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표현주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는 신야수주의 혹은 격렬하고 거친 회화에 붙인 명칭으로 프랑스에서는 자유구상Figuration Libre,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로 불렸다. 이탈리아어로 ‘아방가르드를 넘어선’이란 뜻의 트란스아반구아르디아transavanguardia를 번역한 말이다. 신표현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되며 더 넓은 의미로 진보적 경향을 보여주는 미술을 말한다.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열린 ‘20세기의 미국 미술’ 전시회(1993)의 카탈로그에 수록된 글에서 이 용어를 만들어낸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는 신표현주의의 줄리언 슈나벌 등을 “뜨거운 트랜스아방가르드” 예술가로 네오-지오Neo-Geometric Conceptualism의 제프 쿤스 등을 “차가운 트랜스아방가르드” 예술가로 분류했다. 네오-지오는 신기하적 개념주의를 줄인 말로 1980년대 중반 뉴욕에서 다양한 양식과 매체를 사용하여 신표현주의의 주정주의에 반발한 미국 예술가 그룹의 작품을 일컬은 명칭이다.
신표현주의는 1970년대 말에 나타난 회화 운동으로 재료를 처리하는 거친 방식이나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하며, 작품의 크기가 크고 짧은 시간에 제작되고, 때로는 키퍼의 경우 지푸라기를 부착하고, 슈나벌의 경우 깨진 도자기를 캔버스에 직접 부착했다. 보통 구상적이며 폭력과 죽음을 모티프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지는 때때로 진동하는 표면 효과에 흡수된다. 신표현주의는 1980년대 초 많은 대규모 전시회를 통해 확고한 위치를 점했는데 1981년 런던의 왕립 아카데미에서 열린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정신’ 전시회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운동은 1970년대의 ‘무엇이든 사용 가능하다 anything goes’는 태도로 좀더 전통적인 형태로의 회귀를 의미했다. 이런 경향은 화상이나 콜렉터들에게는 환영을 받았지만 평론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슈나벌을 선두로 몇몇 신표현주의 예술가들은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많은 평론가들은 그들의 작품이 관습적인 기법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러 형편없게 만들었다고 혹평했다. 실제로 ‘나쁜 회화 Bad Painting’란 제목으로 1978년 뉴욕의 신현대 뮤지엄에서 전시회가 열렸으며, ‘나쁜 회화’란 용어는 이런 맥락의 신표현주의 작품 일부에 적용되었다. 펑크 아트와 ‘어리석은 회화 Stupid Painting’란 용어들은 ‘나쁜 회화’를 대신할 만한 했다.
뉴욕의 브루클린 태생으로 휴스턴 대학을 1972년에 졸업한 줄리언 슈나벌Julian Schnabel(1951~)은 1976년 휴스턴 현대 뮤지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79년 뉴욕의 메리 분 화랑에서 연 두 번의 전시회를 통해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1980년대에는 화단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로 급부상했다. 1982년에 세계 주요 현대 뮤지엄 중 하나인 암스테르담 시립 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열었고, 언론은 슈나벌을 화가라기보다는 대중적 스타로 다루는 일이 종종 있었다. 슈나벌의 작품은 규모가 크고 신표현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는 카페트, 벨벳과 같은 특이한 재료 위에 그리기도 했으며 깨진 도자기로 표면을 덮거나 다른 삼차원적 물체와 통합시키기도 했다. 때때로 캔버스 틀 자체가 중앙으로 돌출되어 삼차원적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슈나벌은 자신의 작품에 관해 말했다. “나의 작품은 나 자신에 대한 것보다는 세상에 관한 나의 생각을 담고 있다. 나는 어떤 감정적 상태, 사람들이 실제로 몰입할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반겼지만 1970년부터 <타임> 지의 평론가로 활약하는 로버트 휴스Robert Hughes(1938~)는 “슈나벌의 작품을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실베스터 스탤론이 기름기 흐르는 가슴 근육의 움직임을 연기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혹평했다. 슈나벌의 엄청난 작품 가격은 내재적 가치보다는 언론의 과대 광고와 작품의 투자가치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990년의 한 경매에서 슈나벌의 작품에 대해 단 한건의 입찰도 시도되지 않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박수를 쳤다. 1983년에 조각을 시작했고, 낙서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에 관한 영화 <바스키아>(1996)를 감독했다. 현재 영화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도 미국 신표현주의자들로 로버트 쿠시너Robert Kushner(1949~), 데이비드 샐리David Salle(1952~) 등이 있다. 쿠시너는 신표현주의 외에도 신장식주의New Decorativeness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신장식주의는 추상, 구상 혹은 이 둘을 혼합한 복잡한 패턴을 밝게 채색한 회화를 지향한 운동으로 1970년대 중반 뉴욕에서 발생했다. 이런 패턴과 장식 운동은 미니멀 아트의 엄격한 비인격성에 대한 반동이었으며, 장식 미술은 미술에 인간적인 성격을 부여하므로 순수 미술보다는 열등한 것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옹호했다. 이 운동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몇몇 남성이 가세했으며 쿠시너와 조각가 네드 스미스Ned Smith(1948~)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신표현주의는 미국 외에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번성했고 독일의 신표현주의자들은 종종 ‘새롭고 거친 사람들 Neue Wilden’로 불렸다. 신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1938~)는 화가, 판화가, 소묘가, 조각가로 동베를린에서 공부했지만, 1956년 서베를린으로 이주하여 그곳의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이때부터 본래의 성인 케른Kern 대신에 태어난 곳의 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일부러 거칠고 조야한 그림을 그려 논쟁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런 회화를 통해 신표현주의의 선구자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작품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만취>(1962~63)로 이를 <엉망이 되어 가는 밤>으로도 불린다. 이 작품은 커다란 성기를 가진 남성을 보여주는데, 에드워드 루시-스미스는 이 작품이 자화상으로 추측했다. 1963년 이 작품이 처음 베를린에서 소개되었을 때 경찰이 압수했다. 1969년부터 이미지의 위아래를 거꾸로 그리기 시작하여 더욱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너선 파인버그는 저서 <1940년 이후의 미술>(1995)에서 바젤리츠의 “위아래를 뒤바꾼 거꾸로 된 회화”를 “주제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켜 표현적인 표면으로 관심의 초점을 돌리려는 장치”라고 했다. 대니얼 휠러는 저서 <20세기 중반 이후의 미술>(1991)에서 바젤리츠의 색채에 대해 “보기 드물게 충만하고 원숙한 색채”라고 격찬했으며, 그의 작품이 “풍부하나 문제가 있는 과거를 창조적으로 끌어안음으로써 다시 하나로 통합된 문화를 제시하는 르네상스적 기품과 현존”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와는 반대로 로버트 휴스는 바젤리츠를 “평범한데도 불구하고 너무 지나치게 높이 평가된 예술가의 전형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법학을 공부하고 간헐적으로 회화 교육을 받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1945~)는 화가이며 조각가 호르스트 안테스Horst Antes(1936~),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1921~86)와 함께 공부하기도 했다. 키퍼는 초기에 개념 미술 작업을 하면서 나치식 경례를 하는 자화상 사진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회화로 전향하면서 신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작품은 물감이 두텁게 칠해진 거대한 캔버스로 종종 밀짚과 같은 물질이 첨가되기도 했으며 페인트와 피가 함께 섞이기도 했다. 독일의 역사와 북유럽의 신화를 다루었고 독일의 최근 역사와 화해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1987년 로버트 휴스는 기퍼에 관해 “대서양 양편을 통털어 그의 세대에 가장 위대한 화가 ... 지난 10년 동안 상징적 시각의 명백한 위대함을 보여준 몇 안 되는 시각예술가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내적인 문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무주의적인 공허감”을 나타냈다고 혹평한 평론가도 있다.
바델리츠와 키퍼 외에도 독일 신표현주의자들로 라이너 페팅Rainer Fetting(1949~), 외르크 임멘도르프Jorg Immendorf(1945~), 베른트 코베를링Bernd Koberling(1938~), 마르쿠스 뤼페르츠Markus Lupertz(1941~), A. R. 펭크A. R. Penck(랄프 빙클러Ralf Winkler, 1939~) 등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산드로 키아, 프란체스코 클레멘테Francesco Clemente(1952~),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1948~)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피렌체 태생으로 프렌체 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산드로 키아Sandro Chia(1946~)는 1970년대 초에 개념 미술과 퍼포먼스를 시도했으나 1975년 회화로 복귀했으며, 1970년대 말에는 대가들의 작품을 패러디하여 영웅적인 상황을 흉내낸 장면을 설정하고 팽팽한 근육의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독특한 양식을 구축하여 동시대 이탈리아 화가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졌다. <작업 중인 용감한 소년>(1981)은 대표적인 작품이다. 로버트 휴스는 키아의 작품에 나타난 형상에 대해 “고전 조각에서 유래한 것 같은 자세로 바람을 가르면서 석탄을 운반하는 여성스러운 인부들”이라고 적었다. 키아는 또한 회화와 유사한 성격의 조각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