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아치 1 : 앗! 오줌 쌌어 - 실수로 오줌 싼 아이를 위한 책 개구쟁이 아치 시리즈 1
기요노 사치코 글.그림, 고향옥 옮김 / 비룡소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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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한테 물려줄 만한 책을 만드나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5] 기요노 사치코, 《개구쟁이 아치》(비룡소,2009)



 1985년에 ‘논탕’ 이야기가 처음으로 한국말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논탕’을 살려서 내놓은 그림책이 아니라 ‘논탕’을 ‘곰돌이’로 바꾼 책입니다. 이른바 《꾸러기 곰돌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어요. 《꾸러기 곰돌이》를 처음 펴낸 곳은 웅진출판사. 나중에 세상모든책이라는 곳에서 다시 나오는데, 1970년대에 일본에서 나온 ‘논탕’ 그림과 그림결과 이야기 모두 훔쳐서 내놓은 틀에서 그닥 달라지지 않습니다. 2000년대 중반에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줄거리와 배경과 주인공 또래동무를 다르게 그리기는 했지만, ‘논탕 느낌’과 ‘논탕 그림결’은 그대로입니다.

 이 그림책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웅진 곰돌이’이든 ‘세상모든책 곰돌이’이든 도둑질입니다. 바보스럽고 슬픈 짓입니다. 그러나 ‘갓빠에우센’을 ‘새우깡’으로 슬그머니 고쳐서 팔아도 잘만 사서 먹는 한국사람입니다. ‘십육차’를 ‘십칠차’로 바꿔서 팔더라도 거리끼지 않는 한국사람이에요.

 이 나라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꾸러기 곰돌이》를 만들었을까요. 《꾸러기 곰돌이》에 글을 쓴 남미영 님과 그림을 그린 오명훈 님은 아이들한테 무슨 꿈과 넋과 사랑을 물려주고 싶었을까요. 도둑질을 하는 그림책을 내놓으면, 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들이 무엇을 느끼거나 헤아리거나 깨달을까요.

 디자인을 살짝 바꾸면 도둑질이 아닌 셈일까 궁금합니다. 왼귀 접힌 토끼를 오른귀 접힌 토끼로 그리면 도둑질이 아닌 셈인지 궁금합니다. 고양이를 곰으로 바꿔 그리면 도둑질이 아니라 할 만한지 궁금합니다. 곰을 돼지로 바꿔 그리면 이 또한 도둑질이 아니라 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장만한 그림책을 선물받아 읽는 아이들은 ‘좋은 줄거리’만 읽으면 그만이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은 ‘지식과 정보만 받아들여’도 되지 않습니다. 그림책을 읽으며 마음을 살찌울 아이들은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넋과 말과 꿈과 사랑과 믿음을 물려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림책 하나 빚어 아이들 앞에 내놓는 어른들은 따사로운 사랑과 너그러운 믿음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떳떳해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아름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웃고 울어야 합니다. 아이들이랑 신나게 어울리면서 노는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한테 무엇을 물려주려는 마음인지 돌아보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해요.

 어쩌면 마땅히 좋은 그림책이 옮겨지지 않았으니 슬그머니 베끼거나 훔쳐서 ‘창작’ 그림책을 내놓는다 둘러댈 수 있을 텐데, 창작하는 결이 좀 어수룩하거나 모자라더라도 베끼거나 훔치는 일은 좋지 않습니다. 배우거나 받아들이는 일이랑 베끼거나 훔치는 일은 달라요. 배우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두 대목만 슬쩍 바꿔서 ‘내 것’인 듯 내놓는 일은 올바르지 않아요.

 더 깊이 헤아린다면, 일본 창작 그림책 ‘논탕’을 그린 기요노 사치코 님 또한 누군가한테서 그림을 배웠을 테고, 어린 나날부터 수많은 사람들 좋은 그림책을 널리 보았겠지요. 기요노 사치코 님한테 좋은 창작 그림책 넋을 불어넣은 다른 그림쟁이들 또한 먼 옛날 다른 그림쟁이들 좋은 그림을 두루 보면서 아름다운 넋을 북돋았을 테고요.

 오랜 나날에 걸쳐 돌고 도는 넋이자 슬기입니다. 숱한 사람 손길을 거치며 갈고닦는 얼이자 빛줄기입니다. 그러니까, 새로 태어난대서 ‘창작’입니다.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새로 바라보며 누리기에 ‘창작’이에요. 베끼는 일은 흉내내기입니다. 훔치는 일은 도둑질입니다. 베끼거나 훔치는 까닭은 땀흘리지 않고 돈을 많이 벌고 싶기 때문입니다. 눈먼 돈을 벌어들여 배부르고 싶기 때문이에요. 귀먼 돈을 거두어들여 이름값을 높이고 싶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사랑스레 배우고 너그러이 가르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괘씸하게 베끼거나 멍청하게 훔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지 않아요. 아이들이 돈을 더 많이 벌어들이는 일이 반갑지 않습니다. 착하게 살아가며 알맞게 돈을 벌면 좋겠어요. 참다이 어깨동무하면서 아이들 저희 삶에 쓸 만큼 돈을 다스리면 기쁘겠어요.

 더 똑똑해질 까닭이 없어요. 꾸밈없이 따뜻하고 해맑게 포근하면 돼요. 좋은 밥과 좋은 꿈과 좋은 사랑으로 하루하루 빛날 수 있으면 돼요. 《개구쟁이 아치》가 2009년부터 제대로 나오는 만큼, 이제라도 《꾸러기 곰돌이》는 떳떳이 고개숙이며 물러설 줄 알면 좋겠어요. 아픈 생채기로 남아 천천히 아물며 새살이 돋도록 이끌면 반갑겠어요. (4344.11.2.물.ㅎㄲㅅㄱ)


― 개구쟁이 아치 (1) 앗! 오줌 쌌어 (기요노 사치코 글·그림,고향옥 옮김,비룡소 펴냄,2009.7.21./6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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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11-03 19:47   좋아요 0 | URL
ㅎㅎ 넘 슬픈 현실이네요.구지 일본책을 저리 베낄필요가 있을까 싶군요.저걸보니 갑자기 아이디어 회관의 SF책들이 생각납니다.이거 역시 일본책을 고대로 베낀것인데 삽화마저도 그래도 베꼈지요.뭐 이책이야 70년대니 그렇다고 해도 꾸러기 곰돌이는 좀 너무하네요.그나저나 저도 꾸러기 곰돌이 몇권을 친척 아이에게 사준 기억이 나네용^^

숲노래 2011-11-04 04:35   좋아요 0 | URL
많은 사람들이 예전부터 알던 이야기인데
제대로 비평이나 비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뻔히 알면서도 제대로 비판하지 않으니,
더구나 '웅진' 같은 곳이 이렇게 했고,
이 그림책 글을 쓴 사람과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하는 대외활동이 있기에...
이 나라는 아주 서글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