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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평점 :
책을 손에 들 때 느껴지는 두툼한 부피감과 표지를 쓰다듬을 때 전해오는 부드러운 질감을 사랑한다. 막 인쇄된 책에서 나는 잉크 냄새와 헌책방에서 풍기는 곰팡내도 좋아한다. 새로 산 책을 펼쳐 들고 활자와 문단 사이에 숨겨진 비밀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작업은 즐겁다. 책은 저자가 독자를 염두에 두고 자기 생각과 경험을 '의미'로 텍스트화에서 담아놓은 글 바구니이다. 독자는 이 글 바구니에 들어가 열심히 책을 읽는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독서는 바로 ‘저자가 구축해 놓은 작가의 경험과 사상 즉, 저자가 전하려는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그런데 독자가 글 바구니에 들어가려면 우선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재미는 소설 등의 서사적인 글이 가져야 하는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문학적인 글 말고도 설명적이거나 논리성이 요구되는 글까지도 글을 읽고 싶게 하는 호기심을 발동하게 해야 한다. 일단 재미가 없으면 독자는 글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과 가까이한 경험이 많지 않은 독자라면 몰라도 독서를 많이 한 독자는 결코 책 속에서 재미만 쫓지 않는다. 저자는 글 바구니 안에 있는 책의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책이 좀 많습니다》에 나오는 23명의 애서가들은 비록 가진 책은 몇 천 권(?)에 불과하지만, 책 한 권을 음미하는데 누구보다도 탁월한 미식가다. 개인소장도서 몇만 권을 헤아리는 장서가라고 해서 ‘독서 고수’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들을 구별 짓는 일률적인 자격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 공통적인 행동양식은 있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다른 사람들은 건져내지 못하는 책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과정 자체를 즐긴다. 아마도 이들은 하루만 책을 보지 않아도 불안에 떨 것이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한 권의 책을 허겁지겁 탐식하고 나서는 마음은 서점으로 향해 있다. 이렇다 보니 애서가들은 대체로 수집벽이 있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허섭 씨는 애서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들인 책이 무려 2만 권 족히 된다. 너무 많이 사서, 또 너무 많이 차지해서 가족들의 눈치를 받게 되자 개인 서재인 ‘학사재’를 갖게 되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책을 사고 모으다 보니 집이 책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삼국지를 좀 읽어본 독자 대부분은 이문열 삼국지로 접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남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를 세 번 이상은 완독하려고 했다.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라는 문구를 책의 카피로 삼아 대대적으로 홍보한 출판사의 전략은 성공했다. ‘이문열 삼국지’는 최장기간 스테디셀러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 나온 삼국지를 대표하는 제1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삼국지 열풍 속에 부작용이 있다. 다른 작가들이 쓴 삼국지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자들은 이문열 삼국지만 찾는 것이다. 허섭 씨는 삼국지를 읽을 때 이문열뿐만 아니라 황석영, 장정일 등이 쓴 여러 가지 삼국지 판본을 사면서 읽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삼국지가 들어간 제목의 책만 해도 수십 권 넘는다. 웬만한 삼국지 전집을 다 갖춘 셈이다. 범인(凡人)은 허섭 씨의 독서 편력을 유별나다고 생각한다. 책이 좋아도 그렇지 적지 않은 책값을 삼국지에만 쏟아 붓는 것이 시간 낭비, 돈 낭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섭 씨의 끝장 도서는 지식이 편협해지지 않기 위한 허섭 씨만의 독서법이다. 이문열의 생각이 투영된 삼국지만 세 번 이상 읽었다고 해서 삼국지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허섭 씨가 생각하는 위험한 독서는 고작 책 몇 권을 읽으면서 얻은 지식만 가지고 쉽게 단정하고, 오만해지는 것이다.
애서가는 자기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안다. 프리랜서 윤정일 씨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이공계 도서를 알뜰하게 모아 두었다. 그가 관심 있는 컴퓨터 분야는 국내에서는 척박하고 낯선 황무지와 같다. 그런데도 윤정일 씨는 쉽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원서를 장만했다. 그에게 독서는 이공계 도서의 출판과 번역에 관한 방법론을 전파하기 위한 고독한 여정이다. 국어 교사 김주연 씨는 시집와 그 시집을 쓴 시인에 관한 책들을 가지고 있다. 수의사 임희영 씨는 단지 고양이가 좋아서 고양이에 관한 책을 사게 되었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이 있지만, 글 바구니를 제대로 가지고 놀 줄 아는 모습은 닮았다.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우리나라 사회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책이 주렁주렁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자라지 않는 황무지를 묵묵히 걸으면서 책의 의미를 끊임없이 찾을 줄 아는 진정한 애서가들이다.
그들이 터놓은 여러 갈래로 이루어진 책의 길을 따라가 보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지식의 풍경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이런 평범한 경험을 누리지 못하거나 기회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책 속에 있는 지식의 풍경은 사라지고, 책이 열리는 지식의 나무가 메마르면서 죽는다. 머지않은 장래에는 글이 담긴 종이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낳고는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수 세기 동안은 그런 염려는 없을 것으로 단정해도 된다고 본다. 영상문자가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작가가 만들어낸 텍스트의 의미를 찾는 일이나 텍스트을 읽으면서 획득되는 ‘상상에 의한 창의력’ 쪽은 종이책에 절대로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독자는 ‘책이 좀 많습니다’라는 제목만 보고 애서가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혹시 독자들이 그런 착각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 제목 앞에 괄호를 넣고 싶다. 《( ) 책이 좀 많습니다》. 《( ) 책이 좀 많습니다》안에 독자가 원하는 말을 넣을 수 있다. 평소에 좋아하고, 많이 읽은 분야의 책을 넣으면 된다. 예를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사 모으면서 재미있게 읽은 독자가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자랑해도 된다. 아니면 커피의 종류나 이와 관련된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져 글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커피에 관한 책만 모으는 독자는 ‘(커피에 관한) 책이 좀 많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애서가다. 단지 책이 특별히 많다고 해서 애서가라고 할 수 없다. 책이 좀 많다고 자부하는 애서가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독서에 관한 잘못된 인식이 사라질 거라 믿는다. 애서가는 말 그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평범하기만 하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자신이 원하는 지식의 나무를 개인 서재에 심어 가꿀 줄 안다면 평범한 사람도 충분히 애서가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