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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 작성법 - 제4판
W.부스.조셉 윌리엄스.그레고리 콜럼 지음, 양기석.신순옥 옮김 / 휴먼싸이언스 / 2017년 5월
평점 :
모든 글은 독자를 위해 쓴다. 심지어 개인적 비망록이나 일기조차도 언젠가의 '나'라는 독자를 전제로 한다.
하물며 논문에서랴. 읽어줄 독자가 없다면 논문은 어디에 그 존재 가치가 있을까.
하여, 논문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행위라는 믿음으로 책을 썼다는 저자들에게 공감한다.
결국 연구는 자신의 발전 뿐만 아니라 연구자가 몸 담고 있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므로.
그저 학위를 따고, 내 지식을 과시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논문 쓰기가 아니었으면 한다.
교수 임용이나 실적을 위해 어디선가 본 듯한 도플갱어 같은 논문들을 양산하고, 별 시덥지도 않은 내용으로 굳이 여러 개로 절개하여 논문 숫자를 늘이는 행태들을 보았다.
난 도저히 저런 내용과 그 정도 증거들로 논문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빈약한 자료와 논증에 비해 매우 충만한 권위를 남용하여 버젓이 등재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걸 보고 있자니 도대체 등재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 내가 하고자 하는 주장은 무엇인가, 우선 '주장'이란 게 있기나 한가.
- 그 전에 적어도 기존의 학설이나 의견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가.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나만의 해결책이 있는가.
이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질문을 논문 쓰기에 앞서 해야겠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주장도 있고 어느 정도 문제의식도 있지만, 또 그것만으로는 글이 되지 않는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합당한 증거가 많아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당신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수집한 것이 아니다" (40)
단순한 데이터(자료)가 아닌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 데이터가 논문에 쓰이는 증거들이다.
그러므로 자료의 나열만으로는 논문을 쓸 수 없고, (전제-)증거-이유의 완벽한 구조가 있는 주장을 갖추어야 제대로 된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한다.
"독자는 논증체계의 내재적 건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당신의 주장이 명확한가, 주장에 대해 적절한 이유를 붙였는가, 근거 자료는 질적으로 우수한가 등" (198)
그러니 아아, 얼마나 많은 논문들이 주장은 없고 자료만 어설프게 나열하고 끝나 버렸는지.
함량 미달의 논문이나 보고서를 읽고 있자면, 책에서 말한 연구자에게 돌아오는 최악의 반응, "나는 신경 안 쓴다"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책에서는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반응은 절대 나쁜 반응이 아니란다. 적어도 논자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라면 독자가 내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말고, 독자가 내 글에 관심이 없을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난 신경 안 써(I don't care)"와 "그래서 뭐?(So What?)" 라는 반응은 내 주장이 귀담아 들어줘야 할 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얘기니까.
반면 내 문제의식과 주장이 무언가 냉소적이지 않은 반응(격렬한 반감을 포함해서)을 일으킨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일을 한 것이다.
<학술논문작성법>의 저자들은 주장을 좀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연구자가 미리 준비하고 갖추어야 할 것들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제4판에서는 기존의 내용을 거의 유지하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활용법이나 초안 기획법, 보장(=전제, warrant)에 관한 내용 등을 약간 보충하였다.
여러 글쓰기 관련 책들을 읽어봤지만, 논증적 글쓰기에 관한 매뉴얼로서는 이 책을 따라갈 만한 것이 없는 듯하다.
그저 글쓰는 테크닉과 절차만 안내하지 않으며 연구자로서 지녀야 하는 태도와 삶의 방식에도 좋은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제를 찾기 위해 자료들을 읽으며, 자신의 주장을 위해 읽으라 한다.
좋은 주장을 하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질문은 자료의 읽기(독서)를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석 달린 참고문헌" 목록을 만들라는 팁은 꽤 쓸모있다.
주석 달린 참고문헌을 편집하는 일은 체크포인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즉 당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연구를 수행했는지, 그리고 당신이 수집한 자료를 얼마나 깊게 읽었는지를 측정하는 점검의 기회가 된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자료를 요약할 수 없거나, 그들의 관련성을 설명할 수 없다면, 아직은 보고서를 쓸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143)
나의 논증을 간접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충분한 윤리성(ethos)을 갖추어야 한다는 얘기는 설득의 세 가지 요소인 "로고스-파토스-에토스"의 마지막에 해당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저자들 중에 조셉 윌리엄스와 그레고리 콜럼이 쓴 또 다른 글쓰기 책, <논증의 탄생>에도 에토스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만큼 비중이 크지 않다.
학술논문이란 건 사실 그걸 쓸만 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이미 투고 과정에서 걸러지기 때문에 굳이 에토스를 갖추라고 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마지막 안내의 장에서 "연구자가 연구를 윤리적으로 보고할 때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이며, 출처의 저자들을 존중하고, 예상과 어긋나는 자료들도 버리지 않고 인정하며, 증거가 허락되는 정도까지만 주장하며, 확실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표절하지 않기, 원전을 잘못 보고하지 않기, 데이터를 조작하지 않기, 반박할 수 없는 반론을 숨기지 않기 등)보고서 작성의 모든 다른 윤리적 규정을 준수하면(392)," 학점을 얻거나 다른 물질적 보상을 받는 것 이상을 얻게 된다고는 했다.
의미 있는 연구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논증이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논증을 위해서 연구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학술논문을 쓰려는 모든 이들과 기말 레포트 작성에 식은땀을 흘리는 대학원생들은 늘 곁에 두고 때마다 들춰보면 좋을 것이다.
연구라는 활동은 금을 캐는 것과 같다: 땅을 많이 헤집어 놓지만 필요한 것 조금 빼고는 모두 버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당신이 좋은 글을 쓸 때 좋은 자료인데도 다 버려서 아깝구나 생각되지만, 그래도 버리지 않고 쓰는 자료가 더 좋은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당신이 쓰는 글은 정말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 P257
훌륭한 연구자는 흥미로운 연구문제를 찾아 성공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의 연구를 충분히 인정해줄 수 있는 관중도 찾는 (만드는) 방법도 잘 안다. - P345
우리는 연구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갖는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관련 없는 자료를 읽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말라. 실제로, 당신이 이용할 수 있는것보다 더 많이 읽고 기록할 때, 당신은 좋은 사고(good thinking)를 연습하는데 필요한 지식의 기초를 쌓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고는 배울수 있는 기술이다. 그러나 좋은 사고를 연습하는 것은 당신이 깊고 넓은 지식의 바탕이 있을 때이다. 따라서 당신이 오늘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만 자료를 읽지 말고, 당신이 계속 연구를 하면서 묻게 될 모든 질문에 대해 더 잘 생각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 자료를 읽으라.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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