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판화는 판의 형태에 따라 볼록판, 오목판, 평판, 공판 등으로 나뉘고 판의 재료에 따라 목판, 동판, 석판 등으로 구별된다.
나무는 구하기 쉽고 조각하기 쉬워 목판이 널리 사용되는데 고갱이 타히티 섬에서 제작한 일련의 목판화와 뭉크의 목판화 또한 유명하다.

동판화는 판화 가운데 기법의 다양함과 미적 가치에서 인정을 받는다.
동판화는 뷰린으로 얇은 금속판을 깎는 인그레이빙engraving 기법과 내산성의 막을 입힌 금속판을 긁은 후 산으로 부식시키는 에칭etching 기법 등 두 가지로 나눠진다.
뒤러는 뷰린의 명수로 알려졌는데 그의 아버지가 금은 세공사였다는 점이 그로 하여금 기술을 연마하게 했다.
동판화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에칭이다.
16세기 후반에 보급되기 시작하여 전문 동판화가들이 그 기술공정에 들어갔는데, 많은 화가들이 선호한 이유는 인그레이빙에 비해 기술적으로 훨씬 용이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에칭으로만 그 독특한 소묘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드라이포인트를 병용하여 명암표현을 탁월하게 했다.
그의 시대에는 에칭이 정점에 달했다.
뭉크의 경우 동판화는 거의 에칭이다.

석판화의 경우 초기에는 석판에 조각한 작품도 있었지만 지금은 석판이라면 리도그래피의 대명사가 되었다.
목판이나 동판처럼 파는 작업이 전혀 없는 이 기법은 기본적으로 평평한 석판 (오늘날에는 아연판을 많이 사용한다) 위에 지방성의 리트 크레용이나 잉크로 그린 후 석판화를 적신다.
그 위에 지방성의 잉크를 묻힌 룰러를 굴리면 물과 기름의 반발작용으로 잉크는 그려진 곳에만 묻게 된다.
리도 그래피의 가장 큰 장점은 직접 석판면에 그려도 좋다는 것이다.
리도 그래피는 18세기에 발명되어 19세기 후반에는 채색석판화로 발전하여 화려한 꽃을 피웠다.
아르 누보는 리도 그래피에 의해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동일한 주제의 작품을 계속 제작한 뭉크의 특성상 판화는 그에게 매우 유용했다.
뭉크의 주요작품들은 거의 대부분 판화로도 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리처드 세라가 추구한 면, 색, 공간, 비균형


(질문): 당신은 한때 면, 색, 그리고 공간으로 열린 회화와 조각을 합성한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고무조각을 사용한 작품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폴록의 영향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답): 1960년부터 그림을 그리면서 일 년 동안 물감을 ‘발견한 오브제found object’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색의 물감 서른 깡통을 바닥에 뿌린 적이 있습니다.
한 손에는 시간측정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붓을 들고 일 분 동안에 서른 깡통을 닥치는 대로 붓는 작업을 했어요.
그림을 초보의 단계로까지 가감시키려고 한 것이지요.
구성과 회화적 평면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우연을 실험한 것은 버로우스Burroughs와 존 케이지John Cage의 영향이었으며 죽음의 끝에 이르는 것이었어요.
같은 방법으로 뒤샹과 존스가 날 죽음의 끝에 도달케 했습니다.
살아 있는 동물과 동물인형, 발견한 오브제를 사용하여 자생지habitats를 만들면서 환상과 실재의 개념을 실험했습니다.
(그는 이런 작품을 1963-64년 이탈리아에서 소개했다.)
1966년에 우연히 고무조각을 수천 톤 발견했어요.
이것들을 사용하여 벽에 거는 작품을 제작했어요.
중력과 드로잉을 나타낸 작품이었습니다.
열한 다발을 벽에 걸었는데 폴록의 <아이오와 주 벽화 Iowa State Mural>로부터 받은 영향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색을 칠한 연결된 공간의 요소들로 색, 면, 높은 릴리프의 선 등을 실험했습니다.
그것은 내게 비어 있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늘 생각하기를 릴리프란 정면과 경사로 나타나도록 벽의 면으로 자른 혼합물 그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지요.
폴록의 그림이 내포하는 것은 비구성적 오버올over-all로서 오픈 필드open field입니다.
그러나 오픈 필드는 그림의 틀에 의해서 한정되어 있지요.
<벨트>가 폴록의 작품과 다른 점은 분리되었다는 것입니다. (11다발의 고무조각이 연속적이지 않음을 말함.)
벽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면 오픈 필드에는 다른 가능성이 있을 것이란 점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뿔뿔이 흩어놓는 작품, 찢어놓는 작품, 뿌려놓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으며 릴리프에는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질문): 당신 작품의 주요 개념은 비균형인 것 같으며 이것은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1938~73)의 엔트로피entropy(균질성) 개념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답): 엔트로피에 대한 스미스슨의 관심은 우주적 의식을 표현하려는 시도인데 반해 나의 관심은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데 있었습니다.
나의 받침대 작품들은 (단단히 매는 고리가 없이) 평형과 균형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의 내 작품의 형상은 운반할 수 있는 오브제의 관념, 스스로 참조할 만한 것을 전복시키는 것, 스스로 옳음을 내세우는 권위의 관념, 그리고 오브제의 영원성을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받침대의 일시적 존재는 실제적이라기보다는 참조할 만한 것이었는데 이런 외고집은 스미스슨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는 외고집으로부터 대단한 만족을 구할 수가 있었습니다.

(질문): 당신의 작품이 실내에 놓여 있을 때와 실외에 놓여 있을 때 어떻게 다릅니까?
조각뿐 아니라 드로잉도 관련시켜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답): 내 작품 대부분(드로잉과 조각)은 (작품이 놓여질) 부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부지가 나로 하여금 어떻게 작업을 해야 할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시내든, 시외든, 방이든, 어떤 건축적 공간 속이든 먼저 부지에 관해 충분히 안 후 부지에 어울리는 작품을 제작하지요.
어떤 경우에는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부지에서 작업합니다.
어떤 작품들은 작업실에서 제작합니다.
실제 부지에 대한 확고한 관념을 갖고 작업한 것이 커다란 모래상자에 스틸을 건립한 것입니다.
이것은 부지에서 실제로 실험을 통해 제작한 것입니다.
난 조각을 위해 드로잉이나 스케치를 한 적이 없습니다.
미리 이미지를 생각하고 작업하지는 않지요.
드로잉, 묘사, 삽화를 갖고 작업하는 조각가들은 재료와 구성의 작업과정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드로잉에 관해 말하면 나는 작업실을 드로잉의 표면처럼 생각합니다.
설치 장소 안에서 드로잉하면서 부지에 적합한 공간, 부피, 무게를 정합니다.

(질문): 피카소가 조각에 색을 입혔습니다. 색이 어떻게 당신의 조각에 통합되었는지 말해 주시겠습니까?

(답): 재료의 색이 내 작품의 색이 됩니다.
난 조각의 표면을 미화시키려고 닦거나 색을 칠하지는 않습니다.
색을 칠하게 되면 재료의 내면적 질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틸에 색을 칠하게 되면 산화를 방지하는 것으로 이는 스틸의 속성을 부정하는 셈이지요.
조각에 색을 칠하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몇몇 조각가들이 색을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했는데 쟈코메티Giacometti는 빛이 닿지 않는 면에 광택을 나게 하려고 색을 사용했지요.
작은 조각에 칠한 색이 지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질문): 조각을 제작하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답): (한참 침묵하다가) 일생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인생이 작품의 경향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되며 ...
나 자신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무엇이라도 만들어서 그것이 열린 채 있도록 하며, 내게 활력이 되고, 도전하게 하며, 내가 작업하는 방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조각을 제작하는 행위는 다른 활동과 구별하게 하지요.

(질문): 어떻게 구별하지요?

(답): 조각을 제작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 먼저 조각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질문): 그걸 지금 묻고 있는 것입니다.

(답): 나의 관심사는 내가 사용하는 요소를 통해 물리적 조직을 규정하는 것으로 한 공간과 한 장소의 구조, 내용, 성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근래 나는 스틸을 사용하여 안쪽과 바깥쪽의 공간을 열어놓거나 닫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 뉴욕 에이스Ace 화랑에서 발표한 <묘사용 기구 Delineator>는 당신의 과격한 작품들 중 하나인데 왜 <묘사용 기구>라고 불렀지요?

(답): 왜 그렇게 불렀느냐 ... 음, 기본적으로 그것은 평편하게 늘인 쇠판 하나를 바닥에 놓고 다른 하나를 천정에 매달아서 두 개가 한 쌍이 되게 한 것입니다.
천정의 것은 13.5피드 높이에 매단 것으로 둘 다 가로 세로 10피드 26피드의 사이즈입니다.
천정에 매단 것은 약 음 .... 2.5톤이고 ... 그 조각은 방 내부를 명확하게 정의합니다.

(질문): 어떻게?

(답): 두 개의 스틸 판은 안과 밖, 열려 있는 것과 가리키는 것, 위, 아래, 오른쪽, 왼쪽 공간의 용적을 발생하는 열린 십자형을 형성하고, 관람자가 그것들의 공간을 통과해서 걸어갈 때 관람자의 몸을 조절합니다.
내 말을 난해하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음, ... 나의 결론은 철학과 과학은 설명되어지지만 예술과 종교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질문): 그것은 실험적 작품이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묘사용 기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랑에 가서 직접 물리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며, 그 장소에서의 경험은 공간 바깥에서나 당신이 있는 이곳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실제 경험에는 전혀 미칠 수가 없어요.

(질문): 음, 난 어느 누구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설명은 확실히 경험 자체와는 같을 수 없지요.
그건 다른 종류의 행위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간 호크니


1963년 말 호크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그는 말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여 일주일 동안 나는 많은 일을 해냈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자동차를 한 대 구입했으며 그 자동차를 운전해 라스베가스로 가서 도박을 해 돈을 따고 화실을 얻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모든 일이 일주일 내에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훌륭한 팝아트 그림을 낳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동안 수영장에 매료되어 그림에 수영장이 자주 등장했으며 사람이 수영하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호크니는 빠른 속도로 성공해 1966년에는 유럽에서 다섯 번 이상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만난 캘리포니아 출신 예술가 지망생 피터 슐레진저는 그의 애인이 되어 그림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1968년 호크니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 슐레진저는 슬레이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심화되더니 1970년 결별했다.
이 무렵 호크니의 일생을 묘사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호크니는 1960년 여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최된 피카소 전시회에 가서 대가의 작품을 직접 관람한 이래 피카소를 자신이 존경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했다.
1973년 파리에 잠시 거주할 때는 과거 피카소와 협력한 적이 있는 판화가, 알도와 피에로 크로멜링크와 함께 작업했으며 그해 초에 타계한 피카소를 위해 동판화도 제작했다.

1974년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Muse?des Arts Decoratifs)이 대규모로 호크니전을 개최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37세에 불과했으며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의 그림은 팝 아트 외에 초현실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그림들은 평면적이며 인위적으로 정지한 상태여서 거의 동결된 것처럼 보인다.
호크니는 마티스의 밝은 색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회화방법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캐리커처

 
캐리커처Caricature는 이탈리아어 카리카레Caricare에서 연유한 말로 '무거운 짐을 지게 하다' '과장하다'라는 뜻이다.
얼굴의 각 부위와 사람의 육체적 특징을 과장하거나
어떤 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신체를 왜곡하고
때로는 신체의 일부를 동식물로 변경시켜서 표현한다.

캐리커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풍자의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초상적 요소가 강하며 대상이 되는 인물이 어느 정도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음을 전제로 한다.
다른 하나는 동시대의 풍속, 습관 혹은 전통을 비판하는 것으로 풍자의 농도는 전자보다 떨어지지만 유머나 우스꽝스러움의 표현이 내재해 있다.
이 경우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이며 인간집단의 특징을 포착하여 주관적으로 과장하는 성격이 농후하다.
브뤼겔P. Brueghel(1525/30경-1569)의 판화가 좋은 예가 되는데 그는 기묘한 우화적 상황설정을 이용하여 풍자의 맛을 고조시켰다.
캐리커처는 미신으로부터 자유롭고 그리스도교의 교리에서 벗어난 미를 추구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르네상스적 미의 패러다임인 조화와 균형을 깨는 데 적절했다.

캐리커처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한 화가로 도미에H. Daumier(1808-79)를 꼽을 수 있다.
시민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졌던 19세기 프랑스에서는 캐리커처가 전성기를 맞았다.
18세기 말에 발명된 석판화는 캐리커처 발달에 일조했다.
도미에는 뛰어난 소묘 솜씨로 석판에 부드러운 초크로 교묘하게 대상을 나타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풍경화 Landscape

원래 이 말은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방에서 사용된 프라이만어인 Landskap에서 유래했다.
이 말이 자연의 경관을 묘사한 그림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로 처음에는 이 말이 생겨난 지역, 즉 네덜란드 지방의 장르로서의 풍경화를 의미했다.
화가는 관람자의 즐거움을 증폭시키기 위해 인공적 자연을 만들기도 했다.
풍경화는 본래 무질서한 자연에 하나의 통합을 부여하면서 자연 자체보다 더 자연다운 외모를 그리는 것으로 화가가 의식적으로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화가의 인위성에 의해서 자연성이 달성된다는 의미에서 보면 풍경화는 자연의 인간화된 이미지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