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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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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우스 몇 번 클릭하면 책상 위로 책이 배달되는 시대 속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굳이 땀 흘리며 발품을 팔아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오직 '헌책'을 구하기 위해서. 책값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헌책방에 숨어있는 한 권의 책을 찾아내는 '밝은 눈'과 '내공'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헌책방을 뒤지고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절판되고 없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환희와 기쁨을. 작년에 처음 가본 헌책방에서 가르시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소설 《더러운 시간》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뻐했다. 이 소설은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 년의 고독》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마르케스가 쓴 두 번째 장편소설이며 《백 년의 고독》보다 먼저 나왔다. 이처럼 유명 작가의 절판된 책을 단번에 만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때의 기쁨은 오랜 이별 끝에 애인을 만났을 때의 기분과도 쉬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헌책방 뒤지던 일을 다소 감상적으로 떠올리게 된 것은, 최근 잔잔한 가슴 떨림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가슴 깊숙이 숨어 있는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를 건드린 것은 사라져서 아까운 헌책들을 소개한 《오래된 새 책》(바이북스, 2011)이다.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에는 절판본과 희귀본을 수집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책 이야기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저자는 자신이 예전에 '새책주의자'였다고 실토하고 있다. 종이에 세월의 때가 누렇게 남아 있거나 책을 읽은 전 주인이 남긴 낙서가 있는 헌책에 관심 없었다고 한다. 이랬던 그가 어떻게 '헌책주의자'가 되었을까.

 

좋은 내용이 가득한 책도 독자의 눈길을 끌지 못하면 가혹한 절판의 운명을 맞이한다. 최근 이 운명을 거역한 책들이 줄줄이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부활의 행렬에 동참하는 책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책이 재출간이 되었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판이 끊긴 지 몇 년 만에 재출간된 기쁨도 잠시 소리소문 없이 다시 절판되기도 한다. 책이 두 번 죽은 셈이다. 저자가 인생의 단 한 권의 책으로 꼽을 정도로 무척 소중하게 여기는 《숨어사는 외톨박이》도 두 번이나 판이 끊기는 운명을 겪었다.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단 한 번도 역사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는 풀뿌리 백성의 삶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이다. 각설이, 유랑극단, 땅꾼, 화전민, 기생, 무당 등등 이름 없는 민중의 구술로 우리말과 문화의 원형을 생생하게 담아냈기에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지금도 헌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반드시 구해야 하는 책으로 회자하고 있다. 이 책은 군사 독재 시절에 올곧은 목소리를 내던 잡지로 유명한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왔다. 책이 나오는 과정은 순탄치가 않았다. '뿌리깊은 나무'가 독재 권력의 탄압에 밀려 폐간된 이후에 《숨어사는 외톨박이》 2권이 나왔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절판되었다가 1990년에 들어서서 재출간되었으나 또 한 번 절판되고 말았다. 이야기가 잠깐 곁으로 새었는데,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저자를 '헌책주의자'로 되게 만든 결정적인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모으는 진귀한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에 열정을 기울여서 완성된 책.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처럼 늘 선택하지 않는 학문의 길을 묵묵히 걷고, 그 길을 누군가가 따라올 수 있도록 홀로 발자취를 남기는 사람들이 만든 책이 판매 부수와 수익을 강조하는 출판시장에서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도 아쉬운 일이다. 이런 책을 저자는 '샘프러스류'라고 표현한다. 샘프러스는 조코비치, 나달, 페더러 3강 체계 이전에 세계 테니스계를 주름잡았던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다. 샘프러스에 맞서는 라이벌 선수로는 준수한 외모로 인기를 얻었던 안드레 아가시가 있었다. 그러나 샘프러스에 비하면 아가시는 결코 완벽한 선수가 아니었다. 상대전적으로 샘프라스에게 밀렸고, 최고의 두 선수를 상대했던 동료 선수들은 샘프러스는 이길 자신은 없어도 아가시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누구나 노력하면 쓸 수 있는 책을 '애거시류'라면, 도저히 혼자서 쓸 수 없는 책을 '샘프러스류'라고 비유한다. 평생 우리나라 문화재와 전통문화를 집대성한 예용해 선생의 《인간문화재》(어문각, 1963)이나 5년 3개월 동안 국내 53개 도시를 찾아다니면서 손수 그림과 메모를 남긴 것을 정리한 박병주 선생의 《한국의 도시》(열화당, 1996) 같은 책은 열정과 끈기가 없으면 나오기 힘든 '샘프러스류'의 책이다. 

 

나는 책 사랑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다. 하지만 저자의 별스런 책 사랑 앞에선 그저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배송비가 엄청나게 나왔을 텐데 이베이에서 무게가 8kg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사진집을 주문하기도 하며 신판이 나왔는데도 너른마당 출판사에서 나온 신영복의 《엽서》를 비싼 값으로 구하는 저자의 모습은 나의 책 수집을 자극하게 한다. 책 욕심만 더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무차별적인 수집벽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지금은 구할 수 없지만, 독자에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들을 독자에게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는 독자가 다시 찾는 책은 반드시 재출간될 것이라 믿는다. 결국, 절판본이 다시 살아남으려면 독자의 관심이 필요하며 책의 운명이 독자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독자의 눈길과 손길을 기억해야 한다. 화려한 표지와 소란스러운 마케팅 없어도 그 기억이 또 다른 독자들에게 공유된다면 그 책을 찾으려는 독자의 눈길과 손길이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 《오래된 새 책》이 2011년에 나왔기 때문에 3년이 지난 사이에 책 속에 언급된 몇 권의 책은 독자의 염원에 힘입어 부활하는 데 성공했으며 반면에 사라지고 만 책도 있다. 돌베개출판사에서 재출간한 신영복의 《엽서》는 지금도 주문할 수 있다. 이윤기의 《하늘의 문》(열린책들)은 2012년에 재출간되었다. 고종석의 첫 장편소설 《기자들》(민음사, 1993)은 새움출판사에서 《빠리의 기자들》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전각가 고암 전병례의 《마음새김》(중앙북스, 2009)은 절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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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14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많이 배웁니다.

cyrus 2015-06-15 19:22   좋아요 1 | URL
저도 북플 이웃님들 덕분에 몰랐던 사실을 많이 배우고, 좋은 책을 알게 됩니다. ^^

초딩 2015-06-14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년간 독서량 미국 90여권 내외, 일본 60여권, 한국 8.9 권이고, 그 9권 남짓한 수는 전세계 200위 밖이며, 이 것은 내전이나 하루 한끼를 먹기도 힘든 나라 보다 못한 수치라는 통계를 본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참 많이 느꼈구요.
말씀하신 것처람 책을 사랑하고 가치를 아시는 분들이 더 더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또 한장이라도 책장을 넘겨 봅니다.

초딩 2015-06-15 19:3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리고 오늘 이 책 주문했답니나~ 땡스투 제대로 갔나 모르겠습니다. 몇번 확인하긴했는데요 :)

cyrus 2015-06-15 19:32   좋아요 1 | URL
오늘 책 주문했으면 내일 땡스투 적립금이 들어올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땡스투 적립금 정말 오랜만에 받아봅니다. ㅠㅠ

초딩 2015-06-14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저도 최근에 피카소에 대해 아주 잘쓴 (그리고 귀한) 중고책을 구했었는데, 그 때의 기쁨은 여느 책을 살때와는 정말 다르다군요 :)

cyrus 2015-06-15 19:24   좋아요 1 | URL
<오래된 새 책>을 읽고 나니까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로님이 구하신 피카소 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군요. 혹시 존 버거의 <피카소의 성공과 실패>입니까? ^^

초딩 2015-06-15 19:29   좋아요 1 | URL
아 ˝김원일의 피카소˝입니다. 피카소 책을 좀 찾아보니 도록의 퀄리티도 우수하고 작품 해설 뿐만 아니라, 피카소가 왜 그렇게 그렸는지에 대한 레퍼런스로 영향을 받은 작가와 작품들도 함께 잘 실려있어서 구해보았습니다. :) 존버거의 책도 한 번 살펴 봐야겠네요~

cyrus 2015-06-15 19:31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아로님 덕분에 새로운 책을 알게 되었어요. ^^

boooo 2015-06-14 2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책들 가운데 참 좋은 책들이 많죠. <한국의 발견> 전권을 구하고 기뻐했던 기억이 납니다.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비교적 최근 구했는데, 순천에 생긴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에서 재고가 남은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책이에요.

cyrus 2015-06-15 19:27   좋아요 1 | URL
박물관이라면 정가에 책을 구입했겠어요. 부럽습니다. 헌책방 사이트에 검색하면 가격이 기본적으로 2만 원을 훌쩍 넘어요. ^^;;

파트라슈 2015-06-14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종석의 <기자들>이 정말 새로 나왔네요. 몇 년 전 <기자들>구하려고 온갖 인터넷 중고서점을 샅샅이 뒤지다가 책값이 너무 비싸(북코아에서 6만원 정도에 매물이 나와있었던 기억..) 입수를 포기했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입맛만 다시고 있었는데 정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당장 구매해야겠습니다. 고종석의 <기자들> 문장이 정말 감질맛 나고 좋았습니다.
저도 몇 년 전에 고형렬의 <은빛 물고기>초판본을 수성구에 있는 무슨 인문학카페 중고서점에서 구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죠..

cyrus 2015-06-15 19:29   좋아요 1 | URL
사실 저도 <오래된 새 책>을 읽으면서 <기자들>이 재출간된 것을 처음 알았어요. 혹시 수성구에 있는 인문학카페라면 파이데이아 아닌가요? 그곳에 책을 판다고 들었거든요. ^^

파트라슈 2015-06-15 21:35   좋아요 1 | URL
파이데이아 북카페는 팔공산 파계사지구에 있습니다 여기서 고전읽기 모임도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cyrus 2015-06-16 20:45   좋아요 1 | URL
수성구는 아니고, 동인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길에도 파이데이가가 있었어요. 제가 지역구를 착각했어요. ^^;;

qualia 2015-06-14 2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단 한 번도 역사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는 풀뿌리 백성의 삶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이다. 각설이, 유랑극단, 땅꾼, 화전민, 기생, 무당 등등 이름 없는 민중의 구술로 우리말과 문화의 원형을 생생하게 담아냈기에 《숨어사는 외톨박이》는 지금도 헌책방 마니아들 사이에서 반드시 구해야 하는 책으로 회자하고 있다.

→ 위 구절에서 “각설이, 유랑극단, 땅꾼, 화전민, 기생, 무당 ”이란 부분을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났네요. 한 면 소재지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굴뚝청소부’와 ‘넝마주이’ 아저씨들을 봤던 일이 생각납니다. 굴뚝청소부는 순우리말로 다른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대나무를 쪼개서 길게 이어붙이고, 그 끝에 복숭아만한 솔을 달아 만든 굴뚝소지개를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뛰엄뛰엄 긴 장단으로 꽹과리 혹은 징을 치면서, 마을 골목골목을 다니며 굴뚝 청소 영업(?)을 하던 한 이름 없는 아저씨 얼굴이 생각나는군요. 그 아저씨가 꽹과리/징을 치면서 뭐라고 외쳤던 것도 같아요. 아마 “구울~뚜욱” 이랬던 것 같네요. 얼굴은 굴뚝에서 묻어나온 그으름으로 거뭇거뭇했고요. 차려입은 옷도 거무튀튀하고 꾀죄죄했죠. 그때 당시도 한참 옛날이었는데, 좀처럼 보기 드물었던 굴뚝청소부 아저씨가 그렇게도 신기할 수가 없었죠. 마치 조선시대나 일제시대로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과연 저런 일 하셔서 먹고는 사실 수 있을까 걱정스러워하기도 했었죠.

더욱 더 신기했었던 건 넝마주이 아저씨였습니다.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대나무 살로 엮은 커다란 넝마를 등에 지고, 기다란 집게로 폐지, 헌 신발, 박카스/활명수 병, 녹슨 양철 쪼가리 따위를 줍는 아저씨를 봤었죠. 근데 당시 우리 또래 아이들한데는 ‘엿’이 최고의 군것질 거리였죠.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엿장수 아저씨들한테 주변에 있는 고물이란 고물은 모두 다 주워다 주고 엿하고 바꿔 먹었죠. 그래서 쓸 만한 고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넝마주이 아저씨는 우리가 쳐다도 보지 않는 쓰레기에 가까운 것들을 넝마에 주워넣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과연 저런 쓰레기들을 주워서 어떻게 돈하고 바꿀 수 있을까 생각했더랬죠. 너무나 지저분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을 줍는 넝마주이 아저씨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옛날의 전통적인 굴뚝청소부와 넝마주이는 이젠 사라졌지만, 21세기 한국에 여전히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꿔 굴뚝/보일러를 청소하고 폐지/폐품을 줍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네요.

저는 언젠가는 고물장수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래전에 고물장수를 한번 해보긴 했었죠. 대개 촌/시골을 돌아다니며 고물을 사들이고(대부분은 화장지하고 빨랫비누 혹은 아이들한테 줄 과자나 사탕하고 교환했죠. 하지만 저는 다른 고물장수와는 달리 화장지는 최고급 화장지로 교환해줬답니다ㅎ~) 수집했는데, 헌책이 적지 않게 나왔습니다. 귀하거나 소장할 만한 책을 발견하는 때는 거의 없었지만, 간혹 헌책가게에 고물값에 넘기기보다는 내가 갖고 싶은 책을 건진 적도 있긴 있었죠.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고물장수 하면서 방방곡곡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라져가는 옛 사람들을 만나고, 옛 풍경을 직접 접하고, 옛 정서를 맛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cyrus 님의 맛깔 나는 헌책 이야기 때문에 옛 추억이 떠올라 쓸데없이 좀 길게 썼네요.

2015-06-14 21:51

⇒ 이 글 올리고 나서 “넝마”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니까 “낡고 해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 이불 따위를 이르는 말”로 나와 있네요. 저나 우리 또래들은 넝마가 쪼갠 대나무로 엮어 만든 둥글고 기다란 대바구니를 가리키는 줄 알고 그렇게 (잘못) 불렀는데요. 아마 “넝마 바구니”를 짧게 줄여서 걍 넝마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cyrus 2015-06-15 19:37   좋아요 1 | URL
qualia님의 댓글을 읽어보니까 오히려 <숨어사는 외톨박이>라는 책이 더욱 읽고 싶어졌습니다. 요즘 넝마주이, 땅꾼 이런 말들을 잘 쓰지 않는데다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어들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qualia님이 알려주신 옛 추억의 풍경들이 저처럼 젊은 사람들은 낯설고 생소해요. 오래전에 목격한 것들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는 qualia님이 대단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넝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

만병통치약 2015-06-14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기다리고 찾고 구하던 책이있었는데 도대체 시장에 나오지 않아 도서관에서 빌려 복사했어요 ㅎㅎ ㅠㅠ

cyrus 2015-06-15 19:38   좋아요 1 | URL
저도 예전에 절판본을 제본할 생각을 했었어요. ㅎㅎㅎ

수이 2015-06-14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_ :)

AgalmA 2015-06-15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어사는 외톨박이>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걸로 일단 만족하기로...이 리뷰로 재출간되는데 힘이 되기를~

cyrus 2015-06-15 19:58   좋아요 1 | URL
대구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 검색해봤는데 딱 한 곳만 제외하고는 전부 <숨어사는 외톨박이>가 없더군요.

stella.K 2015-06-15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책 오랜만이다.
예전에 이 책 가지고 이달의 당선작 따먹은 기억이 난다.
난 저자의 헌책에 대한 애정도 애정이지만
문장이 정말 좋더군.
말미에 당구장 표시는 나도 몰랐던 부분인데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아 고마운 생각까지 든다.
고종석은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재출간 되었다니 반갑네.^^

cyrus 2015-06-15 20:02   좋아요 1 | URL
전집류, 사진집에 관한 글이 좋았어요. 저도 헌책방에 가면 절판본 위주로 책을 고르는 편인데 진짜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어요. ^^

[그장소] 2017-02-20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던 책인데 ㅡ 딱 리뷰가 있어서 반가웠어요 . 제목부터가 재미있어서요 .^^
자신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는 말 ㅡ 완전 공감 임!!^^ 잘 읽고가요!^^

cyrus 2017-02-20 22:36   좋아요 1 | URL
이 댓글 못 볼뻔 했습니다.. ^^;;

[그장소] 2017-02-21 14:01   좋아요 0 | URL
아ㅡ 날짜를 보니 2015 년!! ㅎㅎ그러실만 하네요. 제가 관심책에 넣으니 이 리뷰를 자동으로 추천해 내놓는 기특한 북플~^^ 덕분에 만족스런 리뷰 만나고 가요!^^
 
고양이의 서재 -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
장샤오위안 지음, 이경민 옮김 / 유유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 책 읽는 것이 좋아서 도서관 주변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조용한 도서실에 가서 혼자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다 교문을 잠그려는 경비 아저씨에게 혼난 적도 있었다. 중학교 때 시립도서관과 조금 가까운 곳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걸어가면 10분도 안 걸린다. 학교 수업을 다 마치고 나면 PC방이나 집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했다. 싫증 날 정도로 맘껏 책을 읽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는 도서관 개념은 거의 사라진 지 오래다. 도서관은 입시를 준비하는 독서실과 같은 의미가 되어버렸다. 대학교 도서관도 교재를 읽거나 고시와 취업 준비 서적을 읽는 삭막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난 지금도 어린 시절부터 열정적으로 책을 읽었던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들끼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을 서로 바꿔가면서 읽은 적도 있으며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 책을 읽으려고 학교와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책 한두 권씩 빌려 오기도 했다. 유년 시절이 지나고도 그것은 항상 내 마음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 책갈피처럼 남아 있다. 책은 항상 내 삶의 기억과 함께 존재했다. 각자의 찬란한 기억들은 누구나 한번은 지나왔음직 한 과거의 어떤 시간, 어떤 공간에 들어 있었다. 그 특별하지 않은 과거의 대상이 때로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차츰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밑줄 긋는 남자》(열린책들, 2008)의 주인공처럼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서평을 꾸준히 작성하는 중국의 과학사학자 장샤오위안은 《고양이의 서재》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 독자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는 책에 대해서라면 무척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린 시절 고전을 남몰래 읽어가며 답답하기 짝이 없는 문화대혁명 기간(1966~1976년)을 버텨냈다. 그때는 즐거움을 위한 독서가 금기시된 시절이었다. 정부 검열 때문에 중국인들은 원하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 대신에 마오쩌둥의 글을 억지로 읽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그는 이때가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집에 있는 책만으로도 독서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던 어린 장샤오위안은 다른 사람의 책을 바꿔 보기 위해서 ‘책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가 구한 책을 친구들에게 빌려주었고, 다른 친구들은 책 좋아하는 장샤오위안을 위해서 자신의 책을 빌려줬다. 자신과 주위 사이에 하나씩 하나씩 다리를 놓듯이 장샤오위안은 책을 징검다리 삼아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독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던 장샤오위안은 대학원을 다녔을 때 동기들과 함께 ‘책 찾기 지도’라는 것을 만들었다. 베이징에 있는 수많은 서점 위치를 표시하고, 필요한 책을 찾을 수 있게 노선도까지 구성했다. 이처럼 책과 독서는 장샤오위안의 인생을 지탱해준 정신적 다리였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다리 덕분에 왕샤오위안은 학자가 되어 앙숙처럼 지내오던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접목하는 학문의 다리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장샤오위안은 자신이 고양이를 좋아해서 책 제목을 ‘고양이의 서재’로 정했다고 한다. 애서가와 고양이. 만약에 당신이 애서가라면 연관성이라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 둘의 조합에서 흥미로운 데자뷔를 떠올렸을 것이다. 일본에서 책 많이 읽었으며 꽤 많은 책을 보유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건물 이름이 ‘고양이 빌딩’이다. 다치바나도 장샤오위안철머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 편력으로 유명하며 인문학에 의해서 뒤로 밀려난 과학의 암담한 현실을 비판한다. 그러나 장샤오위안은 다치바나가 누군지 잘 모른다고 한다. 고양이 이미지를 좋아할 뿐,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다. 다치바나도 마찬가지다. 그도 고양이를 좋아해서 자신의 서재 이름을 ‘고양이 빌딩’이라고 지은 것이 아니다. 다치바나와 친분이 있었던 무대 미술가 세노 갓파가 서재 건물 외벽 디자인 도안을 맡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의 유명한 검은 고양이 그림이다.

 

고양이는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예술가들은 고양이를 좋아했다. 구속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독립적인 성품이 예술가들의 기질과 어울렸기 때문이다. 체리필터의 노래 ‘낭만 고양이’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 슬픈 바다로 떠난다. 도시의 추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맛본 도시의 고양이가 바다로 떠나는 이유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장샤오위안은 아무 책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책벌레가 아니라 책 읽는 자유를 맛보고 싶은 ‘낭만 고양이’다. 하루 종일밖에 나가지 않고 사방에 책이 가득한 서재에서 보내는 일이 소원이라는 그의 말에 애서가라면 크게 공감할 것이다. 서재는 아무 책이나 펼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사유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우리는 고단한 삶에 쫓기고, 분요한 일상에 치여 낭만과 여유를 저당 잡힌 채 참 재미없게 살아왔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은 항상 또 다른 일상탈출을 꿈꾸며 사는지 모르겠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람들의 말은 독서를 싫어해서 만들어 낸 좀스러운 변명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몇 분씩 시간을 내서 읽어보기도 하고, 정독할까 속독을 할까 고민도 해보지만 바쁜 일상에서 책 읽는 시간을 내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스마트폰에 밀리고 TV에 밀리고 독서는 언제나 다음에, 다음에, 할 일 목록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책으로 즐겁게 놀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과연 다음에 태어나서 자라나게 될 아이들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책과 도서관을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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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ette 2015-05-12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도 어릴 때는 책 읽는게 좋아서 서점과 비디오 대여점과 빵집을 한 건물에 차리고 그 건물 꼭대기에 살아야지 했었어요 (쓰고보니 어릴 때 부터 욕심이 짱 많았네요) 책으로 노는 법을 잊어간다는데 공감해요. 글재주는 원래부터도 없었지만 읽는 재주마저도 요샌 시들합니다. ㅜㅜ 반성하고갑니다.

cyrus 2015-05-13 22:48   좋아요 0 | URL
책 보고, 음식 먹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상의 복합 공간이군요. ㅎㅎㅎ 저도 가끔 독서에 대한 열정이 시들해지는 시기가 찾아와요.

blanca 2015-05-13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교보문고만 가면 가슴이 벌렁거리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읽고 싶은 책 다 살 거라고 했던...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5-13 22:51   좋아요 0 | URL
역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거의 다 비슷하군요. 학창 시절에 좋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나중에 돈 모아서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중고서점에 가면 도서관에 빌려 읽은 책들을 고르기도 합니다. ^^

붉은돼지 2015-05-13 1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을 보고,,,,물론 직접 본 건 아니고 책으로 말이죠 ㅎㅎㅎ 너무 부러워서 막 눈물을 흘리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저런 비슷한 뭐라도 하나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데...제 일생의 로망이죠 ㅋㅋㅋ

cyrus 2015-05-13 22:53   좋아요 0 | URL
고양이 빌딩 도면이 있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를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읽었는데, 이때부터 제가 책을 소유하고 싶은 갈망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했어요. ^^

낭만인생 2015-05-13 14: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감명 읽게 읽었는데 서평은 당최 쓰지를 못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5-05-13 22:55   좋아요 0 | URL
저도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읽고 나면 그것에 대한 서평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양철나무꾼 2015-05-13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명품백이나 가방 이딴건 알지도 못하지만, 아직도 책을 사들이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는지라...
요즘은 완전 자중자애하고 있습니다. 될 수 있으면 지름신 근처에는 가지말자. 오랫만에 북플에 들어오니 또 지름신 작렬입니다여. 사들이는건 둘째고 언제 읽을려고 이러는건지, 원~ㅠㅠ

cyrus 2015-05-13 22:57   좋아요 0 | URL
북플은 로그인해서 들어오기만 하면 책 표지가 먼저 눈에 보여요. 그래서 관심 있는 책을 발견하기가 더 쉬워졌어요. ^^;;

해피북 2015-05-13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렸을때 도서관 에서 오분거리에 산적이 있어요 동생과 손잡고 책도 빌려오고 연체하면 혼날까봐 서로 책 반납 미루기도 했는데 지금처럼 책이 애뜻하게 느껴지 못했던 시간이라 넘 아쉽게 느껴지더라구요. 동생하구 종종 이야기하는데 그때가 정말 좋았는데 왜 그걸 몰랐을까 하는 이야기 많이해요ㅋ 지금이라도 도서관 옆으로 이사가면 참 좋겠어요^~^

cyrus 2015-05-13 22:58   좋아요 0 | URL
제 동생은 가끔 저에게 본인이 읽고 싶은 책을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바쁘면 도서관에 갈 시간도 부족해져요. 도서관을 자주 갈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이 그립습니다. ^^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 가후의 도쿄산책기
나가이 가후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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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길을 직접 걸어가는 도보여행을 좋아하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창밖 바깥 풍경을 내려다보는 여행을 좋아하는가. 짧지 않은 길이지만 사색을 하며 걷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행이 된다. 온몸이 욱신거릴 만큼 고단한 도보여행을 통해 높은 정신의 경지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반면에 비행기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멀리멀리 유랑하는 꿈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대기의 풍경과 고도에서 바라보는 대지의 모습은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다.

 

발터 벤야민은 텍스트를 이해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서 도보여행과 비행기여행을 비유로 든다.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이라면, 텍스트를 베껴 쓰는 행위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비행기를 탄 사람은 풍경에 길이 어떻게 뻗어나 있는지 볼 뿐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거대한 전경이 들어올 뿐이다. 전경을 내려다보는 방식은 텍스트를 죽 눈여겨보는 것과 같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 사이에 놓인 길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고불고불 작은 길목에 사람들의 사연이 쌓인다. 길에는 마을의 역사가 녹아들고, 이 길을 찾은 낯선 이에겐 새로운 풍경을 선사한다. 이런 풍경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저절로 마음이 편해진다. 벤야민은 길을 걷는 사람만이 길의 영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간을 빚어내는 사소한 풍경에 몰입하면 마음이 정화된다. 텍스트를 베껴 써야지만 텍스트에 몰두할 수 있다. 텍스트는 텍스트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 순간, 텍스트를 눈으로 읽음으로써 파악하지 못했던 매력을 실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가이 가후는 100년 전 도쿄의 풍경을 완벽하게 베끼는 데 성공한 유일무이한 작가다. 『히요리게다(目和下駄)』는 가후가 텍스트의 풍경들로부터 명령을 받아 작성된 책이다. ‘근대화’라는 거대한 너울을 뒤집어쓴 제국주의가 도쿄 땅을 덮치고 있을 무렵에 가후는 근대화의 그림자에 가려질 위기에 처한 에도 시절의 흔적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가후가 산책하기 전에 반드시 하는 절차가 있다. 히요리게다라는 일본식 나막신을 신어야 하며 맑은 날씨에도 박쥐우산을 들고 다녀야 한다. 가후는 한결같은 복장을 고집하면서 도쿄 구석구석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생소한 거리를 지나가기 위해서는 지도가 있어야 하는 법. 그렇지만 가후는 현대식 축적법과 지도기호가 있는 도쿄 지도가 아닌 옛날 에도 지도를 품에 넣고 다닌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쿄 지도는 기하학이며 에도 지도는 무늬다. 도쿄 지도는 옛 지도보다 정확하지만, 기호와 축적을 표시하는 숫자는 지도 보는 맛을 떨어뜨린다. 에도 지도는 벚꽃이 피는 곳까지 알려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정확성은 떨어져도 지도를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이미 사라지고 이름만 남은 옛 도쿄의 흔적은 세상 풍진으로 인해 퇴색된 빛바랜 무늬와 비슷하다. 가후는 오늘날 도쿄 거리 모습과 옛 도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에도 지도와 직접 대조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한때 아름다웠고 흔했던 에도 도쿄의 무늬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가후는 자신이 목격하고, 발견한 에도 도쿄의 아름다운 무늬(이미지)를 텍스트화해서 베껴 옮긴다. 사당, 나무, 골목, 공터 그리고 이름 모르는 가난한 서민들의 삶까지 텍스트로 변하는 풍경이 된다. 그렇지만, 풍경들은 가후에게 명령을 내리기 전에 너무나도 빨리 사라져버린다. 근대화의 그림자는 낡은 에도 시절을 상징하는 것들을 덮치고, 심지어 도쿄 시민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주었던 나무들마저도 위태롭다. 그 자리에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고, 여기에 어울리는 서양 나무가 심어진다. 유럽에 체류한 적이 있는 가후는 도쿄마저 이국땅처럼 변하는 과정을 무척 안타까워한다. 가후가 바라보는 에도 도쿄의 무늬는 과거에 대한 추억으로 채색되어 있다. 옛것이 사라지면 추억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어제의 꽃도 오늘은 꿈’이 되는 덧없는 세상의 이치 앞에 가후는 비애에 잠긴다.

 

여행은 텍스트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텍스트를 읽으면서 느낄 수 없는 현장의 분위기를 행을 통해서 체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은 주위 사방의 지형과 풍경을 함께 둘러보아야 그 참모습을 명쾌하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뇌는 저장용량이 많은 컴퓨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행의 잔상은 하나둘씩 사라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보다 똑똑한 스마트폰으로 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저장하여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당신이 사진으로 여행의 참모습을 찍는 순간, 아우라는 사라져버린다. 사진은 더 이상 흉내 낼 수 없는 정서적 분위기가 사라져버린 복제된 무늬에 불과할 뿐이다.

 

만약에 가후가 박쥐우산 대신에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고 상상해보자. 『히요리게다』는 텍스트만 있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텍스트와 이미지가 혼합된 ‘감상하는 책’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100년 전의 도쿄 풍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히요리게다』는 ‘감상하는 책’이다. 에도 도쿄의 흔적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책 뒷부분에 부록으로 가후가 걸어 다녔던 지명을 소개한 지도와 사진이 실려 있다. 부록 덕분에 독자는 100년 전 그가 걸었던 가후의 도쿄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독자가 느끼는 일반적 감상(感想)이다. 『히요리게다』를 읽으면서 느껴야 할 진짜 감상(感想)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가후가 거리를 산책하면서 홀로 느꼈던 감상(感傷)이다. 서양식으로 변하는 도쿄를 바라보면서 느꼈을 가후의 비애감. 텍스트로 변신하고 싶은 풍경이 내린 명령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아우라다. 시간의 바람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풍경들이 기사회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텍스트로 변신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기록해줘야만 한다. 이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적임자가 바로 가후다.  

 

유려한 번역문에 이를  이미지가 있다고 한들 우리는 『히요리게다』를 지배하는 슬픈 아우라를 복원할 수도 없고, 제대로 느낄 수 없다. 『히요리게다』를 감명 깊게 읽은 도쿄 사람들도 가후처럼 도쿄를 산책한다고 해서 100년 전 가후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대로 원본에 있는 아우라를 복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도 도쿄 내부에 에도 시대를 떠올릴만한 옛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수없이 지나가 버린 세월의 변화를 무시할 수 없다. 어제의 꽃은 오늘의 꿈이 되기보다는 레테의 강(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허무하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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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5-04-2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겠네요^^;;;

cyrus 2015-04-24 13:07   좋아요 1 | URL
책의 목차를 직접 훑어보신 후에 구매를 결정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저는 에도 도쿄의 풍경을 묘사하는 내용이 조금은 낯설었습니다. ^^;;

수이 2015-04-23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읽기 시작해서 리뷰는 나중에 읽겠습니다. 일단 좋아요~ 꾸욱~

cyrus 2015-04-24 13:08   좋아요 0 | URL
책은 직접 읽어본 후에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4-24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리뷰 좋군요. 확실히 발터 벤야민`은 소설가가 되었어도 대성공했을 겁니다. 정말 아쉬운 죽음입니다.

cyrus 2015-04-24 13:11   좋아요 0 | URL
가후가 산책예찬론자라서 벤야민이 자동적으로 떠올렸습니다. 저도 벤야민의 죽음을 아쉽게 생각해요. 미국 망명이 성공했으면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완전체로 완성되었을 겁니다.

transient-guest 2015-04-24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 리뷰네요. 저는 아직 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가이 가후의 책은 그전에 묵동기담을 읽었는데, 다른 제목으로도 나와있네요.

cyrus 2015-04-24 13:14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guest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묵동기담>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

붉은돼지 2015-04-2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구입 지출이 많아 이 책은 관심은 가지만 패스할려고 했는데..
..`책성애자`(ㅎㅎㅎ) 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이것도 사야할 듯 합니다. ㅎㅎㅎ

cyrus 2015-04-24 13:19   좋아요 0 | URL
책의 목차나 뒷편에 해설을 읽어보신 후에 구매를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가후의 글은 꾸밈이 없어서 담백하게 느껴집니다. 그냥 자신이 봤던 도쿄의 모습을 상세하게 기록합니다. 이렇다 보니 백년 전의 도쿄 풍경을 묘사한 내용이 낯설어서 조금은 지루했어요. ^^;;

2015-04-24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4-24 1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5-04-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입니다. 제목부터 <어제의 꽃이 레테의 강으로 떨어진다>니 cyrus님의 문장력이 놀랍습니다. 책에 대한 흥미를 넘어, 제가 그 감성에 젖어드네요...

cyrus 2015-04-24 14:05   좋아요 0 | URL
겉멋만 잔뜩 낸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쓴 서평보다 책이 더 좋습니다.

해피북 2015-04-2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나가이 가후`라는 이름이 언급되서 이 책이 떠올랐어요 글을 읽으니 함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했는데 낯선 지명들이 자주 등장한다니 cyrus님 말씀처럼 함 살펴보고 결정해야겠어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ㅋㅡㅋ,

cyrus 2015-04-24 21:34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지만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되는 이질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에세이 한 편 분량이 길지 않으니까 마음에 드는 글을 골라서 천천히 읽으시고 구매를 결정하셔도 좋습니다. ^^
 
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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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손에 들 때 느껴지는 두툼한 부피감과 표지를 쓰다듬을 때 전해오는 부드러운 질감을 사랑한다. 막 인쇄된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와 헌책방에서 풍기는 곰팡내도 좋아한다. 새로 산 책을 펼쳐 들고 활자와 문단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작업은 즐겁다. 책은 저자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의미'로 텍스트화에서 담아놓은 글 바구니이다. 독자는 이 글 바구니에 들어가 열심히 책을 읽는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독서는 바로 ‘저자가 구축해 놓은 작가의 경험과 사상 즉, 저자가 전하려는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독자가 글 바구니에 들어가려면 우선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는 소설 등의 서사적인 글이 가져야 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글 말고도 설명적이거나 논리성이 요구되는 글까지도 글을 읽고 싶게 하는 호기심을 발동하게 해야 한다. 일단 재미가 없으면 독자는 글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과 가까이한 경험이 많지 않은 독자라면 몰라도 독서를 많이 한 독자는 결코 책 속에서 재미만 쫓지 않는다. 저자는 글 바구니 안에 있는 책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책이 좀 많습니다》에 나오는 23명의 애서가들은 비록 가진 책은 몇 천 권(?)에 불과하지만, 책 한 권을 음미하는데 누구보다도 탁월한 미식가다. 개인소장도서 몇만 권을 헤아리는 장서가라고 해서 ‘독서 고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을 구별 짓는 일률적인 자격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적인 행동양식은 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사람들은 건져내지 못하는 책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아마도 이들은 하루만 책을 보지 않아도 불안에 떨 것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권의 책을 허겁지겁 탐식하고 나서는 마음은 서점으로 향해 있다. 이렇다 보니 애서가들은 대체로 수집벽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허섭 씨는 애서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들인 책이 무려 2만 권 족히 된다. 너무 많이 사서, 또 너무 많이 차지해서 가족들의 눈치를 받게 되자 개인 서재인 ‘학사재’를 갖게 되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책을 사고 모으다 보니 집이 책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국지를 좀 읽어본 독자 대부분은 이문열 삼국지로 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남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를 세 번 이상은 완독하려고 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문구를 책의 카피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한 출판사의 전략은 성공했다. ‘이문열 삼국지’는 최장기간 스테디셀러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 나온 삼국지를 대표하는 제1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삼국지 열풍 속에 부작용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쓴 삼국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만 찾는 것이다. 허섭 씨는 삼국지를 읽을 때 이문열뿐만 아니라 황석영, 장정일 등이 쓴 여러 가지 삼국지 판본을 사면서 읽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삼국지가 들어간 제목의 책만 해도 수십 권 넘는다. 웬만한 삼국지 전집을 다 갖춘 셈이다. 범인(凡人)은 허섭 씨의 독서 편력을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책이 좋아도 그렇지 적지 않은 책값을 삼국지에만 쏟아 붓는 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섭 씨의 끝장 도서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기 위한 허섭 씨만의 독서법이다. 이문열의 생각이 투영된 삼국지만 세 번 이상 읽었다고 해서 삼국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허섭 씨가 생각하는 위험한 독서는 고작 책 몇 권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만 가지고 쉽게 단정하고, 오만해지는 것이다. 애서가는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안다. 프리랜서 윤정일 씨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이공계 도서를 알뜰하게 모아 두었다. 그가 관심 있는 컴퓨터 분야는 국내에서는 척박하고 낯선 황무지와 같다. 그런데도 윤정일 씨는 쉽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서를 장만했다. 그에게 독서는 이공계 도서의 출판과 번역에 관한 방법론을 전파하기 위한 고독한 여정이다. 국어 교사 김주연 씨는 시집와 그 시집을 쓴 시인에 관한 책들을 가지고 있다. 수의사 임희영 씨는 단지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사게 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이 있지만, 글 바구니를 제대로 가지고 놀 줄 아는 모습은 닮았다.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우리나라 사회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책이 주렁주렁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묵묵히 걸으면서 책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을 줄 아는 진정한 애서가들이다.

 

그들이 터놓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책의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지식의 풍경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평범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책 속에 있는 지식의 풍경은 사라지고, 책이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메마르면서 죽는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글이 담긴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낳고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수 세기 동안은 그런 염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해도 된다고 본다. 영상문자가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작가가 만들어낸 텍스트의 의미를 찾는 일이나 텍스트을 읽으면서 획득되는 ‘상상에 의한 창의력’ 쪽은 종이책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책이 좀 많습니다’라는 제목만 보고 애서가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 독자들이 그런 착각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제목 앞에 괄호를 넣고 싶다. 《( ) 책이 좀 많습니다》. 《( ) 책이 좀 많습니다》안에 독자가 원하는 말을 넣을 수 있다. 평소에 좋아하고, 많이 읽은 분야의 책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 모으면서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자랑해도 된다. 아니면 커피의 종류나 이와 관련된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글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커피에 관한 책만 모으는 독자는 ‘(커피에 관한)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애서가다. 단지 책이 특별히 많다고 해서 애서가라고 할 수 없다. 책이 좀 많다고 자부하는 애서가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독서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거라 믿는다. 애서가는 말 그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범하기만 하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나무를 개인 서재에 심어 가꿀 줄 안다면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애서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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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3-27 23: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성적으로 (안 읽은)책이 좀 많습니다 vs (잘못 읽은)책이 좀 많습니다 vs (읽다가 만)책이 많습니다... 빅매치를 엉뚱하게 상상해 봅니다;

달걀부인 2015-03-28 07:17   좋아요 1 | URL
이렇게 공감이 되는 댓글은 처음이군요! ㅋㅋ

해피북 2015-03-28 09:09   좋아요 1 | URL
저두 공감100개 누르고 싶네요^~^

양철나무꾼 2015-03-28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리뷰를 쓰지 않거나 쓰지 못한) 책이 좀 많습니다~^^

해피북 2015-03-2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번에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면서 확 정리도 되고 공감도 되는 글이예요 저두 오늘부터 가로안에 들어갈 문구 생각 해봐야겠어요 저두 (읽지 못한)책이 좀 많습니다가 될거 같지만요 ㅋㅡㅋ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cyrus 2015-03-28 21:47   좋아요 0 | URL
해피북님은 어린이 그림책이나 마스다 미리가 쓴 책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해피북님은 (유유출판사에 나온) 책들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해피북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내일 아침에 황사 섞인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점점 안 읽은 책이 책장을 점령했네요....

cyrus 2015-03-28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안 읽었거나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군요. (C무룩)

하양물감 2015-03-29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 놓은) 책이 좀 많습니다
(방바닥에 널부려놓은 )책이 좀 많습니다. ㅠㅠ

오쌩 2015-03-3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분들 댓글보니 대부분 상태가 비슷하군요ㅠ
 
사물의 이력 - 평범한 생활용품의 조금 특별한 이야기
김상규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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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저가 아니라 스마트폰을 먼저 든다. 스마트폰에 정착된 조그만 카메라 렌즈를 음식 앞에 내미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인다. 매혹적인 음식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그들은 맨눈 대신에 카메라의 액정화면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 찍는다기보다는 저장한다고 해야 적합하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에 비해 손쉽게 사진을 얻을 수 있는 만큼 각자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속에는 수많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숙고해서 셔터를 꾹 누르던 옛 시절과 비교하면 마음에 드는 사진이 오히려 적은 것도 아마 비슷하리라. 특별한 날에만 기념으로 사진을 찍던 그때와 달리 요즘은 일상을 기록하기 위해 고만고만한 사진들을 주로 찍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용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물건이 우리의 일상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발달이 아날로그 시대를 풍미했던 제품과 인간미까지 변화시키며 아날로그의 상징들을 골동품으로 몰아낸다. 과거 CD의 등장으로 LP와 카세트테이프의 입지가 좁아진 것처럼 이 역시 최신 기기의 등장과 온라인 음악파일 다운로드 등으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추억을 되새기는 앨범의 가치도 사라진다. 개인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의 급속한 발전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두꺼운 앨범의 한 페이지를 손으로 넘기며 추억을 되새김질하지 않는다. ‘똑딱’거리는 마우스 클릭이 사람들의 손을 대신하게 됐다.

 

당시에는 정말 참신했던 제품들이 어느새 잊혀 사라져 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는 혁신적이었던 제품이 일용품의 단계를 거쳐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는 과정은 일련의 제품 수명주기로 나타낼 수 있다. 즉 제품도 인간처럼 수명이 있는 것이다. 제조회사는 새로운 제품을 팔기 위해 기존에 만들었던 제품의 수명을 의도적으로 조절한다. 그러니까 소비자가 기존 제품을 오래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신상 제품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한다.

 

세상은 모든 것이 속도 경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예전엔 서서히 낡아가는 것들이 요새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낡아져 버린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한창 일할 나이인 사람도 요즘은 퇴장을 요구받는다. 낡은 사람들의 경험은 재활용을 거부당한 채 곧장 쓰레기 처리장으로 직행하고 만다.

 

의자 디자이너이며 디자인학과 교수 김상규는 이미 쓰레기 처리장으로 향했거나 언젠가는 쓰레기 처리장에서만 보게 될지도 모르는 사물의 일대기를 들려준다. 저자가 소개한 사물은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데다가 늘 곁에 있어 온 보잘것없는 것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겠다.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백열전구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백열전구는 호롱불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밝았다. 무엇보다 집안에 그을음이 끼지 않는다는 게 획기적 변화였다. 하지만 전력을 너무 많이 먹는 데다 수명이 짧은 단점으로 인해 작년부터 전구 자리에 전력 효율이 뛰어난 LED가 새로 들어왔다. LED의 화려한 불빛이 커질수록 둥그런 유리알이 뿜어내는 전구의 은은한 불빛의 잔상마저도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지 마음껏 보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서툰 타자 솜씨로 편지를 작성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자기 버튼을 손으로 치면 둔탁한 소리가 난다. 마치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서 화음을 내는 피아니스트가 된 것 마냥 손가락 끝에서 섬세하면서도 짜릿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은 버튼이 존재하지 않는다. 평평한 터치스크린 화면만 있을 뿐이다. 사용하려면 화면에 손끝을 살짝 건드리면 된다. 디자인의 변화가 익숙했던 생활 방식을 달라지거나 아예 사라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디자인은 모양을 만드는 기술 이전에 생각을 만드는 기술이다. 우리는 디자인이 만든 세상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을 디자인 식으로 생각하면 인생이 달라진다. 삶에서의 발견과 성찰은 인생의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다. 디자인은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는 포장술이 아니다.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면 삶을 멋지게 디자인할 수 있다.

 

어머니는 인생을 디자인할 줄 알았던 똑똑한 디자이너다. 어렸을 때,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어머니는 교과서에 비닐이나 지나간 달력 한 장을 씌웠다. 달력 숫자가 찍힌 종이가 씌워진 교과서가 무척 촌스럽게 보여서 새 교과서를 받으면 어머니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 곳에 몰래 숨기고 싶은 생각도 한 적 있다. 교과서를 험하게 다루면 훼손되기 쉽다. 특히 몇 달 지나면 표지에 지저분한 낙서가 덕지덕지 남아있고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어 찢어지기 일보 직전에 이르기도 한다. 교과서를 오래 쓸 수 있도록 어머니는 교과서에 커버를 씌웠다. 소박하면서도 일상 친화적 디자인은 투박해 보여도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끈끈한 정(情)을 유지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가 있다. 지금의 어머니들은 교과서에 커버를 씌우지 않는다. 자식이 학교 성적을 잘 받기를 원한다. 당연히 이런 관계라면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디자인하려면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한다.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던 그 사소한 것들을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사소한 것에서 무언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진정한 생활의 발견을 경험할 수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울수록 그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 더욱 감동적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적어도 나도 모르게 바쁘게 흘러가버리는 그런 하루는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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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1-2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능이 디자인을 만든다는 말도 있듯이 디자인이 좋으면 편리하죠. 생각해 보니 요즘은 책 포장을 안하네요? 교과서도요. 책이 좋아져서 그런가요?흔해져서 일까요?

cyrus 2015-01-26 10:50   좋아요 0 | URL
책이 좋아져서 커버를 덮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돌궐 2015-01-26 0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주 읽거나 인용할 게 많을 거 같은 책은 비닐커버로 직접 쌉니다. 하드커버 책도 많이 보면 너덜거리거든요.^^

cyrus 2015-01-26 10:55   좋아요 0 | URL
저는 구입한 책들 중에 하드커버 책이 많지 않고, 여러 번 읽지 않아서 손상된 것이 없어요. ㅎㅎㅎ 돌궐님의 댓글을 보면서 위편삼절이 생각납니다.

남희돌이 2015-01-26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커버 하면 동네서점이 생각나요. 요즘은 그냥 바코드로 틱 찍고나서 책을 그냥 주지만 저 어릴 적에는 주인 아주머니가 얇은 포장지로 예쁘게 책을 싸주셨거든요. 하도 많은 책을 싸서 능숙한 솜씨로 책을 놓고 칼집을 위 아래로 낸 다음 착착 싸주시던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용돈만 생기면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답니다. 나중에 나도 서점 주인이 되어서 저렇게 예쁘게 책을 싸주어야지..했던 기억이..
사물의 이력, 타자기나 백열전구같이 아날로그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물건들에 대한 내용이 가득할 것 같네요.

cyrus 2015-01-26 20:06   좋아요 0 | URL
낭만적인 경험인데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 교과서 비닐커버 혼자 만들다가 실패했던 적이 많았어요. ㅎㅎㅎ

양철나무꾼 2015-01-27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손으로 꼬물거리는 걸 좋아해서, 헝겊으로 북커버를 가끔 만들기는 하는데요,
만들고 나면, 손때 묻을까봐, 고이 모셔두기만 하죠, ㅋ~.
정작 읽는 책은 잡지 책 `부욱~`뜯어서 대충 싸여.

글구 맛있는 요리가 나오면 스마트 폰을 들어요.
근데 맛있는 요리가 나올 때보다,
제가 요리를 했을 때 폰을 들어 인증샷을 찍죠, ㅋ~.

cyrus 2015-01-27 21:2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은 실제로 보면 무척 섬세하고 꾸미기를 잘 하실 것 같아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5-05-13 0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 본문과 댓글 읽다가.... 옛날에는 정말 책을 귀하게 대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뿐이 아니라 모든 사물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건 추억팔이`가 아니라 그 태도가 지구 생태계를 위해서도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모든 회사들이 수명을 짧게 만든다고 하죠...


cyrus 2015-05-13 23:12   좋아요 0 | URL
회사가 제품의 수명 주기를 짧게 만든 이유에는 늘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신상품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정말 소중하게 다뤘는데 시간이 지나서 오래 사용하면 질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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