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031) 전가의 1 : 전가의 보도

 

.. 개원을 하면서 나는 산과의들에게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제왕절개를 포기했다 ..  《오오노 아키코/이명주 옮김-놀라운 아기 탄생의 순간》(브렌즈,2010) 22쪽

 

 “개원(開院)을 하면서”는 “병원을 열면서”로 다듬고, ‘포기(抛棄)했다’는 ‘그만두었다’나 ‘안 하기로 했다’나 ‘하지 않기로 했다’로 다듬어 줍니다. 조금 더 생각하고 한 번 더 헤아리면서 말마디를 추스릅니다.

 

 전가(傳家)
  (1) 아버지가 아들에게 집안 살림을 물려줌
  (2) 집안 대대로 전하여 내려옴
   - 전가의 보물
 보도(寶刀) : 보배로운 칼. 또는 잘 만든 귀한 칼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 오래된 전통 같은
→ 예부터 집안에서 물려받은 선물 같은
→ 예부터 내려온 일 같은
 …

 

 나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라는 말마디를 쓰지 않습니다. 이 말마디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말을 왜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말이 아니라면 내 넋을 담아낼 수 없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이러한 말 때문에 내 넋을 옳게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전가’나 ‘보도’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입니다. 두 낱말은 한글로 적으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한자로 어떻게 적는가 밝혀야 하는데, 한자를 밝힌들 뜻을 헤아리기는 어렵습니다. 한자로 적은 다음, 이 한자를 엮은 한문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다시 새겨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말마디로 이녁 뜻이나 넋을 살뜰히 담아낸다 하리라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이러한 말마디가 참 좋다고 여기리라 봅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러한 말마디로 이야기를 할 때에, 이 말마디를 옳게 헤아리거나 새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이 말마디를 알아듣지 못하거나 아리송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아니 이 말마디를 어렵게 느끼거나 뜻을 자꾸 잊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말마디를 써서 얻는 값어치는 무엇일까요.

 

 말뜻을 새기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입니다. 집안에서 보배로이 여기는 칼을 건사한다니, 아마 이러한 칼이 있는 곳이란 옛날 옛적 양반 집이라 하겠지요. 흙을 일구던 여느 살림집에는 보배로이 여기는 칼이란 없겠지요. 여느 흙일꾼 집에는 쟁기나 낫이나 호미나 가래를 보배로이 여기며 물려줄 테니까요. 그러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은 언제 왜 누구한테 어떻게 쓸까요. 산부인과에서 산과의사가 ‘제왕절개’를 하는 일이 어떠하기에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이라는 말마디를 넣어야 할까요.

 

 산과의들이 걸핏하면 하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툭하면 하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으레 하는 제왕절개
 …

 

 아기와 어머니 목숨을 걱정하면서 제왕절개를 하기 때문일까요. 툭하면 제왕절개를 하기 때문일까요. 병원에서는 일손을 덜려고 손쉽게 하는 제왕절개일까요. ‘무슨 병이든 고친다’는 ‘만병통치약’과 같은 제왕절개라 여기나요. ‘숨겨둔 치료법’인 제왕절개일는지요.

 

 스스로 양반 문화를 이어받았다고 여긴다면 “집안에서 내려온 보배로운 칼”이든 “집안에서 내려온 부엌칼”이든 마음껏 이야기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하고픈 말에 따라 참말 하고픈 말을 할 노릇입니다.

 

 내 삶에 비추어 나누는 말입니다. 내 삶을 바탕으로 주고받는 말입니다.

 

 사랑스러운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드리우기를 꾀한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하고 사랑스레 꽃피울 말마디를 생각하면 됩니다. 즐거이 살아가는 하루를 헤아린다면, 나와 이야기를 나눌 사람하고 즐거이 북돋울 삶을 돌아보며 말마디를 북돋우면 됩니다.

 

 보배로운 칼이라 한다면 한 마디로 ‘보배칼’입니다. 보배칼을 한문으로 옮기니 ‘寶刀’가 되겠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한겨레 사람들은 ‘보배’라는 낱말조차 제대로 모르거나 잘 안 쓰거나 아예 모르기까지 합니다. 보배로운 칼은 ‘보배칼’이라 할 수 있고, 보배로운 말은 ‘보배말’이라 할 수 있어요. 보배로운 사랑은 ‘보배사랑’이라 하면 되고, 보배로운 꿈은 ‘보배꿈’이 될 테지요.

 

 산과의들이 보배처럼 여기는 제왕절개
 산과의들이 보배처럼 처방하는 제왕절개
 …

 

 삶을 살리는 말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삶을 살찌우는 말을 보듬고 싶습니다. 삶을 가꾸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말을 어깨동무하고 싶습니다. 삶을 즐기는 말을 나누고 싶습니다. (4345.2.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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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2-02-09 04:32   좋아요 0 | URL
저도 예문을 읽고 무슨 뜻인가 했네요, '전가의 보도'.
오늘 새벽, '뿌리깊은 글쓰기' 몇 쪽 읽고 하루 일을 시작하려는 참입니다.

숲노래 2012-02-09 04:39   좋아요 0 | URL
오... 이 새벽에 일어나시는군요 @.@

'양반 문화'로 일컫는 숱한 중국말이
한국말을 너무 어지럽히니
참 고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