 판잣집에서 고생만 하고 있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다(56쪽).” 같은 이야기는 꼭 판자촌 아니어도 들을 수 있어요. 아파트로 숲을 이룬 도시 한복판에서도 ‘여느 사람들 수수한 이야기’ 얼마든지 들을 만해요. 어쩌면, 2010년대 오늘날에는 서울 한복판 강아랫마을 아파트에 달삯 내고 들어가 살면서 ‘아파트 일기’를 써도 퍽 재미나리라 생각해요. 2010년대에 쓴 ‘아파트 일기’를 앞으로 2050년쯤 되어 책으로 낸다면, 먼 앞날에는 어떤 이야기꽃 피어날까 궁금합니다.


  아이들과 복닥이며 놀다가 등허리 펴려고 살짝 방바닥에 눕습니다. 얘들아 아버지 허리 조금 펴고 또 놀자, 하고 말하며 책을 하나 손에 쥡니다. 박재동 님이 이녁 삶을 그린 《인생만화》(열림원,2008)입니다. 천천히 그림을 보고 찬찬히 글을 읽습니다. 25쪽에 “남 도와주기 좋아하는 아줌마. 자기는 마음이 하얀 사람이라면서 ‘난 가슴에 하얀 박꽃을 안고 사는 사람이야. 가슴을 딸 수 있으면 따서 보여주고 싶다니까.’” 같은 이야기 흐릅니다. 가슴에 하얀 박꽃 안고 살아가는 아주머니라니. 참 곱습니다. 박재동 님은 이녁 가슴에 어떤 꽃을 안고 살아가실까요. 이 책 읽을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꽃을 가슴에 살포시 품으며 살아가나요.


  내 가슴에 놓일 꽃을 곰곰이 생각합니다. 내 가슴 꽃으로 찔레꽃이 좋을까, 살구꽃이 좋을까, 토끼풀꽃이 좋을까, 후박꽃이 좋을까, 모과꽃이 좋을까, 느티꽃이 좋을까, 하나하나 헤아립니다. 어느 꽃이어도 좋겠지요. 어느 꽃이어도 곱겠지요. 가슴에 꽃을 품으며 마음에 이야기 자라고, 사랑이 크며, 꿈이 피어납니다. 4346.5.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으로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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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5-28 13:08   좋아요 0 | URL
정말 제 가슴에 놓일 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는데
잘 생각이 안 나는군요..이궁, ^^;;;

숲노래 2013-05-28 14:35   좋아요 0 | URL
음... 함박꽃도 아주 좋아요.
서울에서는 이제 함박꽃 봉우리 맺히면서
필락 말락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