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으로 책읽기


 몸이 아프면 드러눕고 싶습니다. 몸이 아프기에 일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몸이 아픕니다. 갑작스레 몸이 무거워지면서 끙끙 앓습니다. 그러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밥을 하고 반찬을 하며 국을 끓입니다. 나는 못 먹더라도 옆지기랑 아이는 먹어야 합니다. 찬물이 손에 닿으니 찌르르 떨립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그래도 쌀을 씻어 불리기를 마칩니다. 새벽나절에 일어나 쌀을 씻어 불린 다음 자리에 눕고, 아침나절에 다시 일어나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합니다. 국물 간을 보는데 짠지 싱거운지 단지 느끼지 못합니다. 그예 머리가 핑 돕니다.

 날마다 새로운 빨래거리가 나옵니다. 아이는 아직 밤오줌을 가리지 못합니다. 아이는 한창 개구지게 놀아야 하니까 때에 절거나 지저분해진 아이 옷가지는 날마다 여러 벌 나옵니다. 물 만지기 싫고 몸이 무겁지만 빨래를 미루지 못합니다. 하루 더 지난대서 몸이 반드시 나아지리란 법이 없고, 몸이 나아지더라도 하루치 밀린 빨래를 하자면 다시 몸이 아플 수 있습니다. 식은땀 흐르는 이마를 꾹꾹 누르면서 빨래를 합니다.

 저녁나절 억지로 책 한 권을 읽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았다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읽었을까요. 대수롭지 않을 뿐더러 참 얕은 생각에서 허우적거리는 책 하나를 읽으니 머리가 더 어지럽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사진책이 몹시 드물고, 사진을 말하는 책마저 참 드뭅니다. 그래도 사진책이 아예 안 나오지는 않습니다. 몇몇 이름난 상업사진가하고 연예인들 사진책은, 어찌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툭툭 쏟아진다 할 만합니다. 제대로 삭이며 살아낸 사진을 담은 사진책이 아니라, 이름값으로 내놓는 사진책들이라 여기며 밀어젖힐 수 있지만, 온통 이런 책들이 ‘사진책’이나 ‘책’이라도 되는 듯 나오다 보니까, 이런 사진책을 내놓는 연예인들이나 상업사진쟁이한테 들려줄 ‘사진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는 모르지만, 우리 나라에서만큼은 사진과 삶과 사람을 둘러싼 살가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오순도순 나누면서 사진을 즐기며 사랑하는 길을 나누고 싶다 생각하면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글조각을 붙듭니다.

 고작 며칠 살짝 아플 뿐인데 몸이며 마음이 이렇게 흔들린다면, 오래도록 아픈 사람들은, 열 해 스무 해째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내 옆지기 같은 사람들은, 당신 몸과 마음을 어떻게 건사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가요.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요.

 이 나라에서 쏟아지는 책들은 ‘안 아픈 사람’이 써서 ‘안 아픈 사람’이 만들고 ‘안 아픈 사람’이 읽자는 책이기만 하겠구나 싶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비장애인이 써서 비장애인이 만들고 비장애인이 읽는’ 책만 가득합니다. 장애인이 써서 장애인이 만들고 장애인이 읽는 책은 여느 책방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잘난 사람들이 쓰고, 지식이 넘치는 사람들이 쓰며, 이름을 드날리는 사람들이 쓰는 책만 떠도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아파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좋을 텐데요. 한 번이라도 아픈 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기쁠 텐데요. 아픈 몸과 마음이 낫지 않는 느낌 그대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아름다울 텐데요.

 죽음을 한 달 앞둔 이오덕 님이 쓴 일기에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말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와 아프지 않은 사람이 말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다릅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처음에는 누구나 “죽음이 두렵지 않다” 하고 말할 테지만, 아니 죽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테지만, 아픈 사람들은 늘 죽음을 곁에 낀 채 살아갑니다. 죽음하고 벗하고 죽음하고 길동무를 합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습니다. 아픈 사람은 이것도 못 먹고 저것도 못 먹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합니다. 아픈 사람은 이 일도 못하고 저 일도 못합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습니다. 아픈 사람은 이 책도 못 읽고 저 책도 못 읽습니다. 아프지 않은 사람은 제 목숨이 언제까지나 끝없이 이어질 줄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아니 제 목숨이 언제쯤 마무리될는지 헤아리지 못한다고 말해야 옳을 테지요. 아픈 사람은 오늘 숨을 거둘는지 이듬날 눈을 감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아니 한 시간 두 시간, 아니 일 분 이 분이 애틋합니다. 일 분을 애틋하게 여기면서 책을 읽어 예순 해하고, 일 분을 애틋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책을 읽어 예순 해일 때, 두 사람이 읽은 책은 어떤 책이 될까요.

 오늘날 수많은 글쟁이들은 살아서 이름을 높이 드날릴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백 해나 이백 해쯤 뒤에는 이원수 님이나 권정생 님처럼 사랑받을 수 없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파하면서 살아내는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니라면 참다이 읽히는 책이 아닙니다. (4344.2.24.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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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신기루 2011-02-24 08:44   좋아요 0 | URL
저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제가 쉬이 갖지 못할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책을 좋아합니다만,
된장님의 글을 읽고 나니 그러한 책에도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네요.
『오체불만족』 등 장애인 분들이 쓰신 책이나 점자책 등 장애인 분들을 위한 책은 간혹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한참 멀었다 싶습니다.
된장님도 옆지기님도 하루속히 나으시길 빕니다.

숲노래 2011-02-24 09:36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을 수 있으나, 옆지기는 나을 수 없어요..
(그러나 나을 수 없다 해서 장애등급 판정을 받지 못합니다. 우리 법체계에서는)

오체불만족은 '성공담'이지 '장애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장애인 이야기를 담은 책은 '기류 유미코' 님이 쓴 책쯤은 되어야 비로소 장애인 이야기랍니다. 그러나 이런 책은 거의 안 팔리고 안 읽힌답니다...

그나마 <머나먼 갑자원>이나 <사랑의 집(도토리의 집)>조차 못 읽히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11-02-24 09:13   좋아요 0 | URL
된장님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된장님 글을 읽으니 권정생 선생이 그리 모든 것에 관대하고 따뜻하실 수 있으셨던건 아픈 사람의 시선이었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숲노래 2011-02-24 09:3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권 선생님이나 이오덕 선생님, 또 나중에 전우익 선생님 같은 분들이 주옥 같은 글과 책을 내놓을 수 있던 까닭은 바로 '아픈 몸과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이에요. 아프다 해서 모두 이러할 수는 없고, 아픔만으로 모두를 담지는 못하지만, 아픈 사람 삶에서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손길로 내 끼니를 내가 농사지어 내가 손수 지어 차려 먹고 치우는 살림살이를 꾸리는 매무새일 때에는, 우리들한테 아름다운 이야기를 꽃피운답니다.

권정생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남이 아닌 당신 손'으로 밥을 짓고 반찬을 해서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