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간 호크니


1963년 말 호크니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로스앤젤레스로 갔다.
그는 말했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도시에 도착하여 일주일 동안 나는 많은 일을 해냈다.
운전면허증을 따고 자동차를 한 대 구입했으며 그 자동차를 운전해 라스베가스로 가서 도박을 해 돈을 따고 화실을 얻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 모든 일이 일주일 내에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풍경과 사람들의 생활모습은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훌륭한 팝아트 그림을 낳았다.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동안 수영장에 매료되어 그림에 수영장이 자주 등장했으며 사람이 수영하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호크니는 빠른 속도로 성공해 1966년에는 유럽에서 다섯 번 이상 개인전을 가졌다.
그해 만난 캘리포니아 출신 예술가 지망생 피터 슐레진저는 그의 애인이 되어 그림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1968년 호크니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 슐레진저는 슬레이드 대학에 입학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심화되더니 1970년 결별했다.
이 무렵 호크니의 일생을 묘사한 영화가 제작되었다.
호크니는 1960년 여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개최된 피카소 전시회에 가서 대가의 작품을 직접 관람한 이래 피카소를 자신이 존경하는 예술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했다.
1973년 파리에 잠시 거주할 때는 과거 피카소와 협력한 적이 있는 판화가, 알도와 피에로 크로멜링크와 함께 작업했으며 그해 초에 타계한 피카소를 위해 동판화도 제작했다.

1974년 파리 장식미술 박물관(Muse?des Arts Decoratifs)이 대규모로 호크니전을 개최했을 때 그의 나이 겨우 37세에 불과했으며 그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의 그림은 팝 아트 외에 초현실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그의 그림들은 평면적이며 인위적으로 정지한 상태여서 거의 동결된 것처럼 보인다.
호크니는 마티스의 밝은 색과 피카소의 입체주의 회화방법을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독특한 회화방법을 창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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