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놀란 님프>
(작품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 1861, 유화, 144.5-112.5cm.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로 17세기를 루벤스와 더불어 대표하는 렘브란트Rembrandt(1606-69)의 <수잔나와 장로들 Susanna and the Elders>(1647)을 보면 <놀란 님프>와 비슷한 제스처를 취한 누드의 놀란 표정을 지은 여인이 있습니다. 마네가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고 그렸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때만 해도 마네는 아직 화단에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고 있었습니다.
님프란 하급 여신으로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정령으로 곧잘 등장합니다. 님프의 역할은 산, 강, 숲, 골짜기 등에 머물며 그것들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어로 님프는 아가씨 또는 신부를 의미합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아르테미스나 디오니소스 등 야성적인 수행하는 님프들도 있습니다. 숲속을 지나는 여행자들을 마력으로 유혹하기도 하고 자신을 본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미쳐버리게 만드는 등의 에피소드가 신화에 있습니다.
마네가 새 화실에서 본격적으로 작업에 몰두한 건 1860년부터였습니다. 그해에 부모님의 초상과 어머니의 초상 등을 거의 실물 크기로 그렸으며, 이듬해에는 아내 수잔을 모델로 <놀란 님프 Nymphe Surprise>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누드화인 동시에 그를 일약 유명하게 해준 <풀밭에서의 오찬>과 <올랭피아>에 등장할 누드의 예비 작품이기도 합니다. <놀란 님프>를 그리기 위해 그는 1859년부터 세 점의 유화 습작을 마친 후 1861년에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 또한 거의 실물 크기의 그림입니다.
<놀란 님프>에서 주목할 점은 관람자와 그림과의 관계가 새로워진 것입니다. 관람자가 모델의 긴박하고 개인적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네는 수잔의 누드를 고전적 포즈로 그렸는데,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1577-1640)가 성경에 나오는 수잔나를 이런 모습으로 그린 적이 있습니다. 벗은 몸을 관람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듯 몸을 옆으로 튼 포즈인데 렘브란트의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 Bathsheba with King David's Letter>와 <수잔나와 장로들> 그리고 프랑스풍의 로코코 양식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1703-70)의 <다나에 Danae>를 혼용한 풍만한 여체의 결정판입니다. 당시 <다윗 왕의 편지를 받은 바세바>와 <다나에>가 루브르 뮤지엄에 전시되고 있었으며, 마네는 그것들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북쪽 지방의 회화를 이용해 네덜란드 태생 수잔의 여체를 미화시키려고 한 것 같습니다.
<놀란 님프>는 1861년에 생페테르부르그Saint-Petersbourg에서 개최된 연례 황실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되었고, 파리에서는 1867년의 개인전을 통해 처음 선보였습니다. 1871년에 그가 매긴 이 그림 값 1만8천 프랑은 도저히 팔릴 수 없는 가격이었으므로 이 작품은 그가 사망했을 때 94점의 유작들과 함께 발견되어 1,250프랑에 팔렸습니다.
마네의 친구 프루스트에 의하면 <놀란 님프>는 마네가 1860년에 대작 <물에서 구조된 모세>의 부분으로 바로왕의 딸 수잔나가 나일 강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마네는 전체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자 이것에 <놀란 님프>란 제목을 붙였다고 합니다.
027-1-3
마네의 <생퀭에서의 낚시 Fishing at Saint-Quen>, 1860-61, 유화, 76.8-123.2cm.
마네는 같은 시기에 그린 <생퀭에서의 낚시>에서 자신과 수잔의 은밀한 관계를 묘사했는데, 자신을 루벤스로 수잔을 루벤스의 부인 헬렌 푸르멘트로 묘사했습니다. 마네의 아들 레옹은 해변 저만치에서 낚시에 여념이 없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