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미니멀리즘과 프로세스 아트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1960년대 성행하던 미니멀리즘의 뒤를 이어 나타난 경향을 지칭한 명칭으로 미국의 평론가 로버트 핑커스 위튼Robert Pincus Witten(1935~)이 1971년 11월호 <아트 포럼>에 기고한 글 '에바 헤세: 숭고함으로의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이 용어는 미니멀리즘의 가치에 대한 반동을 함축하지만 '반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보다는 중립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용어가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다 보니 1980년대 후반까지 대지미술, 퍼포먼스 아트, 프로세스 아트, 비디오 아트 등과 같은 현상들 모두 다뤘다.
이러한 현상들이 포스트미니멀리즘이란 말로 한 데 묶어지게 된 점은 미술계를 장악해 온 상업주의, 미니멀리즘의 두드러진 물질적 특성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었다.
예술이 상업화된 데 대한 반성으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반미니멀리스트들은 콜렉터들의 수집품이 되는 오브제를 가능한한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핑커스 위튼은 다양한 미술 경향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 맥시멀리즘Maximalism이란 새로운 용어를 창안해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 용어는 막연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유사어로 사용되었다.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아닌 창조와 관련된 과정 그리고 뒤따라 일어나는 변화와 쇠퇴의 과정을 강조한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같은 일시성에 대한 강조는 미니멀 아트의 비개성성, 형식주의, 상업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포스트미니멀리즘적인 측면을 보인다.
프로세스 아트 예술가들은 재료를 선택할 때 소멸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시간의 경과를 주용 방법으로 삼는다.
그들의 행위는 얼음, 풀, 흙, 펠트, 눈, 톱밥, 기름, 물감, 심지어 콘플레이크와 같은 물질을 작품의 재료로 선택하며 이런 재료를 뿌리거나, 쌓고, 바르는 등 임의적이고 구조가 없는 방법으로 한 장소에 놓고 작품을 완성시킨다.
나머지는 중력, 온도, 공기 등과 같은 자연의 힘과 시간에 맡긴다.
프로세스 아트의 예로 뉴욕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벽 아랫쪽에 녹은 납을 뿌리는 리처드 세라의 <뿌리기>(1968), 수증기 구름으로 만들어진 로버트 모리스의 <무제>(1967~73) 등이 있다.
어떤 프로세스 아트 작품은 좀더 영속적인 수명을 가지지만 고정된 형태를 취하지 않는 부드러운 물질로 만들어지는 조각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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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라 강의를 준비하면서 내용 일부를 여기에 싣습니다.) 

 

리처드 세라의 포스트모더니즘 작품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1939- )는 1966-67년 <벨트 Belts>를 제작했는데 벨트처럼 생긴 고무가 뒤엉킨 다발 11개를벽에 건 작품이었다.
11다발 중 한 다발에 네온 현광등을 달았고 이는 사람들을 경악시킬 만했다.
이 작품은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을 알리는 작품이며 '프로세스 아트Process art'의 시작을 고지하는 작품이기도 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모더니즘은 예술이 소수 지성인들을 위한 지적 진지함에 머물자 절충적인 방법으로 좀더 대중적으로 나아가기 위해 1960년대부터 시작된 광범위한 문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영국계 미국인 건축사가 찰스 젱크스Charles Jencks(1939~)는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What is Post-Modernism?>(1986)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본적으로 어떤 전통과 그 바로 이전 전통간의 절충주의적인 혼합이다. 즉 모더니즘의 계승인 동시에 초월이다."
이 용어는 1970년대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다가 1980년대에 들어 학문적으로 그리고 신문 잡지에서 동시대 미술 담론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빈번히 사용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회화'나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경우에는 양식적 용어로 사용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고 할 때는 시기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는 등 이 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문제와 사용의 유무에 관해 많은 의견 대립이 있다.
모더니즘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방식으로 모더니즘으로부터 진전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짓기 어려우며 일부 이론가들은 복수로 포스트모더니즘스Postmodernisms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 때문에 정의를 내리기 어려우나 크리스 발딕은 <간추린 옥스퍼드 문학 용어 사전>(1990)에 다음과 같이 적절한 말로 정의했다.

"1960년대 이후부터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문화적 상황을 가리키며, 특히 TV, 광고, 상업디자인, 팝비디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는 연결되지 않는 이미지와 양식들의 과잉을 특징으로 하고 이런 의미에서 ... 포스트모더니티는 파편적인 감각, 절충주의적 향수, 마음대로 소비할 수 있는 시뮬라크르simulacra(모조품), 뒤죽박죽인 피상성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거기에는 전통적으로 가치를 지녔던 깊이, 일관성, 의미, 독창성, 진본성과 같은 특성들이 공허한 신호들의 무작위적인 혼돈 가운데 사라지거나 용해된다. ...
모더니스트 미술가나 작가가 신화, 상징, 혹은 복잡한 형식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얻고자 애썼다면 포스트모더니스트는 경박한 냉담성을 지닌 현대적 실존의 부조리하고 의미 없는 혼돈을 환영하며 의식적으로 '깊이 없는' 작업을 선호한다.
이 용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포스트모던'을 '고급'과 '저급' 문화들 간의 위계질서로부터의 해방으로 여기며 환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멸조로 포스트모던의 지지자들을 '포스티posties'라고 부르는 회의론자들은 이 용어를 상업 자본주의의 화려함과 도덕적 결핍에 대한 학문의 무책임한 도취증상으로 여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널리 퍼뜨린 사람은 찰스 젱크스로 <포스트 모던 건축의 언어 The Languge of Post-Modernism>(1975)와 유사한 여러 권의 저서에서 금욕적, 합리적,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국제 현대 양식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경솔한 절충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했으며 이는 하나의 양식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명확한 의미이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원천으로 되돌아갔으며 종종 '익살스러운' 방법으로 색채와 장식을 도입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미국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는 "순수함보다 잡종적인 요소"를 좋아하고 "뚜렷한 단일체"보다 "복잡한 활력"을 선호한다고 했다.
건축 이외의 분야에서 어떤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더욱 어렵지만 공통점이 없는 양식들을 비슷하게 혼합하거나 역설적 방법으로 의식적인 문화적 참조들을 나타내는 회화와 조각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팝아트는 양식과 평면을 강조하고 고급미술과 대중문화간의 구분을 흐리게 했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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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보면 뭐가 뭔지 모르겠고 이해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미술품이란 말이 생기기 아주 오래 전에는 장인들이 인공물을 만들었지요.
인공물artifact이라는 말에 아트art란 단어가 포함되었듯이 장인들이 만든 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미술품들이었습니다.

르네상스에 와서야 미술이란 개념이 생겼어요.
장인의 인공물과 전문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새로운 창작물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요즘에는 장인의 인공물과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구분이 다시 불분명해졌지만 말입니다.
이는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색으로 다른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미술 혹은 미술품이란 개념이 생기자 곧 이즘ism이란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난 이즘을 유행이란 말로 바꿔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행을 일으킨 사람과 유행을 따랐던 동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의 유행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이 일반이었습니다.
한 유행이 지나고나면 다른 유행이 생겨나고 이런 반복이 계속되니까 학자들은 유행을 구분하기 위해 이즘이란 말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장인들은 전적으로 기술에 의존해서 인공물을 만들었으니까 누가 더 기술을 발휘해서 만들었는지 한눈으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술품은 기술만으로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이 표현되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생각이 명료하고 그 표현이 단순하며 명백했을 때는 많은 사람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이 복잡한 생각을 불충분하게 표현한다든가, 아직은 성숙해지지 않은 생각을 성급하게 표현한다든가, 게중에는 별것도 아닌 생각을 마치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양 과장하는 방법으로 표현할 때는 작품이 복잡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작품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 옷이나 구두처럼 유행의 속도가 빨라진 것처럼 미술품에도 유행의 기간이 짧아지면서 이즘이 양적으로 증가했습니다.
20세기를 '이즘의 세기'라고도 하는데 아주 많은 유행이 생겨났지요.
이즘은 곧 양식style을 말합니다.
이즘 혹은 양식으로서가 아니면 역사를 정리할 수 없어 이즘이란 말이 사전에 정의로 적혀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작가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진 것도 유행 혹은 이즘이 양산된 원인이 됩니다.
교육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작품이 난해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속임수를 쓰는 작가들 때문에 예술이 혼탁해졌습니다.
속임수인지를 아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왜 작품을 제작한 것입니까?" 하고 물으면 알 수 있습니다.
장황한 말로 얼버무린다든가, 납득할 수 없는 말로 우긴다든가, 시각예술은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속임수를 쓰는 사람입니다.

물론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게 된 것이 작가의 속임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작가나 우리나 모든 것을 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는 불확정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혼돈과 변화무쌍한 사고 그리고 지성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느낌으로는 알 수 있는 시대에 살다보니 이런 시대정신이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나 불가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평론가(그분의 이름은 다른 기회에 언급하겠습니다)도 요즘 작품들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럴 경우 나 자신에 대한 무지보다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불가지하게 표현했기 때문인 탓으로 돌립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무지해서 그랬다는 반성도 할 때가 있습니다.

Jee에게


앞으로 어떤 이즘이 나오겠느냐고 물었는데 나도 궁금합니다.
이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유행에 대한 또 다른 적절한 말이 없어 다시금 유행할 시대정신이 무엇이며 어떤 말로 설명해야 할지는 학자들의 숙제가 될 것입니다.
우선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이 통용되고 있는데, 이는 이전 유행에 대한 또 다른 유행을 한정해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지하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르네상스로부터 1960년대 팝아트 이전까지 약 600년을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보고 그 패러다임이 더이상 우리에게 규범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종료된 것을 선언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유행은 아직 말하기 이릅니다.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선각자에 의해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되어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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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리처드 세라와의 인터뷰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 책의 번역서도 원서도 서점에 없으므로 새로운 자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브란쿠시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질문): 조각가가 되려고 할 때 브란쿠시Brancusi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까?

(답): 브란쿠시가 내게 준 영향은 <끝없는 기둥 Endless Column>, <수탉 Cocks>, <여상주 Caryatids>(건축에서 사용하는 말로 성별을 지닌 뜻으로 이에 반대디는 말은 남상주이다) 등에 나타난 면, 부피, 그리고 용적으로 이것들은 가장자리에서 윤곽을 묘사한 완전한 것들이지요.
그의 드로잉은 훌륭했으며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모방했습니다.
예일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1964~5년 파리로 유학 갔습니다.
모던 뮤지엄Musee d'Art Moderne에 있는 브란쿠시 스투디오에서 4개월 동안 매일 그의 작품을 드로잉했습니다.
그곳은 브란쿠시의 원래 스투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작업실과 삶의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브란쿠시 스투디오에서 전체 작품에 대한 개인적 관계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의 창작의 발생뿐 아니라 작업이 어떻게 진전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난 1969년에 <카드의 집 House of Cards>을 제작했는데 브란쿠시의 드로잉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수직선을 수직선이 아닌 중앙 축으로 규정한 것이었습니다.
브란쿠시가 1918년에 제작한 <건축적 프로젝트 Architectural Project>는 기본적으로 내게 중요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세 개의 부분을 각기 위에 얹어 위로 세운 것으로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문제와 관련 있는 작품입니다.
이것은 균형으로 쌓아올리고 중앙의 축으로 연결시킨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내게는 궁금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그가 조립한 작품보다도 내게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튼 내 작품의 균형과 억류된 운동 개념은 브란쿠시의 작품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습니다.
1969~71년 나는 카이저Kaiser에서 커다란 스케일의 쌓아올린 작품을 제작했는데 머리 부분의 무게로 수직이 되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 중력의 지레장치 원리가 요소들을 아래로 향하도록 평형시켰는데 브란쿠시가 1918년에 제작한 작품과 유사합니다.
그 후 제작한 작품들은 카이저에서 익힌 원리에 의존한 것들로 좀더 복잡한 평형을 시도한 것들이었습니다.

(질문): 당신이 1969년에 제작한 <2-2-1>의 경우 추상의 질이 나타나도록 자른 것, 선, 재료의 물리적 현존, 그리고 불규칙을 위한 잠재 세력을 느끼게 하는 것들 사이의 긴장감과 브란쿠시의 작품에 나타난 추상 문장 구조법, 가장자리 선의 리듬, 그리고 용적의 불규칙 사이의 긴장감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답): 선을 긋는 것은 아이디어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선을 그은 것은 구성물에 대한 기본입니다.
선이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의 정의가 되게 했어요.
선이 조직을 정의하고 다시 정의했습니다.
자르는 것은 선을 긋는 것이며, 분류하는 것이고, 구별시키는 것입니다.
<2-2-1>에서 선과 같은 기둥은 대칭적 머리 부분 평형을 붙드는 역할을 하고 중심으로 나누는 역할을 했습니다.

(질문): 브란쿠시로부터 받은 영향 중에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답): 1970년 일본에서 작업할 때 나는 원형 고리 모양의 것을 땅바닥 속 또는 위에 놓는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그해 브란쿠시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의 <끝없는 기둥>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브란쿠시의 이 작품은 뉴욕에서 소개되었다.) 그것은 바닥으로부터 천정에 닿는 최초의 조각이었습니다.

(질문): 긴 것을 잘라서 방안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답): 몰랐습니다. 브란쿠시의 바닥으로부터 천정까지의 분명한 공간은 도날드 저드Donald Judd(1928~94)로 하여금 바닥으로부터 천정에 닿는 조각을 제작하도록 했으며, 칼 안드레이Carl Andre(1935~)로 하여금 벽으로부터 벽까지의 작품을 제작하게 했습니다.
난 브란쿠시의 무한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미국 예술가들의 감각을 바꿔놓았어요.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1936~)의 검정색 그림과 저드의 연속적 관계는 <끝없는 기둥>에 빚이 있습니다.
<끝없는 기둥>의 문제는 그때만 해도 내게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열린 작품 <키스의 문 Gate of the Kiss>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질문): <끝없는 기둥>의 (건축에서 말하는 각 부분의) 산출 기준 증설module extension에 의한 무한의 아이디어에 관해 언급했는데 물론 안드레이가 브란쿠시의 <끝없는 기둥>을 바닥에 깐 건 문제로 남아 있지요.

(답): 수직으로 세운 조각과 수평으로 존재하는 조각이 지닌 아이디어를 비교하면 그것들은 기본적으로 구성에 대한 상이한 개념이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관한 상이한 개념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관망하더라도 눈의 위치 그 이상으로 위로 뻗은 조절된 작품은 원근법에 따라서 줄인 것이 되지만 수평으로 조절된 작품은 무한히 사라지는 포인트가 되고 맙니다.
이것들의 상이한 점은 몬테냐Montegna와 우첼로Uccello의 상이한 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수직성 대 수평성의 문화적 상징적 도상학은 십자형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데 수직은 초월을 표현하지만 수평은 물질성을 대신합니다.

(질문): 당신은 브란쿠시의 조각과 그의 받침대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습니까?

(답): 브란쿠시의 작품이 받침대 위에 기교적으로 올려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받침대를 포함한 전체를 조각이라고 생각했지 받침대 위에 배열시킨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의 조각과 받침대 모두는 의도를 갖고 깍아 만든 것들로 받침대만 따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질문): 브란쿠시가 표면을 닦고 정련한 것에 대해 당신의 관심은 어떻습니까?

(답): 표면이나 장식의 수준에 관한 물질성에 도달한 예술가에게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원리나 아이디어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것은 단지 미화작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를 우아하고 세련되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데 내게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그의 작품들은 갈고 닦은 것들이 아닙니다.
조각의 표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퇴폐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질문): 당신은 수직 고도에 관해 말했습니다. 당신은 수직 질에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까?

(답): 현재 나의 관심은 대부분 수직에 있습니다.
땅에 낮게 세운 작품이라도 고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작업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높이에 대한 관망적 상이함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는데 관람자가 왼쪽이나 오른쪽에 볼 때, 또는 조각이 있는 곳으로 걸어오거나 조각을 통해 걸어갈 때 그것들이 같게 보이는지 아니면 다르게 보이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근래 내가 작업하는 것들 대부분은 수직 고도에 관한 것이며 면이 수평적일 때라도 높은 데서 바라볼 때 수직 고도가 확인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형태가 스스로 끝나고 스스로 결론을 짓는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꼭대기 가장자리를 주어진 지형 안에서 고도의 선처럼 선을 긋거나 공간을 붙들고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의 열린 작품들은 내면적인 관계에 관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공간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들로 건립된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를 공간 안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브란쿠시가 말년에 티르구 지우Tirgu Jiu에서 작업한 테이블, 문, 기둥 같은 것들과 관련이 있으며 작품과 풍경과의 관계입니다.
그것들은 풍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안에 위치하는 것들입니다.
1973년 나는 페루에 있었는데 인카Inca 문명의 유적들을 바라보면서 인카인들이 돌을 아주 정밀하고 정확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열두 면이 있는 돌을 코너에 놓아 직각의 기능이 되게 한 것을 봤습니다.
그들은 지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어떤 의도를 갖고 돌을 깍은 것이 아니라 지형에 맞도록 깍았던 것입니다.

(질문): 당신이 지금 말한 것과 브란쿠시의 작품에 나타난 질과의 관련성에 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답): 브란쿠시가 재료를 깍을 때 작품 내용은 장식적인 것보다는 재료 자체에 있습니다.
재료의 선택을 미학적 가능성과 제한에 두었습니다.
스틸을 갖고 작업할 때 직접 조립하거나, 구성하거나, 또는 간접적 암시를 기술적 유물론주의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돌을 사용할 때는 이런 것들과는 무관해집니다.
돌은 자체의 삶을 갖고 있다는 점과 그것이 수준 낮은 엔트로피entropy(균질성)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돌은 시간의 반대가 되는 질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물질과는 달리 돌은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성이 있는 것입니다.
돌은 세상의 또 다른 질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질문): 브란쿠시의 <공간의 새 Birds in Space>는 그가 돌을 영속성 있는 질로 만들었다는 느낌입니다.

(답): 그는 무게를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성취했습니다.
나의 초기 많은 작품들은 육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었습니다만 나는 어떤 것들의 균형이 무게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힘이나 무게가 지주, 지레, 또는 평형력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이 동등하게 균형을 갖출 때는 무게에 대한 느낌이 사라지기 때문에 긴장감이나 중력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두 개의 정지된 상태에 있는 불연속 요소들이 공중에 떠 있는 질의 효과로 나타납니다.
이런 점이 브란쿠시의 최고 미학이며 <치메라 Chimera>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에 나는 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작업을 하는 가운데 성취한 것이지요.
그것은 예술가와 재료와의 관계 또는 예술가 자신의 몸과 지면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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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들은 예술가들을 위해 뮤지엄을 디자인하지 않았습니다.


(질문): 지난 10년 동안 미국 뮤지엄 디자인을 주로 대가들이 했는데, 건축가들 필립 존슨Philip Johnson, 루이스 칸Louis Kahn, 페이I.M.Pei, 마르셀 브루어Marcel Breuer, 에드와드 라라비 반스Edward Larrabee Barnes, 케빈 로세Kevin Roche,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등이 했습니다.
예술가로서 당신은 이 건물들의 건축적 디자인의 일반적 모습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대부분 건축가들은 뮤지엄의 기능이라는 특별한 프로그램에 따라서 아주 제한된 방법 안에서 디자인했습니다.
일부 건축가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예술가들을 배려하는 뮤지엄을 디자인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예술을 이해한 사람들로 존슨과 칸입니다.
다른 건축가들은 자기 자신들을 위해 디자인했으며, 예술가에게 은혜를 베풀어 짐짓 자랑하는 듯 했지만 대중적 인기와 사회 정치적 우산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난 늘 이기심이 많은 건축가들을 발견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프랭크 로이드 롸잇Frank Lloyd Wright과 같은 건축가를 비평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는 예술가에게 친구인 체 하여 싫은 소리를 숨김없이 하기를 좋아하는 아주 고약한 태도를 가졌더라도 그렇게 하는 자신의 창조성의 필요에 만족해 했기 때문입니다.

(질문): 뮤지엄 건물 자체가 미술품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답): 건축이 미술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
나는 미술품은 비기능적이고 무용한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건축은 필요에 의한 것이며 기능적이고 유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건축이 미술품이라는 것은 내 논리에는 모순입니다.
뮤지엄 디자인에 관한 문제는 단순한데 어떤 건축가는 미술품의 필요성에 감응적이고 다른 건축가는 그렇지 못한 것이지요.
모든 건축가는 예술을 위한 관람자들보다는 자신들의 건축을 위한 관람자들에 촛점을 맞춥니다.
뮤지엄 디자인은 실용주의적 필요와 뮤지엄의 우선권을 반영하며 미술품에는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마(MoMA, Museum of Modern Art)가 근래 확장하면서 공간을 재건축하고 있습니다.
건축 계획을 보니 아주 커다란 확 트인 면적을 식당으로 개조하려고 하더군요.
나머지 면적들은 기둥이나 벽으로 쪼개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미래에는 모마에서 커다란 스케일의 조각을 전시할 때 기둥이나 벽의 방해를 받게 될 것 같습니다.
불행하게도 모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뮤지엄이 이런 식으로 변형되고 있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국립화랑의 동쪽 빌딩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이 비평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아주 좋은 면적을 대중에게 할애하고 남은 면적을 예술에 할당했기 때문입니다.
뮤지엄측에서 햄버거와 핫독을 팔기를 바라기 때문이지 건축가가 독자적으로 이렇게 면적을 할당하는 건 아닙니다.

(질문): 뮤지엄 관계자와 건축가들에게 예술가들이 필요로 하는 뮤지엄 프로그램과 디자인에 관해 어떤 충고를 하시겠습니까?

(답): 뮤지엄을 디자인 하는 건축가들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예술가의 작품과 미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며 개념과 형상이 곧게 뻗은 커다란 상자 구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건축가들이 19세기의 관점을 갖고 뮤지엄을 디자인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건축가들이 최소한 면적을 나눌 때라도 예술가들의 필요에 맞게 해야 할 줄 아는데 공간들이 조각나기 때문입니다.

(질문): 예술가와 관람자 모두 뮤지엄에 갈 때 기능적 구조를 바라는 것이지 뮤지엄 자체의 예술적인 점을 보려는 것은 아니지요.
사람들은 중립적으로 디자인 된 건물에서 개인적으로 작품을 감상하기를 원합니다.

(답): 당신의 말이 내가 말하려는 정의이군요.
나는 뮤지엄의 공간이 중립적이며, 열려 있고, 특별한 경우 예술가가 공간을 새로 정의하며 구조를 변경할 수 있도록 편의적이기를 바랍니다.
뮤지엄은 모든 면에서 최적합하게 편의적이어야 하는데 벽에 대한 조명부터 바닥까지 그렇습니다.
건축가가 공간을 제한해버리면 예술가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작업을 해야 하고 이런 공간의 제한은 현재 작업하고 있는 대부분 예술가들에게도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당신이 좋아하는 뮤지엄은 어느 것입니까?

(답): 내가 좋아하는 곳은 프라도 뮤지엄Prado Museum입니다.

(질문): 프라도 뮤지엄을 좋아하는 이유가 건축적 공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곳에 있는 미술품에 끌려서입니까?

(답): 작품을 감상하기에는 프라도의 조명은 엉망이고 동굴 같은 분위기처럼 나쁩니다.
내가 벨라스퀘즈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회화에 대한 또 다른 개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프라도에 가는 이유는 그 방에 가서 그의 그림을 보는 것인데 공간이 넓어 뒤로 물러나서도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릭스뮤지엄Rijksmuseum에 가도 마찬가지로 공간의 넓음 때문에 렘브란트의 그림을 뒤로 물러서서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전에는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뮤지엄은 각 예술가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깊이 있게 바라볼 수가 있어 작품의 문제와 완성하게 된 발전과정을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곳들로 프릭Frick, 필립Phillips, 그리고 반스 재단Barnes Foundation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립 뮤지엄들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작품과 1:1의 관계가 되게 해주며, 한 사람씩 들어가는 회전식 십자문을 달지 않고, 엽서와 팝콘을 팔지 않으며, 남아도는 면적이 없고, 다른 뮤지엄처럼 공항 대합실 같은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에드와드 반스Edward Barnes의 워커 아트 센터Walker Art Center(Minneapolis에 있는)는 훌륭한 뮤지엄으로 공간이 크고, 커다란 난간이 있으며, 벽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질문): 어떤 뮤지엄이 당신의 작품을 전시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떠나서 어느 특정한 지역 사람들이 당신의 작품에 미학적 관심을 나타냅니까?

(답): 작품의 종류와 공간의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도시에 건립한 작품은 많은 사람의 만족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것을 공원이나 사막에 건립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작품은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내게 이상적인 것은 대중적 장소에 개인적 공간을 마련해 작품을 건립하는 것으로 이럴 경우 비용이 많이 들뿐 아니라 한 예술가에게 허락되기가 매우 드문 일이지요.

(질문): 뮤지엄에 전시될 때 당신의 조각이 따로 전시되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 다른 예술가의 작품 가까이 전시될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당신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집니까?

(답): 그것은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여건이 주어진다면 내 작품이 따로 전시되기를 바라지만 다른 예술가의 작품 옆에 전시되는 것에 별 문제는 없습니다.

(질문): 당신의 작품이 자연광에서 보여지기를 원하십니까? 조명에 의해서 보여지기를 원하십니까?

(답): 모든 내 조각과 드로잉이 자연광에서 보여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야외에서 작업하거나 실내에서 작업하거나 늘 자연광에서 하고 자연광에 매우 만족합니다.
내 작품이 실내에서 소개되기 때문에 조명을 필요로 한다면 직접광선과 그늘을 피합니다.
나는 조명을 벽이나 바닥을 향하게 해서 반사되는 빛을 사용합니다.
몇몇 예술가들의 작품을 예외로 많은 조각품이 조명을 직접 받는데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모든 미술품은 자연광 아래서 보여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당신은 작품을 소개하는 배경의 벽 색과 질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어떤 벽이라도 중성이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흰색 벽을 사용하는데 난 꼭 흰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 흰색 벽은 거의 압제적이며, 순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스테델릭 뮤지엄은 회색 아마포로 벽을 덮었는데 대단히 훌륭한 중성 상태가 되었습니다.

(질문): 당신 조각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장소에 있는 걸 봅니다.
공항, 은행 로비, 또는 큰 회사 앞에 설치할 생각은 없습니까?

(답): 그런 곳에 설치하는 걸 피하고 있습니다.
은행 앞에 설치할 생각이 없고 공항에 설치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난 회사 앞에 설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도덕성을 가진 장소에는 작품을 설치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도덕성의 범주 안에서 작품이 이해되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질문): 미국 뮤지엄의 구조가 당신이 방금 말한 회사 도덕성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회사 심리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엄은 미술품을 영구 소장하려고 합니다.
영구성은 가치와 관련이 있고, 가치의 관념이 이사들로 하여금 돈의 가치에 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면 대부분의 뮤지엄은 자본주의자들의 안전금고와 같으며, 기본적으로 은행이나 회사와도 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구조 안에서 몇몇 뮤지엄은 창조적인 작품을 겨우 소개하는 정도이고 좀더 역사가 있는 뮤지엄들은 미술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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