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르네상스는 예술과 문학에서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지만 철학에서는 중요한 인물을 내놓지 못했고 정치학에서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1469~1527)가 유일하게 탁월한 이론을 소개했다.
산티 디 티토Santi di Tito(1536~1603)가 그린 그의 자화상에서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오고 차거우며 약아빠지게 생긴 교활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는 보통 키에 앞이마가 튀어나왔고 검은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눈을 가졌으며 얇은 입술에서 모나리사의 수수께기같은 미소를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두 줄로 자신을 표햔했는데 다음과 같았다.
"나는 웃는데 내 웃음은 내 안에 없고
나는 타오르는데 타는 것을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훌륭한 시민이었으며 정직한 편이었고 훌륭한 아비였다.
그가 훌륭한 시민이었다는 것은 그가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조국을 나의 혼보다 더 사랑한다."

마키아벨리는 1501년 늦게 마리에타 코르시니Marietta Corsini와 결혼해 다섯 자녀를 얻었는데 마리에타에게 훌륭한 남편은 못되었지만 가수 바베라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이탈리아 남편 평균 정도는 되었다. 

마키아벨리의 철학은 과학적이었고 경험적이었는데 공무원생활에서 얻은 체험이었다.
그는 사람에 관해 오늘날의 심리학자와도 같은 과락적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한 마디로 말해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목적이 좋든 나쁘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극도한 개인주의이다.

그의 철학을 비판하기 전 우리가 정치적으로 어지러웠던 당시 이탈리아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마키아벨리의 국수주의는 이탈리아 역사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가는 사기꾼같아야 한다는 솔직한 그의 주장은 오히려 지성적이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아틸리아에서는 오히려 바람직했고 힘 없는 나라가 힘 있는 나라들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손자병법과도 같은 상식적인 논리와도 같았다.

마키아벨리는 르네상스의 도시 플로렌스에서 1469년 5월 3일에 태어났고 집안은 13세기 때부터 대대로 부유했다.
집안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법학박사였던 아버지만 유일하게 집안에서 가장 가난해서 경제적으로 떳떳치 못했다.
마키아벨리는 총명했지만 가난 때문에 충분한 교육을 받을 형편이 못되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책을 통해 독학할 수 있었다.

1498년 사보나롤라Savonarola가 처형당하고 플로렌스 정부는 공화국으로 개편되었으며 금욕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공화국에 과격한 재구성을 요구했다.
이런 요구를 촉구한 당파가 득세할 경우 마키아벨리는 29살의 나이로 고등법원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다.
공화국 내부문제에 관한 일이 그의 업무였는데 업무가 확장되어 공화국의 10인집행위원회의 비서역할도 그가 하게 되었다.
더욱이 그는 시그노리아Signoria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외무부와 국방부의 장관 비서가 되어 외교문제와 국방문제들에 관여하게 되었다.

사법관들은 이탈리아 국내와 외국에 대사를 대신해서 가곤했는데 마키아벨리는 1500년에 처음으로 임무를 띠고 프랑스를 가게 되었고, 프랑스에 5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한 군주의 집권 하에 나라가 부강해진 것을 직접 목격했다.
프랑스 왕 샤를 8세는 1494년부터 이탈리아를 침공하기 시작했으며 이탈리아를 넘보던 스페인과 힘을 겨루면서 프랑스는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이제 황성옛터였으며 이탈리아는 이 시기에 볼품없는 나라로 전락하고 있었다.
역사의식을 가진 지성인이라면 분노할 일이었고 마키아벨리가 조국의 역사에 복통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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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문화협회

1939년에 결성된 미술문화협회의 중심인물은 일본에 초현실주의를 유행시킨 후쿠자와 이치로였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일본에 유입된 것은 1925년 문학에 의해서였으며 1930년을 전후로 초현실주의 작품이 이과전에서 하나둘씩 소개되었다.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가 1931년 파리에서 귀국하면서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등의 영향이 나타난 초현실주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이 이념이 유행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
그리스 볼로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형이상학적 회화의 창시자이다.
1906~09년 뮌헨에 머무는 동안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에 흥미를 가졌고, 1909`~10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수수께끼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움직임이 없는 빈 공간, 비논리적인 그림자, 예기치 못한 원근법으로 인해 설명할 수 없이 이상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사물의 일반적 관계를 무력화하고, 새롭고 신비로운 관계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사물 뒤에 있는 숨겨져 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 하는 ‘형이상학적 통찰력’에 대한 정교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키리코는 사물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정서적 의미를 없애기 위해 1914년부터 인간의 모습 대신 재봉용 마네킹을 그렸으며, 그 외에도 조상, 석고 두상, 고무장갑 등을 그렸다.
또 사물의 병치와 회화 공간의 형식적 특성을 이용하여 불안한 분위기를 창출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초현실주의의 한 특징을 예견했다.
비록 초현실주의의 자동주의 기법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키리코 작품에서 보이는 반쯤은 꿈같고 반쯤은 병리학적인 효과를 지닌 신비스러움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목표로 한 정서적인 효과와 유사했다.
또한 초현실주의 운동은 “미술 작품에는 상식과 논리가 들어올 자리가 없으며 훌륭한 작품은 꿈이나 어린이의 정신 상태와 매우 가깝다”는 키리코의 믿음과 전적으로 일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의 그림은 더욱 철저한 묘사와 엄격한 기법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의미는 결여되어 있었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독일계 프랑스 화가 막스 에른스트는 1908~14년 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지만 회화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정신질환자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1919년 쾰른의 다다 그룹을 이끌었으며 ‘다다막스’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또한 콜라주와 포토몽타주 기법을 초현실주의에 접목시켰다.
1922년 파리에 정착하여 이런 기법들을 퍼뜨렸으며 1924년 초현실주의 운동의 형성에 참여했다.
에른스트의 작품은 종잡을 수 없고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항상 실험적이었다.
전성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미술문화협회에는 후쿠자와 이치로를 포함하여 테라다 마사아키寺田正明, 후루자와 이와미古澤岩美, 기카와키 노보루, 아이 미츠, 사이토 요시시게, 스기마타 타다시 등 40여 명의 화가들이 소속되어 있었고 1940년 4월에 창립전을 열고 공모작을 포함하여 227점을 소개했다.
이듬해 제2회 전람회를 열기 전 초현실주의를 공산주의로 오인한 경찰이 협회의 이론적 리더 후쿠자와 이치로와 평론가이자 시인 다키구치 슈조瀧修造를 치안법 위반으로 검거했다.
이에 미술문화협회는 전향을 표명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으며 제3회 전람회에서는 전쟁화가 ‘과제작품 특별 진열’이라는 명칭으로 전시하는 등 1944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전람회를 열었지만 전위적 경향은 창립전 이후 나타나지 않았다.

미술문화협회전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우리나라 화가는 가네코 히데오金子英雄(1915~?)과 김하건(?~1951)이며 김자영웅은 다섯 차례 모두 참여했고 김하건은 제2, 3, 4회에 참여했다.
김자영웅은 창립전에 <풍경 1>, <풍경 2>, <풍경 3>을 출품한 후 미술문화상을 수상했고 제3회전에서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김하건은 제3회에 <綠의 교향악>, <十九의 기원>, <항구의 설계>, <밤의 정거장>을 출품한 후 미술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제4회 때에 회원에 추대되었다.
김자영웅은 1915년 경상남도 태생으로 김종남인데 14살 때인 192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1918년에 설립된 일본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후쿠자와 이치로의 연구소에서 수학했다.
그는 일본인을 아내로 맞았으며 일본에 귀화하면서 이름을 마나베 히데오로 바꾸었다.
김하건은 동경미술학교에 재학할 때인 1941년에 출품하고 이듬해에는 회원으로 추대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현존하는 작품은 자화상 한 점뿐이며 사진으로 남아 있는 제3회전 출품작 <항구의 설계>를 보면 외딴 건물이 있는 한적한 바닷가를 배경으로 책상 위에 피라미드와 원구가 있어 데 키리코와 살바도르 달리의 사차원적 공간 혹은 초현실적 공간이 있는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는 청진으로 돌아와 1943년 8월 12일~16일 청진의 궁내대환宮內大丸에서 청진일보사 북선문화회와 경성 공립중학교 동창회 주최로 ‘김하건 양화 개인전’을 가졌다.
팜플렛에 30여 점의 작품 목록과 함께 미술문화협회의 후쿠자와 이치로, 테라다 마사아키, 그리고 동경미술학교 교수 타나베 이치로 등의 격려사가 실렸다.
팜플렛에 의하면 그는 1942년 ‘신 로망파 협회전’에 참여했다.
그는 6·25동란 때 인민군으로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규모 단체전과 소규모 동인전 모두 회원들의 그룹전으로 열렸고 이들의 작품들 외에 공모를 통해 일반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우리나라 화가들의 참여는 거의 공모전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반 화가들은 협회상을 수상하거나 회우로 추대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 화가들 중에서 처음 회우로 참여한 사람은 김환기로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참여했다.
문학수, 이중섭, 김하건 등은 자유미술가협회와 미술문화협회에서 활동했고 회원 혹은 회우로 추대되었다.
조선인에 대한 이런 대우는 소규모 동인전에서는 가능했지만 관전은 물론 이과전과 독립미술가협회전 같은 대규모 그룹전에서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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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이상국가 
 

플라톤 이상국가의 음악 교육정책은 리디안인Lydian과 아이오니인Ionian의 음악을 금하는데 음악에 슬픔을 자아내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공화국에서는 오직 도리아인Dorian의 용기와 프리지아인Phrygian의 절제를 표현한 음악만이 허락된다.
리듬은 단순해야 하고 용기와 조화스러운 삶을 표현해야 한다.

체육의 경우 육체적 훈련은 엄격했으며, 누구도 생선과 고기를 굽지 않고 요리한 음식물을 먹어서는 안 되고, 소스나 과자 또는 케익을 먹어서도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기르면 의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건강해진다.
소년들은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관망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교육을 받은 남자들이 수호자가 된다.
수호자들은 혹은 정치가들은 공산주의 방법으로 생활하게 되는데 이런 방법이 군인들에게도 적용되었을 것으로 철학자 럿셀은 짐작했다.

수호자들은 작은 집에 기거하면서 단순한 음식물을 먹고 캠프생활을 하듯 했는데 그들은 함께 식사하고 꼭 필요한 것들 외에는 개인의 소유물을 갖지 않는다.
금과 은을 소유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부자가 아니라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정부의 목적은 나라 전체가 훌륭해지는 데 있으며, 한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부유함과 가난 모두 위험한 것이며 플라톤의 이상국가에는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한다.
소녀들도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음악과 체육 그리고 전쟁훈련까지 소년들과 함께 받는다.
여자들은 남자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플라톤은 "같은 교육은 남자와 여자 모두를 수호자로 만드는데 본래 남녀가 같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은 인정되지만 정치학에서는 다른 점이 무용하다.
여자들도 철학적이 될 수 있으므로 수호자도 되고 군인도 될 수 있다.

결혼은 독특한데 여자들을 공동으로 소유하며 남자는 자신만의 아내를 가질 수 없다.
국가는 신랑과 신부들의 수를 헤아려서 인구가 계속 불어날 수 있도록 하며 제비뽑기로 짝을 져주기도 한다.
최고의 아비들은 대부분의 자녀를 가진다.
모든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곳에서 기르기 때문에 부모들은 누가 자기들의 아이들인지 알 수 없게 되고 아이들은 누가 자신들의 부모인지 모르게 된다.
병약한 아이들과 이런 아이들을 출산시킨 부모들은 알 수 없는 지역에 격리시킨다.
어미는 20~40세이고 아비는 25~55세이다.
이 나이를 지난 남자와 여자들은 성관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임신하면 낙태시키거나 신생아를 죽여 없애야 한다.

결혼은 국가가 주관하는데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국가에 대한 의무에 충실한다.
아이들은 누가 자신들의 아버지인지 모르게 때문에 아버지뻘 되는 모든 남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같은 이유로 어머니, 형, 그리고 누이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일은 실제로 야만인들 가운데 행해졌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어머니와 아들의 결혼을 금했으며 늙은이를 때려서는 안 되는데 어쩜 아버지를 때리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은 개인적인 감정을 최소화하고 국가적 정신에 충실하게 만들며 사우재산을 인정하지 않게 한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의 신학적 문제, 거짓말은 장주가 가지는 특권에 속하며 정의는 마치 의사가 처방하는 약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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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미술가협회

근대미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1935년을 전후로 아방가르드 그룹인 자유미술가협회, 미술문화협회, 그리고 백만회이다.
1937년에 결성된 자유미술가협회는 명칭이 시사하듯 어떤 사조를 추구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창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그룹은 원래 ‘신시대양화전’에서 활동하던 하세가와 사브로長谷川三郞(1906~57), 오오츠다 마사도요大津田正豊, 쓰다 세이슈津田正周, 무라이 마사나리村井正誠(1905~), 야마구치 가오르山口 薰(1907~68), 야바시 로크로矢橋六郞(1905~)가 중심이 되고 그 밖에 ‘포럼’, ‘흑색양화전’에서 활약하던 화가들 오노사토 도시노부小野里利信(1912~86) 그리고 평론가 13명을 고문으로 추대하여 1937년에 결성했다.

자유미술가협회전에 구상 작품도 많이 출품되었지만 회원들 대부분은 순수조형의 기하적 추상 작품을 전람회를 통해 소개했다.
기하적 추상을 유럽 유학파가 1930년대 초에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이 협회 회원들이 폭넓게 작품을 제작했다.
이들에 의해 초상회화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기할 점은 자유미술가협회전은 기존의 단체전과는 달리 유화, 수채화, 판화, 소묘, 콜라주, 오브제, 사진 등 7종목을 둔 것이다.
특히 에이 큐瑛九(1911~60)가 사진을 출품하고 대담한 여러 오브제 작업을 소개했다.

창립 때부터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참여한 우리나라 화가는 김환기였다.
김환기는 스물네 살 때 회우로서 1937년 7월 10일~19일 우에노에 있는 일본미술협회 전시장에서 개최된 창립전에 참여한 이래 1942년 회우를 사퇴할 때가지 자유미술가협회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김환기 외에도 문학수, 유영국, 이중섭, 주현, 박생광, 이규상, 조우식, 안기풍, 송혜수, 배동신 등이 참여했으며, 문학수와 유영국은 1938년 5월 22일~31일에 열린 전람회에서 협회상을 수상하고 회우로 추대되었고, 이중섭은 1941년 4월 10일~21일에 열린 전람회에서 회우로 추대되고 1943년 3월 25일~4월 2일에 열린 전람회에서는 태양상을 수상했다.
자유미술가협회가 2월에 결성될 때 김환기는 일본대학 예술학원 연수과에 재학 중이었고, 3월에 졸업한 그는 4월에 귀국했다.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이 7월에 열렸으므로 김환기가 고향 기좌도에서 작품을 동경으로 발송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그 후에도 기좌도와 서울을 오가며 작품을 발송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가 1939년에 조선 지부장에 임명되었을 것이다.

이중섭은 제2회전부터 참여하여 그 후 미술창작가협회로 명칭이 바뀐 후에도 계속 출품하여 주목을 받았다.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은 제2회전의 작품에 대해 다키구치 슈조는 “환각적인 신화를 묘사하고 있다.
소품이지만 큰 배경을 느끼게 한다. 옛 신비 속에서 생생한 악마가 꿈틀거리고 있다”고 했으며, 하세가와 사브로는 1938년 7월 『미의 국』에 기고한 글에서 “이중섭 씨의 여러 작품도 훌륭하다. 아주 작은 화면에 가득 찬 영웅적이고 모뉴멘탈한 구도는 대개의 대전람회가 대작주의인 데 대한 당당한 항의이다”라고 호평했다.
김환기도 1940년 12월 『문장』 제2권 10호에 기고한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에서 호평했다.
“작품 거의 전부가 소를 취재했는데 침착한 색채의 계조, 정확한 데포름, 솔직한 이매주, 소박한 환희, 좋은 소양을 가진 작가이다.
쏘쳐오는 소, 왜치는 소, 세기의 운향을 듣는 것 같았다.
응시하는 소의 눈동자, 아름다운 애린이었다.
씨는 이 한 해에 있어 우리 화단에 일등으로 빛나는 존재였다.
정진을 바란다.”

흥미로운 점은 김환기, 문학수, 유영국, 주현 등은 창립전부터 참여하면서 추상회화를 제작했는데, 김환기의 작품은 <항공표지>(1937), <론도>(1938), <아리아>(1938), <백구 白鷗>(1938), <향 響>(1939) 등 추상의 대상을 밝힌 데 반해 유영국은 <작품 B>(1937), <작품 R2>(1938), <작품 R3>(1938), <작품 E1>(1938) 등으로, 주현은 <작품 4>(1937), <작품 6>(1937), <작품 1>(1938), <작품 2>(1938), <작품 3>(1938) 등으로 대상을 밝히지 않은 순수추상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김환기 작품의 특징은 원, 원에 가까운 둥근 형태, 유연한 곡선, 면과 면의 겹침 등으로 리드미컬한 요소와 감성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것이다.
리드미컬한 요소는 작품 제목 <론도>, <아리아>, <향> 등이 시사하듯 음악을 기하적 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39년 제3회전에 출품한 이규상(1918~64)의 작품 <작품>이 전시회 직후 정현웅이 1939년 6월 2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추상주의 회화’라는 글과 함께 실렸다. 원과 곡선으로 구성된 <작품>에 대해 정현웅은 “추상주의는 조형예술이 가진 순수성, 즉 선, 색, 색채, 면의 비례균형, 조화 이러한 엣센스를 엣센스만으로서 표현하고 그 이외의 모든 잡음을 배격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그린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라고 추상에 대한 이해를 적었다.
동양화가 박생광(1904~85)은 『야성 김정주 회갑 기념문집』에 기고한 ‘회고 60년’에서 자신도 “나는 일본에서 적어도 1930년대 동양화 재료로서 추상 화풍을 시도한 효시로 자부한다”고 밝혔다.

자유미술가협회는 1940년 10월 12일부터 16일가지 부민회관에서 조선인 작가들 대부분 참가한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을 개최했으며 삿포로에서도 비슷한 전람회를 열었다.
경성전의 전람회 목록에는 일본인 화가 12명의 작품을 포함하여 모두 60점이 소개되었으며 무라이 마사나리 등이 이 전람회 때문에 서울을 방문했다.
이 전람회는 유영국, 조우식, 이중섭 등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부민회관 3층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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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상은 양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양사상은 양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두 사람 가운데 플라톤의 영향이 더욱 두드러진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의 제자로 그로부터 수학한 데다 13세기까지 기독교 신학과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기보다는 플라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 철학사에 있어 플라톤은 독보적인 존재이다.
플라톤의 주요 철학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가장 중요한 것으로 유토피아Utopia에 관한 이론이다.
2.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데아론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다.
3. 영혼불면설로 소크라테스로부터 전수받은 이론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그리스인이 갖고 있는 전통적 사상이다.
4. 우주론Cosmogony이다.
5. 지식에 대한 개념으로 관망에 의해서보다는 기억에 의존하는 것으로 역시 소크라테스로부터 전수받은 사상이며 영혼불멸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플라톤은 기원전 428~7년에 태어났는데 그때는 펠로포네시안Peloponesian과 전쟁중이었다.
그는 귀족출신으로 서른 명의 전제군주tyrants와 관련이 있다.
아테네가 페르시아로부터 점령당했을 때 플라톤은 청년이었고 소크라테스로부터 수학하면서 그를 존경했다.
아테네 민주주의가 소크라테스를 살해했으므로 플라톤은 그래서 더욱 더 스파르타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다.
스파르타와 소크라테스 외에도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꼽으라면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리터스이다.

소크라테스를 통해서였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종교적 오르페우스 종교의 요소들인 영혼의 불멸 그리고 저세상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플라톤의 저서 <공화국 Republic>에서 '동굴의 비유'로 나타났으며, 피타고라스의 수학과 신비주의와 연계된 지식이 나타났다.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로부터는 '영원 Eternal'에 대한 개념을 영향받아 논리적으로 모든 변화가 환상임을 주장하게 되었다.
헤라클리터스Heraclitus로부터는 파르메니데스와는 반대되는 이론을 받아들여 감각의 세계에서는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이란 없다는 이론을 받아들였다.

플라톤은 물과 기름과도 같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리터스의 두 이론을 융합시켜서 지식은 감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지성으로만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이르렀다.
이런 이론은 피타고라스의 철학과도 유사하다.

소크라테스로부터는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영향받았다.
플라톤은 세상을 물리적이기보다는 목적론적teleological으로 설명했다.
그는 유일한 신the God에 관해 소크라테스 이전의 어느 누구보다도 관심이 많았고 이런 점이 그가 소크라테스의 영향을 전적으로 받았음을 말해준다.

이런 플라톤의 사상이 정치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치학이란 학문이 그의 <공화국>에서 출발점을 삼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물음은 매우 중요하다.

1. 선량Goodness과 실재Reality는 영원한 존재로서 최선의 정부는 천상의 것을 거의 모방한 정부로서 최소한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거의 완전하야 하고 통치자들은 영원한 선Good을 알아야 만한다.
2. 플라톤은 모든 신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것의 핵심은 근원적으로 설명해 줄 수 없으며 삶을 통해서 경험하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훌륭한 통치자라면 그는 선Good을 알아야 하며 선을 향하기 위해서는 지성intellectual과 도덕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훈련을 받지 않은 자가 나라를 통치하게 되면 정부가 부패해지고 만다.
3. 대부분의 교육은 플라톤에 의하면 훌륭한 통치자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이다.
피타고라스의 이론을 받아들인 그는 수학 없이는 진정한 지혜를 구할 수 없다고 믿었으며 이런 그의 견해가 소수 독재정치를 지지하게 했다.
4. 플라톤은 대부분의 그리스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만이 지혜를 구할 수 있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지혜를 발견할 수 없는데 이런 견해는 근원적으로 귀족주의를 말한다.

플라톤의 철학은 최근 두 가지 문제를 야기시킨다.
1. 과연 지혜라는 것이 있는가?
2. 지혜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을 가진 자에게 정치적 힘을 부여할 수 있는가?

지혜는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이나 의사처럼 어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보다는 오히려 더욱 일반적인 것이 사람들에게 지혜를 준다.
플라톤은 지혜가 선에 대한 지식 속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이론을 적용하여 사람이 선을 알면 옳은 일을 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그의 이론에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가장 훌륭한 정치가는 가장 잘 타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각 계급 또는 국가는 동일한 이익을 추구하지만 다른 계급과 다른 국가와는 충돌하게 되는 것이 현대의 계급이고 국가이다.
물론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정치적 행위로 성취하려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미래에는 그러하겠지만 현재와 같이 많은 독립국가들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점은 일반적인 것을 추구하는 집단과 특별한 이익을 고집하는 집단과의 적당한 타형이 이루어질 것인가?
그리고 지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어느 나라가 지혜로운 자에게 정권을 맡긴다는 헌법을 제장하겠는가!
귀족들은 늘 지혜로운 자들이 아니었고 왕들은 이따금 어리석기 짝이 없었으며 교황들은 잘못을 저지른다.
그리고 플라톤은 적당한 교육을 통해 정치적으로 지혜로운 자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무엇이 적당한 교육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지혜로운 자들을 찾아내는 것과 그들에게 나라를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문제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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