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앱에서 20년 전 인연이 끊어진 옛친구를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발견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다른 모임 구경도 해보자 싶어서 이런저런 모임을 둘러보는 중 알고 있던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엔 동명이인 인가 싶었다. 프로필을 클릭해보니 역시 그였다. 본인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그와 인연이 끊어질 때 좋지 않게 헤어졌고 심한 말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지만 아마 내 잘못이 더 컸을 것이다. 말다툼할 때 심한 욕설도 오고 갔었다. 그의 사진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그와의 마지막 연락을 기억에서 삭제시켜 버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일을 다시 떠 올리는 일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 그도 그랬을까? 아마 그도 나에 대해 다시 떠 올리기 싫은 혐오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나름 나의 유일한 절친이자 지기였고 책을 좋아하고 전공이나 철학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 이야기가 잘 통했지만 성격이 깔끔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대책 없이 벌려놓고 수습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듯 했지만 학과 리포터를 제때 제대로 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마감기한이 다 돼서 내 리포터를 기웃거렸다. 내 자취방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한 적도 많았다. 전기밥솥 솥을 철 수세미로 박박 긁어 설거지해서 밥솥 코팅을 다 벗겨 못쓰게 만든 일이 생기자 나는 그를 내 자취방에서 영구 추방해 버렸다. 밥솥 사건은 그 이후로 그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되풀이하는 좋은 먹이감이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지만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기다가 주일마다 교회 가서 참회기도 한 번으로 깨끗하게 도덕 세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결국은 나도 그와 같은 부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방에서 스스로 셀프 사면을 해 왔다는 것. 그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있자니 또다시 온통 그를 비난하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내 모습도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닌듯싶다. 그래서 다시 기억을 복원해 보니 좋았던 일, 고마운 일이 훨씬 많았다. 좋은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는 그와의 추억을 부정적으로 편집해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속해있던 그 모임에 가입해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해 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와는 인연이 끝났지 않은가? 지금 와서 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인간은 육체적 생노병사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생노병사가 있다는 말을 누군가 했었고 나는 그 말을 정말로 확실하게 믿는다. 아니 믿음이 아니라 그말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잘 관찰해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하던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져 죽는 순간까지 영영 볼 수 없는 상황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친구 간의 우정도 마찬가지고 부모 자식 관계도 역시 그렇다. 죽음이 관계를 소멸시키기도 하지만 죽음과 상관없이 소멸되는 관계가 사람들에게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겠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 연락과 소통이 단절되면서 완벽하게 끝이 났다. 관계의 생노병사에서 死의 단계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걸어서도 안된다. 역으로, 웃기는 상상이지만, 그가 내 연락처를 알아내서 내게 말을 건다 해도 나는 응하지 않을 참이다. 이렇게 독백으로 그를 추억하는 일만이 그와 소멸된 관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합당한 일이라고 본다.


 그때는 그가 미웠지만 지금은 그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당시 미숙했던 내 인간관계 요령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대학시절부터 10년의 인연이었고 그 후 20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20년만에 그 옛 친구와의 관계를 홀가분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에게 빚진게 있어 내 몫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때 내 친구여서 정말 고마웠다. 이 짧은 글은 그를 마지막으로 소환해서 내 기억에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리추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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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모님과 살던 집.

아랫목에 자식들 양보하고 아버지는 늘 창호지 발린 문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주무셨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잦아들면 겨울바람에 문풍지 바르르 떨리는 소리.


 새벽에 방이 식어 잠이 깨면 창호지문 밖에 빨간 군불 그림자 화르륵 솟구친다. 아버지는 늘상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넣어 방을 다시 데워줬고 그 온기에 사르르 아침잠 늦게까지 달게 자곤 했다.


 아버지의 그 수고로움 이제는 잘 아는데 그 고마움 전할 아버지 안 계시고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가스보일러 돌리면 후끈한 아파트 방은 외풍도 없고 어깨도 얼굴도 안 시린데 군불 때고 들어오시던 아버지 외투에 묻어있던 그 서늘한 새벽 냉기는 왜 그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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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라 그런지 입맛이 없다. 나이 들수록 밥맛은 없어지는데 이상하게 뭔가 하나씩 꼭 먹고 싶어지는 것은 많아진다. 오늘은 사과가 먹고 싶은데 그냥 보통 사과가 아닌 아주 맛있고 좋은 사과가 먹고 싶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사과, 봉지에 대 여섯 개씩 포장된 저렴한 사과들인데 대부분 맛이 싱겁거나 너무 새콤했고 육질도 이상해서 씹는 맛도 별로였던 것들이었다. 몇 해 전부터 사과값이 크게 올랐던 탓에 그런 봉지 사과도 결코 싼 편이 아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맛은 없고 사과는 늘 만족하기 어려운 과일이었다


 그런 사과에 비해서 요즘 제철인 딸기, 곧 제철이 도래하는 참외는 비싸고 좋은 것을 고르면 거의 실패 없는 확실한 과일이다. 난 딸기를 좋아하지만 먹고 나서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라 즐기지 않는다. 먹고 나서 속이 편하고 입안이 깔끔한 사과가 과일 중에서 제일이라는 생각은 늘 변함이 없었고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는 사과 생각이 절실해서 큰맘 먹고 동네 마트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비싸고 좋은 사과를 구입하리라.


 설 명절이 다가와서 그런지 과일에 프리미엄이 좀 붙은 듯했다. 10킬로 한 상자에 79천원짜리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34알이 들어있어 굵기도 적당했다. 마트 직원에게 상자를 열어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색깔도 좋고 굵기도 고르고 무엇보다 사과 특유의 단내가 확 풍기는 게 내가 원하던 달고 맛있는 사과라는 확신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카트에 담았다. 집에 와서 한 알을 꺼내 씻으며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두근두근 긴장감이 들었다. 한 상자 8만원짜리 비싼 사과를 사서 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맛이 없다면 한 상자 다 망치는 거라서 모험인 셈이었다. 한 조각 와싹 씹었는데 내 확신이 맞았다. 진짜 맛있는 꿀사과였다. 달고 수분도 많고 아삭아삭 씹히는 육질도 적당하고 작년 가을에 수확한 햇사과가 틀림없었다


 세어보니 한 알이 더 들어있어 35알이었다. 청과 경매시장에서 한 알이 적으면 난리 나지만 한 알이라도 많으면 문제없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사과가 좋은 값에 잘 팔려 나가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그 바램. 한 알을 더 보탠 것은 사과를 키운 농부의 간절한 마음 같았다.

 

 어릴 때 엄마가 남의 사과밭에 품앗이하러 간 날이면 늘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지면 엄마가 빨간 다라이에 한가득 이고 오던 그 사과, 절반은 다 썩어서 썩은 곳을 도려내고 나면 남는 부분은 겨우 한입이던 그 사과 맛과 비슷했다. 사과밭이 있던 동네 친구 집이 부러웠다. 그 친구는 썩지 않은 온전한 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썩지 않고 제대로 된 온전한 사과를 한 박스나 살 수 있었던 날이 오늘이었다.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못 샀던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좋은 사과에 인색했던 것일까? 아마도 나는 여전히 사과를 귀한 과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과 한 개를 힙색에 넣고 산책을 나섰다. 오랜만에 날이 풀려서 햇볕은 따뜻했고 무엇보다 맛있는 사과를 한 상자나 구입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맛있는 사과 때문에, 그리고 따뜻한 햇볕 덕분에 산책하는 내내 흥얼거리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예전에는 그런 고급 박스 사과는 비싼 가격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돈 아끼고 모아서 뭐하겠나 싶었다. 맛있는 사과 실컷 사먹자. 오늘처럼 돈을 써서 기분이 좋고 만족한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해가 잘드는 벤치에 앉아 사과 한 알 와작 깨물어본다. 좋은 옷, 고급시계, 큰 자동차 이런 것보다 맛있는 79천원짜리 사과 한 상자가 내겐 더 값진 명품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앞으로 대단한 행복은 없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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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지는 작가의 초조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일주일에 한 편 글쓰기 첫 게임 마감 시한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는데 슬슬 부담감이 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살짝 받는 상황이지만 약간 기분 좋은 스트레스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인지력과 집중력을 더 강화시킨다고 한다. 중요한 시험 직전에 보통 집중력과 몰입도는 최고로 강력해지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라서 글쓰기에 최적이다.

 

​ 첫 게임 참가 글인데 어떤 주제가 좋을까? 글쓰기에 관한 글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의문이다. 그런데 질문이 좀 거창해 보인다. 잘 팔리는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 서문에 써 붙일만한 주제 아닌가?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만한 글재주나 능력도 없다. 그저 최근 들어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 뿐인데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런 거대한 질문 나한테 가당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작년 연말부터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어 그것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임경선이 최근에 낸 책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글 쓰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을 쓰는 일은 달리 말하면 곱게 미쳐있는 상태인 것 같다

 

​ 완전히 공감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곱게 미쳐 있는 상태, 그 상태는 아마도 글쓰기 모드로 들어간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경험하고 있는 곱게 미쳐 있는 상태는 분명히 평상시나 회사에서 업무처리 할 때의 심리와는 다르다. ,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집중력이나 몰입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상태? 세상과 어떤 사건과 자신과 그 관계들에 대한 하염없이 깊은 관조적 상태, 주시, 바라보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또 다른 상위적 자아, 즉 메타인지가 최대로 활성화된 상태? 지적 엑스터시나 작은 깨달음의 연속들. 모든 존재와 시간을 여실히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보는 것,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들과 진실에 대한 호기심, 또는 이성과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섞어내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모드? 라고 하면 어떨까? 시인이라면 감성이 최대한 작동하거나 판사라면 판결문 쓸 때 이성과 논리력를 극한으로 운용하는 상태? 그렇지만 그 어느쪽이든 완전히 미쳐 피안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세계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감성과 이성의 극한은 평행의 대척점이 아니라 사다리꼴 모양으로 수렴되어 나에게 돌아와 행복을 주는 그런 고운 미침.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내가 더 이상 정확하게 묘사할 만한 언어나 표현이 나에겐 없어 당혹스럽다.

 

​ 그러니 글쓰기에 집중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내가 하려는 말의 뜻을 알아서 잘 이해하시리라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약간 미치지 않고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을 말이다.

 

​ 글쓰기에 곱게 미쳐있는 상태는 더불어 즐거운 고통을 수반한다. 아니 고통스런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무척 고된 일이다. 지금도 문장 하나하나 겨우 더듬더듬 써내고 있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쓰기처럼 숙련되기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라고 한탄한다. 임작가는 저술업으로 20년째 먹고 살고 있는데 그런 전문작가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 하는게 글쓰기란 것. 글이 술술 잘 써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럼 나는 어렵고 힘든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글쓰기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한 편의 글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써냈을 때의 그 성취감이 너무 좋고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른다. 한마디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생각한 뒤에 그 글이 일단 대충이라도 완성됐을 때의 그 희열은 정말 짜릿하다. 또 내가 한 건 해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 물론 대충 완성된 글이라 고쳐 써야 할 또 다른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글을 고치는 시간은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순간이다. 지복의 과정인 셈이다. 글의 내적 정합성을 살펴보기도 하고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문맥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지 따져보고 표현이나 어휘가 적절한지 매끄러운지 검토해 본다. 위선이나 가식이 없이 솔직하고 진솔했는지에 대한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나는 정말 내 글을 고치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 이 글도 내가 재밌게 고치고 주무른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개념은 사실상 고치고 또 고친다 라는 의미라고 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 초고를 완성하고 여러 날 묵히면서 그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고치면서 내면이 순수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온다. 막혀있던 문장이 다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어지럽고 정리되지 못해 꼬였던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후련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하지도 못한 영감이 떠 오르거나 소소한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겠다. 이런 과정이 바로 내가 빠져든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만두기 어려워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제법 강한 중독성이 있다. 다시 한번 임경선의 말을 옮기자면,

 

진실하고 진정한 글쓰기는 스스로를 갱신하고 초월하는 경험을 돌려준다. 한번 이러한 사랑, 혹은 글쓰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결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없다

 

​ 여기서 원래의 장소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고 내 마음의 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듯 하다. 글쓰기에 빠져든 사람의 마음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허투루 보지 못한다.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삶 자체가 글 쓰는 과정이 된다. 나는 이런 마음 상태가 바로 서두에서 말한 곱게 미쳐있는 상태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에서 깨어나면 글은 더 이상 잘 써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감도가 무디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한테 걸리는 3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내 글 구려병, 내 글 뻔해병, 내 글 싫어병.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가 지적한 병이다. 웃기지만 정확하고 슬픈 지적이다. 나도 내가 쓴 글이 구리고 뻔하고 보기 싫고 마음에 안든다. 밤새 쓴 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뭐 이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워 노트북을 재빨리 덮어버리지만 글을 삭제하지는 못한다. 내 정신의 흔적이기도 하고 고민하면서 집중한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니 지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쓴다 해도 그 형편없는 글보다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두고 묵혀서 다시 보면 그래도 좀 봐 줄 만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 그 부분을 붙들고 다시 쓰기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보기 싫었던 글이 그래도 조금 흡족한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미완성된 글들이 노트북에 항상 여러 편 굴러 다닌다. 단박에, 한 번에 글이 나오지 않는다. 완성된 글을 블로그에 옮겨도 내 글 구려병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글 구려병이 완전히 불치병은 아니다. 결국엔 나도 내가 쓴 글을 인정하게 되고 애정을 가진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가 쓴 글 아닌가?

 

​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게 글쓰기는 세월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고 나와 불화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 내 자신과의 연애라고 해야겠다. 뻔하고 진부한 결론 같지만 글쓰기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일이다. 그 일은 때때로 내 글 구려병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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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 청소년기를 회상해보면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그 경험은 무척 행복했다. 한글을 깨우친 시절부터 눈에 띄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인쇄된 것은 무엇이든 읽었다. 읽기는 내 유일한 오락거리였고 즐거움이었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였고 독서광이었다. 읽지 못하는 글이 있으면 너무 아쉬웠다. 집에 복숭아 봉지 씌우기용 종이봉투가 널려 있었는데 외국에서 수입해 온 종이인지 온통 알파벳으로 인쇄되어 읽을 수가 없음에 크게 한탄했다. 글 읽기는 나에게 일종의 정언명령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책을 읽지만 그 시절의 독서 경험 만큼 즐겁지 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짐작 가는 이유가 있다면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한 시대였다는 사실이다. 읽을 책 한 권 생기면 그게 그렇게 기쁘고 행복했다. 행복은 희소성과 정비례하지 않겠지만 내 어린 시절, 책은 흔하지 않았기에 그때의 책 한 권은 지금 수십, 수 백권의 책만큼의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지금처럼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도서관도 없었고 책을 빌릴 수 있는 도서관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나는 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집에 읽을 책이 없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동네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재미가 시들해졌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겨울방학이면 내복만 입은 채 종일 방에 틀어박혀 누나들이 보던 소설책을 읽어 치웠다. 그 때 읽었던 책은 <마도의 향불>, <국보와 괴도>, <붉은 전갈의 공포>같은 그로테스크한 성인 추리 소설들이었지만 그것까지 정말 맛있게 읽어 버렸고 마침내 집에 읽을 책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알았던 날 나는 크게 절망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읽을 책이 없어 불안하게 방바닥을 뒹굴다가 문득 어떻게 해서든 읽을 책을 구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구해 올까? 책을 구해 올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중학교 도서실이었다. 당시 학교 도서실은 건물 복도 맨 끝 북쪽 구석에 있었고 도서실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종 생물표본이 포르말린 용액으로 가득찬 병안에 괴기스럽게 전시되어 있었다. 하루종일 해가 들지 않아 춥고 어둡고 무서운 곳이어서 학교 아이들은 도서실에 출입하는 걸 꺼려했고 거기에 있는 책들을 학생들이 읽거나 대출하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또 거기서 과학 수업을 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책장마다 유리로 된 문이 주먹 만한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었고 책을 대출해주는 직원도 없었고 그 누구도 그 책들에 관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 같은 책벌레한테 아무도 읽지 않는 그 책들이 눈에 밟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지만 무서운 그 도서실에 혼자 출입하는 용기를 내기도 어려워서 아쉽게 입맛만 다시면서 결국 그 책들을 포기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읽을 책을 구해 오고야 말겠다는 결심이 서자 학교 도서실에 포기한 책들이 아른거리기 시작했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내가 좀 옮겨와서 읽는 게 뭐 그리 나쁠 것이냐 하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잡았다. 쌀 창고에 있던 40킬로짜리 정부미 쌀포대기 하나를 챙기고 밤 12시를 넘겨 집을 몰래 나섰다. 책을 훔치러 가는 길, 12월 말 동지가 지나고 시리고 시린 겨울밤이었다. 동네 어귀를 벗어나고 철길로 올라섰다. 혹시나 누군가 눈에 띌 것 같아 일반 국도로 걸어가지 않고 철길을 걸어가기로 했다. 학교까지는 십리가 넘는 길이었다. 그 야심한 밤에 철길을 걸어가는 남학생 한 명의 모습 누가 보더라도 이상 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내 발걸음은 거침 없었다. 책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학교에 도착하고 건물 밖에서 2층 도서실로 올라가는 캐노피로 올라섰다.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도서실 창문은 쉽게 열렸고 내부로 들어가서 자물쇠로 잠긴 책장 문도 약간 힘을 줘서 들어올리니 쉽게 개방되었다. 쌀자루에 책들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에 읽고 싶던 책 위치를 봐두었던 덕에 망설임 없이 책을 골라냈다. 혼자서 들고 옮길 정도의 양만 담고 다시 10리 철길을 걸어왔다. 훔친 책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새벽의 철길을 걸어오던 그 때 밤하늘에 반짝이던 별만이 내 절도행각을 무심히 내려다보는 듯했다. 외롭고 지독히 추웠지만 곧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오는 10리길도 즐거웠다. 다행이 그날 밤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점심때까지 늦잠을 즐기고 훔쳐 온 책들을 즉시 읽기 시작했다. 그 때 내가 업어온 책들 대부분은 중국고전들과 문고본책이었다. 논어, 맹자, 서경, 사기열전, 한비자. 묵자, 순자, 채근담, 법구경등등.. 방학내내 그 책들을 읽어나갔다. 법구경을 읽을 때는 붓다의 그 서늘한 가르침에 몸서리쳤다. 책을 그것도 공공재인 학교의 책을 훔친 내 도둑질에 대해서 붓다와 공자, 한비는 인쇄된 활자로 무섭게 나를 책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죄책감은 서서히 옅어져 갔다. 즐겁게 읽을 책이 넘치도록 생겼으니까 말이다


 방학 내내 그 책들은 읽고 있으니 개학날은 금방 다가왔다. 개학이 되고 학교에 갔더니 누군가 학교 도서실을 털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책이 없어진 사실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을 그래도 사람들은 믿는 시절이었던 것일까? 책 절도 사건은 조용히 잊혀져 갔다. 대신 도서실 책장에는 지난번보다 더 견고한 자물쇠가 달렸고 창문과 출입문 잠금장치가 더 강력해졌다. 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나는 도서실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된 일이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낭만적 말이 통용되는 시절이었지만 엄연히 절도 행위였고 주거침입이었으니 부끄럽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책을 한 자루 짊어지고 겨울밤 가슴 설레며 달려왔던 소년은 이제 50살이 지나 그때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대학에 입학해서 제대로 된 도서관을 접하기 전까지 나는 늘 책에 굶주려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끊임없이 책을 찾았다


 그 책들을 읽으며 나는 무엇을 배웠고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인가? 나에게 책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 스스로에게 물어보지만 나에게 책이란 뭔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그때처럼 책을 어떻게든 구해와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책을 읽어 남들이 말하는 성공한 사람이 되겠다는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책 읽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과 사회적 성공(, 높은 지위, 좋은 직업, 훌륭한 인품등)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그저 책 속에서 살아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년 시절 내 불안하고 외롭고 슬픈 마음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위로 해주고 말을 걸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책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극이든 비극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다. 책은 그냥 내 삶이었다. 내 인생에서 책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나는 행복했다.


 책이 너무 좋아 한순간 저지른 실수였지만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수십 년간 매월 일정 금액 이상을 책 구입에 지출했다. 책 모으기 강박적 불안을 오랫동안 앓고 있는 것이지 싶다. 집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지는 강박증이라고 해야겠다. 한겨울 밤 책을 훔치러 철길 20리를 걸었던 그 시절의 나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결코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그 시절 나는 책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훔친 책들을 읽으며 기쁘고 행복했지만 살아오는 동안 늘 모교에 내가 갚아야 할 빚은 오래된 숙제처럼 남아 있었다. 비록 내가 훔친 책들이 자물쇠에 굳게 잠겨서 아무도 읽지 못할 책이라지만 나 혼자가 아닌 학교 급우들과 후배들이 그 책들을 읽을 잠재력이나 기회는 여전히 있었을 것이다. 나는 책 그 자체뿐만 아니라 책이 가진 그 기회까지 뺏어온 것이다. 그 부분은 정말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변에 책을 읽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가진 책들을 주저 없이 내 주었다.

 

 내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학교 도서실의 큰 도움을 얻었지만 어떻게든 학교에 진 빚을 다시갚고 싶었다. 내가 그동안 모은 책들을 정리한다면 모교에 기증을 하면 어떨까? 어느날 고향에 갔는데 모교 앞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폐교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35년 전 새벽에 걸었던 그 철길은 레일이 모두 걷어지고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았다. 책이 있던 2층 도서실은 그대로였지만 학생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 책을 읽을 아이들이 이제는 없구나.


 이제 책은 너무나 흔한 세상이 되었다. 도시에는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들어서 있고 조금만 움직이면 큰 도서관이 있어 책은 전혀 귀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책을 훔쳐 읽던 그때의 나처럼 여전히 책에 목마른 아이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 나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밀린 숙제를 마치려고 모교 관할 지자체에 지정기탁 신청을 했다. 좀 어려운 학생들에게 책값을 보태고 싶다고 적었다. 이왕이면 학교독서대회에서 입상한 아이들이면 좋겠다고. 잘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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