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론에 있어서 우주는 창조된 것도 아니고

 
내가(Stephen W. Hawking) 저술한 <A Brief History of Time>은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명단에 100주 이상 올랐고 영국의 선데이 타임즈에는 205주 동안 계속 올랐다.
(베스트 셀러 명단에 184주 동안 계속 올라 있었을 때 벌써 기네스 북에 새 기록으로 올랐다.)
이 책을 집필하려고 할 때 폐렴 수술로 난 이미 소리를 잃어버려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컴퓨터에 의존해 집필해야만 했다.
자연히 집필 속도가 느렸고 따라서 나는 생각을 천천히 해도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이 책은 미국에서 17판 인쇄에 들어갔고 영국에서는 10판 인쇄에 들어갔으며 모두 5백 5십만 권이 팔렸다.
사람들이 나의 저서를 읽는 이유가 내가 불치의 병에 걸려 휠체어를 타고,
말을 할 수 없으며,
손가락만을 겨우 몇 동작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가장 큰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고 싶은 욕망에서 이 책을 읽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나의 이론에 있어서 우주는 창조된 것도 아니고,
멸망하지도 않을 것이며,
우주는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데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20세기 초 물리학에는 두 가지 두드러진 이론들이 있었다.
하나는 일반 상대성 이론the 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이고 다른 하나는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공간과 시간에 관해 그리고 그것들이 우주 안에서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 커다란 규모로 어떻게 왜곡되는가 하는 데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양자역학 이론은 공간과 시간이 작은 규모로 어떻게 왜곡되는가 하는 데 대해 설명한다.

불확정 원리the Uncertainty Principle는 우리가 미분자particle의 위치와 속력을 동시에 측정할 수 없음을 지적한다.
미분자는 늘 불확정하거나 우연히 존재하며 이것은 작은 규모 안에서 물질의 습성에 작용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양자역학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양자역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느낌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는
그의 말에서 요약되고 있고,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에 대하여 만족해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물리학 이론들의 증거에 의하면 신은 상습적 도박사로서 가능한한 매번 주사위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A Brief History of Time은 Bantam Books에 의해 1988년에 출간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킹의 블랙 홀black hole

호킹이 쓴 자서전을 연재하다 보니 그가 블랙 홀에 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위해 잠시 설명을 붙이려고 한다.
아인슈타인하면 일반 그리고 특수 상대성 이론을 머리에 떠올리듯이 호킹하면 블랙 홀을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데 그가 유명해지고 노벨상을 수상한 것도 바로 이 이론 때문이다.
자서전은 그가 1988년에 쓴 것이다.
그는 자선적 글에서 빛이 블랙 홀에 갖히게 되면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지만 나중에 빛이 홀을 빠져나올 수 있다고 정정했으므로 블랙 홀에 관해 언급해두어야 할 필요가 있어 잠시 서술하려고 한다.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라서 나의 설명이 부족하면 누군가가 덧붙여주기를 바란다.

호킹에 의하면 우주의 나이는 150억 년 정도 되고 현재 타원형이 되었다.
우주는 최초의 Big Bang 굉음과 함께 거대한 먼지덩어리들의 충돌로 그 파편이 별이 되었는데 우주에는 150억 개의 별이 있다.
모든 운동이 원인이 있어야 생기는 것이며 모든 운동에는 끝이 있기 때문에 최초의 충돌에 의해 생겨난 운동은 그때보다는 미약하지만 지금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라도 우주가 팽창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지구는 45억 년 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별이고 우주에는 지구보다 젊은 별도 많지만 늙은 별도 많다.
별이 늙어 쇠약해지면 지니고 있는 모든 연료를 태우면서 죽어가는데 마지막으로 화염을 일으키며 스스로를 태워버린다.
지구도 몇십 억 년 후에는 그렇게 되겠지만 ...
여하튼 별이 자체의 남은 연료로 스스로를 태울 때 호킹의 말에 의하면 후지산만한 크기가 콩알만한 크기로 작아지듯 그런 비율로 작아진다고 한다.
그는 우주에 약 1억 개의 죽은 별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지구보다 훨씬 작은 별의 경우 죽은 후 하얗게 보이는데 이를 '하얀 난쟁이'라 하고 지구 혹은 그 이상 커다란 별이 죽게 되면 검정색으로 보이는데 이를 블랙 홀이라고 한다.
지금도 천문학자들이 블랙 홀이 생기는 현상을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하는데 별이 갑자기 화염에 휩싸이다가 사라지는 경우 이를 블랙 홀 혹은 별이 죽어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오늘 그런 현상을 관측했다고 해서 그 별이 지금 죽은 것은 아니다.
빛이 1초에 18만 6천 마일의 속도로 우리의 시야를 향해 다가오더라도 몇 십 혹은 몇 백 광년 떨어진 별이 화염에 휩싸였다면 그 별이 몇 십 혹은 몇 백 년 전에 죽어가는 것을 현재 우리가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여행을 할 때 우리는 블랙 홀을 조심해야 하는데 블랙 홀을 바다를 항해할 때 우리가 만나는 소용돌이 물살에 비할 수 있다.
물론 그 위력은 소용돌이 물살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데 그 근처에 갔다가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길까?
별은 주변의 것들을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돌을 공중으로 던지면 땅으로 떨어지듯이 돌을 지구가 중심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뉴턴이 이를 만류인력이라고 명명했다.
블랙 홀은 크기만 작아졌지 잡아당기는 힘은 오히려 반비례해서 늘어났기 때문에 주변의 것들을 흡입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블랙 홀 근처를 지나간다고 가정한다면 우주선은 블랙 홀 속으로 빨려들어가 분해되어 사라지게 되는데 호킹의 말에 의하면 끝이 없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호킹은 처음에는 빛도 블랙 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갖혀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수정된 그의 이론에 의하면 빛이 블랙 홀 가장자리에서 천천히 밖으로 나오게 된다고 했다.
그럴 경우 우리의 우주선은 어떻게 될까?
우리의 몸과 우주선은 기본 원소들로 분해되어 갖혀 있다가 만약 광자를 타고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주의 어디엔가로 날아가게 된다.
이를 비유로 말하면 어디로가는지 모르는 비행기를 탄 것과 같을 것이다.

호킹은 블랙 홀끼리 합쳐지기도 한다고 했는데 원통형의 블랙 홀이 합쳐지면 위는 두 개의 원통이고 아래는 합쳐져 하나의 원통 모양이 된다.
합쳐진 블랙 홀의 위력이 더욱 더 강력한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마지막으로 블랙 홀은 아주 검정색은 아니고 거무틱틱한 색이다.

Big Bang 이론은 물리학계에서 거의 받아들여진 이론이다.
이 이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에 해당한다.
당구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최초로 당구알을 세게 때리면 그 당구알이 다른 당구알을 맞히고 다른 당구알이 또 다른 당구알을 치면서 운동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운동은 영원할 수 없고 언젠가는 중지된다.
은하가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데서 우리는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팽창의 힘은 태초의 운동에 비하면 매우 약해진 것이다.
이를 비유로 설명하면 우리가 신라 시대의 기와를 발견했다고 하자.
그 기와는 신라 시대의 것이지만 그것이 제작된 그 시대의 것보다는 매우 약해진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운동도 처음보다는 약해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는 나의 병 ALS(운동신경병)에 대해 어떻게 느끼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는 가능한한 평범한 인생을 살려고 하고 있으며,
나 자신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상태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리고 그런 부자유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어렸을 적 활동적이 아니었으며 공을 갖고 노는 놀이들에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스포츠나 신체적인 운동들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하고나서는 보트의 노를 젓거나 키를 잡는 운동은 제법 했다.
대학 3학년 때 나는 나 자신이 조금씩 볼품없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고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한 번 혹은 두 번 쓰러지기도 했다.
내 병이 알려지게 된 것은 이듬해 캠브리지 대학원에 진학한 후 어머니께서 나를 가정학 의사에게 데리고 가서부터였으며 의사는 내가 전문의사에게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어머니께 권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을 때 나는 막 스물 한 살이 되었다.

나는 두 주 동안 입원하여 진찰을 받았다.
병원측에서는 나에게 무슨 병인지 말해주지 않았고 갖가지 테스트를 하면서 고작 비타민만을 복용시켰다.
나는 내가 수년밖에 살 수 없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며 어째서 나는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가 생각하게 되었다.
의사는 나더러 캠브리지에 돌아가 연구를 계속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기도 전에 죽고말 것이란 생각 때문에 비탄에 빠지게 되었다.

나는 바그너의 곡을 듣고 지냈는데 잡지들은 내가 과음한다고 허풍을 떨었고 이런 기사는 다른 잡지사들로 하여금 그대로 복사해서 보도하게 만들면서 그들은 훌륭한 기사감으로 여겼다.
기사란 자주 반복해서 보도되면 자연히 사실이 되고 만다.

나는 인생에 회의가 생겼고 내가 무엇을 하든지 무가치할 것이란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헌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죽을 바에야 무엇인가 선한 일을 남기고 싶어졌다.
결국 나는 죽지 않았으며 나 자신 이전보다 인생을 더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

나의 연구에 진전이 있었고, 나는 약혼 후 결혼을 발표했으며, 캠브리지에 있는 카이우스 대학에서 급여를 받는 연구원으로 재직하게 되었다.
나의 건강 상태는 나의 연구에 그리 불편하지 않았으며 운도 딸아서 나의 연구 내용들이 학계에 환호로 받아들여졌는데
같은 시기에 나의 부자유함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나는 강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만 할 수 있는 혜택을 대학측으로부터 받고 있었다.

나는 결혼했으므로 대학 근처에 작은 집을 세얻어 살다가 대학으로부터 돈을 빌려 나중에는 그 집을 구입했다.
4년 동안 그 집에 살면서 나는 층계를 오르내리는 일이 자꾸 힘에 겨웁게 되었으며,
대학은 나에 대한 배려로 대학 소유의 건물 아래층을 내게 주었고,
그 집은 크고 문의 폭이 넓어서 좋았다.
나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그 집은 정원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에 나의 세 아이들은 매우 좋아했다.

1974년까지만 해도 나는 내 스스로 음식물을 먹을 수 있었고 스스로 침대에 눕거나 침대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아내 제인이 날 도와주었지만 일이 너무 많아지자 나의 제자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기거했다.
아내와 제자는 내가 침대에 눕거나 일어나는 일을 도왔다.
나는 좀더 부자유스러워졌으며,
1980년에는 대화하는 시스템을 바꾸었고,
개인 간호사가 조석으로 한 시간 혹은 두 시간 날 간호했다.
이런 생활은 내가 폐염에 걸린 1985년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폐염 수술을 받았고 그후부터 24시간 간호를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한 비용을 몇몇 재단들이 맡아주었으므로 가능했다.
수술받기 전에는 불분명하지만 내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며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적어도 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비서에게 말하면 비서는 종이에 과학에 관한 나의 내용을 기록했고 내가 세미나를 주관할 경우에는 통역자가 나의 말을 좀더 분명하게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하지만 수술 후 나는 전혀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잠시동안 나의 의사소통 방법이란 내가 눈섭을 올려 신호하면 알파벳을 들고 있는 사람이 알파벳들을 끄집어내어 문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화를 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같은 나의 처지를 안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의 컴퓨터 전문가 왈트 월토츠가 이퀄라이저equalizer라고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내게 보내주었다.
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니 나는 스크린에 나타나는 갖가지 메뉴들을 손으로 스위치를 사용하여 단어들을 선택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나는 손이나 눈동작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고 내가 말하기를 바라는 것을 확성기를 통해 알릴 수 있었다.
내가 이런 컴퓨터를 책상에 놓고 사용하는 동안 캠브리지 대학의 대비드 메이슨은 이런 기구를 작은 컴퓨터로 제작해 휠체어에 부착시켜 사용가능하게 해주었다.
이 기구는 나로 하여금 이전보다도 더욱 의사소통을 잘 하게 해주었으며 나는 1분에 15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말을 한 후 이를 컴퓨터에 입력하여 보존하거나 글로 쓸 수 있게 되었고, 컴퓨터를 사용해서 두 권의 책을 썼으며, 과학에 관해서 많은 논문들을 썼다.

나는 과학에 관해 그리고 일반적인 것들에 관해 많은 대화를 했으며 사람들이 이를 잘 받아주었다.
내가 사용하는 확성기는 좋은 질의 소리를 내주었는데 오지 문제가 있다면 미국 액센트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의 소리를 갖게 되었으므로 영국 발음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확성기를 계속 사용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이라도 된 느낌이다.
나의 병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지만 이 병이 나로 하여금 가족과 함께 지내고 내가 연구하고 있는 하문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못하다.
나는 나를 돕는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단체들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다.
내 경우를 보더라도 사람들은 희망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나의 연구는 우주 전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970년까지 나의 연구는 우주 전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나의 성과는 은하galaxy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으로 즉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발견은 나로 하여금 과거에는 은하들이 서로 가까이 있었을 테고 그렇다면 모든 은하들이 하나로 뭉쳐져 있었을 때 바로 그때도 시간이 존재했었겠느냐 하는 의문을 갖게 했습니다.

그리고 우주가 팽창한다면 우주란 무한한 것이냐는 의문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내게 새로운 수학적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나의 연구는 1965년부터 1970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에 대한 연구를 나와 로저 펜로우즈Roger Penrose가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펜로우즈는 벌크벡Birkbeck 대학에 있었고 현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와 펜로우즈는 수학적 기술을 사용하여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사실이라면 과거에 무한한 밀도density 상태가 우주에 존재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이런 무한한 밀도를 빅뱅이상Big Bang Singularity이라고 부릅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이 옳다면 불행하게도 우리의 과학은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장담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을 수용하게 되면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장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이 최근 나의 연구 성과였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거대한 별들이 자체들의 원자핵 연료nuclear fuel가 모두 소진될 때 스스로 붕괴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펜로우즈는 모든 별들이 무한한 밀도의 이상singularity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붕괴된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이상은 시간의 종말을 의미하며, 이상의 중력적 필드gravitational field는 너무 강력해서 필드 주변에 있는 빛은 필드를 통과할 수 없고,
중력적 필드는 오히려 빛을 필드 속으로 끌어당기는데 빛은 필드 속에 갇혀 빠져나올 수 없으며,
이런 중력적 필드를 블랙 홀black hole이라고 부릅니다.

블랙 홀의 경계boundary를 사건한계event horizon라고 부릅니다.
어느 누구라도 어떤 물체라도 블랙 홀 속으로 빨려들어가면 이상에서 시간의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나는 1970년 나의 딸 루시Lucy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 하루는 침대에 누워서 블랙 홀에 관해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나는 팬로우즈와 더불어 이상들을 증명하기 위해 진전시켜온 수학 기술을 블랙 홀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건한계 필드 블랙 홀의 경계는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블랙 홀이 합쳐져서 하나의 블랙 홀로 구성될 때 그 합해진 홀의 한계 필드는 두 블랙 홀의 한계 필드들의 합한 것보다 더욱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나는 그날 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970년부터 1974년까지 나는 주로 블랙 홀들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1974년에 나는 연구의 성과를 이루었는데 블랙 홀들은 온전히 검정색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것들은 마치 뜨거운 물체들처럼 발광radiation과 미분자particle들을 발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974년부터 나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혼용해 하나의 이론으로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이론은 1983년 나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은 유한하지만 그것들은 어떤 경계도 없다는 사실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은 지구의 표면과 같으나 두 차운two dimensions을 더 지니며 지구의 표면은 면적에 있어서는 유한하나 둥글기 때문에 어떤 경계도 지니지 않는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도 경계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의 생성은 과학의 법칙들로 이해가 되어 나는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욕망을 성취했으나 아직도 왜 우주가 시작되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호킹의 자서전

나는 한때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물리학이 나로 하여금 우주관뿐 아니라 역사관 그리고 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호킹이 자서전적으로 쓴 글을 전에 번역해두었던 것이 책장을 정리하다가 튀어나왔길래 소개할까 합니다.
혹시 이런 연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연재의 폭을 확대할까도 생각중입니다.
호킹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호킹) 1942년 1월 8일에 Oxford에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는 부유한 농부로서 많은 농장을 사들였다가 경제공황 때 파산하셨지만 아버지를 옥스포드 의대에 진학시킬 수는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가정학 의사의 일곱 자녀들 중 둘째로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하신 후 여러 가지 일을 하시다가 비서가 되었고 이런 이유로 아버지를 만나게 되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런던의 북쪽 하이게잇Highgate에서 거주했습니다.

내 여동생 메리Mary는 나보다 18개월 후에 태어났고 메리는 나중에 의사가 되었습니다.
나의 또 다른 여동생 필리파Phillippa는 5년 후 태어났으며 남동생 에드워드Edward는 내가 14살 때 태어났는데 공부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아버지는 하이게잇에 있는 가늘고 기다란 빅토리안 양식의 집을 구입하셨는데 2차세계대전 중이어서 집이 쌀 때였습니다.
독일 전투기들이 런던을 폭격하면서 우리집 몇집 건너에도 포탄을 떨어뜨렸습니다.
우리는 폭격을 피해 피신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그냥 남아계셨는데 집이 무사했습니다.
그 집을 아버지가 위독하실 때인 1985년에 팔았고 아버지는 이듬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당신의 모교인 옥스포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셨으므로 나는 1959년 3월 옥스포드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자격시험을 쳤고 며칠 후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때 내 나이 17살이었으며 다른 학생들은 대부분 군복무를 마친 후였기 때문에 나보다는 나이가 훨씬 많아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이론물리학의 두 갈래 길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기초 미분자들보다는 우주론cosmology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이 분야에는 아인슈타인의 잘 정의된 일반 상대성 이론General Theory of Relativity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옥스포드 대학에는 우주론에 유능한 물리학자가 없었으며 캠브리지 대학에는 잘 알려진 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이 계셨습니다.

나는 호일의 지도 아래 캠브리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성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캠브리지 대학에 진학했을 때 나의 지도교수는 호일이 아니라 데니스 시아마Denis Sciama였고 나는 그분에 관해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호일은 외국 여행을 자주 하셨으므로 어차피 그분의 지도를 받기는 어려웠을 테고 나는 시아마의 아이디어들에 더러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은 내게 늘 자극을 주셨던 좋은 교수였습니다.

내가 옥스포드 대학에 재학할 때 수학을 별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으며 따라서 공부에 별 진전이 없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돼 나는 ALS(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혹은 Motor Neurone Disease(운동신경병)라고도 함)라는 증세를 가졌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나는 병원측으로부터 진전이 있기 때문에 별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들었고, 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공부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내게 ALS의 증세가 나타날 무렵 나는 제인 윌드Jane Wilde를 알게 되었고,
그녀를 사랑했으므로 그녀와 결혼하여 과학자로서 일생을 살기로 결심했으며,
과학자들과 창녀들은 모두 자신들이 즐기는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는 생계를 위해 카이우스Caius 대학에 급여를 받는 연구원으로 받아들여졌고,
나와 제인은 1965년 7월에 결혼했으며,
우리는 서폴크Suffolk로 신혼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뉴욕 북쪽에 있는 코넬 대학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을 가르치는 과목을 여름학기에 수강했는데 과목은 좋았지만 기숙사에 아이들까지 묵었으므로 너무 시끄러워 실망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