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악은 존재하는가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이 책은 사단이 왜 존재하는가에 관해 말하지 않고 다만 악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언급이 없다.
욥은 사단을 통해 인간적 한계에 도달했는데 악이 지혜의 한계를 드러나게 한다.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의 의미를 끝내 알지 못했지만 좀더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지혜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께서 자신보다 훨씬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이것은 사람이 알 수 있는 사단의 존재에 관한 지식의 한계이기도 하다.
욥은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했으나 사단을 통해 하나님에 관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악의 존재가 지혜로운 사람에게 교훈이 된다.
구약성경은 하나님과 사단는 불화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저주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이브)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창세기 3:15)


사단이 인생에 고난을 주기 시작했는데 가인(Cain)이 의인 아벨(Abel)을 살해했으며, 롯(Lot)은 소돔에서 고난을 겪었고, 다윗(David)이 불의한 일을 당했으며, 많은 선지자들이 또한 불의를 당했다.
비극은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일어났는데 그분이 살해당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죽음으로 비극을 종료시켰으며 부활하셔서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구속하셨다.
그리스도 즉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구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600년 이상 지난 후였는데 욥에게는 꿈만 같은 사실이었다.


독자들은 하나님과 사단의 불화를 여러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단과 불화하는 가운데서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고 계신다.
그리고 사단을 저주하고 사단의 잘못을 백일하에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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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욥의 신학 전개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인생의 네 가지 문제를 바탕으로 다섯 종류의 신학이 전개되었다.


1. 의로운 자가 번영을 누린다.

2. 불의한 자는 고난을 겪는다.

3. 불의한 자도 번영을 누린다.

4. 의로운 자도 고난을 겪는다.


1. 사단의 견해: 의로운 자의 번영은 의의 결과이다.

2. 당시 일반적 견해: 불의한 자의 고난은 불의의 결과이다.

3. 욥의 견해: 불의한 자의 번영은 사후에 심판을 받는다.

4. 엘리후의 견해: 의로운 자에게 고난은 불가능한 일이다.

5. 욥의 주장: 의로운 자가 고난을 받을 경우가 있다고 하자,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곧바로 고난에 관해 설명해 주셔야 한다.


욥 이야기는 사단의 견해로부터 시작한다. 욥은 번영을 누렸으므로 스스로 의인이라고 판단했는데 이 같은 판단이 오류란 데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욥은 사단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자신에게 닥친 고난이 불의한 방법으로 온 것이라고 판단한다.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부터 자신이 배제당하는 불이익을 당했다고 믿었는데 이 같은 사고는 오류로서 그는 하나님의 입장은 생각지도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한 것이다.


욥 이야기는 사단과 욥의 인과응보 신학에서 출발하는데 인과응보는 지혜문학의 기본으로 구약시대에는 율법과 직결된다.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만 어기는 사람은 재난을 받는다는 것은 유대인에게 불변하는 철칙이다.
율법의 준수가 엄격한 기준이며 욥은 최선을 다해 율법을 지켰으므로 고난이 닥치자 인과응보 신학에 의심이 생겼다.
하나님께서 의로운 분이시라는 데 의심이 생겼다.


세 친구는 인과응보론으로 그를 질책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욥은 자신에게 전혀 죄가 없다고는 믿지 않았으나 참기 어려울 정도로 심한 고난을 받아야 할 만한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항의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항의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인과응보론은 기복신앙이다.
우리나라 격언에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인과응보론이다.
“선을 행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 갚아 주고,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재화로 갚느니라”라는 말도 마찬가지로 인과응보론이다.
욥은 인과응보에서 한 걸음 나아갔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5:7)라고 말하여 그는 고난을 타고난 운명으로 표현하였다.


욥은 악한 자가 더욱 장수하며, 영화를 누리고, 자손들도 번영한다고 푸념하였다(21:7 이하).
시편의 저자도 악인들이 더욱 편히 살고 재산도 늘어간다고 푸념했다.
이 같은 푸념은 인과응보론에 대한 비판이다.
욥과 친구들의 신학을 비교하면 친구들이 냉철한 이성주의를 추구한 반면 욥은 사랑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내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신앙에는 근원적으로 변화가 생기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면서 솔직한 말로 항변하였다.
이것은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의 신학으로 변한 것이다.
친구들은 인과응보론만 되풀이했을 뿐 고통에 몸부림치는 친구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아 하나님의 책망을 들을 만했다.
인과응보론은 지상에서는 축복이지만 내세관이 결여되었다.


인생이 비극이라는 생각은 당시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만연했는데 5세기에 활약한 비극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는 저서 『비로쿠데테스』에서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악이 멸망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신은 악을 사랑하시고 악을 기르신다.
웬일인지, 사악한 자들을 일부러 명부로부터 끌어내서 선한 사람과 정의로운 사람들을 차례 차례로 지상에서 어두움으로 쫓아내신다.
신의 위업을 찬양하려 해도 신 자신이 사악일진대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좋겠는가?
신의 무엇을 찬양하란 말인가?
비열한 사람이 고결한 사람보다 잘 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를 보며,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이기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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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욥은 과연 누구였나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1장에 묘사된 욥은 하나님께서 칭찬할 만큼 순전하고, 진실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인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욥은 가난한 자들을 억누르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지 않은 폭군이었다.
남의 재산을 강제로 빼앗는 부정한 방법으로 축재하였다.


욥은 과연 누구였나. 친구들의 비난과 욥의 변명이 엇갈림을 본다.
그들의 신앙과 윤리에 차이가 있다.
그들의 신앙과 윤리가 지나치게 과장되어 다르게 나타난 것은 이 책이 시문학의 장르로 쓰여진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얼마나 호화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권세를 가진 호족이었는지 알 수 있다.
우유로 발을 씻고 기름이 시내처럼 흘렀다고 했는데 대단히 부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양 7000마리, 낙타 3000마리, 소 500쌍, 암나귀 500마리, 그리고 많은 종을 부린 동방의 으뜸가는 부자였다.
양을 7000마리나 가진 것으로 미루어 많은 유목민을 거느렸음을 짐작하게 하며 낙타가 3000마리나 되었다면 이집트와 아라비아 사막을 오가는 거대한 대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소가 500쌍이나 되었다면 종들을 부리면서 대규모로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유목민은 천막을 치고 생활했는데 아라비아 일대에는 욥과 관련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천막이 구름처럼 널렸을 것이다.
당시 대상들의 교역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상품을 사서 싣고 오다가 적을 만나면 싸워야 했다. 그래서 약탈로 치부하기도 했다.
어느 날 욥은 스바 사람과 갈데아 사람 같은 호족들의 습격을 받아 전 재산을 빼앗겼다.


부를 축적한 방법에 관해 비판하려고 하면 비판의 소지는 있을 테지만 욥은 다른 폭군들에 비하면 정의로운 편이었다.
그는 합법적으로 축재했기 때문에 백성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노예의 생명은 주인에게 속했으므로 종을 혹사하는 것은 합법이며 양심에 가책될 일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의인이라고 칭찬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다.
저자가 보기에 그는 하나님을 잘 섬겼을 뿐만 아니라 동포도 잘 보살폈으며 선행을 베푼 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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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욥의 변화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욥은 스스로의 의를 주장하면 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친구들에게 변명하고 하나님의 공정함을 의심하면서 하나님께 항거하는 가운데 자신의 신학이 진일보하면서 하나님께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을 고대했으며 자신과 하나님을 중재할 중재자를 고대하였다.
하나님의 사랑과 중재자의 출현을 고대하다 보니 그에게 재생의 소망이 생겼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중재자가 와서 자신을 위해 변백하여 주기를 바랐다.


그는 인생은 무엇이고 의인의 고난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섭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며, 인생과 하나님의 관계가 무엇인가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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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나님의 응답

<욥 이야기>(도서출판 지와 사랑) 중에서


오래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욥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자 나타나셨다.
변화가 때를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너는 어디 있었느냐”라는 말로 그를 힐난하셨다.
네가 세상을 창조라도 했으므로 그런 자격으로 불만을 토로하느냐는 힐난이다.
욥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판단하면서 하나님을 비판했는데 우주를 네가 창조했으므로 우주의 중심에서 비판을 일삼느냐는 힐난을 받자 교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말았다.
그는 할 말을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자연계를 섭리하시는 신성한 능력을 그에게 과시한 후 네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나님께서는 동물계에 관해 설명하면서 자기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을 사랑하고 먹여 살린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하마를 가리키면서 욥이 피조물 가운데 얼마나 미천한 존재인가를 일깨워 주셨다.
욥은 자신이 우주의 티끌에 비할 만큼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굴복하였다.
그는 자기가 질문할 수 없는 질문을 그동안 했음을 뉘우쳤다.
하나님의 출현이 욥의 모든 의심을 일시에 제거한 것이다.
욥 이야기는 이렇게 마친다.
더 이상 전개할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다.
42장 7절 이하는 삽입된 해피엔딩이다.
욥을 동정한 사람이 그의 재산을 두 배로 늘여 주고, 자식들도 돌려주고, 여생을 오래 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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