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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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답사기에는 설명에만 머물지 않는 나름의 서사가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책들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정보로만 가득찬 여행지 참고서를 읽는 것은 아니지 않나. 가끔은 이야기들이 약간 지나치다는 인상이 들기도 하나 이 정도는 답사를 나서는 사람들의 흔한 '답뽕'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로고스도 필요하지만 적절한 파토스가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답사라는 게 사실 그렇다. 얼마간 지적인 허영도 충족될 뿐더러 남들이 밟아보지 못했던 곳으로 간다는 우월감도, 또 그곳에 가지 않고는 누릴 수 없는 고유하거나 주관적인 심상을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답사기 또는 여행기의 미덕은 정보의 완벽한 전달에 있지 않다. 하서주랑-돈황-막고굴-실크로드의 관문(양관과 옥문관)에 이르는 여정을 실감나게 설명하면서 적절한 읽을거리 소개와 저자 특유의 만담을 섞어가며 서술한 이 두 권의 답사기는 그런 면에서 매우 훌륭한 여행기이다.

 

문화유산의 이해와 감상은 지식 습득에 머무는 것이 아닌, 그것이 지닌 맥락과 의미, 더 나아가 유적 주변의 분위기와 유물을 둘러싼 아우라마저 깨닫는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답사는 아는 것을 확인하는 지각적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 고유의 촉각적 실체를 탐구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미술의 근본은 물질에 있기 때문에 물질과 공간을 떠나서는 망상이나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유홍준의 답사기들은 그런 실체(또는 허상?)에 대한 로망을 아주 잘 부추기는 최고의 '잇템'이다.

유물과 유적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은 거들 뿐이다. 어쩌면 아주 얇고도 넓은 견문욕의 과시 또는 인문학적 파쇼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왜 우리가 그의 시각에 의존해서 답사를 해야할까, 뭘 꼭 알아야 답사가 가능한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는 과연 참인가, 라는 의심을 나는 항상 떨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떠나 편견 없는 눈으로 유물을 바라보고 벌거벗은 몸으로 유적지를 걷는 것은 틀린 건가. 답사기에 적힌 경로와 유적지를 따라가며 영혼 없이 떠도는 좀비가 될 바에야 이 책들을 과감하게 치워버려야 한다. 책에서 읽은 게 아니면 감동을 못하는 그런 멍청한 답사는 유 교수도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들은 정독보다는 속독을 권한다. 참 잘 읽히게 썼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문장을 음미할 필요는 없다. 답사지의 배경지식과 개요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이만큼 유용한 책들도 없다. 나부터도 섬서성과 감숙성, 맥적산과 막고굴의 정확한 위치, 하서주랑의 의미, '도보자(盜寶者)' 오렐스타인과 폴펠리오, 오타니, 랭던워너 말고도 저 유명한 장대천이 돈황막고굴의 벽화를 모사했었다는 사실과 상서홍, 한락연이라는 돈황 수호자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소득이 있었다. 

수많은 답사지 관계 저술들을 섭렵하여 알려주는 저자의 성실함도 새삼 인정해야겠다. 애써 찾아 읽지 않으면 그걸 어떻게 다 알겠는가. 이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 상태에서 이 중국 답사기 2은 하서주랑과 돈황, 그리고 실크로드 약탈사를 일반인 수준에서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가 된 셈이다.

영민한 감과 촉으로 독자의 지식욕과 지루함 사이의 밀당을 이만큼 잘 조절하면서 글쓸 수 있는 저자도 드물다. 인문학 전공자로서 그의 필력과 너스레에 부러움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문화유산에 관한 아주 친절하고 열정적인 안내자라는 인상이 먼저 드는 것이 당연하다.

 

세월이 많이 흘렀나, 이젠 그 옛날의 흑백사진과 고리타분한 편집은 사라지고 올 컬러도판에 좋은 제본을 갖춘 책이 되었다. 답사기 모든 편들을 비교해 보지 못했지만 이번 중국 답사기 표지는 기존과는 다른 방식(양장본)으로 꽤 두껍게 나왔다. 그렇다고 뻣뻣한 하드커버는 아니어서 책을 한 손으로 쥐고 표지를 뒤로 넘기면 둥글게 말린다. 혹 답뽕에 취해 돈황까지 가서 들고 다니며 읽어도 헐거나 찢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답사기의 주독자는 전공자가 아닐 것이다. 다만 저자의 말처럼, 돈황과 실크로드의 답사가 여전히 로망인 이들(물론 좀비가 아닌 주체적 답사자)에게 자기가 접한 유익한 정보들을 생생히 기록하여 그것을 여행의 길라잡이로 삼거나 간접경험이 되도록 했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듯싶다.

 

배경지식은 여행이나 답사를 더욱 풍요롭고 재미있게 한다. 그러나 그 지식과 간접경험에 매몰되지 않고 나만의 시선과 해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 눈이 바라보는 곳이 저자가 보는 곳과 다를 수 있고, 내 발로 걷는 땅과 내 손이 닿는 유물도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사실 남의 눈을 따라 배우는 게 아니다. 자기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지. 그래서 나는 내가 갈 곳의 여행기나 답사기는 잘 읽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돈황과, 막고굴과, 실크로드는 그저 로망일 뿐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간접경험만으로 일단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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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 정신병 환자와 그 외 재소자들의 사회적 상황에 대한 에세이 우리 시대의 고전 23
어빙 고프먼 지음, 심보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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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이의 조건에 따라 어떤 책은 내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가 나에겐 그런 책이다. 군대, 수도원, 교도소와 정신병원의 인간관계와 사회적 구조에 관한 시시콜콜한 분석과 서술을 읽는 게 도대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내용이 무가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단락에서는 아니! 이런 기가 막힌 분석이, 라며 무릎을 치기도 했고, 마치 시체를 해부하고 병자를 수술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수용소의 직원과 재소자들의 상황을 풀어헤쳐 설명하는 솜씨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여전히 수용소의 이야기가 나와는 상관없었다.

군대에서 짱박히는 병사 얘기에 먼 옛날 두돈반 트럭 적재함에서 몰래 낮잠을 자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정도였을 뿐.  

 

<수용소>에서는 고프먼의 글쓰는 스타일이 핵심이며, 그게 결국 내용이다.

말하는 방법과 태도, 다루는 자료의 범위와 유형, 그리고 근거의 생경함과 의외성, 무엇보다도 몸으로 부딪치는 조사와 연구방식 등등. 그가 붙인 각주 하나를 보면 고프먼이 도대체 어떤 연구자였는지 알 수 있다.

 

나는 하나의 실험을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두번째로 좋은 의자는 방의 다른 쪽으로 옮겨져 있었고 나는 그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그의 의자에 미리 앉아 있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독서를 하는 척했다. 늘 그렇듯 같은 시간에 방에 도착한 그는 나를 오래, 그리고 말없이 쳐다보았다. 나는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같이 반응했다. 나에게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상기시키는 데 실패한 그 환자는 방을 둘러보며 또 다른 좋은 의자를 찾았다. 의자를 발견하자 그는 그것을 원래 있던 자리, 즉 내가 앉아 있던 의자 옆에 가져다놓았다. 그리고 그 환자는 정중하고, 적개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젊은이, 괜찮다면 나를 위해 저 의자로 옮겨 앉아줄 수 있겠나?" 나는 다른 의자로 이동했고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286쪽 주 106)

내용과 거의 무관한 이 사회학자의 (연구) 형식을 읽어내는 것만이 이 어리둥절한 책에서 거둘 수 있었던 수확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말미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독서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

나는 곧바로 서론부터 읽기 시작해서 다 읽은 지금까지도 내가 뭘 본거야, 내가 뭘 본거지? 하며 헤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맥락에 그야말로 꾸역꾸역 읽었다고 해야겠다.

어리둥절했다가, 기막힌 분석과 비유에 감탄도 하고, 무슨 말인지 현란한 표현에 잠깐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기 시작해서 완독한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떠나지 않았던 한 가지 느낌은 고프먼이라는 학자의 치열함은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것,

그리고 그의 연구가 책상 위에서 책과 자료나 넘겨가면서 한가롭게 진행된 게 아니라 범죄자와 미친자, 온갖 종류의 혐오스러운 상황과 장소에 맞닥뜨리면서, 악착같이 비정하고, 치밀하게 낱낱이 분석적 언어로 치환하면서 이룬 것임을 알았다.

그래, 이건 머리로 쓴 책이 아니야, 몸으로 쓴 책이지: 적어도 이걸 느낀 것만으로도 독서의 수확은 있었다.

결국 나는 책에서 내용을 학습한 게 아니라 고프먼의 악착같고 철저한 태도를 배운 것이며, 사실 그것이 이 책에서 스타일이 더 중요했다고 단정한 이유이다.

 

 

물론 재소자들은 출소 직후 시민적 지위가 제공하는 자유와 쾌락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시민들에게는 대단한 사건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것들이다. -신선한 공기와 신산한 향, 말하고 싶을 때 말하기, 성냥을 마음껏 써 담뱃불 붙이기, 네 명이 앉은 테이블에서 조용히 간식 먹기. 주말에 고향집을 방문하고 병원에 돌아온 한 정신병 환자는 귀를 기울이는 한 무리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준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엌에 가서 커피를 내렸어. 굉장했어. 밤에는 맥주 몇 잔을 마시고 밖에 바람을 쐬러 나갔지. 정말 근사했고 진짜 맛있었어. 그 모든 자유의 순간이 잊히지 않아.˝(저자의 현장 연구 노트에서) - P95

특별한 존중의 제스처로 주어졌던 것도 얼마 정도가 지나면 당연시되어 통상적 기대치에 준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일종의 퇴행이 발생했다. 존중을 표하는 모든 새로운 방식은 일상화되어 결국 배려의 표식으로서 갖는 효과를 잃어버렸고, 따라서 추가적 베풂이 이를 대신해야 했다. - P337

조직이 열성을 요구하면 그들은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충성에는 불만으로, 출석에는 불출석으로 대응한다. 건강하라고 하면 아프다고 한다. 일을 해야 할 때는 온갖 나태를 부린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소박하고 사소한 역사들을 발견한다. 각각의 역사는 고유한 자유의 몸짓을 담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세계에는 지하 생활이 만들어진다. - P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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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작성법 - 제4판
W.부스.조셉 윌리엄스.그레고리 콜럼 지음, 양기석.신순옥 옮김 / 휴먼싸이언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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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독자를 위해 쓴다. 심지어 개인적 비망록이나 일기조차도 언젠가의 '나'라는 독자를 전제로 한다.

하물며 논문에서랴. 읽어줄 독자가 없다면 논문은 어디에 그 존재 가치가 있을까.

하여, 논문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행위라는 믿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들에게 공감한다.

결국 연구는 자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므로.

그저 학위를 따고, 내 지식을 과시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논문 쓰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교수 임용이나 실적을 위해 어디선가 본 듯한 도플갱어 같은 논문들을 양산하고, 별 시덥지도 않은 내용으로 굳이 여러 개로 절개하여 논문 숫자를 늘이는 행태들을 보았다.

난 도저히 저런 내용과 그 정도 증거들로 논문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빈약한 자료와 논증에 비해 매우 충만한 권위를 남용하여 버젓이 등재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걸 보고 있자니 도대체 등재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 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우선 '주장'이란 게 있기나 한가.

- 그 전에 적어도 기존의 학설이나 의견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나만의 해결책이 있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질문을 논문 쓰기에 앞서 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주장도 있고 어느 정도 문제의식도 있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는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합당한 증거가 많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수집한 것이 아니다" (40)

단순한 데이터(자료)가 아닌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데이터가 논문에 쓰이는 증거들이다.

그러므로 자료의 나열만으로는 논문을 쓸 수 없고, (전제-)증거-이유의 완벽한 구조가 있는 주장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독자는 논증체계의 내재적 건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당신의 주장이 명확한가, 주장에 대해 적절한 이유를 붙였는가, 근거 자료는 질적으로 우수한가 등" (198)

 

그러니 아아,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주장은 없고 자료만 어설프게 나열하고 끝나 버렸는지.

함량 미달의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있자면, 책에서 말한 연구자에게 돌아오는 최악의 반응, "나는 신경 안 쓴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책에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반응은 절대 나쁜 반응이 아니란다. 적어도 논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라면 독자가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말고, 독자가 내 글에 관심이 없을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난 신경 안 써(I don't care)"와 "그래서 뭐?(So What?)" 라는 반응은 내 주장이 귀담아 들어줘야 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니까. 

반면 내 문제의식과 주장이 무언가 냉소적이지 않은 반응(격렬한 반감을 포함해서)을 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일을 한 것이다.

 

<학술논문작성법>의 저자들은 주장을 좀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연구자가 미리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제4판에서는 기존의 내용을 거의 유지하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활용법이나 초안 기획법, 보장(=전제, warrant)에 관한 내용 등을 약간 보충하였다.

여러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어봤지만, 논증적 글쓰기에 관한 매뉴얼로서는 이 책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저 글쓰는 테크닉과 절차만 안내하지 않으며 연구자로서 지녀야 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도 좋은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를 찾기 위해 자료들을 읽으며,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읽으라 한다. 

좋은 주장을 하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질문은 자료의 읽기(독서)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석 달린 참고문헌" 목록을 만들라는 팁은 꽤 쓸모있다.

 

주석 달린 참고문헌을 편집하는 일은 체크포인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를 수행했는지, 그리고 당신이 수집한 자료를 얼마나 깊게 읽었는지를 측정하는 점검의 기회가 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자료를 요약할 수 없거나, 그들의 관련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은 보고서를 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143)

나의 논증을 간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윤리성(ethos)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는 설득의 세 가지 요소인 "로고스-파토스-에토스"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저자들 중에 조셉 윌리엄스와 그레고리 콜럼이 쓴 또 다른 글쓰기 책, <논증의 탄생>에도 에토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만큼 비중이 크지 않다.

학술논문이란 건 사실 그걸 쓸만 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미 투고 과정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굳이 에토스를 갖추라고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마지막 안내의 장에서 "연구자가 연구를 윤리적으로 보고할 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이며, 출처의 저자들을 존중하고, 예상과 어긋나는 자료들도 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증거가 허락되는 정도까지만 주장하며, 확실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표절하지 않기, 원전을 잘못 보고하지 않기,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기, 반박할 수 없는 반론을 숨기지 않기 등)보고서 작성의 모든 다른 윤리적 규정을 준수하면(392)," 학점을 얻거나 다른 물질적 보상을 받는 것 이상을 얻게 된다고는 했다.

 

의미 있는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논증이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논증을 위해서 연구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학술논문을 쓰려는 모든 이들과 기말 레포트 작성에 식은땀을 흘리는 대학원생들은 늘 곁에 두고 때마다 들춰보면 좋을 것이다.   

 

 

연구라는 활동은 금을 캐는 것과 같다: 땅을 많이 헤집어 놓지만 필요한 것 조금 빼고는 모두 버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당신이 좋은 글을 쓸 때 좋은 자료인데도 다 버려서 아깝구나 생각되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고 쓰는 자료가 더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이 쓰는 글은 정말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 P257

훌륭한 연구자는 흥미로운 연구문제를 찾아 성공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의 연구를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는 관중도 찾는 (만드는) 방법도 잘 안다. - P345

우리는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갖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관련 없는 자료를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실제로, 당신이 이용할 수 있는것보다 더 많이 읽고 기록할 때, 당신은 좋은 사고(good thinking)를 연습하는데 필요한 지식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고는 배울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좋은 사고를 연습하는 것은 당신이 깊고 넓은 지식의 바탕이 있을 때이다. 따라서 당신이 오늘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만 자료를 읽지 말고, 당신이 계속 연구를 하면서 묻게 될 모든 질문에 대해 더 잘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료를 읽으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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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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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AI 또는 인조인간을 소재로 한 오늘날의 모든 과학소설은 이 소설을 뛰어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테드 창의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에 나오는 디지언트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또 다른 변용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재미있다는 이 책을 과연, 하며 단숨에 읽어내리면서 이 인조인간의 비극적 말로가 참으로 안타깝고도 불쌍하였다. 1931년에 나온 영화에서는 말 한 마디 못하는 추악한 괴물로 묘사되었다지만, 사실 그는 어떤 인간보다도 영민하고 정신적으로 완숙하며 때로는 감상적이기도 한,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연약한 존재였을 뿐이다. 외모는 더없이 아름다우나 세속적이고 타락한 인간보다도 오히려 흉측스러운 외모라도 정신적으로 순수하고 사려 깊은 그가 적어도 나보다는 우월하다. 몰래 숨어살던 가난한 집에서 훔쳐 읽은 책(볼네의 <제국의 몰락>)에 대해 이런 뛰어난 리뷰를 남기는 괴물이라니! 

 

이 경이로운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이상한 감정이 밀어닥쳤다. 정말로 인간이란 그토록 강력하고 그토록 덕스럽고 훌륭한 동시에 그토록 사악하고 천박하단 말인가? 인간은 어떤 때는 온갖 사악한 원칙들을 이어받은 후계자에 불과해 보이다가, 또 어떤 때는 고귀하고 신성한 특질을 한 몸에 체현한 듯했다. 위대하고 덕망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건 분별력을 갖춘 존재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 같았다. 기록에 드러난 무수한 사람들처럼 천박하고 사악해지는 것은, 무엇보다 저열한 타락 같았다. 이런 상황에 빠지는 건 심지어 눈먼 두더지나 무해한 벌레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어떻게 한 인간이 친구를 살해하려 들 수 있는지, 심지어 법과 정부는 왜 존재하는 건지, 아주 오랫동안 나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악행과 유혈사태의 세세한 내용을 듣고 나니, 경이로운 마음은 사라지고 혐오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오두막집 사람들의 대화는 매번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펠릭스가 아라비아 여인에게 들려주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사이, 인간 사회의 기이한 체계가 해명되었다. 재산 분배며 막대한 부와 누추한 빈곤, 계급, 가문, 그리고 고귀한 혈통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말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동포 인간들에게 가장 높이 평가받는 자산은 부와 결합한 귀하고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도 배웠다. 이들 중 하나만 갖고 있어도 존경받고 살 수 있지만, 둘 다 없으면 아주 희귀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선택된 소수를 위해 자기 힘을 무의미하게 소모해야 하는 방랑자나 노예로 간주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무엇이었던가? 내 탄생과 창조주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돈도, 친구도, 사유재산도 전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흉악하게 일그러진 추한 외모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과 같은 본성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보다 훨씬 더 민첩했고, 더 형편없는 식사를 먹고도 견딜 수 있었다. 지독한 열기와 추위를 견디고도 몸이 덜 상했다. 키는 사람보다 훨씬 더 컸다. 주위를 둘러봐도 나 같은 존재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상의 한 점 얼룩 같은 괴물일까? 모든 사람들이 도망치고, 모든 사람들이 내치는?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큰 괴로움이었는지는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울한 생각을 쫓아버리려 애썼지만, 앎과 함께 슬픔은 커져만 갔다. 오, 차라리 내가 태어난 숲에 영원히 머물렀다면, 굶주림과 갈증과 열기 외에는 아무 감각도 알지 못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159-160)

 

여기서 나는 "젠장, 마지못해 100자평이나 깔짝거리는 내가 졌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왜 알라디너가 아닌가. 북극에 전용선이라도 놓아드리고 싶다.

그저 따뜻한 동반자를 바랐을 뿐이었던 그에게는 외모로 인한 혐오와 편견만이 돌아왔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끔찍한 살인을 자행한 것은 아니었다. 피조물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방관과 무책임에서 비로소 그의 폭력과 복수가 시작된 것이며, 이런 외면과 무시야말로 세상의 모든 약한 존재들을 절망과 외로움으로 이끄는 원인이다. 

무책임하게 팽개쳐진, 지금까지도 북극 언저리의 얼어붙은 땅 어디에선가 고독하게 떨고 있을 이 불쌍한 인조인간에게,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AI 돌보미 효돌이라도 보내주어야 되는 게 아닌가. 그는 겨우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품에 안을 수 있는 따뜻한 동반자를 원했을 뿐이니까. 공소시효도 다 지난 마당에 죗값부터 치루라는 꼰대 같은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그는 여전히 법의 적용을 받는 인간이 아니며, 아직은 인조인간이나 사이보그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한 법령이 발표되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가 책 속의 괴물이어서 다행이었을까. 세상에는 멀쩡한 모습으로도 저 괴물처럼 외면 당하고 무시 당하는 사람들은 없었던가. 나 역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살면서 내가 책임질 일들을 애써 모른척하지는 않았나. 그렇게 무사히 넘어가는 일들에 비겁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말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옆에 있음을 감사하자. 그들을 외면하지 말고 팔을 빌려주고 다리를 내어주는 따뜻한 인간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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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양장, 어나더커버 특별판)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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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지식과 착상은 이야기의 영역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그 질감과 스타일까지 좌우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의 한 구절처럼 ˝글쓰기는 테크놀로지˝라는 명제에 천착하다보니 서사에 온전히 몰입되지 않고 ‘테크놀로지‘ 맥락에 빠져 헤매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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