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단에 영향을 끼친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
마네는 스물세 살 때인 1855년에 뤽상부르 뮤지엄에 걸려 있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단테의 배>를 모사하는 것을 허락받기 위해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의 화실에 가기 전 친구가 마네에게 들라크루아는 차가운 분이니까 조심하라고 일러주었지만, 노트르담 드 로레트에 위치한 화실로 찾아 갔을 때 들라크루아는 예상과 달리 마네를 환대해주었습니다. 마네는 방문을 마치고 화실 문을 나서며 친구에게 “들라크루아가 차가운 게 아니라 그분의 원칙이 차가운 것 같군”이라고 말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마네가 다녀간 후 그의 회화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마네가 1859년 살롱의 심사위원들로부터 처음 모욕적 평가를 받았을 때 마네를 옹호한 유일한 사람이 들라크루아였습니다. 들라크루아는 1831년에 왕으로부터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1857년에는 아카데미 멤버로 선출되었습니다. 마네의 동시대 젊은 화가들이 가장 좋아한 화가가 바로 들라크루아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은 영국의 존 컨스터블과 윌리엄 터너의 영향을 받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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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컨스터블의 <건초마차 The Haywain>, 1821, 유화, 130.5-185.5cm.
이 작품은 컨스터블의 대표작 중 하나로 1821년 로열 아카데미를 통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그때 이 작품의 제목은 <풍경화: 정오>였습니다. 정오의 빛을 나타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빛의 운동과 맑게 개인 하늘의 뜬구름을 극적으로 묘사하여 상황에 대한 화가의 순간적 느낌을 즉석에서 표현했습니다. 그가 야외에서 직접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직접적인 자연의 묘사가 프랑스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1824년 파리의 살롱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프랑스의 젊은 화가들에게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했습니다. 컨스터블은 건물, 나무, 물, 마차 등을 홀랜드 대가들의 양식으로 그렸지만, 생동감 있는 색의 사용만큼은 그의 독특한 방법이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그의 회화에서 감명을 받아 “컨스터블은 우리 미술의 아버지다”라고 극찬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회화에 나타나는 다양한 색조는 컨스터블의 회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1776-1837)
존 컨스터블은 1776년 6월 11일 영국 서포크의 이스트 버골트애서 태어났습니다. 주로 풍경화를 그린 그는 색을 토막내는 기법으로 빛의 역할을 묘사하여 프랑스 화가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컨스터블은 “회화는 과학이고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했으며, “빛과 그늘은 정지하는 법이 없다”면서 빛과 그늘이 상황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는 “반사와 굴절이 모든 색을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달라지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랑스 화가들은 <건초마차 The Haywain>를 보면서 빛이 사물에 닿아 일으키는 작용에 대한 관찰이 그의 그림을 활기 있고 신선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습니다. 빛에 반짝이는 순수 색들의 질감을 프랑스 화가들은 ‘컨스터블의 눈Constable;s Snow’이라고 불렀습니다. 컨스터블은 곧 출현할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에 앞서 빛과 그늘에 대한 조직적인 질을 색으로 적절하게 나타내지는 못했더라도 그러한 관심을 이미 구름의 깊이, 태양의 섬광, 물의 잔물결과 반사, 그리고 나뭇잎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나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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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의 <불타는 국회의사당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Parliament>, 1834-35, 유화, 92.7-123.2cm.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 속의 기선 Steamboat in a Snowstorm>, 1842, 유화, 91-122cm.
이 작품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면 눈보라 속의 기선을 그린 것이라고 단번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화되었습니다. 추상이란 대상을 단순하게 상징적으로 묘사한다는 뜻입니다.
터너는 회화에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삽입하지 않았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과 강을 주제로 그리면서 배 위에서 그림을 완성했고, 화실에서 색상을 더 보태지 않았습니다. 터너를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근래의 정황으로 보면 표현주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게 타당할 것이며, 그의 회화에서는 추상의 의지가 발견됩니다.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1775-1851)
윌리엄 터너는 1775년 4월 23일 런던에서 이발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서른세 살에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그는 작품이 잘 팔려 경제적으로 성공했으며, 여행을 자주 하고 나이가 들면서부터 회화가 달라졌습니다.
터너는 배와 바다, 연기를 내며 달리는 기차, 다리와 산을 여러 점 그렸고, 특히 폭설, 폭우, 폭풍 혹은 화염을 시적인 색을 사용하여 개인적인 느낌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에 의해 발생하는 인간의 재난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불타는 국회의사당 The Burning of the Houses of Parliament>은 런던의 국회의사당이 화재로 전소되는 장면을 보고 그린 것으로 실제장면을 긴급하게 묘사하게 위해 붓보다는 나이프를 사용했으며, 강 건너에서 화염에 싸인 건물을 실감나게 캔버스에 재현했습니다. <눈보라 속의 기선 Steamboat in a Snowstorm>도 마찬가지로 실제장면을 직접 바라보며 그린 것으로 터너는 뱃사람에게 부탁하여 네 시간 동안 바다 위에서 눈보라를 관망했고, “나는 폭풍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생존하게 된다면 그 장면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다”고 훗날 회상했습니다.
<빛과 색(괴테의 이론>(1843)에서 터너는 괴테의 색 이론을 적용하여 빛이 사물에 일으키는 색을 캔버스에 나타냈는데, 그의 그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뉴욕에서 출현할 추상표현주의 회화처럼 나타났습니다. 그가 타계했을 때 화실에는 1만9천 점의 드로잉이 있어 회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말해주었습니다.
19세기 중반, 회화에 있어서 빛의 역할, 즉 빛의 효과를 얼마나 회화적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진보적인 영국 화가와 프랑스 화가들의 화두였습니다. 햇빛은 사물에 닿으면 산산이 부서집니다.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기 어려울뿐더러 색을 아주 잘게 토막 내어 사용하지 않으면 빛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색들을 혼합해서 사용하게 되고 톡톡 끊어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후에 출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감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