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미즘이라는 희망 - 삼라만상에게 길을 묻다
야마오 산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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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
[시골사람 책읽기 007] 야마오 산세이,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쳐다보면 아이들도 텔레비전을 쳐다봅니다. 어른들이 들판에 서면 아이들도 들판에 섭니다. 어른들이 집안일을 어머니한테만 시키면 아이들도 집안일은 으레 어머니가 해야 하는 줄 압니다. 어른들이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로 이야기꽃 피우면, 아이들도 서로 살가우며 따사로운 말마디를 배우고 나누면서 즐겁게 얼크러져 놉니다.


  어른들은 아이를 학교에 넣어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여느 때 여느 삶자리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어른들 살아가는 매무새가 바로 ‘교과서’이고 ‘책’입니다. 돈을 벌러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게 몰아치는 어른들 삶이 바로 아이들한테 ‘교과서’ 구실을 하고 ‘책’ 노릇을 합니다. 어른들이 돈벌이 때문에 집에 발 들일 겨를 없을 뿐 아니라, 아이하고 말 한두 마디 섞을 틈 없이 보내는 삶을 늘 바라보면서, 아이들은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돈벌이를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고 가를 수 없습니다. 돈을 더 벌어야 좋다거나 돈을 적게 벌기에 나쁘다거나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어떻게 쓸 돈을 어떻게 어디에서 벌려고 하는가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가고 싶은가요? 그러면 아이들과 즐거이 살아갈 만큼 넉넉히 겨를을 내면서 돈을 벌 만한 일자리를 다니는가요? 아이들하고는 ‘나중에 돈을 좀 많이 번 다음’ 어울려도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아이들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제 어버이 따순 손길을 받고 싶다 말하는데, 이런 목소리에는 귀를 안 기울이면서 회사 사장님이나 웃사람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나날은 아닌가요?


.. 달밤에 달을 보면 그 옆으로 구름도 흘러가고 구름은 또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듭니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긴 시간이 아니더라도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달을 바라보세요. 숲속에서 달을, 그리고 모양을 바꿔 가며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노라면, 그 5분 10분 하는 짧은 시간 안에 달과 구름이라는 위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  (37∼38쪽)


  즐겁게 누리는 삶이 희망입니다. 즐겁게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 하면 괴로움입니다. 희망이란 먼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돈 많이 버는 데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마흔 평 아파트나 쉰 평 아파트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새까만 자가용에 없습니다. 희망이란 서울이나 도시에 없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나 스스로 가슴속에서 길어올리는 사랑이 바로 희망입니다. 이웃들과 따숩게 주고받는 말마디가 희망입니다. 대통령으로 아무개를 뽑는 일은 희망이 아닙니다. 그저 대통령 뽑기입니다.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는대서 내 삶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다스린다는 정치판이 조금 움직일 뿐입니다. 내 삶이 아름답게 달라지도록 일구고 싶다면, 내 삶이 어떤 모습인가를 참답게 바라보면서 슬기롭게 돌보아야 합니다.


  달걀 한 알로 아이들과 활짝 웃으며 밥을 먹을 수 있습니다. 돌멩이 하나로 아이들과 까르르 웃으며 신나게 뛰놀 수 있습니다. 종이 한 장으로 아이들과 차분히 가라앉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햇볕 한 줌으로 아이들과 나란히 해바라기 하면서 하루를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꽃 한 송이로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샘솟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란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즐겁게 누리는 사람은 스스로 희망을 일굽니다. 남들이 선물처럼 갖다 안기는 희망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스스로 일구고 돌보며 가꾸면서 자라나는 희망입니다.


.. 숲이나 산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나무를 심고 자르는 것은 기분 좋은 작업 중 하나입니다 … 오키나와에는 원자력발전소가 없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전체 문명의 향유자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플루토늄에 책임이 있습니다 ..  (120, 203쪽)


  가난이란 무엇일까요. 돈이 없으면 가난일까요. 돈이 많으면 가난이 아닐까요. 아마, 돈이 많고 적음으로 나누는 가난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가난은 돈셈으로만 헤아리지 않아요. 가난 또한 희망처럼 ‘내 마음자리’에 따라 헤아려요.
 

 한손에 일억 원을 쥔 사람도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한손에 십억 원을 쥔 사람도 돈을 더 그러모으려고 발버둥을 치며 스스로 아직 가난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백억 원을 거느리거나 천억 원을 주무르는 사람조차 돈을 악착같이 더 붙잡으려고 합니다. 백억 원이 있으면서 백 원 한 닢 살가이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천억 원이 있으면서 동냥하는 거지한테 천 원 한 장 기쁘게 나누지 못하기 일쑤예요.


  돈있는 사람이 외려 더 노랭이 같다고 하는 까닭을 잘 생각해 봐요. 얼핏 보기에는 돈이 많다 싶지만, 그이한테는 그 돈조차 가난하다고 여겨요. 그러니까 이이는 돈 백억 원을 손에 쥐었든 돈 천억 원을 손에 주었든 가난뱅이입니다.


  돈없다는 사람끼리 되레 더 밥술을 나누는 까닭을 잘 돌이켜봐요. 밥 한 술씩 나누며 어깨동무하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어려울수록 서로 어깨동무한다면서 빙그레 웃는 동무는 누구인가요.


  희망은 대통령이 만들어 주지 않아요. 희망은 국회의원이 선물보따리로 안겨 주지 않아요. 희망은 시장님이나 군수님이 짠 하고 내놓지 않아요. 희망은 늘 내 조그마한 마을 내 조그마한 보금자리에서 내 자그마한 아이들하고 알콩달콩 보듬는 자그마한 살림살이에서 피어납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살면서 새로운 말 하나를 배운다는 건 그만큼 내 영혼의 재산이 늘어나는 일입니다. 좋은 말은 보물과 같거든요 ..  (210쪽)


  우리 마을 할머니들이 서로 품을 팔아 마늘밭을 한 군데씩 천천히 돌며 마늘을 심습니다. 마늘을 심으며 노래를 부르고, 바지런히 심고는 참을 먹으며, 실컷 심다가 막걸리 한 잔 마십니다. 햇살은 따사롭게 마늘밭을 비춥니다. 찬바람 솔솔 부는 겨우내 마늘은 씩씩하게 푸른 잎 냅니다. 한겨울에도 눈바람 거의 없는 고흥이지만, 어쩌다 눈발 살포시 내려앉아 마늘밭을 덮더라도, 마늘잎은 눈송이 고이 짊어지고도 푸른 빛을 감추지 않습니다.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에도 마늘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힘차게 줄기를 올립니다. 마늘은 저희 희망이 저기 먼 데가 아닌 바로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거든요.


  아이들도 희망이 저희 가슴에 있는 줄 알아요. 스스로 희망인 아이들은 한겨울에도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호호 입김을 만들면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며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아이들입니다. 우리 어른들도 스스로 희망인 줄 깨달을 수 있기를 빌어요. 바로 이곳에서 오늘부터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영글 수 있기를 빌어요. 일본 깊은 시골숲에서 살다가 조용히 숨을 거둔 야마오 산세이라 하는 분은 당신 한몸을 곱게 누인 시골숲이 얼마나 아름다운 희망이었던가를 느끼며 《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과 같은 책을 우리한테 예쁘게 남겨 줍니다. 4345.12.4.불.ㅎㄲㅅㄱ

 


― 애니미즘이라는 희망 (야마오 산세이 글,김경인 옮김,달팽이 펴냄,2012.9.21./15000원)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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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2-04 15:15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배워 갑니다.

"텃밭에 심은 시금치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텃밭에서 자라는 배추 한 포기가 희망입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쑥쑥 자라나는 쑥이랑 부추랑 냉이랑 씀바귀가 희망입니다. 내 사랑을 듬뿍 받으며 꽃을 피우는 후박나무랑 동백나무랑 매화나무랑 감나무가 희망입니다."
- 이 글에 마음이 가닿네요.

숲노래 2012-12-04 15:23   좋아요 0 | URL
'애니미즘'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서 아쉽기는 한데,
나중에 이 책은 더 꼼꼼히 살핀 느낌글로 다룰 생각이에요.

아무튼, '애니미즘'이란 '땅사랑'이나 '흙사랑',
또는 '숲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른바 '지구별사랑'이나 '온누리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출판사'에서는 야마오 산세이 님 책을
자꾸 절판시키지만...
달팽이 출판사는 외려 새책을 번역해 주니
참으로 고맙다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