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니아 사람들은 세상을 과학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진은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에 관한 두 편의 글에 대한 블로거들의 반응은 이해하는 것과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부터 당분간 좀 더 쉬운 이야기를 하여 과학에 대한 블로거들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합니다. 어느 정도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다시 인간의 기원에 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저는 인간의 기원은 생명의 기원 그리고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난해합니다. 그러나 인내를 가지고 과학자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서서히 이해될 줄 압니다.)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은 저서 『위대한 설계 The Grand Design』(2010)에서 오늘날 우리는 천체들의 운동을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화산, 지진, 폭풍, 전염병, 살 속으로 파고드는 발톱 등을 악의적인 혹은 짓궂은 신들의 분노의 결과로 보았음을 지적했습니다.


호킹은 기원전 5600년경에 오리건 주의 마자마 화산이 폭발하여 몇 년 동안 바위와 불타는 재가 쏟아지고 여러 해 동안 비가 내려 분화구에 물이 채워져 오늘날 크레이터 호수Crater Lake라 부르는 호수가 생긴 것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는 물리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었지만, 오리건 주의 클라마스Klamath 인디언들은 전설이 말해주듯 원인에 의한 결과로 이해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전설은 이렇습니다. 下界(하계)의 추장 라오가 클라마스 인디언 추장의 아름다운 딸에게 반합니다. 그녀는 그를 거부했고, 라오는 앙갚음으로 클라마스 부족을 불로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이때 다행스럽게도 上界(상계)의 추장 스켈이 인간들을 불쌍히 여겨 하계의 추장과 싸움을 벌입니다. 결국 라오는 부상을 당하고 마자마 화산 속으로 퇴각합니다. 그리하여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은 결국 물로 채워집니다.


자연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무지가 고대인으로 하여금 인간의 삶의 모든 면을 제멋대로 지배하는 신들을 발명하도록 이끈 것입니다. 사랑의 신, 전쟁의 신, 해의 신, 땅의 신, 하늘의 신, 바다의 신, 강의 신, 비의 신, 폭풍우의 신, 지진의 신, 화산의 신 등이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신들이 기분 좋으면 인류는 좋은 날씨, 평화, 자연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누리지만, 신들이 기분 나쁘면 가뭄, 전쟁, 전염병, 유행병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고대인들은 자연 속에서의 인간관계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신들은 불가사의한 존재였고 사람들은 신들의 처분에 맡겨진 듯했습니다.


그러나 약 2600년 전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에 있던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의 도시 밀레토스Miletus 사람 탈레스Thales(기원전 624?-546?)가 등장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이 한결같은 원리들을 따르며 그 원리들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등장한 것입니다. 호킹의 말로 하면 신들이 지배한다는 생각이 물러가고, 우주가 자연법칙law of nature에 의해 지배되며 우리가 언젠가 해독하게 될 설계도에 따라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전면에 나서는 긴 과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물을 모든 물질의 본질로 보았으며, 기원전 585년 5월 28일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스의 사상가로 기원전 140년경에 활동한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에 따르면 탈레스는 기원전 624년에 태어났습니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의 역사학자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제58회 올림픽 대회(기원전 548-545) 때를 그가 죽은 나이로 78세로 잡았습니다. 탈레스가 쓴 글은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를 만한 수학 공식을 처음 제시한 인물은 탈레스와 마찬가지로 이오니아 사람인 피타고라스Pythagoras(기원전 580?-490?)였습니다.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피타고라스는 어린 시절에 이집트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종교적 학파를 세웠고, 그의 제자들은 그가 개발한 종교 의식과 훈련을 수행하며 철학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이 학파가 크로톤의 정치에 간섭한 뒤 몰락을 초래했는데, 피타고라스는 말년을 메타폰툼에서 보냈다고 합니다.


직각삼각형의 빗변의 제곱은 나머지 두 변의 제곱의 합과 같다는 피타고라스 정리는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배울 정도로 유명합니다. 그는 현악기의 絃(현)의 길이와 소리의 화성적 조화 사이에 성립하는 수적인 관계를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오니아 사람들은 세상을 과학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며 이해를 구했습니다. 그리스 북부의 이오니아 식민지 출신의 데모크리토스Demokritos(기원전 460?-370?)는 물체를 무한정 자를 수 없으므로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근본입자들로 이뤄졌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 근본입자를 원자atom라고 불렀습니다. 원자는 ‘자를 수 없는atomos’을 뜻하는 그리스어 형용사에서 유래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적 현상은 원자들의 충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트라키아의 아브데라에서 부유한 시민으로 살면서 동방의 여러 곳을 여행하고 장수를 누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의하면 그는 지식의 거위 모든 분야를 다루는 73권의 책을 썼습니다. 현존하는 건 윤리학에 관한 수백 편의 단편뿐입니다.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거주자에 불과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은 이오니아 과학자의 마지막 세대에 속한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기원전 310?-230?)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습니다. 그는 월식 중 달에 드리운 지구 그림자의 크기를 관찰하여 태양이 지구보다 훨씬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며 지구를 비롯한 행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오니아 학파가 이삼백 년 동안만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그들의 사상이 그리스 사상가들에게 심한 불안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에피큐리어니즘Epicurianism의 창시자인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us(기원전 341-270)는 “신들에 관한 신화를 따르는 것이 자연철학자들이 말하는 운명의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이유로 원자론에 반대했습니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목적은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은 냉정ataraxia, 평화, 공포로부터의 자유, 無痛(aponia, 무통)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기원전 384-322)도 인간이 영혼이 없는 죽은 물체들로 구성되었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므로 원자의 개념에 반발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서 그가 성립한 철학과 과학 체계는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오랫동안 뒷받침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17세기 말까지 서양 사상에 뿌리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수백 년에 걸친 과학혁명 후에도 그의 사상은 여전히 서양인에게 남아 있습니다.



서양 철학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믿은 이오니아 사람들의 과학으로 시작되었지만, 많은 그리스 사상가들에 의해 배척되었습니다. 과학은 2천 년 뒤 이탈리아의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갈릴레오Galileo Galilei(1564-1642)에 의해서 다시 채택되고 일반적으로 수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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