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 혹은 들라크루아파와 앵그르파
마네가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 전, 프랑스 화단과 영국 화단의 모습을 잠시 살펴봅니다. 프랑스 화단은 들라크루아파와 앵그르파로 나눠져서 양파간의 투쟁이 매우 심했습니다. 이런 양상은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의 대립으로 볼 수 있습니다. 들라크루아파는 낭만주의를 앵그르파는 신고전주의를 추구했습니다.
낭만주의Romanticism라는 말은 르네상스시대부터 사용된 말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 국경에 있는 로마냐Romagna(로마냐는 로마Roma에서 온 말), 즉 라틴어의 방언 로망스어로 쓰인 이야기라는 의미이면서 공상적 혹은 경이적이란 뜻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외젠 들라크루아Eugene Delacroix(1798-1863)의 작품에서 공상적 혹은 경이적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신고전주의Neoclassicism는 과거의 어떤 고전주의보다도 더욱 엄격하고 냉철하며 계획적이고, 종래의 어떤 고전주의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형식을 압축하여 직선적인 것과 구성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을 추구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전형적인 것과 규범적인 것을 강조했습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1780-1867)의 작품에서 이런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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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의 <노예와 함께 있는 오달리스크 Odalisque with Slave>, 1842, 유화, 76.2-105,4cm.
앵그르의 양식은 프랑스 전통 회화의 양식을 따른 것이지만, 그 내용은 애욕적인 요소, 즉 현대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여인의 누드를 정면에서 바라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줍니다. 오달리스크란 말은 술탄의 하렘에 사는 첩을 나타내는 터키어가 프랑스에서 와전된 것입니다. 오달리스크는 우리말로 후궁입니다. 왕이 찾기 전까지는 할 일 없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프랑스 화가들이 오달리스크의 섹시한 모습을 즐겨 그렸는데, 당시 이국풍의 회화가 프랑스인에게 인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렘에는 300여 개의 방과 46개의 화장실, 8개의 목욕탕과 지하 감옥이 남아있어 관광객들이 관람합니다.
들라크루아의 <사자 사냥 The Lion Hunt>, 1861, 유화ㅡ 76.5-98.4cm.
들라크루아의 양식은 현대적이지만, 그 내용은 고전적입니다. 앵그르의 화법은 곧 종식되지만, 들라크루아의 화법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거쳐 오늘날에도 표현주의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현대 회화는 들라크루아파의 뒤를 이어 탄생한 것입니다.
도미에의 <화파들의 전쟁: 이상주의 대 사실주의 Battle of the Schools: Idealism vs. Realism>, 1855, 석판화, 16-18cm.
결과적으로 낭만주의와 신고전주의 추종자들은 회화에 있어서 색과 선으로 대립했습니다.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 ‘프랑스 화단의 나폴레옹’으로 불린 나폴레옹 황제 밑에서 궁정화가를 지낸 자크 루이 다비드가 앵그르의 스승이었습니다. 따라서 프랑스 회화의 전통을 스승으로부터 계승한 앵그르는 선을 회화의 기본요소로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드로잉을 먼저 하고 색을 선 안에 칠하는 것입니다. 반면 들라크루아는 선이 색과 색의 경계에서 절로 생기는 것으로 보고 색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색을 문질러 사용했습니다. 앵그르는 채색하기 전의 드로잉을 회화의 생명으로 여겼으며, 자신이 그릴 그림에 관한 모든 요소를 충분히 이해한 후에야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무 살 때 고유한 자신의 양식을 발견한 앵그르는 자신의 양식을 평생 바꾸지 않았으며, 드로잉은 그가 말한 ‘추상의 질’로서 선에 대한 강조였습니다. 말년에 이국적인 내용과 욕망을 자아내게 하는 교태 있는 야인의 누드를 그렸습니다.
앵그르와 마찬가지로 고전주의를 고수한 그의 위대한 적 들라크루아는 앵그르에 비해 색을 보다 자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색의 귀재였습니다. 그는 색소를 부드럽게 하는 대신 격렬한 느낌을 주는 색을 그대로 사용했고, 마치 붓으로 색을 쓸어버리듯이 그림을 자율적으로 그렸습니다.
들라크루아의 색의 자율성은 그를 따르던 젊은 화가들이 회화에 새로운 통로를 여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프랑스의 낭만주의는 들라크루아의 이국풍 주제와 과격한 장면, 격렬한 감성, 그리고 바로크의 색과 자유로운 붓놀림을 통해 가능해졌다고 말해도 무방합니다. 색에 대한 그의 표현 가능성은 바로크 화가들과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의 회화에서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자율적인 색의 사용은 곧 출현할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 회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빈센트 반 고흐와 폴 세잔이 들라크루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스스로 ‘순수 조전주의자’라 칭하면서 ‘신고전주의자’ 앵그르와 구별했습니다. 그의 회화가 인상적인 이유는 회화적 기교 때문만이 아니라 격렬한 보색, 예를 들면 주홍색과 청록색을 사용하여 공명한 화음을 창조한 때문이고 음악에서의 스타카토처럼 색을 짧게 칠함으로써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양식을 먼저 실습한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