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모든 일간신문과 주요 잡지들이 잭슨 폴록의 갑작스런 사망을 일제히 보도했다.
『뉴욕 타임즈』는 첫 페이지에 보도했고, 『뉴스 위크』는 트랜지션(transition) 난에서 알렸으며 『타임』은 ‘현대회화의 기병에 대한 놀라운 소식’이란 제목으로, 『라이프』 는 ‘반항하던 예술가의 비극적 종말’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리는 8월 13일 뉴욕에 도착하여 장례식을 서둘러 준비했다.
제임스 브룩스가 장례식에 입고 갈 짙은 색 양복이 없다고 리에게 말하자 리는 폴록의 옷 한 벌을 그에게 주었다.
리는 아주 침착했는데 이웃들이 와서 위로하려고 하자 오히려 그들을 위로할 정도였다.
이웃의 로드 말로는 그가 리에게 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는데, 리는 그를 보더니 “아무 말도 말아요”라면서 자신을 안아주었다고 했다.

토마스 하트 벤턴과 리타는 그 소식을 일요일 오후에 들었다.
그때 그들은 칠마크에 있는 집 현관에 앉아 있었다.
그 지역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던 허먼 체리와 드 쿠닝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벤턴에게로 갔는데 벤턴은 두 사람을 안으로 안내하여 앉기를 권했지만 누구도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드 쿠닝은 벤턴에게 비행기를 타고 가서 폴록의 장례식에 참석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벤턴은 머리를 저으면서 “난 그 꼴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음을 드 쿠닝은 알 수 있었다.

폴록의 장례식이 1956년 8월 15일 수요일 무교단주의 스프링스 교회에서 목사 조지 니콜슨에 의해 집례되었다.
폴록의 몸에 상처가 너무 많았으므로 관 뚜껑은 열지 않았다.
리는 그린버그에게 폴록을 위한 송덕문을 읽어줄 것을 부탁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죄 없는 소녀를 죽게 했는데 어떻게 폴록을 칭찬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리는 “토니를 불러와요! 바니(바넷 뉴먼)를 불러요!”라고 말했지만 그린버그말고는 폴록을 칭찬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는 예술가들은 아무도 감히 송덕문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리는 폴록의 가족들과 함께 앉기를 거부하고 앞줄에 혼자 앉았고 가족들은 뒷줄에 앉았다.
폴록의 어머니 스텔라가 리를 포옹하려고 하자 리는 그녀를 밀어내면서 “잭슨이 당신을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리가 어쩌면 그렇게 슬퍼하지 않느냐고 의아해 했으며 어떤 사람은 그녀의 감정표현은 “수수께끼와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장례식에서 가장 슬피 울었던 사람은 여든한 살의 노모 스텔라였다.

장례식에는 약 200명 가량이 참석했다. 폴록의 유해는 리가 사두었던 ‘푸른 강’ 묘지에 안장되었는데, 그곳에서도 리는 가족들과 떨어진 채 앞줄에 홀로 서 있었으며 드 쿠닝과 다른 예술가들은 흙으로 관을 덮을 때까지 그곳에 서 있었다.
며칠 후 이웃에 살던 포터가 폴록의 뒷마당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그의 무덤으로 옮기려 하자 리는 그것보다 더 커야 한다고 하면서 이스트 햄프턴 쓰레기장에서 40톤 크기의 돌을 운반하여 폴록의 관이 무너지지 않게 그 옆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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