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500년과 3000년 사이
기원전 3500년과 3000년 사이 이집트에서 파라오들의 왕국이 강성할 때
이라크 조상의 나라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도 고상한 문명이 발흥하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란 말은 '강들 가운데 땅'이란 뜻으로 여기서 말하는 강은 물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말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두 강 사이의 반달처럼 생긴 땅에서 시작되었으며 두 강은 나일 강에 비해 폭이 넓어 좀더 의젓해 보인다.
두 강의 길이는 나일 강과 마찬가지로 700마일로서 반달처럼 생긴 강 사이의 땅은 농사를 짓기에 안성맞춤이다.
나일 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두 기다란 물침대는 장마때는 수위를 높여 농부들을 골탕먹이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었고 보통 풍년이 들어 잘먹고 잘살게 해주었다.
기원전 2500년 메소포타미아 남쪽의 곡식농사가 현재 캐나다에사 가장 풍년이었을 때의 밀농사와 비교할 만했다.
먹고도 남을 곡식이 있고 강에서 물고기를 먹고 남을 정도로 잡았을 테니 그들에게 고상한 문화가 있었던 건 매우 당연해보인다.
한량들의 게으르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문화의 씨를 뿌리는 법이다.
TV 수상기에 가서 켜는 것도 게을러서 못하겠다는 사람이 리못컨틀롤러를 고안해내는 법이다.
게으른 사람들이 있어야 문명의 이기들이 생산된다.
배가 터지도록 먹을 게 있어야 사람들은 환상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환상은 문화의 씨앗이 된다.
게으른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에는 많이 있었고 그들이 우수한 문화를 만들어냈다.
문화적으로 가장 두드러졌던 수메르Sumer는 메소포타미아 남쪽 페르시아만 강가에 위치했던 나라로 영토의 길이가 100마일가량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코카서스 백인들Caucasians로서 이웃 남서쪽에 살던 셈족Semitic(특히 히브루족)과 티그리스 강 건너 북쪽에 거주하던 이람족Elamites과는 달랐다.
메소포타미아 남쪽에 살던 사람들을 학자들은 수메르인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기원전 4천 년 전부터, 그러니까 이집트인이 왕국을 건설할 때부터, 페르시아Persia로부터 그곳으로 이주해 왔으며 나중에는 다른 종족과 섞였다.
수메르는 기원전 4천 년경 청동시대를 맞았으며 메소포타미아 남쪽에는 돌이 귀했으므로 수메르인은 진흙을 물에 개어 말려서 벽돌을 사용하여 집을 지었다.
그들이 흙벽을 사용해 건물을 지었으므로 이집트와는 달리 거의 현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건물의 기초만 폐허로 남아 있을 뿐이다.
요즘 CNN TV에서 유적지를 종종 보여주는데 기초의 폐허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놀라운 건축기술이 있었다.
그들은 벽돌을 쌓아 성전을 건립하면서 천장을 하늘에 닿을 듯 매우 높게 지었으며 그런 성전들 중 하나가 미술사책에 으례 등장하는 지구라트Ziggurat이다.
이 지구라트는 기원전 2500년에 건립된 것으로 이를 구약시대 사람들은 바벨탑the Tower of Babel이라고 불렀다.
구약성서에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세 단계로 높은 층을 이루며 하늘로 솟은 지구라트는 현재 터전만 남아 있으며 위로 솟은 상층 두 단계는 없어졌지만 황룡사의 터전으로 황룡사의 높이와 크기를 측정할 수 있듯이 남아 있는 터전을 근거로 당시의 성전의 규모를 어림하면 얼마나 크고 웅대했었는지 알 수 있다.
지구라트는 그리스인이 믿었던 신들의 거주지 올림푸스 산Mount Olympus과 비교할 만하다.
수메르인의 문자는 보통 원시인들의 문자와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동물과 식물의 종자를 구별하는 사형문자가 있었으며 이런 부호들은 뜻이 변하지 않아 뜻글자로 발전했다.
그들에게는 문자가 넉넉했는데 예를 들어 여인과 여인의 외음부를 표기하는 말이 따로 있었으며 외음부는 여인을 상징하기도 했다.
발을 그린 상형문자는 몇가지 뜻을 함축했는데 '선다', '간다', 그리고 '운반한다'는 뜻이었다.
발로 서고 가고 물건을 운반한 데서 생긴 여러 가지의 뜻이다.
수메르인은 두 개의 단어를 한데 묶어 새로운 뜻의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알았다.
예를 들면 여인과 산이라는 두 단어를 합성시켜 여인산이라는 말을 만들었으며 여인산은 여자 노예를 의미했다.
이런 문자는 그들이 주변에 있는 산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데려다 노예로 부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에게는 동의이어들도 있었는데 물고기를 하ha로 표기하면서 하를 또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의 언어 일부가 오늘날에도 현존하는데 알코올alcohol이 그중 하나이다.
왕의 비문에 문자가 쓰여지기 시작한 건 기원전 2700년경이었으며 가장 오래된 성문법은 수메르인의 수도 우르Ur를 통치한 왕 우르-남무Ur-Nammu가 기원전 2100년경에 선포한 법전이다.
우르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그가 이런 문명이 발달한 도시를 떠나 하란을 거쳐 황무지 가나안으로 간 것은 아마도 세력싸움에서 밀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가족을 데리고 600마일을 걸어서 팔레스타인으로 갔는데 원래 문명의 도시출신이라서 하란에서 장사로 돈을 제법 벌어 많은 종들을 데리고 신천지를 개척할 수 있었다.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불화가 오늘날에도 매우 심각한데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은 같은 족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