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마음을 살찌우는 좋은 그림책 10
사노 요코 글 그림, 정근 옮김 / 사파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다섯 살짜리한테서 기쁘게 받는 선물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18] 사노 요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언어세상,2002)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을 끼니마다 마련하는 일이란 아름답습니다. 내가 마련하는 밥이든, 할머니가 마련하는 밥이든, 옆지기가 마련하는 밥이든,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마련하는 밥이든, 아저씨가 마련하는 밥이든, 어떠한 밥이든 아름답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다 식은 밥을 간장이랑 김치만 올려 밥상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당근을 짠 물을 잔에 담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빵을 굽거나 부침개를 부칠 수 있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이든 고맙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손길이든 아름답습니다. 어떠한 먹을거리를 냠냠짭짭 먹든 내 몸에는 사랑스러운 기운이 따사로이 감돕니다. 좋은 사랑을 먹으며 좋은 목숨을 지켜 좋은 나날을 누린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가 함께 살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아흔여덟 살이지만 아주 건강했어요 ..  (4쪽)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없다면 밥을 지을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없으면 걸레를 빨아 방바닥을 훔칠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기에 옷가지를 빨래해서 해바라기하는 마당에 내다 널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랑을 먹으며 목숨을 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사랑을 나누는 한삶을 누립니다. 일을 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이를 하는 까닭은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좋기 때문입니다.

 

 무슨무슨 구실을 붙여 하는 일이 아니에요. 무슨무슨 핑계로 그만두는 일이 아니에요. 스스로 우러나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우러나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이 나타나지 못하니 더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쟁이란 사랑 하나 없는 끔찍한 바보짓입니다. 너와 내가 서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잘살아야지, 왜 네 것을 빼앗아 내 것으로 삼아야 하나요. 왜 내 것을 나누어 너와 같이 누리려 하지 않나요. 왜 전쟁무기를 만드나요. 전쟁무기 만들 돈과 지하자원이 있으면, 낫과 쟁기와 호미를 만들어 논밭을 일구어야지요. 전쟁무기 만들 품과 겨를이 있으면, 씨앗을 받아 나무를 심어야지요.

 

 나한테 넘치는 돈이 있으면 이웃하고 나누면 됩니다. 나한테 돈이 모자라면 이웃한테서 얻으면 됩니다. 나한테 남는 기운이 있으면 두레와 품앗이를 하면 됩니다. 내 몸이 아프거나 힘겨우면 이웃을 불러 두레와 품앗이로 내 일손을 거들어 달라 이야기하면 됩니다.

 


.. 고양이는 할머니가 만든 케이크를 제일 좋아했어요. “야∼. 케이크다! 할머니가 만든 케이크가 제일 맛있어요.” “하지만 난 할머니인걸. 내가 잘 하는 건 케이크 만드는 거뿐이란다.” ..  (10쪽)


 아픈 사람을 돕는 일은 아주 마땅한 삶입니다. 내가 아플 때에 도움받는 일은 아주 마땅한 사랑입니다. 나는 내 몫대로 내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한테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야 즐겁습니다. 나는 내 몫 그대로 내 살붙이랑 이웃이랑 동무한테서 사랑을 받으며 지내야 아름답다 할 만해요.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랑이란 없어요. 한쪽에서 퍼주기 하듯 내준다는 일이란 없어요. 이웃돕기는 퍼주기 아닌 사랑이에요. 이웃사랑은 ‘남아도는 돈 가운데 조금 떼어 뽐내듯 베푸는 바보짓’이 아니에요. 온넋 기울이는 사랑일 때에 이웃사랑이에요. 온마음으로 고맙게 여기며 받아들일 때에 이웃사랑이에요.

 

 사노 요코 님 그림책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언어세상,2002)에 나오는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하고 함께 살아가며 이것저것 마음껏 누립니다. 할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고, 할머니가 돌보는 집에서 고맙게 잠을 자며, 할머니가 건사하는 옷가지를 정갈히 입고는 낚시를 다닙니다. 할머니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합니다. 그저 이제껏 아흔여덟 해 살아온 대로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그런데, 다섯 살짜리 고양이가 ‘스스럼없이 받아들여’ 주니까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가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어요. 받아들여 줄 가슴이 없으면 나누어 줄 사랑이란 없겠지요. 거꾸로,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이 고양이대로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한테 나누어 줄 사랑이 있고 꿈이 있으며 믿음이 있습니다.

 


.. 할머니는 조금 실망했어요. “음, 5개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구나. 어서 케이크에 초를 꽂으렴. 5개밖에 안 되지만…….” ..  (15쪽)


 백 살에 꼭 두 해를 남긴 할머니는 ‘죽을 일’만 생각했습니다. 나이를 너무 먹었으니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삶’이라 죽을 일만 바라보았어요. 이리하여, 다섯 살짜리 고양이는 아흔여덟 살 자신 할머니한테 ‘남은 삶 고맙게 맞아들여 즐거이 누리는 나날’을 슬며시 선물합니다.

 

 돈이 없는 고양이로서는, 고작 다섯 살짜리인 고양이로서는, 사람들처럼 무슨무슨 돈벌이 일자리에 몸바칠 수 없는 고양이로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읍내 가게에 가서 돈을 들여 선물을 장만하지 못할밖에 없어요. 그러나, 이 어리고 가녀리며 작은 고양이는 마음을 선물해요. 온통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을 할머니한테 선물해요.


.. 둘은 한참을 걷고 걸어서 냇가에 왔어요. 고양이는 냇물을 껑충 뛰어넘었어요. “할머니도 얼른 건너오세요.” 고양이가 손짓했어요. “하지만 난 5살인걸……. 아참, 그렇지. 5살이니까 나도 할 수 있어!” ..  (21쪽)

 


 늙은 할머니는 어린 고양이가 나누어 준 선물을 고맙게 받습니다. 기쁘게 나누어 주는 선물이기에 기쁘게 받습니다. 웃으며 내민 선물이니 웃으며 받아요.

 

 나날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 아이들한테서 선물을 받습니다. 나날이 씩씩하게 크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이 아이들한테서 선물을 받습니다.

 

 웃는 아이는 웃는 대로 선물을 줍니다. 우는 아이는 우는 대로 선물을 줍니다. 곯아떨어진 아이는 곯아떨어진 대로 선물을 줍니다. 배고픈 아이는 배고픈 대로 선물을 줍니다. 배부른 아이는 배부른 아이대로 선물을 줘요.

 

 어버이인 내가 느낄 때에 선물입니다. 어버이인 내가 못 느낀다면 선물이란 없습니다. 어버이인 내가 사랑으로 가득한 가슴을 활짝 열어야 비로소 선물인 줄 느낍니다. 어버이인 나부터 온통 사랑으로 빛나는 하루를 누리려고 꿈을 꾸어야 바야흐로 나날이 선물이고 이야기보따리입니다. (4345.2.27.달.ㅎㄲㅅㄱ)


―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사노 요코 글·그림,정근 옮김,언어세상 펴냄,2002.10.19./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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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27 12:24   좋아요 0 | URL
그림책을 보니 그림을 그리고 싶어지네요. 이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행복했겠죠?ㅋ

숲노래 2012-02-27 19:38   좋아요 0 | URL
그림을 그린 분은 일본에서 재미난 '고양이 박물관'도
'책 판 돈'으로 만들어서 꾸린대요... 아아,
아주 놀랍고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