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혜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9
크누트 함순 지음, 안미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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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0 년즈음, 북유럽, 노르웨이의 황무지에서 시작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었다.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하고 억센 남자 이사크. 이사크는 아무도 없는 공유지에 들어가 혼자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한다. 나무와 풀을 베고 감자를 심고 염소를 기르고 오두막을 짓는다. 이사크는 힘이 좋고 부지런하여 순식간에 황무지는 각종 농작물로 가득차고 풍성해진다. 이사크는 집도 땅도 가축도 있었지만 일을 도와줄 하녀는 없었다. 친절하지도 않고 잘생기지도 않았고 목소리는 거칠어서 짐승 같았다. 그래서 혼자 살 수 밖에 없었다. 외롭고 고생스런 나날이 이어졌다. 어느날 이사크를 도와줄 사람이 우연히 찾아왔다. 키가 크고 피부가 그을린 여자였고 큰 체격에 손이 단단한 서른에 가까운 여자였다.


이사크와 잉에르의 첫 만남을 묘사한 대목은 이 소설의 백미다. 투박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담담하게 그려내는 두 사람의 만남을 그려내는 대목부터 나는 이 소설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잉에르랍니다"

"그쪽은요?"

"이사크요"

"이사크라, 여기 사시나요?"

"그렇지요,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삽니다"

"괜찮네요"

그녀가 칭찬하며 말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와서는 자신이 갖고 온 음식을 좀 먹고 그가 내놓은 암소젖을 마셨다. 그러더니 따뜻하게 싸 온 커피를 데웠다. 잠자리에 들기 전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고 아늑한 시간을 보냈다. 자리에 누운 그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고, 그녀는 그에게로 왔다.


아침이 되어도 그녀는 떠나지 않았고, 낮이 되어도 머물렀다.


여자의 이름은 잉에르였고 남자의 이름은 이사크였다.


 외로운 남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의 여자에게서 흠잡을 것이라면 발음이 또렷하지 않고 언청이라서 늘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것뿐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입술이 아니라면 그녀는 그에게 오지도 않았을테니, 그녀의 토순은 그에게에는 행운이었다. 그 자신은 어떤가. 그에게는 흠잡을데가 없던가? 수염은 뻣뻣했고 체구는 땅딸막했으며, 생김새는 울퉁불퉁한 유리를 통해 보는 것처럼 흉측했다. 그는 언제라도 날강도로 변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잉에르가 도망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그가 나갔다가 돌아오면 잉에르는 오두막에 있었다. 둘, 오두막과 그녀는 하나가 되었다.

                                                                                                                                   -p16-



 잉에르는 이사크와 같이 농장을 일구어 나간다. 둘은 어느새 서로 믿고 의지하는 동반자가 된다. 잉에르는 언청이였다. 그런 잉에르를 이사크는 땅처럼 사랑한다. 잉에르는 마을에 가서 자신이 키우던 소 금뿔이를 데려온다. 금뿔이는 송아지 은뿔이를 낳고 잉에르도 아이를 여럿 낳아 땅의 혜택으로 키워간다. 이사크 부부는 늙어 마침내 대농장의 영주가 된다.


 소설에서 끊임없이 묘사되는 것은 이사크와 잉에르 가족의 노동이다. 그들은 황무지에서 풀을 베 건초를 만들고 돌을 걷어내고 나무를 자르고 염소젖을 짜 치즈를 만들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 오두막과 가축우리를 만든다. 일상의 노동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노동은 수고롭고 고단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기찻길의 침목처럼 소설을 지탱하는 힘이자 고갱이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고단했던 한국 시골 농부들이나 화전민의 삶이 그려지기도 하고 산업화 시대에 땅을 지키려 했던 우리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한다. 묵묵히 땅을 지키는 이사크 가족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감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지만 흥미롭게도 함순은 소설 곳곳에 불안감을 일으키는 복선을 깔아 놓았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작품을 읽는 내내 이사크와 잉에르에게 불행한 일이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느껴져서 페이지 넘김을 서두르게 된다. 


 이사크가 터전을 잡은 곳은 공유지였고 국가소유의 땅이었다. 이사크의 농장이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잘 되고 있을 때 지방행정관 게이슬레르가 나타난다. 게이슬레르는 이사크가 현재 무단으로 농사짓고 있는 국가소유의 땅에 대해 소유권 이전을 제안한다. 이 대목에서 혹시 이사크가 게이슬레르에게 사기를 당해 농장을 전부 잃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결국 게이슬레르라는 인물도 땅의 혜택을 믿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이사크의 농장에서 구리광산이 발견되면서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이사크가 종사하고 있는 전통적인 농업의 대척점에 있는 광산업과 상업의 물결이 이곳에도 휩쓸려 오기 때문이다. 돈냄새를 맡고 몰려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사크는 농장을 지킬 수 있을까?


 그리고 이사크의 아내 잉에르, 그녀는 대단히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인물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내가 제일 매력을 느꼈던 인물이 그녀였다. 그녀는 순수해 보이면서 가슴 가득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다. 언청이라는 결점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했던 탓일까? 그녀는 자신의 딸을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는데 거기서 언청이 수술을 받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출소한다. 이사크도 몰라보게 예뻐지면서 그녀는 이사크 몰래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잉에르에게 교도소 경험은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라 새로운 날개였던 셈이다. 그러나 잉에르는 결코 농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잉에르가 농장을 떠났던 것은 단 한번, 감옥에 갔을 때 뿐이었다.


 잉에르가 교도소에서 풀려나고 그녀를 만나러 가는 이사크의 설렘, 잉에르가 교도소에서 낳은 딸과 셋이서 그들의 농장 셀란로를 향해 가는 여행길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잉에르가 농장 셀란로와 이사크를 끝내 떠나지 않는 이유는 언청이였던 자신을 받아준 이사크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노르웨이의 시골을 그린 작품이다. 멀고 생소한 북유럽의 노르웨이의 시골이지만 과거 산업화시절 우리의 시골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 소설에서 이사크의 농장은 셀란로라는 이름이 붙고 이웃 악셀 스트룀의 농장은 모네란이라는 예쁜 이름으로 불려진다. 농장마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우리 전통 농촌에서 집집마다 택호를 붙이던 관습과 비슷하다. 집주인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그의 집과 농사짓는 땅 전체를 아우르는 별도 이름(택호)를 붙이는 관습이 그 먼나라 노르웨이의 옛 시골에도 있다니 인간의 삶의 양식에는 확실히 보편성이 있다.


 80년대 방영하던 미국 드라마 초원의 집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나는 디지털 문명에 지친 내 정신을 확인할 수 있었고 땅과 자연에 대한 동경이 더 커졌다. 실제로 함순이 이 소설을 발표한 시기는 1920년.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으니 전쟁에 대한 환멸과 공포에 극도로 시달리던 때. 그때와 지금도 여전한 게 있다면 또 다른 경제전쟁이 끝도 없이 사람들을 피곤하고 소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변하는 세파에 휩쓸리지 않고 고단하지만 소박하고 작은 세계에 만족하는 소설 땅의 혜택이 가지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모든 것을 소유해야하고 일과 쉼이 구분되지 않아 만성적 피로에 시달리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처방은 작고 소박한 이사크의 농장이면 충분할 듯 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는 곳.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소득도 있었다. 북유럽의 먼나라 노르웨이의 시골모습을 마음껏 상상하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아는 세계가 훨씬 더 넓어진 풍성하고 경험을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황무지를 일구며 이사크와 잉에르가 노르웨이의 깊은 산골에 실제로 살고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북유럽을 여행할 수 있다면 노르웨이를 맨 먼저 가보려고 한다. 다만, 함순은 이사크의 농장이 위치한 곳의 구체적인 지명을 소설에서 설정하지 않았던 점은 아쉽다. 그래서 내가 직접 그 곳을 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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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임앱에서 20년 전 인연이 끊어진 옛친구를 만났다. 만난 것이 아니라 발견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다른 모임 구경도 해보자 싶어서 이런저런 모임을 둘러보는 중 알고 있던 이름을 하나 발견했다. 처음엔 동명이인 인가 싶었다. 프로필을 클릭해보니 역시 그였다. 본인 사진을 프로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나는 뭔가 나쁜 짓을 하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랐다.


 그와 인연이 끊어질 때 좋지 않게 헤어졌고 심한 말다툼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정확히 특정할 수 없었지만 아마 내 잘못이 더 컸을 것이다. 말다툼할 때 심한 욕설도 오고 갔었다. 그의 사진을 보고 놀랐던 이유는 그와의 마지막 연락을 기억에서 삭제시켜 버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 일을 다시 떠 올리는 일은 아물지 않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다. 그도 그랬을까? 아마 그도 나에 대해 다시 떠 올리기 싫은 혐오스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나름 나의 유일한 절친이자 지기였고 책을 좋아하고 전공이나 철학쪽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 이야기가 잘 통했지만 성격이 깔끔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을 대책 없이 벌려놓고 수습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공부는 열심히 하는 듯 했지만 학과 리포터를 제때 제대로 제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고 마감기한이 다 돼서 내 리포터를 기웃거렸다. 내 자취방에 와서 며칠씩 묵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한 적도 많았다. 전기밥솥 솥을 철 수세미로 박박 긁어 설거지해서 밥솥 코팅을 다 벗겨 못쓰게 만든 일이 생기자 나는 그를 내 자취방에서 영구 추방해 버렸다. 밥솥 사건은 그 이후로 그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되풀이하는 좋은 먹이감이었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이었지만 술과 담배를 마음껏 즐기다가 주일마다 교회 가서 참회기도 한 번으로 깨끗하게 도덕 세탁을 하는 모습도 보기 싫었지만 결국은 나도 그와 같은 부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방에서 스스로 셀프 사면을 해 왔다는 것. 그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고 있자니 또다시 온통 그를 비난하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내 모습도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닌듯싶다. 그래서 다시 기억을 복원해 보니 좋았던 일, 고마운 일이 훨씬 많았다. 좋은 일이 없었던 게 아니라 나는 그와의 추억을 부정적으로 편집해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가 속해있던 그 모임에 가입해서 그에게 연락을 시도해 볼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와는 인연이 끝났지 않은가? 지금 와서 그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인간은 육체적 생노병사만 겪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생노병사가 있다는 말을 누군가 했었고 나는 그 말을 정말로 확실하게 믿는다. 아니 믿음이 아니라 그말은 엄연한 사실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잘 관찰해보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친 듯이 사랑하던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져 죽는 순간까지 영영 볼 수 없는 상황들은 전혀 생소하지 않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친구 간의 우정도 마찬가지고 부모 자식 관계도 역시 그렇다. 죽음이 관계를 소멸시키기도 하지만 죽음과 상관없이 소멸되는 관계가 사람들에게는 훨씬 많을 것이다.


 그는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겠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 연락과 소통이 단절되면서 완벽하게 끝이 났다. 관계의 생노병사에서 死의 단계다. 그러니 나는 그에게 말을 걸 수도 없고 걸어서도 안된다. 역으로, 웃기는 상상이지만, 그가 내 연락처를 알아내서 내게 말을 건다 해도 나는 응하지 않을 참이다. 이렇게 독백으로 그를 추억하는 일만이 그와 소멸된 관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합당한 일이라고 본다.


 그때는 그가 미웠지만 지금은 그 미움이라는 감정보다는 당시 미숙했던 내 인간관계 요령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대학시절부터 10년의 인연이었고 그 후 20년이 흘렀다. 나는 이제 20년만에 그 옛 친구와의 관계를 홀가분하게 정리할 수 있다. 그에게 빚진게 있어 내 몫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때 내 친구여서 정말 고마웠다. 이 짧은 글은 그를 마지막으로 소환해서 내 기억에서 완전히 소멸시키는 리추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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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부모님과 살던 집.

아랫목에 자식들 양보하고 아버지는 늘 창호지 발린 문 앞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주무셨다.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잦아들면 겨울바람에 문풍지 바르르 떨리는 소리.


 새벽에 방이 식어 잠이 깨면 창호지문 밖에 빨간 군불 그림자 화르륵 솟구친다. 아버지는 늘상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넣어 방을 다시 데워줬고 그 온기에 사르르 아침잠 늦게까지 달게 자곤 했다.


 아버지의 그 수고로움 이제는 잘 아는데 그 고마움 전할 아버지 안 계시고 기억도 희미해져 간다. 가스보일러 돌리면 후끈한 아파트 방은 외풍도 없고 어깨도 얼굴도 안 시린데 군불 때고 들어오시던 아버지 외투에 묻어있던 그 서늘한 새벽 냉기는 왜 그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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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이라 그런지 입맛이 없다. 나이 들수록 밥맛은 없어지는데 이상하게 뭔가 하나씩 꼭 먹고 싶어지는 것은 많아진다. 오늘은 사과가 먹고 싶은데 그냥 보통 사과가 아닌 아주 맛있고 좋은 사과가 먹고 싶다. 지금까지 먹어왔던 사과, 봉지에 대 여섯 개씩 포장된 저렴한 사과들인데 대부분 맛이 싱겁거나 너무 새콤했고 육질도 이상해서 씹는 맛도 별로였던 것들이었다. 몇 해 전부터 사과값이 크게 올랐던 탓에 그런 봉지 사과도 결코 싼 편이 아니다. 돈은 돈대로 쓰고 맛은 없고 사과는 늘 만족하기 어려운 과일이었다


 그런 사과에 비해서 요즘 제철인 딸기, 곧 제철이 도래하는 참외는 비싸고 좋은 것을 고르면 거의 실패 없는 확실한 과일이다. 난 딸기를 좋아하지만 먹고 나서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라 즐기지 않는다. 먹고 나서 속이 편하고 입안이 깔끔한 사과가 과일 중에서 제일이라는 생각은 늘 변함이 없었고 오늘따라 유난히 맛있는 사과 생각이 절실해서 큰맘 먹고 동네 마트로 향했다. 오늘은 기필코 비싸고 좋은 사과를 구입하리라.


 설 명절이 다가와서 그런지 과일에 프리미엄이 좀 붙은 듯했다. 10킬로 한 상자에 79천원짜리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34알이 들어있어 굵기도 적당했다. 마트 직원에게 상자를 열어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색깔도 좋고 굵기도 고르고 무엇보다 사과 특유의 단내가 확 풍기는 게 내가 원하던 달고 맛있는 사과라는 확신이 들었다. 망설임 없이 카트에 담았다. 집에 와서 한 알을 꺼내 씻으며 과연 얼마나 맛있을까 두근두근 긴장감이 들었다. 한 상자 8만원짜리 비싼 사과를 사서 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맛이 없다면 한 상자 다 망치는 거라서 모험인 셈이었다. 한 조각 와싹 씹었는데 내 확신이 맞았다. 진짜 맛있는 꿀사과였다. 달고 수분도 많고 아삭아삭 씹히는 육질도 적당하고 작년 가을에 수확한 햇사과가 틀림없었다


 세어보니 한 알이 더 들어있어 35알이었다. 청과 경매시장에서 한 알이 적으면 난리 나지만 한 알이라도 많으면 문제없다. 자신이 정성껏 키운 사과가 좋은 값에 잘 팔려 나가서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으면 하는 그 바램. 한 알을 더 보탠 것은 사과를 키운 농부의 간절한 마음 같았다.

 

 어릴 때 엄마가 남의 사과밭에 품앗이하러 간 날이면 늘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저녁이 되어 어둑어둑해지면 엄마가 빨간 다라이에 한가득 이고 오던 그 사과, 절반은 다 썩어서 썩은 곳을 도려내고 나면 남는 부분은 겨우 한입이던 그 사과 맛과 비슷했다. 사과밭이 있던 동네 친구 집이 부러웠다. 그 친구는 썩지 않은 온전한 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썩지 않고 제대로 된 온전한 사과를 한 박스나 살 수 있었던 날이 오늘이었다. 지금까지 돈이 없어서 못 샀던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좋은 사과에 인색했던 것일까? 아마도 나는 여전히 사과를 귀한 과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과 한 개를 힙색에 넣고 산책을 나섰다. 오랜만에 날이 풀려서 햇볕은 따뜻했고 무엇보다 맛있는 사과를 한 상자나 구입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맛있는 사과 때문에, 그리고 따뜻한 햇볕 덕분에 산책하는 내내 흥얼거리면서 즐겁고 행복했다. 예전에는 그런 고급 박스 사과는 비싼 가격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돈 아끼고 모아서 뭐하겠나 싶었다. 맛있는 사과 실컷 사먹자. 오늘처럼 돈을 써서 기분이 좋고 만족한 경험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해가 잘드는 벤치에 앉아 사과 한 알 와작 깨물어본다. 좋은 옷, 고급시계, 큰 자동차 이런 것보다 맛있는 79천원짜리 사과 한 상자가 내겐 더 값진 명품이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앞으로 대단한 행복은 없겠지만 오늘 같은 날은 자주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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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글은 안 써지는 작가의 초조한 마음이 이런 것일까?  일주일에 한 편 글쓰기 첫 게임 마감 시한이 하루도 채 남지 않았는데 슬슬 부담감이 오기 시작한다. 스트레스를 살짝 받는 상황이지만 약간 기분 좋은 스트레스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인지력과 집중력을 더 강화시킨다고 한다. 중요한 시험 직전에 보통 집중력과 몰입도는 최고로 강력해지지 않는가?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라서 글쓰기에 최적이다.

 

​ 첫 게임 참가 글인데 어떤 주제가 좋을까? 글쓰기에 관한 글이 좋을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일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의문이다. 그런데 질문이 좀 거창해 보인다. 잘 팔리는 유명 작가가 자신의 책 서문에 써 붙일만한 주제 아닌가?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고 돈벌이가 되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만한 글재주나 능력도 없다. 그저 최근 들어 취미로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일 뿐인데 글쓰기란 무엇인가 이런 거대한 질문 나한테 가당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작년 연말부터 블로그에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하면서 느낀 게 몇 가지 있어 그것에 대해 약간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인 임경선이 최근에 낸 책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에서 글 쓰는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글을 쓰는 일은 달리 말하면 곱게 미쳐있는 상태인 것 같다

 

​ 완전히 공감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곱게 미쳐 있는 상태, 그 상태는 아마도 글쓰기 모드로 들어간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 아닐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경험하고 있는 곱게 미쳐 있는 상태는 분명히 평상시나 회사에서 업무처리 할 때의 심리와는 다르다. ,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집중력이나 몰입이 최대한 발휘되어야 하는 상태? 세상과 어떤 사건과 자신과 그 관계들에 대한 하염없이 깊은 관조적 상태, 주시, 바라보기, 나를 바라보고 성찰하는 또 다른 상위적 자아, 즉 메타인지가 최대로 활성화된 상태? 지적 엑스터시나 작은 깨달음의 연속들. 모든 존재와 시간을 여실히 생생하고 선명하게 느껴보는 것, 사람이 가진 모든 감정들과 진실에 대한 호기심, 또는 이성과 감성을 절묘하게 조합하고 섞어내는 고도의 지적인 작업모드? 라고 하면 어떨까? 시인이라면 감성이 최대한 작동하거나 판사라면 판결문 쓸 때 이성과 논리력를 극한으로 운용하는 상태? 그렇지만 그 어느쪽이든 완전히 미쳐 피안으로 가버리지 않고 이 세계를 긍정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고 감성과 이성의 극한은 평행의 대척점이 아니라 사다리꼴 모양으로 수렴되어 나에게 돌아와 행복을 주는 그런 고운 미침.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내가 더 이상 정확하게 묘사할 만한 언어나 표현이 나에겐 없어 당혹스럽다.

 

​ 그러니 글쓰기에 집중해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이 정도에서 내가 하려는 말의 뜻을 알아서 잘 이해하시리라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를. 약간 미치지 않고서는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을 말이다.

 

​ 글쓰기에 곱게 미쳐있는 상태는 더불어 즐거운 고통을 수반한다. 아니 고통스런 즐거움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내 경험상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글 쓰는 것은 어렵고 힘들고 무척 고된 일이다. 지금도 문장 하나하나 겨우 더듬더듬 써내고 있다.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쓰기처럼 숙련되기 힘든 일이 또 있을까? ”라고 한탄한다. 임작가는 저술업으로 20년째 먹고 살고 있는데 그런 전문작가조차 힘들어하고 버거워 하는게 글쓰기란 것. 글이 술술 잘 써지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럼 나는 어렵고 힘든 이걸 왜 하고 있는 것일까?

 

 글쓰기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한 편의 글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써냈을 때의 그 성취감이 너무 좋고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유의 기쁨과 즐거움이 뒤따른다. 한마디로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 숙고하고 생각한 뒤에 그 글이 일단 대충이라도 완성됐을 때의 그 희열은 정말 짜릿하다. 또 내가 한 건 해냈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긴다.

 

​ 물론 대충 완성된 글이라 고쳐 써야 할 또 다른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글을 고치는 시간은 이제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즐기는 순간이다. 지복의 과정인 셈이다. 글의 내적 정합성을 살펴보기도 하고 앞 문장과 뒷 문장이 문맥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잘 연결되는지 따져보고 표현이나 어휘가 적절한지 매끄러운지 검토해 본다. 위선이나 가식이 없이 솔직하고 진솔했는지에 대한 자기검열도 필요하다. 나는 정말 내 글을 고치는 과정이 너무 재밌다. 이 글도 내가 재밌게 고치고 주무른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임경선 작가는 글을 쓴다는 개념은 사실상 고치고 또 고친다 라는 의미라고 했다. 동의할 수 밖에 없다.

 

​ 초고를 완성하고 여러 날 묵히면서 그 글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고치면서 내면이 순수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온다. 막혀있던 문장이 다시 물 흐르듯 이어지고 어지럽고 정리되지 못해 꼬였던 마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후련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하지도 못한 영감이 떠 오르거나 소소한 깨달음이 오기도 한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 해야겠다. 이런 과정이 바로 내가 빠져든 글쓰기의 매력일 것이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그만두기 어려워 나름대로 즐기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에는 제법 강한 중독성이 있다. 다시 한번 임경선의 말을 옮기자면,

 

진실하고 진정한 글쓰기는 스스로를 갱신하고 초월하는 경험을 돌려준다. 한번 이러한 사랑, 혹은 글쓰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결코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 갈 수 없다

 

​ 여기서 원래의 장소란 물리적 장소가 아니고 내 마음의 상태라고 해야 정확할 듯 하다. 글쓰기에 빠져든 사람의 마음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허투루 보지 못한다. 일상이 모두 글감이 되고 삶 자체가 글 쓰는 과정이 된다. 나는 이런 마음 상태가 바로 서두에서 말한 곱게 미쳐있는 상태바로 그것이라고 본다. 곱게 미쳐있는 상태에서 깨어나면 글은 더 이상 잘 써지지 않는다. 삶에 대한 감도가 무디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글을 자주 쓰는 사람들한테 걸리는 3가지 병이 있다고 한다.

 내 글 구려병, 내 글 뻔해병, 내 글 싫어병.

소셜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가 지적한 병이다. 웃기지만 정확하고 슬픈 지적이다. 나도 내가 쓴 글이 구리고 뻔하고 보기 싫고 마음에 안든다. 밤새 쓴 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읽어보면 뭐 이딴 글을 내가 썼단 말인가? 하고 한심하고 부끄러워 노트북을 재빨리 덮어버리지만 글을 삭제하지는 못한다. 내 정신의 흔적이기도 하고 고민하면서 집중한 작업의 결과물이기도 하니 지우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시 쓴다 해도 그 형편없는 글보다 더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두고 묵혀서 다시 보면 그래도 좀 봐 줄 만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럼 그 부분을 붙들고 다시 쓰기 작업을 이어간다.

 

 그러다 보면 보기 싫었던 글이 그래도 조금 흡족한 순간이 온다. 그렇게 미완성된 글들이 노트북에 항상 여러 편 굴러 다닌다. 단박에, 한 번에 글이 나오지 않는다. 완성된 글을 블로그에 옮겨도 내 글 구려병은 여전하다. 하지만 내 글 구려병이 완전히 불치병은 아니다. 결국엔 나도 내가 쓴 글을 인정하게 되고 애정을 가진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바로 내가 쓴 글 아닌가?

 

​ 그러므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느 정도 나르시시스트가 될 수 밖에 없다. 내게 글쓰기는 세월 속에 나를 방치하지 않고 나와 불화하지 않고 나를 좋아하는 것. 내 자신과의 연애라고 해야겠다. 뻔하고 진부한 결론 같지만 글쓰기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일이다. 그 일은 때때로 내 글 구려병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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