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주의의 아버지 귀스타브 쿠르베
프랑스 화단은 황제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샤를 루이 보나파르트Charles Louis Napoleon Bonaparte 1808-73)에 의해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최초의 프랑스 대통령이자 두 번째 프랑스 황제입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끈 그 유명한 나폴레옹의 조카입니다. 나폴레옹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의 셋째 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 드 보아르네 보나파르트이므로 나폴레옹에겐 조카이자 외손자가 되기도 합니다. 나폴레옹 3세는 큰아버지의 호전적 기질을 이어받아 전쟁 일으키기를 좋아했습니다. 나폴레옹 3세에 대한 우리와의 인연은 그가 천주교인들의 박해를 핑계로 함대를 파견하여 강화도를 침범한 것입니다. 丙寅洋擾(병인양요)(1866)를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그는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1870-71)을 일으켜 전쟁에서 지고 실각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의 프랑스 영향력에 마침표를 찍고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제국을 성립하게 만들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의 호전적 기질 때문에 프랑스 국민은 전쟁 비용을 혹독하게 독일에 지불해야 했지요.
전쟁으로 자신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전 1855년, 나폴레옹 3세는 파리를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만들 계획으로 그 해에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유럽을 한 가족으로 만드는 진정한 계기”라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28개국이 참여한 이 축제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도 참관했으며, 런던뉴스는 만국박람회 현장을 연신 삽화로 보도했습니다. 박람회장을 방문한 사람의 수가 거의 백만(935,601명)에 달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자국의 근래 화가들이 라파엘로전파Pre-Raphaelites의 양식으로 그린 그림들을 출품했는데 그러한 그림들이 파리 시민에게 소개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라파엘로전파란 말 그대로 라파엘로 이전의 회화양식을 찬양하는 화가들의 그룹을 말합니다.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 회화가 퇴보했다면서 중세의 회화양식을 회복하려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중세의 회화는 대부분 낭만적이고 순진한 것이 특징입니다.
(라파엘로전파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바로 옆방에 같은 이름으로 방이 따로 있으니 가서 이용하세요.)
프랑스 정부는 만국박람회에 살롱 입선작들도 전시했습니다. 박람회에 출품을 신청한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 8천 점 가운데 1,872점만 심사를 거쳐 받아들여졌답니다. 그 그림 모두를 전시하기 위해 이중 삼중으로 빽빽하게 진열했기 때문에 벽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요. 전시장에 들어서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걸었습니다.
앵그르와 들라크루아는 프랑스 화단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라서 앵그르의 작품 41점, 들라크루아의 작품 35점이 살롱에서 받아들여졌지만, 귀스타브 쿠르베Gustav Courbet(1819-77)의 작품은 11점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답니다. 쿠르베는 프랑슈콩테 주 오르낭 시에서 부유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립 미술학원에서 회화를 배운 적이 있는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려고 파리로 갔다가 법학을 포기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1847년 네덜란드를 여행하여 렘브란트의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베네치아 화파와 에스파냐 대가들의 양식을 연구하다가 1850년 전후에 사실주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쿠르베는 자신이 심사위원들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만만하게 출품한 <화가의 화실 The Painter's Studio>이 낙선하자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는 이를 “프랑스 미술의 재앙”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박람회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비로 별관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습니다. 그가 별관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화가의 화실>을 포함하여 대부분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장면들을 스냅사진을 찍듯 사실주의 양식으로 그린 것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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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쿠르베의 <화가의 화실 The Painter's Studio>, 1855, 유화, 361-597cm.
세로 3.6미터에 가로가 거의 6미터인 걸로 봐서 그가 야심을 갖고 그렸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당시 화가의 화실 내부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삶의 일상적인 장면들을 묘사한 쿠르베의 회화를 통해 화가의 화실이 대중에게 공개된 것입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한꺼번에 그의 화실을 방문한 걸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따로따로 방문한 것인데, 쿠르베가 그들을 한데 모은 것입니다. 왼편을 보면 쿠르베의 고향사람들로 노동자 계급의 평범한 사람들이 있고, 오른편에는 그가 파리에 와서 알게 된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중앙에는 화가 자신 쿠르베가 있어 관람자들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쿠르베가 선호하던 모델이 누드의 모습으로 중앙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삽입이란 말을 사용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그려서 캔버스에 삽입한 것입니다. 아직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이라서 실재의 장면을 한 번에 재현할 수가 없습니다. 자크 루이 다비드, 고야, 드가 등의 그림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다비드의 예식을 거행하는 장면, 고야의 황제가족, 드가의 한 가족의 모습 등에 나타난 많은 인물들은 화가가 한 번에 그린 것이 아니라 한 사람씩 따로 화실에서 그린 후 하나의 캔버스에 삽입하여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화면 오른쪽 끝에 한 남자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그림의 성격상 생뚱맞지 않아요? 그가 유명한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1821-67)입니다. 46세에 실어증으로 세상을 떠난 보들레르는 미술평론가이기도 했습니다. 당시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까지 미술평론가들 대부분이 시인들이었답니다. 폴 세잔의 고향친구 에밀 졸라Emile Edouard Charles Antoine Zola(1840-1903) 같은 소설가들도 있었지만. 보들레르가 어느 날 쿠르베의 화실을 방문했을 수도 있고 쿠르베가 보들레르를 방문하여 그의 모습을 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쿠르베는 그의 모습을 여기에 삽입한 것입니다.
쿠르베는 개인전을 위한 카탈로그 서문에서 회화가 사실을 전달하는 매체임을 선언했습니다. 일종의 사실주의 선언문Realism Manifesto인 셈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더이상 모방하지 않을 것이다. … 생동감 있는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이런 내용의 글은 아방가르드avant-garde 정신의 선언이란 중요한 의미를 미술사에 남겼는데 모더니즘이 이미 도래했음을 알리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아방가르드를 ‘전위예술’이란 뜻으로 사용하는데, ‘전위’란 군대용어로 첩보병, 혹은 돌진하는 부대를 말합니다. 맨 앞에서 전투를 하는 용맹한 사람들이지요. 다른 사람들의 그림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창작하겠다는 쿠르베의 선언은 매우 용맹스러워 아방가르드 정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방가르드 정신은 곧 순수미술, 즉 ‘예술을 위한 예술’을 추구하는 진보주의 예술가들의 정신을 말하게 됩니다. ‘아방가르드 작품’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진보적인 그림이란 뜻입니다.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과격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실주의는 화가의 의도를 배제하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물을 사진을 찍듯이 그리는 것도 사실주의라고 하는데, 그러한 사실주의와는 다릅니다. 쿠르베 이전의 사실주의 그림에는 화가의 의도가 깊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석양에 말을 타고 어디론가 가는 나그네를 그린 장면의 경우, 나그네의 외로움을 석양이라는 자연의 어둠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분위기와 조화시켜 관람자가 낭만적 장면으로 바라보게 하는 화가의 의도가 내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쿠르베의 작품에는 그런 의도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러한 모습이 실제생활에 있을 뿐이라는 점만 부각됩니다. 애처로우면 애처로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삶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쿠르베의 사실주의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카메라의 눈으로 본 장면을 재현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진을 찍듯이 그리더라도 작가의 의도가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답니다. 사진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보이려고 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그 정도의 화가의 의도는 있게 마련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모더니즘Modernism의 발판을 마련한 건 앵그르가 아니라 들라크루아였으며, 인상주의 회화는 들라크루아의 양식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여기에 사실주의 운동의 리더 쿠르베가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보여준 돌출행동은 미술사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의 구현이라는 의미 있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회화의 목적이 더이상 이야기를 전하거나 성경의 내용, 혹은 역사적 사건들을 교육적 목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나 일시적 환경의 변화를 나타내는 것임을 주장한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사나 전설에서 찾을 필요가 없고, 꿈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 가운데 있는 것이며, 머릿속에서 관념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전개되는 대상에서 찾아지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사실주의는 쿠르베에게 ‘인도주의 미술Humanitarian Art’이었으며, 새로운 미술의 탄생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