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생명의 조건이 형성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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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의 어느 도자기집 앞, 2010년 12월 11일


(‘관리’를 클릭하고 ‘블로그 유입’을 눌러서 보면 제 방을 다녀가시는 분이 하루 평균 1,500명가량 된다는 걸 압니다. 다음 블로그 방문자는 400명 정도지만, 대부분 검색을 통해 들어옵니다. 1,500명이 매일 평균 2,250꼭지의 글을 읽는 것으로 나옵니다. 저의 또 다른 방에도 이쯤 들어오니까 모두 합하면 3,000명이 매일 4,500꼭지의 글을 읽는 것입니다. 제 글 대부분 네이버, 다음, 야후 모두에서 검색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정성을 들여 글을 쓰는 겁니다. 제가 올리는 주제의 글은 그날그날 즉흥적으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제와 관련된 책을 과거에 많이 읽었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쓰는 겁니다. 말하자면 검증이 가능한 글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 관련 글이라면 호킹, 세이건, 에델만, 미치오 카쿠, 콜린스 등 중요한 과학자들의 저서들을 읽고 쓴 것입니다. 다른 관련 글 미술, 철학, 인문학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용의 신뢰성을 유지합니다. 신뢰는 저에게나 저를 찾는 블로거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넷에는 많은 지식이 유포되고 손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지식과 책의 지식의 차이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인터넷 지식은 안전검사기준에 근거한 검열을 받지 않은 지식입니다. 음식물로 말하면 먹어서 무탈한 것도 있지만 그냥 먹었다가는 탈이 나는 것이 많습니다. 블로거들이 스스로 미련한 안전검사기준 장치가 있으면 탈이 나는 지식을 걸러낼 수 있습니다. 전에 나폴레옹에 관한 책(‘다비드의 야심과 나폴레옹의 꿈’)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나폴레옹’을 검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와 관련된 글들이 많았지만 오류가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걸 알았습니다. 안전검사기준을 통과하지 않으면 오류가 그대로 블로거들에게 전달됩니다. 책의 지식은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나름대로 편집자의 손을 통해 안전검사기준을 통과한 것입니다. 특히 호킹, 세이건, 에델만, 미치오 카쿠, 콜린스 등 중요한 과학자들의 저서들은 거의 신뢰할 만한 수준입니다. 제가 쓴 글은 책에서 구한 지식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제가 편집자의 입장에서 안전검사기준 장치를 마련해 쓴 것입니다. 5년 동안 블로그를 관리하면서 검색으로 들어온 분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온라인에서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수없이 들었고, 그들이 아주 많은 양을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전 글을 쓰는 순간 모든 블로거들이 함께 사용하도록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말이지요.

블로거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오늘날 지식은 정보입니다.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안전검사기준 장치를 마련하고 정보를 수집하라는 겁니다. 기준은 자신이 이미 축적해둔 지식에 근거하겠지만, 그렇지 못해 분별이 불가능할 때는 검색에서 사전의 내용과 비교해 가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블랙홀이나 UFO에 관한 글이라면 그 단어들을 검색해 사전이나 과학자들의 글을 먼저 읽고 정보의 신뢰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저 자신도 매일 검색을 통해 신뢰할 만한 글을 접합니다. 사전적 지식은 인류의 약속입니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우리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지식을 꼽는다면 브리타니카 사전이 아니겠습니까? 혹은 그에 버금가는 사전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처음 보는 개념을 접하면 검색으로 그 사전적 정의를 먼저 아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식의 편차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지구의 나이를 44억 년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고 45억 년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과학자들마다 약간 다를 수 있습니다. 지식이 불완전한 면이지만, 오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면 둘 다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이 현재까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정보의 차이는 둘 다 맞지만 견해의 차이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래의 글의 경우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을 제가 번역했으므로 누구보다도 저자의 의도를 잘 알고 그분의 저서를 참조하여 쓴 것입니다.)



지구에 생명의 조건이 형성되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태양계는 약 45억 년이 된 어지간히 힘이 빠진 중년의 나이입니다. 우리의 빛나는 태양은 비슷한 크기의 대부분 별들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빅뱅 혹은 대폭발 이후 수소가스 구름과 탄소 같은 더 무거운 원소들이 천체 속에 유착되었고, 간혹 가까이 있던 초신성supernova이 폭발했으며, 생명이 끝난 거대한 별의 폭발이 있었을 것입니다. 초신성은 여러 종류의 항성 폭발을 지칭하며, 폭발 뒤 수주 혹은 수개월에 걸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초신성이 생겨나는 과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질량이 큰 별이 중심핵에서 더 이상의 핵융합 에너지 생성을 중단하고 자체 중력에 의해 중앙으로 붕괴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백색왜성이 동반성으로부터 찬드라세카Chandrasekhar 한계에 이를 때까지 물질을 흡수하고는 마침내 열핵 폭발하는 것입니다. 찬드라세카란 198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도 태생의 미국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Subrahmanyan Chandrasekhar(1910-)의 이름에서 따온 말로 그가 말하는 항성의 대기, 항성의 내부구조, 항성계의 역학 등을 말합니다. 찬드라세카는 이러한 연구로 블랙홀 이론의 토대를 세웠습니다. 태양 중심의 고압과 고열에 의해 촉발된 핵융합이 마침내 지구상 생명체의 일차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지구처럼 생명이 자라는 환경이 생기기까지는 믿기 힘든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과학자들은 태양이 태어난 지 약 백만 년이 지난 뒤 원반 물질이 미행성체planetesimal라 불리는 작은 행성 같은 물체 덩어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것들 간의 격렬한 충돌로 인해 커다란 몸체들이 생겨나고, 그것들 중 일부는 행성과 위성(달)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있음직하지 않은 사건들이 우리 세계에 생명의 조건을 만든 것입니다. 일부 우주론자들은 지구가 형성된 지 얼마 안 되어 화성만한 물체와 정면으로 충돌해 엄청난 양의 파편들이 지구 주변의 궤도로 왔다고 말합니다. 그 찌꺼기들이 우리의 달에 유착되었는데 달은 지구보다 5, 6천만 년 뒤에 생긴 것으로 추정합니다. 원래 달은 지구 더 가까이 있었으나 현재 우리로부터 38만 4,400km 거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화성Mars과의 충돌로 인해 지구의 회전축이 태양 주변을 도는 회전면에서 기울어져 계절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달이 지구의 회전축을 고정시켰습니다. 이 확고한 축이 지구가 난폭하게 회전하지 않도록 안전하게 해주며, 그것이 온도와 기후에 대변동을 초래했습니다. 따라서 달은 지구상에서 생명이 형성되고 진화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차적 충돌도 논해야만 합니다. 젊은 지구에는 생명의 구성요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구성요소들은 어디서 온 걸까? 지구상의 물 일부는 혜성과 운석의 충돌에서 비롯했으며, 과학자들은 이런 충돌이 생명의 본질이 되는 그 밖의 결정적 분자 무리를 가져다준 것으로 봅니다. 지구 표면에는 탄소가 조금밖에 없었으므로 탄소를 함유한 복합분자가 증대했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이 요소에 기초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충돌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물질이 축적되었을까? 약 1017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독일 소형차 폭스바겐 6억 대가 1억 년 동안 매년 지구와 충돌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도 매년 약 4만 톤(1만6천 대의 폭스바겐에 해당)의 행성 간 먼지가 지구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생명의 은신처라 할 만한 우리의 행성은 태양에 대해 적절한 크기를 갖고 있으며, 태양은 행성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지구는 태양에서 최적의 온도를 얻을 수 있는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지구는 운 좋게도 다른 행성과 충돌해서 우리의 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의 지구는 안락한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첫 1억~6억 년 사이에 반경 160km에서 혜성comet, 운석meteorite(혹은 별똥돌)들과 심각한 충돌이 일어나 뜨거워진 바위의 열이 지구를 에워싸 바다를 증발시켰습니다. 지금까지 3만 개 이상의 운석이 발견되어 명명되었습니다. 충돌이 잦아들자 뜨거운 바다에서 증발한 증기로 인해 수천 년 동안 비가 내렸기 때문에 지구는 충분히 식을 수 있었습니다. 달의 접근으로 인해 초기 지구의 간만tide은 엄청났습니다.


지구의 초기 대기를 구성한 건 무엇이었을까? 지구의 대기에는 주로 질소nitrogen가 함유되어 있었지만, 메탄methane과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는 얼마나 있었는지 과학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초기의 대기 성분을 알았다면 생명이 초기 지구상에 어떻게 근거지를 마련했는지 추측할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메탄 대기가 이산화탄소 대기보다 백만 배에서 십억 배에 해당하는 유기합성을 해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백만 년 동안 물에서 산성비가 생기고 고도의 이산화탄소 내용물이 발생했습니다. 탄소가 메탄이나 이산화탄소 속에 있었든 그렇지 않았든 지구는 마침내 생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탄소를 갖게 되었습니다.


빅뱅 덕분에 우리는 우주 안에서 유일무이한 생명으로 우뚝 섰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는 태양계 안에서 생명이 가능한 유일무이한 행성에 살고 있으며, 우리의 행성은 지축을 고정시키는 달을 갖고 있고,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기후를 위한 최적의 거리에 있으며, 생명을 위해 축적된 모든 성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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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의 자유 <풀밭에서의 오찬>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네의 <풀밭에서의 오찬 (피크닉) Le Dejeuner sur l'herbe (Le Bain)>, 1863, 유화, 208-264.5cm.

마네는 이 작품의 제목을 <일광욕 Le Bain>이라고 하려 했는데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했기 때문입니다. 르네상스의 지오르지오네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에서도 와토, 부셰, 코로 등에게 친근해진 고전적 주제를 마네는 현대화하여 나타내려고 한 것입니다. 이 작품에 쏟아질 비난을 마네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누드뿐만 아니라 앞의 세 사람 구성, 옆으로 쓰러진 바구니, 정물 등 부분들의 묘사가 뛰어납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88-116cm의 크기로 그렸다가 그로서는 처음으로 커다란 캔버스에 다시 그렸습니다. 이전의 화가들이 그린 누드화를 보면 모델이 벌거벗었더라도 관람자에게 자신의 누드를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워 몸을 비트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에서는 모델은 전혀 부끄럼을 나타내지 않고 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건 모델이 아니라 관람자가 되었습니다. 누드를 보다 들킨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강기슭 근처 숲속 빈터입니다. 뒤로 한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고, 강가에는 보트 한 척이 놓여 있습니다. 마네가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파리 외곽 아르장퇴유의 센 강에서 목욕하던 여자들을 본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마네는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전원음악회 Le Concert Champetre>라는 작품을 떠올렸는데, 그 그림은 학창시절 마네가 루브르 뮤지엄에서 여러 번 습작했던 작품입니다. 그는 그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을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등장인물들에 현대적인 의상을 입히고 보다 밝은 색의 물감으로 채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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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풀밭에서의 오찬 (일광욕) Le Dejeuner sur l'herbe (Le Bain)>, 1863, 유화, 88-116cm.

이것이 처음 그린 것입니다. 마네는 다시 두 배가 훨씬 넘는 큰 캔버스에 다시 그렸는데, 그가 야심을 갖고 그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가가 큰 캔버스에 그릴 때는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려는 야심을 갖게 됩니다.


마네는 1862-63년에 훗날 악명으로 유명해질 누드 <풀밭에서의 오찬 Le Dejeuner sur l'herbe>과 <올랭피아 Olympia>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들을 그리기 얼마 전 프루스트와 함께 센 강가에서 일광욕하는 여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마네가 “나도 누드를 그려야 할 것 같아. 음, 내가 저들에게 누드를 보여주겠어!”라고 말했습니다.


<풀밭에서의 오찬>은 스페인 의상을 입은 두 중년 신사와 누드의 여인이 준비해온 점심식사를 풀밭 위에 펼쳐놓고 피크닉에 온 사람들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주말이면 중산층 사람들이 센 강가로 피크닉을 가서 오찬을 즐기는 건 흔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여인이 누드로 남자들 사이에 앉아 있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피크닉 장소에 여인이 누드로 앉아 있다는 건 매우 과격한 회화적 시도였으며, 그런 장면을 보는 관람자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인은 부끄럼을 타는 고전적인 누드가 아니라 벌거벗은 당당한 모습으로 평론가들은 마네가 고전적 주제의 누드를 평범한 여인에게 적용한 데 놀랐습니다.


누드 여인은 마네가 아끼던 모델 빅토린 뫼랑입니다. 마네의 작품에 뫼랑은 많이 등장합니다. 마네는 화실에서 누드를 그린 후 피크닉 장소에 있는 것처럼 삽입했습니다. 두 남자는 마네의 동생과 여동생의 미래의 남편 페르디낭 렌호프입니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이 작품을 보고 “뻔뻔스러운 그림”이라고 비난했으므로 사람들은 더욱 문제의 그림을 보려고 주말이면 전시장 밖에 줄을 섰습니다. 평론가 아메르통은 황제의 말에 동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철면피 같은 프랑스 화가 마네의 그림은 지오르지오네의 작품을 프랑스의 사실주의로 해석한 것이다. 비록 여인이 벌거벗었더라도 지오르지오네의 작품은 아름다운 색상으로 인해 용서받을 만했다. 그러나 마네의 작품에는 사내들의 복장이 아주 해괴망측하고, 다른 여인은 스미즈차림으로 내에서 나오고 있으며, 두 사내는 바보 같은 눈짓을 한다.


그러나 <풀밭에서의 오찬>은 에밀 졸라가 호평한 후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졸라는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이런, 이 무슨 외설이란 말인가! 장성한 두 남자 사이에 옷을 벗은 채 앉아 있는 여인이라니! … 사람들은 화가가 뚜렷한 화면공간의 배분과 가파른 대비의 효과를 위해 인물의 구성에서 외설적이고 음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말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풀밭에서의 오찬이 아니라, 강렬하고도 세련되게 표현한 전반적인 풍경이다. 전경은 대담하면서도 견고하며 배경은 부드럽고 경쾌하다. 커다란 빛을 듬뿍 받고 있는 것 같은 살색의 이미지. 여기에 표현된 모든 것은 단순하면서도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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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 앙투안느의 <파리스의 심판 Le Jugement de Paris>


<풀밭에서의 오찬>은 마르크 앙투안느의 라파엘로풍의 <파리스의 심판 Le Jugement de Paris>을 현대적 감각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마네는 그림에서 모델로 하여금 관람자를 빤히 쳐다보게 했습니다. 과거에 누드를 그린 화가들은 모델이 다른 곳을 응시하게 하여 관람자가 누드를 제삼자를 바라보듯이 거리낌 없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지만, 마네는 모델을 이인칭으로 그려서 관람자를 직접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는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설정한 것으로 관람자와 그림이 더욱 친숙하게 되었으며, 또한 관람자가 주제를 자신들의 시대적 감각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것으로 작품 감상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는 과거에는 누릴 수 없던 모더니즘의 자유였습니다.

그러나 동료 화가 에드가 드가는 마네에게 새로운 시도가 없다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드가는 말했습니다.


마네는 아무데서라도 영감을 구하며,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그리고 내게서조차 구한다. 마네는 붓을 놀라울 만하게 사용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은 영감을 새롭게 해석하지는 못한다! 그에게는 시도하는 요소란 없고 … 벨라스케스와 프란스 할스의 회화방법이 아니면 어떤 그림도 그리지 못한다. 난 마네에게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지라도 아주 섬세하게 그림을 그리는 지성인으로 만족하라고 말해주었다.


마네는 유럽의 고전주의 회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지오르지오네와 티치아노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회화방법을 연구하며 그들 이전의 유럽 회화는 야만인들의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고전주의 회화에 대한 마네의 관심과 그러한 방법의 응용이 드가에게는 마네가 그러한 방법에 의존해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풀밭에서의 오찬>은 1863년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하자 낙선전Salon des Refuses을 통해 파리 시민에게 소개되었습니다. 이때 낙선전에 참여한 화가들 중에 카미유 피사로, 아르망 기요맹, 앙리 팡탱-라투르, 제임스 휘슬러, 폴 세잔이 포함되었습니다. 훗날 미술사에 획을 그을 젊은 화가들이 살롱에서 배척받았던 것입니다.


당시 살롱에는 세 점까지 응모할 수 있었고, 3월 20일에서 4월 1일 사이에 출품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마네는 <풀밭에서의 오찬>과 다른 두 점을 출품했습니다. 그는 살롱에 출품하면서 대가 외젠 들라크루아를 방문하여 심사위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부탁했지만, 들라크루아는 너무 늙은 데다 병중이었으므로 심사위원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그해에 타계했습니다. 그해 살롱에 출품한 화가는 약 3천 명, 작품은 5천 점 가량이었으며 그 가운데 2천 점이 받아들여졌지만, 마네의 작품 세 점 모두 낙선했습니다. 심사위원들 가운데는 마네의 스승 토마 쿠튀르가 있었는데, 스승조차 제자의 작품을 배척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도덕성에 비난의 초점이 맞추었지만 그것 말고도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했던 다른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무릎 위에 올린 여인의 팔꿈치는 시각적으로 너무 불안해보이며 다리도 어색하게 꼬여 있습니다. 이런 자세는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불편해보이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간 거리쯤에 독특한 자세로 목욕하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 크게 그려진 것입니다. 여인이 너무 크게 그려져 옆에 놓인 보트가 작게 보일 정도입니다. 여인이 배경으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흐릿한 초점이 아니라 매우 선명한 초점으로 묘사되어 거리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이는 멀리 있는 물체가 흐릿해 보이는 대기원근법의 공식에 어긋난 경우입니다. 더욱이 이 여인은 전체 구도상 인물들 간의 피라미드 구조 꼭대기에 배치됨으로써 여인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 전체 화면의 공간성보다는 평면성을 강조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 기묘하고 재미있는 몇몇 요소들이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으로 화면 중앙 꼭대기에 있는 붉은 색의 새와 화면 아래 왼편 구석에 있는 개구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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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에의 <살롱이 열리기 며칠 전 어느 화실의 장면>, 1855, 삽화, 『르 샤리바리』에 소개되었음. 도미에는 시사만화의 선조가 되는 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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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에의 <영향력 있는 평론가가 예술가들 사이를 걸어간다>, 1865년 6월 24일, 삽화, 『르 샤리바리』에 소개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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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킨트의 <살롱에 배달되는 작품들>, 1874, 연필, 23.8-42.5cm.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서는 살롱이 예술가들에게 유일한 등용문이었으며, 살롱 심사위원들 대부분 아카데미즘을 추구하던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통을 보존하려는 보수주의의 성향이 농후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작품과 인도주의적이고 객관적이며 우주적인 내용을 암시하는 작품을 선호했습니다. 그들은 작품이 후세의 교육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진보주의 예술가들은 살롱의 심사기준에 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며, 1850년대부터는 아예 살롱에 출품하지 않는 예술가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술가들의 불만은 해가 갈수록 더해갔고 마침내 황제에게 탄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그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살롱에서 낙선한 예술가들이 자기들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낙선전을 개최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이는 1863년의 일로 낙선전은 살롱을 통하지 않고서도 파리의 미술계에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예술가들의 등용문이 되었습니다.


낙선전은 살롱 개막 두 주 후인 5월 15일에 개최되었습니다. 입장료는 1프랑이었는데 무려 7천 명이 낙선전을 관람했습니다. 사람들은 살롱에서 인정받지 못한 작품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낙선전은 매우 큰 규모로 개최되었는데, 12개의 화랑에 무려 1천 2백 점이 소개되었습니다. 어떤 관람자 말했습니다.


낙선전이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나쁜 회화가 어떤 것인지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우리는 보고 만지고 확인했다.


마네를 잘 이해한 평론가 자차리 아스트뤽은 ‘1863년 살롱’이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마네! 이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 나는 그가 이번 살롱에서 월계관을 받지 못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 마네는 총명하고, 영감을 가졌으며, 힘찬 그림을 그리고, 놀라운 주제를 사용한다. 그의 그림에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요소가 있다.


마네는 낙선전의 스타로 부상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풀밭에서의 오찬>은 젊은 세잔의 마음을 뒤흔들었는데, 세잔은 1871년에 동일한 제목으로 피크닉 장면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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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의 <풀밭에서의 오찬 Le Dejeuner sur l'herbe>, 1870-71, 유화, 60-80cm.

젊은 세잔은 이 시기에 매우 과격한 그림을 그렸는데,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느낌을 강렬하게 나타냈습니다. 이 작품에서 나무 위로 곧게 솟은 것과 그 아래 세로로 같은 선상에 있는 세워진 포도주병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합니다. 마네의 <풀밭에서의 오찬>과 달리 세잔은 환상의 누드 속에서 성적 욕구를 느끼는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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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사람들은 세상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진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에 관한 두 편의 글에 대한 블로거들의 반응은 이해하는 것과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당분간 좀 더 쉬운 이야기를 하여 과학에 대한 블로거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다시 인간의 기원에 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기원은 생명의 기원 그리고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난해합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과학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서서히 이해될 줄 압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은 저서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오늘날 우리는 천체들의 운동을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화산, 지진, 폭풍, 전염병,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발톱 등을 악의적인 혹은 짓궂은 신들의 분노의 결과로 보았음을 지적했습니다.


호킹은 기원전 5600년경에 오리건 주의 마자마 화산이 폭발하여 몇 년 동안 바위와 불타는 재가 쏟아지고 여러 해 동안 비가 내려 분화구에 물이 채워져 오늘날 크레이터 호수Crater Lake라 부르는 호수가 생긴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는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지만, 오리건 주의 클라마스Klamath 인디언들은 전설이 말해주듯 원인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전설은 이렇습니다. 下界(하계)의 추장 라오가 클라마스 인디언 추장의 아름다운 딸에게 반합니다. 그녀는 그를 거부했고, 라오는 앙갚음으로 클라마스 부족을 불로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이때 다행스럽게도 上界(상계)의 추장 스켈이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하계의 추장과 싸움을 벌입니다. 결국 라오는 부상을 당하고 마자마 화산 속으로 퇴각합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결국 물로 채워집니다.


자연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무지가 고대인으로 하여금 인간의 삶의 모든 면을 제멋대로 지배하는 신들을 발명하도록 이끈 것입니다. 사랑의 신, 전쟁의 신, 해의 신, 땅의 신, 하늘의 신, 바다의 신, 강의 신, 비의 신, 폭풍우의 신, 지진의 신, 화산의 신 등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신들이 기분 좋으면 인류는 좋은 날씨, 평화, 자연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리지만, 신들이 기분 나쁘면 가뭄, 전쟁, 전염병, 유행병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관계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신들은 불가사의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신들의 처분에 맡겨진 듯했습니다.


그러나 약 2600년 전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에 있던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도시 밀레토스Miletus 사람 탈레스Thales(기원전 624?-546?)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 한결같은 원리들을 따르며 그 원리들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한 것입니다. 호킹의 말로 하면 신들이 지배한다는 생각이 물러가고, 우주가 자연법칙law of nature에 의해 지배되며 우리가 언젠가 해독하게 될 설계도에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전면에 나서는 긴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물을 모든 물질의 본질로 보았으며,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스의 사상가로 기원전 140년경에 활동한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에 따르면 탈레스는 기원전 624년에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역사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제58회 올림픽 대회(기원전 548-545) 때를 그가 죽은 나이로 78세로 잡았습니다. 탈레스가 쓴 글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수학 공식을 처음 제시한 인물은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이오니아 사람인 피타고라스Pythagoras(기원전 580?-490?)였습니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피타고라스는 어린 시절에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종교적 학파를 세웠고, 그의 제자들은 그가 개발한 종교 의식과 훈련을 수행하며 철학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이 학파가 크로톤의 정치에 간섭한 뒤 몰락을 초래했는데, 피타고라스는 말년을 메타폰툼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울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현악기의 絃(현)의 길이와 소리의 화성적 조화 사이에 성립하는 수적인 관계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오니아 사람들은 세상을 과학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며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리스 북부의 이오니아 식민지 출신의 데모크리토스Demokritos(기원전 460?-370?)는 물체를 무한정 자를 수 없으므로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근본입자들로 이뤄졌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근본입자를 원자atom라고 불렀습니다. 원자는 ‘자를 수 없는atomos’을 뜻하는 그리스어 형용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적 현상은 원자들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트라키아의 아브데라에서 부유한 시민으로 살면서 동방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장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의하면 그는 지식의 거위 모든 분야를 다루는 73권의 책을 썼습니다. 현존하는 건 윤리학에 관한 수백 편의 단편뿐입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거주자에 불과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은 이오니아 과학자의 마지막 세대에 속한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기원전 310?-230?)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습니다. 그는 월식 중 달에 드리운 지구 그림자의 크기를 관찰하여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오니아 학파가 이삼백 년 동안만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그들의 사상이 그리스 사상가들에게 심한 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에피큐리어니즘Epicurianism의 창시자인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기원전 341-270)는 “신들에 관한 신화를 따르는 것이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이유로 원자론에 반대했습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無痛(aponia, 무통)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기원전 384-322)도 인간이 영혼이 없는 죽은 물체들로 구성되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원자의 개념에 반발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서 그가 성립한 철학과 과학 체계는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오랫동안 뒷받침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17세기 말까지 서양 사상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수백 년에 걸친 과학혁명 후에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서양인에게 남아 있습니다.



서양 철학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믿은 이오니아 사람들의 과학으로 시작되었지만, 많은 그리스 사상가들에 의해 배척되었습니다. 과학은 2천 년 뒤 이탈리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에 의해서 다시 채택되고 일반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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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놀란 님프>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 1861, 유화, 144.5-112.5cm.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로 17세기를 루벤스와 더불어 대표하는 렘브란트Rembrandt(1606-69)의 <수잔나와 장로들 Susanna and the Elders>(1647)을 보면 <놀란 님프>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한 누드의 놀란 표정을 지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네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고 그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때만 해도 마네는 아직 화단에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있었습니다.

님프란 하급 여신으로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정령으로 곧잘 등장합니다. 님프의 역할은 산, 강, 숲, 골짜기 등에 머물며 그것들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님프는 아가씨 또는 신부를 의미합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아르테미스나 디오니소스 등 야성적인 수행하는 님프들도 있습니다. 숲속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마력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자신을 본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미쳐버리게 만드는 등의 에피소드가 신화에 있습니다.


마네가 새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한 건 1860년부터였습니다. 그해에 부모님의 초상과 어머니의 초상 등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렸으며, 이듬해에는 아내 수잔을 모델로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누드화인 동시에 그를 일약 유명하게 해준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에 등장할 누드의 예비 작품이기도 합니다. <놀란 님프>를 그리기 위해 그는 1859년부터 세 점의 유화 습작을 마친 후 1861년에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거의 실물 크기의 그림입니다.


<놀란 님프>에서 주목할 점은 관람자와 그림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관람자가 모델의 긴박하고 개인적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네는 수잔의 누드를 고전적 포즈로 그렸는데,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가 성경에 나오는 수잔나를 이런 모습으로 그린 적이 있습니다. 벗은 몸을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듯 몸을 옆으로 튼 포즈인데 렘브란트의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와 <수잔나와 장로들> 그리고 프랑스풍의 로코코 양식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1703-70)의 <다나에 Danae>를 혼용한 풍만한 여체의 결정판입니다. 당시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와 <다나에>가 루브르 뮤지엄에 전시되고 있었으며, 마네는 그것들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북쪽 지방의 회화를 이용해 네덜란드 태생 수잔의 여체를 미화시키려고 한 것 같습니다.


<놀란 님프>는 1861년에 생페테르부르그Saint-Petersbourg에서 개최된 연례 황실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파리에서는 1867년의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1871년에 그가 매긴 이 그림 값 1만8천 프랑은 도저히 팔릴 수 없는 가격이었으므로 이 작품은 그가 사망했을 때 94점의 유작들과 함께 발견되어 1,250프랑에 팔렸습니다.


마네의 친구 프루스트에 의하면 <놀란 님프>는 마네가 1860년에 대작 <물에서 구조된 모세>의 부분으로 바로왕의 딸 수잔나가 나일 강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마네는 전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자 이것에 <놀란 님프>란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027-1-3

마네의 <생퀭에서의 낚시 Fishing at Saint-Quen>, 1860-61, 유화, 76.8-123.2cm.


마네는 같은 시기에 그린 <생퀭에서의 낚시>에서 자신과 수잔의 은밀한 관계를 묘사했는데, 자신을 루벤스로 수잔을 루벤스의 부인 헬렌 푸르멘트로 묘사했습니다. 마네의 아들 레옹은 해변 저만치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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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96퍼센트가 행방불명이다


(사진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표지판에 ‘제주 보리 막걸리’라고 쓴 게 보이죠?


(우린 우리가 어디서 왔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됩니다. 먼저 조상님을 생각하겠지요. 그럼 조상님들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침팬지와 비슷한 인류의 조상을 생각하겠지요.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

얼마 전 EBS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프로그램에는 인류의 조상을 쥐로 묘사하고 쥐는 물고기 뭍에서 나온 결과로 묘사했습니다. 과학자들이 인체에 투여할 약물을 먼저 쥐에게 실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유전적으로 아주 많은 부분들이 쥐와 인간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보다는 생명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큰 물고기들 틈에 잡혀먹으니까 작은 물고기가 뭍으로 나와 쥐가 되었습니다. 뭍에는 공룡 외에 큰 동물들이 살고 있어 쥐는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밤에만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시력이 발달하고 청각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공룡이 멸종되고 쥐는 낮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물고기는 어디서 왔을까? 물속에서 번식한 박테리아를 떠올리게 됩니다. 박테리아는 어디서 왔을까? 모든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의 기본구성 단위인 아미노산amino acid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의문은 결국 아미노산이 어떻게 생성되었느냐 하는 문제로 집약됩니다. 지구 자체에서 생성되었을까? 아니면 외계에서 온 걸까? 호주에 떨어진 외계의 암석에서 아미노산이 발견되어 인간이 외계에서 왔다는 유머가 퍼졌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을 푸는 아미노산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기원은 생명의 기원을 말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주의 기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세 가지를 같은 의미로 반복해 사용한 건 그 때문입니다. “그렇담 너무 복잡해서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 하지 않겠어” 하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은 더 이상 아래의 글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복잡하지만 어디 과학자들이 그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알아야겠어” 하고 생각하는 분은 좀더 여러 편의 글을 읽어야 합니다.

이쯤되면 진화론 따위는 접어두는 겁니다. 진화론은 생명이 존속하기 어떻게 다르게 변해왔는지에 관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은 진화론이 시작되기 훨씬 이전의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지난번 글 ‘우리는 천조분의 일에 해당하는 복권에 당첨되었다’에서 빅뱅이 일어날 때 하나의 점에서 나온 유픽셀들이 38만 년 뒤 수소와 헬륨, 빛으로 변형되었다 한 것 기억하십니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수소와 헬륨보다 더 복잡한 화학원소들이 있습니다. 최초의 별들이 형성된 때 수소가 형성되었고, 약 7,500만 년 이후에 질소 같은 몇몇 원소들이 만들어진 것으로 과학자들이 추정합니다.


우주에 굉음을 내며 폭발한 빅뱅이 만든 최초의 별들의 크기는 엄청났답니다. 그 크기가 무려 우리 태양보다 1천 배나 됩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수십억 년 된 별들과는 달리 최초의 별들은 단 몇 백만 년 동안만 존재했습니다. 이런 별들에서 거대한 열과 압력을 일으키는 핵융합으로 인해 화학원소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초의 별들은 거대한 폭발과 함께 탄소, 규소, 산소 같은 화학원소로 된 초신성supernovae[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 폭발하는 별]이라는 별 먼지로 흩어지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화학원소들이 추가로 생성되면서 우주는 더욱 더 복잡해졌습니다. 말하자면 유픽셀들이 보다 복잡한 실체로 진화한 것입니다. 새로운 별들이 형성되면서 더욱 무거운 원자들이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원자들이 결합해 물과 같은 분자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더욱 복잡한 실체들이 형성되는 걸 이해하면 우리의 기원 혹은 생명의 기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세기 초 물리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아서 에딩턴 경Sir Arthur Stanley Eddington(1882-1944)은 “별에 대한 지식으로 통하는 길은 원자를 통해 인도되었고, 원자에 대한 중요한 지식은 별들을 통해 도달되었다”고 했습니다. 실로 우리와 우리 세계의 모든 화학원소들은 빅뱅의 여파이거나 별들의 핵반응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998년 별들에 대한 연구가 우주론과 물리학에서 큰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멀리 있는 별을 관측하던 과학자들이 우리 우주가 이전보다 더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입니다. 별들이 집단으로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리 우주는 지난 70억 년 동안 팽창률이 증가되어왔습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dark energy(hypothetical form of energy)의 존재를 제시했습니다.


암흑에너지? 과학자들도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과학자들이 아는 건 암흑에너지가 척력으로 작용해 우리 우주 속에 있는 모든 것을 한쪽으로 밀어내는 원인이라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더라도 과학자들은 우주의 질량을 추정함으로써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암흑에너지가 있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뒤 우주가 얼마나 빠르게 팽창하는지를 측정해 현재의 가속비율로 우주를 한쪽으로 밀어내기 위해 중력을 이겨내는 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예측할 수 있답니다.


팽창에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우주를 더욱더 팽창시키려면 우주 만물을 모두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하더라도 충분치 않습니다. 따라서 우주에는 물질보다 엄청나게 많은, 즉 물질보다 15배나 더 되는 암흑에너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카고 대학의 물리학자 마이클 터너Michael Turner는 우리는 실로 불합리한 우주에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암흑에너지 외에도 암흑물질dark matter이 또한 잠복해 있으며, 그것이 최초의 별과 은하를 형성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암흑물질은 전자기파를 복사하지 않은 채 오직 별과 은하들에 중력의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지만, 별빛이나 현재의 장비로는 그 자체를 밝혀낼 수 없으므로 그야말로 ‘암흑dark’인 것입니다.


은하계 바깥에 있는 별들의 급속한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암흑물질이라는 것이 제안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상물질normal matter이 너무 적게 존재해서 뉴턴의 운동법칙과 중력법칙에 위배됩니다. 뉴턴의 법칙을 수용하려면 얼마나 많은 물질이 요구될까? 답은 우리가 측정하고 체험할 수 있는 정상물질의 약 10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은 우리 세계의 마이너 성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암흑성분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일부 물리학자들은 그 답이 모든 곳, 즉 우주에, 여러분에게, 나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은 측정할 수 없고 오직 우리 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의해서만 추론할 수 있으므로 그것들은 행방불명인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우리 우주의 96퍼센트가 행방불명missing이라고 말합니다.


암흑물질에 관한 다양한 추론들이 제기되지만 유력한 이론은 없습니다. 빅뱅 발생 후 수 초 이내에 우리 우주를 에워싼 에너지 장인 힉스장Higgs field(힉스 입자의 바다)이 만들어졌습니다. 힉스 입자란 모든 소립자에게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를 말하는데, 피터 힉스가 1967년 자신의 논문에서 이 입자를 도입한 후 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힉스장이 암흑에너지의 출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최근의 견해이지만 개량된 입자가속기들이 다음 수년 안에 이 미스터리 힉스장의 증거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입자가속기particle accelerator란 물리학자들이 핵의 구조, 핵력의 성질,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는 핵들의 성질에 대해 연구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우리 돈으로 8조 원을 들여 14년의 공사 끝에 대형강입자가속기LHC(Large Hadron Collider)가 완성되어 작은 규모의 빅뱅을 실험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실험은 양성자끼리 1초에 6억 번 충돌이 일어나게 하는 것으로 충돌 순간의 온도가 태양 중심 온도의 10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실험으로 지구에 큰 재앙이 발생할 거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했다는 뉴스를 여러 분들이 접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실험에서 생기는 블랙홀이 지구를 삼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것입니다. 매우 위험하지만 인간의 기원 혹은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실험입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블랙홀의 수명이 짧아 주변의 물체를 삼키기도 전에 사라질 거라고 말합니다. 이런 내용은 신문에 기사로 이미 소개되었습니다.


2003년 6월 과학저술가 찰스 세이프Charles Seife는 저널 『사이언스 Science』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주를 한쪽으로 밀어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성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물리학에서의 가장 큰 의문이다.


물리학 분야의 탁월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장비로 이 암흑성분을 발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숨겨져 있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창조의 미스터리 목록에 추가되었습니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현재의 과학 이론의 결함을 드러내고 더욱 심원한 실재에 대한 잠재적 단서를 제시합니다.


별과 은하의 운동 연구가 우리를 암흑 미스터리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 태양계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도 수수께끼를 더 추가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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