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픽셀, 주머니, 에너지 그리고 생명

결론부터 말하면 빅뱅 이후 단 수초 만에 우주의 유픽셀들이 보다 복잡한 실체들로 전환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한 원자를 형성했습니다. 이것들이 모여 별이 되고 그 별들이 나머지 화학원소들을 창조한 것입니다. 이 원소들이 결합하여 분자를 형성했습니다. 계속되는 복잡함으로의 변환은 유픽셀이 우리 자신을 포함해 우주 안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모든 것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과학자들은 에너지 형태인 이 유픽셀들이 어떻게 생명이 되었는지 아직 알지 못합니다. 단지 우주 안의 수십억 곳에서 수십억 년 동안 주사위를 굴리는 가운데 에너지가 생명이 되었을까? 또는 생명의 가능성을 주는 유픽셀에 미리 계획된 특징이라도 있었을까? 어쨌든 에너지가 생명을 초래한 것입니다. 모든 생명에는 에너지를 변형시키는 복잡한 화학반응들의 네트워크 연결이 요구됩니다. 즉 생명은 한정되고 갇힌 우주에서 에너지를 변형시키는 일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최초의 생명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박테리아는 소형 배터리와 유사한 에너지를 창조하기 위해 자신들의 세포 주머니 속으로 양성자를 밀어 넣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댐 속의 물이 수력전기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물을 산으로 끌어올려 댐 안에 채우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양성자들의 저수지가 전기를 만들고, 모든 박테리아가 그런 전기화학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미생물들은 양성자들을 밀어 넣는 데, 태양, 무기화학물질, 유기화학물질 같은 수많은 에너지원을 사용합니다.

오늘날의 박테리아가 원조생명original life의 후손이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졌으므로, 초기 생명이 유픽셀을 세포막 안으로 밀어 넣기 위해 유효 에너지원들을 이용했다는 가정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화학물질 주머니에 어떻게 생명이 주어졌을까?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존 휠러가 제시한 의식consciousness을 적용했는데, 유픽셀과 빅뱅을 실재로 전환시키는 것이 이 의식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의식은 최초의 생명 창조에 도움이 되었을까? 의식이 어떻게 생명보다 앞설 수 있을까? 과학자들이 시간은 하나의 신화이고 모든 시간[과거, 현재, 미래]은 저편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비교적 새로운 과학과는 달리, 진화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이 백 년 이상 연구해왔습니다. 과학과 많은 종교 이론가들 사이의 또 다른 투쟁의 장인 진화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진화는 생명을 이해하는 데 놀라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말했습니다.

우리가 회의주의에서 출발한다면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식으로 보이는 무엇이라도 폭넓게 수용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며 이는 특정 이유로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생명체는 진화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종을 만들어내고 가장 낯설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에서도 살아갑니다. 어떤 생물들은 해저에 있는 열수 분출구hydrothermal vents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곳의 온도는 화씨 300도[섭씨 149도]가 넘으며, 압력은 지표 환경의 몇 천 배에 달해 지구 표면에 사는 동물에게는 치명적입니다. 소위 얼음벌레ice worm들은 빙점 이하의 북극 얼음에서도 살 수 있습니다. 빙점보다 조금이라도 온도가 높아 따뜻해지면 용해되어 죽습니다.

진화는 기회 속에서 성장합니다. 이것은 대양 속, 얼음 속, 땅속 그리고 지구 표면의 극한 환경들에서 서서히 발전하여 생존하는 생물들에 의해 증명되었습니다. 생명의 이러한 상서로운 특징과 진화는 생물이 생물을 잡아먹고, 기생 혹은 공생하도록 만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종들의 진화가 인간과 무관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체 속에는 적어도 100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습니다. 이는 인체의 세포 수보다도 많은 것입니다. 박테리아의 크기는 인체 세포의 천분의 1보다 작으며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더 작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속에 사는 많은 박테리아들이 필요합니다. 수십 조의 장 박테리아는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데 필요하고, 수십 조의 다른 박테리아는 우리 구강의 다양한 부분에 이식하여 병원체를 억제하는 항생물질을 생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미생물들과 공진화co-evolution하는 가운데 가장 복잡하게 구성된 유기체라는 데 놀랍니다. 인간은 인체 세포, 몸속에 사는 유익한 박테리아, 몸 내외부에 사는 미생물과 병원균들의 모자이크입니다. 박테리아에 감염되면 궤양과 심장병에 걸리고,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몇 가지 암의 형태에 영향을 미칩니다. 인체에 침투하는 병원체 박테리아, 바이러스 그리고 그 외의 미생물들은 기회주의적이며 우리를 전멸시킬 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진화 덕분에 소위 면역체계라 불리는 복잡한 방어체계를 갖추게 되었으며, 이것이 특수 세포들과 면역 화학물질 분비를 통해 우리의 몸이 질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박멸하게 해줍니다.

인체의 가장 효과적인 화학물질들이 최신 침입자들과 싸우는 이런 방어 또한 진화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진화하는 면역-방어 분자와 새로이 진화한 병원균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적자생존을 위한 궁극적 진화 경쟁의 본질적 사례입니다.

면역 화학물질들은 암 치료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독약과는 달리 인간에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생명공학의 혁명이 이런 방어분자들의 분리와 생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진화론에 의존하는 생명공학은 횃불이 밤길을 밝히듯 이런 분자들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동물 및 그 밖의 생물들에서 많은 중요한 유전자와 생화학물질들이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인간과 아주 유사한 것을 발견하려는 경쟁이 뒤이어 일어났습니다. 진화에서 다른 생물들의 유전자를 비교할 때 좀 더 유사한 유전자들, 생명의 형태에 좀 더 가까운 것들이 진화 계도evolutionary tree에 있습니다. 암과 질병의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동물들은 면역 반응을 발달시켰습니다. 질병과 싸우는 분자의 한 유형인 인터페론이 인간을 포함하여 쥐와 많은 다른 동물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인터페론 분자는 종에 따라 약간씩 다릅니다. 예를 들면 원숭이 인터페론은 쥐 인터페론에 비해 인간의 것과 더 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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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도시설계가, 건축가, 물리학자, 의학자, 화가 1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와 마찬가지로 당대에 명성이 높았지만 두 사람 모두 사후에 더욱 위대한 예술가로 인식되었으며, 단지 르네상스의 대가들로서가 아니라 서양미술사 통틀어서 가장 뛰어난 인물들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근대의 초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의 개념을 확고히 했으며, 서양미술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예술가가 부와 권력의 수족이 아니라 독자적이고 고유한 창작의 세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생애를 통해 보여줌으로써 근대 예술가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화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모방함으로써 독특한 그의 양식을 좇으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를 존경한 라파엘로 산치오는 <아테네 학당>을 그리면서 플라톤의 모습을 레오나르도로 대신했습니다.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1483-1520)는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더불어서 르네상스의 3대 거장으로 불립니다. 궁정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열한 살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인 숙부 밑에서 자란 라파엘로는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회화를 배웠습니다. 아버지가 타계한 후에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화파의 지도자인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gino(1446?-1524)의 공방에서 도제수업을 받았습니다.


화가, 건축가,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1511-74)는 1550년에 『미술가 열전 Vite de piu eccellenti pittori ed architettori』을 출간했습니다. 미술가들의 전기를 포괄적으로 수집한 이런 종류의 책을 그가 처음 출간한 것입니다. 그는 초판에 레오나르도를 염두에 두고 찬사의 글을 썼습니다.

하늘은 이따금 인문학뿐만 아니라 신성까지도 대변하는 인물을 보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모방하게 하며, 우리의 정신과 지성이 하늘나라의 영역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

그러나 1568년의 재판에서는 이 구절을 삭제했는데, 이때는 미켈란젤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를 두고 누가 더 우수한 예술가냐고 묻는다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훨씬 많기 때문에 그가 미술에 끼친 영향이 월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더 문명에 기여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레오나르도의 업적을 꼽아야 할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미술뿐 아니라 과학에서도 선구자였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에게 화가란 세계를 탐구의 대상으로 보고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명료한 눈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계를 샅샅이 조사하려고 했으며, 또한 사물들에 감동을 받아 새로운 표현방법으로 재창조했습니다. 그는 만족을 모르는 실험가였습니다. 1519년 5월 2일 레오나르도가 타계하자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Francesco Melzi(1493-1570)는 “자연은 이제 그분과 같은 인물을 창조해내는 데 무력할 뿐”이라고 탄식하며 최대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물론 제자가 스승에 대해 쓴 글이라 객관성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예술가의 재능을 진정으로 아는 데는 제자가 오히려 더 적합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타계한 지 한 달 뒤 멜치는 스승의 의붓남동생들에게 스승의 타계소식을 알리면서 “그분은 저에게 있어 최고의 어버이셨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밀라노 태생의 멜치는 어렸을 적인 1508년 이후에 레오나르도의 제자가 되어 그와 함께 피렌체, 로마 등지를 돌아다닌 뒤 프랑스의 앙보와즈에 함께 거주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타계한 후에는 유산상속인이 되었습니다. 화가로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스승의 유고를 책으로 편찬했습니다. 그가 편찬한 책은 현재 바티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무려 5천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썼습니다. 글의 양으로 보면 그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저술가라고 해도 타당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록이 책으로 출간되길 바랐지만 생전에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생전에 120종에 달하는 글을 쓰고 말했지만, 현존하는 건 50종에 불과합니다. 이것들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였는데, 절반은 흘린 글씨로 왼손잡이가 동양식으로 쓴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37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성서를 포함하여 이솝, 디오게네스, 오비디우스, 리비, 플리니우스, 단테, 페트라르카, 포지오, 피치노, 풀치의 저술들과 맨드빌의 여행기, 수학 논문집, 우주구조론, 해부학, 의학, 농학, 수상술, 병법 등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012

레오나르도의 <어깨에 대한 해부학적 연구>, 28.9-19.9cm.


010

레오나르도의 <심장, 폐, 대동맥이 드러난 해부학상의 남자 모습>, 27.8-19.7cm.

레오나르도는 혈관, 신경, 근육의 조직을 세밀하게 관찰했으며 거의 정확했습니다. 왼손잡이 레오나르도의 글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적혀 있습니다, “심장은 그 밖의 근육보다도 훨씬 강하며 ... 피가 심장으로 돌아왔을 때의 열린 심장은 밸브를 잠갔을 때와는 다르다.


026

레오나르도의 <기하에 관한 도형과 노트; 우화적 표현>, 29.4-20.6cm.


레오나르도가 쓴 글을 양적으로 보면 과학과 미술에 관한 내용이 반반이며, 그 중 미술에 관한 것은 1651년에 『회화에 관한 논문』으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당시 출판사가 편집했지만, 글이 중복되고 짜임새가 없으며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내용 면으로는 우수하지만 문장력은 매우 취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016

프란체스코 멜치의 『회화에 관한 논문 Trattato della pittura』, 1520-50년경

레오나르도의 제자 멜치는 스승의 글을 정리하면서 주제별로 글 950편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리한 글은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회화를 오로지 회화로서만 익힐 수 있다는 당시의 사고를 부정하고 화가가 되려는 사람은 다른 화가의 작품을 모사하기보다는 자연을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면서 들에 나가 다양한 대상들을 바라보고 각 대상의 상이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화가는 해부학, 원근법, 명암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각과 경험을 중요시한 것으로 그의 사고의 근거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전래된 “우리의 모든 지식은 지각 안에 그 원천을 두고 있다”라는 문구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해놓은 증명들이, 경험 없이 얻어낸 판단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들의 권위에 맞서는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날 비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나의 작업이 나의 유일한 참스승인 순수하고 단순한 경험의 소산임을 알지 못하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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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수프primeval soup’에서 자기복제자가 생겨나다



우리 혈액 중의 헤모글로빈hemoglobin, 즉 척추동물의 적혈구 속에 다량으로 들어있는 색소 단백질, 혈색소는 전형적인 단백질 분자입니다. 그것은 아미노산이라는 더 작은 분자의 사슬로 되어 있으며, 각 아미노산에는 수십 개의 원자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헤모글로빈 분자에는 574개의 아미노산이 함유되어 있고, 아미노산은 4개의 사슬로 줄지어 있습니다. 아미노산은 생물체를 구성하는 두 개의 대표적인 물질 중 하나로 단백질을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최근 생명 탄생 이전 지구의 화학적 상태를 본뜬 실내 실험에서 푸린purine(요산 화합물의 원질, 무색의 결정으로 커피나 카카오의 종자, 차 잎 등에 함유되어 있음), 피리미딘pyrimidine(마취성의 자극적 냄새가 나는 결정체)이라고 하는 유기물이 생성되었습니다. 이것들은 유전물질DNA 자체의 구성요소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30~40억 년 전에 해양을 구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시 수프primeval soup’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있어났을 것으로 보고 이런 유기물이 해안 부근의 말라붙은 물거품이나 떠 있는 작은 물방울 속에서 국부적으로 농축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태양으로부터 자외선 같은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결합하여 더 큰 분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기분자가 만들어지자마자 박테리아나 기타 생물에 흡수되어 분해되기 때문에 거대 유기분자를 인지할 정도로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박테리아나 그 밖의 여러 생물이 생겨나기 전이라서 거대 유기분자는 점점 더 진해지는 원시 수프 속을 방해받지 않고 표류했을 것으로 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원시 수프 속에서 어느 날 놀랄 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겨났는데, ‘자기복제자’라고 말합니다. 현대판 DNA의 원형이 되는 자기복제자가 탄생한 것이 불가능한 일로 생각되지만, 1억 년 동안 복권을 산다면 당첨될 확률이 있는 것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자기복제자는 원시 수프 속에서 자기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 구성요소들과 어울리게 됩니다. 도킨스는 이때 그것들은 최초의 자기복제자가 된 때와 마찬가지로 점치 결합하여 안정된 사슬을 만들고, 이는 결정체들이 형성되는 방법이기도 한데 두 가닥의 사슬이 세로로 쪼개져 두개의 자기복제자가 되며, 그 각각이 다시 복제를 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각 구성요소가 동종이 아닌 다른 종류와 상호 친화성을 갖는 수도 있으며, 이런 경우 자기 복제자는 일종의 ‘음각’의 주형으로 작용합니다. ‘음각’이 본래 ‘양각’의 정확한 복제를 만들게 됩니다. 자기복제자의 현대판인 DNA 분자가 양-음형의 복제를 일으키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복제자는 태어나자마자 복제자의 복제물들이 해양 속에 빠른 속도로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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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공통점과 차이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의 부분, 1478-8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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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로마 피에타>의 부분, 1498-99년


위의 두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개성을 잔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보여주려고 한 레오나르도는 광야에서 종교적 시련을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제롬의 고난을 신앙의 승리로 보기보다는 거룩한 체험에 지친 혼으로 표현했습니다. 성자에 대한 허상의 이미지를 배척하고 성자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뇌의 늪에서는 지친 모습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줍니다.


미켈란젤로에게는 레오나르도와 달리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명상을 통해 환영의 세계를 관조하면서 최상의 즐거움을 종교적 희열에 두었습니다. 현실은 오히려 그에게 걸림돌이 되었고, 지고의 신앙에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을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 그 자신 천국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으므로 그의 작품은 이러한 신앙의 표현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를 지적하자면 우선 레오나르도는 정신보다는 물질이 근본이라고 생각한 유물론자이며 미래가 아주 밝다고 본 낙천주의자였습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이상주의자로 물질을 하찮게 여기고 물질에 앞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형상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정신만을 귀히 여겼으므로 매우 진지했고, 고독한 사람이었으며,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들을 경멸했습니다. 이러한 본질적 상이함이 두 사람의 작품에서 나타납니다. 미켈란젤로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체를 통해 순수하고 영원한 영혼의 모습을 관람자가 볼 수 있기 바란 데 반해 레오나르도는 그로테스크한 인간의 모습을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사는 세계를 관람자에게 확인시켜 주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현실주의자라면 미켈란젤로는 환영에 사로잡힌 현실도피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레오나르도에게는 사물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으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통적 도상이나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지식과 믿음을 배척하고 논리적, 분석적인 새로운 해석과 판단을 통해 과거의 오류에 대한 반성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전통적 도상을 무시했고, 야만시대의 종말과 이성시대가 열리는 역사적 분기점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당대의 신학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철학과 문학의 요람에서 교육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당대에도 난해한 단테의 『신곡』을 해설할 수 있을 정도로 박식했지만, 오늘날의 지성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 학문에 치우친 협소한 시각을 가졌습니다. 일찍이 그는 시각적 현상과 기교에 있어 독보적인 면을 과시했지만, 내용에서는 전통을 존중했습니다. <로마 피에타>를 예로 들면 대리석을 밀가루반죽 다루듯 쉽게 옷자락의 우미한 주름을 사실주의 방법으로 표현했으며, 아들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신의 어머니이자 딸로서 품위를 지키는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청순하고 우아한 자태로 표현하는 놀라운 기교를 시위했지만, 당대의 신학을 충실히 따른 것에 불과했습니다.


262

레오나르도의 <그로테스크한 남자의 옆모습>, 38.2-27.5cm.


483

미켈란젤로의 <델피의 무녀>의 부분, 1508-12년


미켈란젤로는 인체와 영혼에만 집착했을 뿐 그 밖의 것들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레오나르도는 목욕탕의 구조와 도시계획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위한 복지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골고루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인체의 형태를 알기 위해 인체해부를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생리학적 관점에서 인체의 구조와 기능을 알기 위해 해부하고 심근경색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을 밝혀냈습니다.


현실주의자인 레오나르도는 멋진 옷을 입고 오늘날의 고급 스포츠카에 해당하는 값비싼 말을 타고 다녔습니다. 손수 악기를 만들고 작곡과 연주를 하면서 풍류를 즐겼습니다. 그는 인생을 즐겁게 살기를 바랐고,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을 즐겼습니다. 그와 달리 중세적인 도덕관에 젖어 있던 미켈란젤로는 명성이 드높아 많은 돈을 벌었지만, 물질이 주는 풍요로움에 빠지는 것을 죄로 여기고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상류사회에 접근하여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현세의 안락보다는 내세의 영생을 소망했으므로 일찍이 자신이 속한 상류사회를 벗어났습니다. 그는 거의 아흔 해를 사는 장수의 복을 누렸지만, 인생이 길어지는 것을 오히려 죄를 더 많이 짓게 되는 요인으로 보고 스스로 염세주의의 짐을 졌습니다. 그의 삶은 금욕주의를 추구하는 구도자의 삶과 같았습니다.


두 사람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레오나르도는 미래의 사람이고 미켈란젤로는 과거에 속한 사람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언행에는 경박함이 있었지만 유쾌한 사람이었고 비관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노력으로 개척했습니다. 또한 그는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삶의 질적 향상을 위해 발명가로서 분주한 생을 살았습니다. 그는 인체를 기계에 비유하여 사용하지 않을 경우 녹이 슨다고 생각했으므로 늙어서도 끊임없이 드로잉하고 자신의 생각을 많은 글로 남겼습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과거 철학자와 신학자의 사상에 심취하여 언행에 신중을 기했고 많은 작업을 피하고 자신이 맡은 작업에는 완벽을 기하려고 전력을 투구했습니다. 그는 고상한 생각을 정해놓고 작업했으므로 늘 작품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근심이 많고 우울했으며 자책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지나치게 형이상학을 신뢰한 그가 나중에 신비주의에 빠지고 만 건 어쩌면 당연해보입니다.


두 사람 모두 독신으로 생을 마쳤고 동성연애자로 알려졌습니다. 동성애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폭넓게 이뤄졌습니다. 발랄한 성격의 레오나르도는 동성애로 기소당한 적이 있고, 주변에 잘생긴 젊은이들이 있었으며, 그는 그들과 여해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행동에 앞서 사고하는 기질의 미켈란젤로도 동성애자로 알려졌지만, 확증할 단서가 될 만한 행동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와는 달리 그의 삶은 닫혀 있었고, 가문과 자신에 관하여 말하기를 꺼려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엄청난 양의 글을 남겼으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며 열린 사람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구체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반해 미켈란젤로는 편지와 시를 많이 남겼어도 그것들이 철학적 내용이라서 그의 정신세계를 아는 데는 훌륭한 자료가 되지만, 구체적인 생활상은 알려져 있지 않아 후세 사람들에게 궁금증으로 남아 있습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스물셋 살이나 되다보니 레오나르도가 왕성하게 활동할 때 미켈란젤로는 아직 미술계에 발을 내딛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피렌체에서 인정받지 못한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피렌체에 돌아와 잠기 머문 적은 있지만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그곳에 뼈를 묻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와 로마에서 주로 활동했으므로 두 사람의 삶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겹치는 때가 별로 없어 두 사람을 한 환경 속에 두고 이야기를 구성하기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레오나르도에 관한 이야기가 전반에 다뤄지고 그의 사망 후 미켈란젤로의 남은 45년 동안의 활약상이 소개될 것입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두 거장이 공존하여 유럽 전역에 두 개의 산자락으로 미술의 지형을 바꾼 건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독보적인 존재로서 한 사람만 존재하는 것보다는 두 거인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 역사에 유익합니다. 르네상스 미술운동은 이탈리아의 부흥에 그치지 않고 유럽 전역으로 이어졌으며, 두 사람은 사양미술의 패러다임이 되어 500년 이상 존속했습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활약을 통해 르네상스의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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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생성할 수 있는 조건


지구가 운석과 혜성들의 포격을 받았을 때 화성도 두들겨 맞았습니다. 여기서 나온 많은 물질들이 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초기의 화성에 시내와 바다를 이룬 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화성 표면이 사막이지만 만년설 속에 그리고 표면 아래에는 많은 물이 아직도 있을 것입니다. 액체인 물은 초기의 지구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생물을 위한 집이었을 것입니다.


화성의 역사 내내 다른 물체와의 충돌로 표면에 생겨난 물질들이 우주로 배출되었습니다. 그 물질의 일부는 중력에 의해 지구로 끌어당겨졌습니다. 이런 운석들은 화성에서도 생명이 발생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입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화성의 생명이 지구 생명의 출처라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구에는 화성에서 온 것으로 믿어지는 35개의 운석이 있습니다. 나사NASA의 데이비드 맥케이David McKay는 이런 운석 중 하나가 과거 화성에 생명체가 있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맥케이는 1996년 8월 6일 남극에서 발견된 운석에서 최초의 화성 생명체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주제는 많은 논쟁을 야기했지만 화성에 대한 앞으로의 과제가 논쟁을 해결해줄 것입니다. 나사와 유럽 항공우주국이 향후 수십 년 내에 이루어낼 몇 가지 임무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 밖 생명체의 증거를 발견할 최고의 기회는 화성을 심층 탐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레드 호일 경과 찬드라 위크라마싱Chandra Wickramasinghe(1939-)이 1979년에 우리의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생명이 최초로 형성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했습니다. 이후에 이들은 단백질 효소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근거하여 그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의 추정치는 10-40,000이었습니다.


천체물리학자이며 뉴욕시의 헤이든 플라네타륨 천문관 관장 닐 디그래스 타이슨Niel deGrasse Tyson(1958-)은 생명을 위한 보다 간단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1. 에너지의 원천을 갖고 있어야 한다.

2. 복잡한 구조(분자)를 만들기에 충분한 원자를 갖고 있어야 한다.

3. 그 속에서 분자들이 상호 작용할 물이나 그 밖의 액체 같은 액체 용제가 있어야 한다.

4. 생명이 싹트기 위한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에 따르면 우리 태양계가 형성되기 전에 상당히 많은 기회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이 아직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천문학이나 생물학 같은 다른 과학 영역과 달리 이 분야는 매우 젊습니다. UCLA의 순고생물학paleobiology[화석 생물의 발생, 진화 등을 다루는 학문] 교수 윌리엄 스코프William Schoff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겨우 1950년대부터 시작된 활발한 연구와 함께 이 분야는 젊고, 약동하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주어진 시간과 노력, 그리고 상상력 풍부한 학생들과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어 우리는 언젠가는 생명의 기원이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창조는 모두 수학적 가능성에 관한 것입니다. 생명을 생산하기에 적합한 분자를 창조할 가능성은 대단히 낮습니다. 생명의 기원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우주의 기원에 관한 이론들도 고찰해야 합니다.


최초의 생명은 우리의 태양이 존재하기 전 행성들을 이끌던 수십억 개의 별들 중 일부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태양계의 재료는 소멸된 별들의 파편과 아마 그 별들의 행성에서 왔을 것입니다. 생명이 그 파편들을 타고 여행했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추론일 뿐입니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과정들을 통해서 생명의 창조를 설명하고자 하며, 실제로 이 과정들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 생명의 출현 The Emergence of Life on Earth』의 저자이며 텔아비브 대학의 콘 인스티튜트Cohn Institute 교수인 아이리스 프라이Iris Fry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떤 과학 이론이라도 지구상 생명의 출현에 관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한, 생명의 기원 문제에 대해 진화론적 견해를 채택하고 합목적적 설계론 사상을 배척하는 데는 매우 강한 철학적 책임이 따른다.


창조주를 믿는 데 신념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창조주를 배제한 생명의 기원을 믿는 데도 신념이 필요함을 간단하게 언급한 것입니다.


레오킴은 과학자들은 창조주의 개념을 배제할 증거를 갖고 있지 않으며, 유심론자들은 과학의 믿음에 위협받는다고 느낄 필요가 없다면서 과학과 영성이 불화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과학과 영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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