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오래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 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red giant star과 초신성supernova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되었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태양은 모든 물질, 아니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질은 두세 차례에 거친 항성 연금술의 결과물입니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초신성에서 유래한 충격파가 성간 기체와 성간 티끌로 구성된 성간운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중력 수축이 유발되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리 태양계입니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되었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들의 화학 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습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입니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입니다. 농사가 무엇인가? 태양 광선을 조직적으로 추수하는 방법에 다름 아닙니다. 마지못해 응하는 식물을 매개체로 하여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긁어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입니다. 따라서 인류는 전적으로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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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19세기 말, 두 가지를 제외하고 물리학의 거의 모든 것이 예증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의 예외는 이른바 에테르ether였습니다. 에테르는 진공 공간에 있는 신비로운 물질로 알려졌습니다. 즉 1800년대에 과학자들은 진공 혹은 진공 근처의 공간에 신비스런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원자와 물질에 대해 지금만큼 알지 못했으므로 우리는 그들의 그런 확신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이론을 제기하며 에테르의 개념을 부정했습니다. 그의 이론 또한 오차를 추가하여 정지된 우주와 일치시키고 팽창하는 우주이론을 부정했습니다. 정지된 우주란 팽창도 수축도 하지 않고 늘 같은 상태로 있는 우주를 말합니다. 아인슈타인은 훗날 이 오차는 그의 가장 큰 실수임을 시인했는데, 그의 본래 이론이 움직이는 우주를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21세기에 일부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오차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오차를 적절히 조절하여 반중력anti-gravity의 힘으로 암흑에너지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암흑에너지가 우리의 실재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암흑에너지는 우리 우주의 73%(23%는 암흑물질이고 나머지 4%는 감춰지지 않은 물질과 에너지.)에 해당한다고 알려졌으며, 과학자들은 암흑에너지가 점점 커져가는 우리 우주의 팽창 비율을 설명해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주는 또 다른 종류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많은 과학자들은 공간을 생각하지 않고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공간을 거의 빈 것으로 생각하지만, 양자이론quantum theory에 의하면 실제로 공간은 영점 에너지장zero-point field[진공이 아니라 물질이 충만한 공간]이라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런 에너지를 관측하거나 측정할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공간 에너지를 무시합니다.

공간에는 일시적인 소립자도 있습니다. 전자와 양성자 같은 소립자는 원자를 만드는 구성요소입니다. 이런 입자들을 우주의 가장 작은 구성요소로 여겨왔으므로 잘못된 명칭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도서출판 知와 사랑)의 저자 레오킴Leo Kim은 소립자 또한 유픽셀로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유픽셀은 그가 창안해낸 명칭입니다. 그리고 소립자 자체는 반대 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자 등의 모든 소립자에는 반입자anti-particle가 존재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우리 세계에서 반입자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물질 조각을 거의 광속으로 분쇄하는 입자가속기를 이용하여 반입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전자와 그 전자의 반전자anti-electron가 만나면, 서로를 소멸시키며 에너지를 산출합니다.

공간에 관한 이상한 사실은 그런 입자와 그것의 반입자들이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으며, 결합하면 즉시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입자를 만드는 에너지와 그것들의 소멸로 인해 방출되는 에너지는 과학으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의 일시적인 존재는 실험에 의해 확인됩니다.

물리학자이며 노벨상을 수상한 로버트 B. 로플린Robert B. Laughlin(1950-)은 대형 입자가속기 실험으로 공간이 빈 것이 아니라 물질로 가득 차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빈 공간과 물질은 거의 절대영도[-273.15C]로 냉각되는 것이 유사하며, 내부의 운동도 물리적으로 구별할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말하자면 보통의 물질이 충분히 냉각될 때 그것은 공간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혹은 공간이 물질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로플린은 진공은 아인슈타인이 부정한 에테르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것(에테르)은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이 실제로 진공에 대해 생각하는 대로 관심을 끈다.

진공에너지의 절대가치에 대해서는 상이한 평가들이 있습니다. 한 추론에 따르면 빈 공간은 우주에 있는 모든 에너지나 부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으며, 신비의 암흑에너지를 능가하는 약 40종의 거대한 것들이 있다! 다른 과학자들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있는지 확실히 알지 못합니다. 그 외의 과학자들은 아직도 진공에너지가 암흑에너지라고 믿고 있습니다. MIT 물리학 교수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프랭크 윌첵Frank Wilczek(1951-)은 빈 공간 에너지는, “……모든 물리학에서 가장 신비한 사실이며, 근간을 흔들 만큼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고 믿습니다.

알수록 놀라운 건 공간과 진공이 에너지로 가득 찼다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당황하게 하는 것은 진공이 다른 무수한 상태들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공 상태는 진공이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입니다. 무수히 가능한 진공 상태 가운데 몇몇 상태들만이 우리 우주 안에서 우리가 아는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무nothing라고 생각하는 것(진공 혹은 공간) 속에 에너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의 형태들이 또한 존재한단 말인가? 과학자들은 다른 우주들 속에는 자연의 상이한 특성 혹은 상이한 자연법칙이 있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학자들은 왜 우리는 우리 세계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특성을 갖고 있는지 깊이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양성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원자는 고정될 수 없을 것입니다. 천문학자 마틴 리스 경은 정교하게 들어맞는 몇 가지 요인들이 우리 우주에서 생명을 위한 조건들을 야기했다고 지적합니다. 다음의 요인들은 우리가 매우 특별한 우주에 살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첫째, 빅뱅으로 인해 헬륨으로 전환된 산소의 양이 너무 적었더라면 무거운 원자들이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며, 너무 많았더라면 오늘날 별들이 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째, 중력이 약했더라면 별들이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며, 강했더라면 별들이 아주 빠르게 연소되어 생명이 진화될 시간이 없었을 것입니다.

셋째, 우주의 밀도가 너무 작았더라면 우주는 빠르게 식었을 것이며, 너무 컸더라면 생명이 시작되기 전에 우주가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넷째, 우주의 가속이 너무 작았더라면 우주는 붕괴되었을 것이며, 너무 컸더라면 우주가 너무 빠르게 팽창하여 생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빙되었을 것입니다.

다섯 째, 우주의 불규칙성이 조금만 더 작았더라도 우주는 별들을 형성하기에 지나치게 획일적이었을 것이며, 조금만 더 컸더라면 우주가 거대한 별들을 창조했을 것이고 그 결과 별들이 붕괴되어 블랙홀들이 되어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세계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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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세실리아(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작가미상의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초상>, 대리석 릴리프, 지름 54.3cm.


밀라노 공화국은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할아버지 용병대장 무지오 마텐돌로가 세운 나라입니다. 그는 둘째 아들이자 정실소생인 프란체스코(1410~66년 재위)로 하여금 자신의 대를 이어 밀라노를 통치하게 했습니다. 프란체스코의 큰아들 갈레아조 마리아는 공작위에 올라 막강한 힘을 행사했고, 어머니를 독살하는 것을 비롯해 부덕하고 사악한 일을 많이 자행했습니다. 기록에는 “그는 기록으로 남길 수 없을 만큼 매우 부끄러운 일들을 저질렀다”고 적혀 있습니다.

갈레아조 마리아가 살해되었을 때 대를 이을 그의 큰아들 지안 갈레아조는 불과 여덟 살이었습니다. 프란체스코의 넷째 아들 루도비코 스포르차는 당시 바리의 공작에 불과했지만, 어린 왕자의 어머니가 섭정에 실패하자 왕자의 보호자를 자청하고 밀라노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루도비코는 “내가 권력의 짐을 지고 영예를 조카에게 남긴다”는 위선적인 말을 천명했습니다.

1451년 비제바노에서 태어난 루도비코는 레오나르도보다 몇 달 손위였습니다. ‘무어인 the Moor(아프리카 북서부 사람)’이라는 그의 별명은 머리카락과 피부가 검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를 13년 혹은 14년을 섬기게 되며 그도 루도비코가 검은 피부색임을 노트북에 적었습니다. 루도비코는 형제들과는 달리 잔인한 성격이 아니었으며, 피를 보는 걸 좋아하지 않아 적을 교수형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두터운 이중 턱의 그는 자기만족에 빠졌고, 실용적이었으며, 미신을 믿었고, 식도락가였습니다. 토스카나에서 수년 동안 망명생활을 한 그는 충분히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라틴어를 알고 웅변에 능했으며, 그리스 문화에 정통한 유명한 학자를 비서로 채용해 학교를 세우면서 밀라노를 새로운 아테네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는 메디치 가문을 모방하여 보석을 아로새긴 값비싼 것들을 수집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정책에 관심이 있음을 과시했습니다.

루도비코는 밀라노의 최고 권력자가 되자마자 열네 살인 밀라노 귀족의 딸 을 유혹했는데, 이름은 세실리아 갈레라니였습니다. 그녀는 류트를 연주했고, 시를 쓸 줄 알았으며, 미모가 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모던 사포 Sappho(기원전 600년경의 그리스 여류 시인)’라고 불렀습니다. 루도비코 주변의 미인들을 하나씩 물리치고 루도비코의 가장 사랑받는 여인이 된 그녀는 루도비코가 비트리스 에스테와 결혼하던 해 루도비코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레오나르도의 <세실리아(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1483-85년경, 패널에 유채, 54.8-40.3cm.

세실리아의 초상은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로 배경이 어두우며, 복원자가 거칠게 다뤄 머리, 어깨, 손 부분이 손상되었습니다. 앞 머리카락이 턱 아래로 내려와 있지만, 본래 투명한 베일이 있었으며 왼손은 색을 칠해 본래의 묘사 부분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엑스-레이 투사 결과 세실리아의 어깨 뒤로 문 혹은 창문이 있었지만, 복원자가 색을 발라 없애버렸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루도비코의 여인 <세실리아(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의 초상을 그린 후부터 루도비코와 가까워졌습니다. 담비는 루도비코를 상징하는 여러 상징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담비는 그리스어로 갈레gale로서 세실리아의 성 갈레라니의 앞 글자와도 일치합니다. 그녀의 초상은 레오나르도가 앞서 그린 지네브라 데 벤치와 닮았습니다.


250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의 <성 세바스천 모습을 한 젊은이의 초상>, 1494년경, 31.8-26.7cm.


이 그림을 그릴 때 암브로조 데 프레디스가 레오나르를 도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담비와 여인의 피부는 레오나르도의 솜씨임이 분명해보이며, 의상과 머리는 암브로조가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두 사람의 솜씨가 전혀 다르지만, 작품을 미리 주문받아 그리기 때문에 기일에 맞춰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기교를 구사하는 화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시로서는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남의 작품을 모방하고 남의 기교를 답습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사기행위는 없었습니다.


251

레오나르도의 <아름다운 페로니에르>, 1490-95년경, 패널에 유채, 63-45cm.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작품은 ‘밀라노 여인의 초상’으로도 불립니다.


레오나르도는 비슷한 시기에 <아름다운 페로니에르>를 그렸는데, 18세기에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이름을 ‘Leonard d’Awincj’라고 표기했으므로 일부 학자들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델이 세실리아를 닮았으며, 또한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이 <동굴의 성모>에서의 오른쪽 천사를 연상시키고, 레오나르도의 작품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작품 또한 암브로조의 협력으로 완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체적인 구도와 모델의 앉은 자세와 표정은 레오나르도가 의도한 것이겠지만, 짧은 머리와 부자연스러움은 암브로조의 솜씨로 보입니다. 암브로조는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의 첫 경쟁자였지만, 얼마 후 더 이상 레오나르도의 경쟁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궁정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485년이며, 1487년에는 밀라노의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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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운명은 적색 거성red giant star


수소 핵융합 반응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습니다. 태양이건 별이건 간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지역은 고온 고압의 중심부 일부일 뿐이며, 핵반응의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가 그 지역에 한없이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별의 운명, 별의 최후는 그 별이 얼마나 큰 질량을 가지고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별은 진화하는 과정에서 자기 질량의 일부를 공간으로 서서히 방출합니다. 방출하고 남은 질량이 태양의 2배 내지 3배 정도에 이른다면, 그러한 별들은 우리 태양과는 판이하게 다른 최후를 맞게 됩니다. 그렇다고 태양의 최후가 그저 밋밋할 뿐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태양의 최후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극적입니다. 앞으로 50억 또는 60억 년이 더 지나면 태양의 중앙부에 있던 수소가 모두 헬륨으로 변하게 되므로 중심핵 부분에서는 핵융합 반응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반응에 쓰일 연료 물질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헬륨으로 된 중심핵의 바로 바깥에는 수소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따라서 수소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는 지역이 중심핵 경계 지대에서부터 온도가 1000만 도가 되는 층까지 확장됩니다. 그러나 온도가 1000만 도가 안 되는 층과 표면 사이에서는 핵반응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편 태양의 자체 중력은 헬륨으로 가득 찬 중심핵을 짓눌러 다시 수축하게 됩니다. 헬륨으로 구성된 중심핵은 다음 단계의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에는 아직 충분한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 중력의 일방적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수축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축이 진행될수록 그 지역의 온도와 밀도가 지속적으로 상승합니다. 따라서 헬륨 원자들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고 이에 따라 원자핵 세계의 갈고리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밀착하여 핵력이 발동하게 되면 드디어 헬륨의 핵융합 반응이 시작됩니다. 수소가 타고 남은 재에 불과했던 헬륨에 다시 불이 붙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핵융합 반응의 잔치가 태양의 중심핵 부분에서 또 한 차례 벌어집니다.

태양은 새 연료인 헬륨을 태워서 추가 에너지를 얻는 동시에 탄소와 산소를 헬륨에서 합성해냅니다. 이 단계에서 그 내부 구조에 큰 변혁을 겪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가 급격히 팽창하고 대신 온도는 하강합니다. 태양은 이제 적색 거성red giant star이 됩니다. 가시광선으로 드러나는 태양 표면이 중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외각부에서 느끼는 중력은 미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까닭에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의 바깥 대기층은 항성풍의 형태로 공간에 서서히 흩어져 나갑니다. 벌겋게 부풀어 적색 거성이 된 태양은 수성과 금성을 집어삼키고 종내에는 우리 지구가지 자신의 품안에 넣어버립니다. 그러므로 내행성계가 완전히 태양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행성계의 최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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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의 밀라노 도시계획

 

작품을 Daum의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갔을 당시 그곳에는 일류 음악가와 시인들이 많았습니다. 그곳에는 훌륭한 대학이 있었으며, 파비아에 소재한 대학에는 90명의 교수들이 법학·의학·철학·수학을 가르쳤습니다. 최초의 그리스어 책이 발간되기도 했으나 미술에 있어서는 마스터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롬바르드 양식 Lombard style’이란 혼성 방법으로 조토와 피사넬로, 그리고 훗날의 토스카나·베네치아·플랑드르 예술가들의 영향이 어우러진 것입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 오기 전까지는 그곳의 유일한 주요 예술가로 빈첸조 포파를 들 수 있습니다. 브레스치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타계한 빈첸조는 밀라노에서 주로 활약했습니다. 바사리에 의하면 그는 파도바에서 수학했고 원근법에 뛰어났으며 양식에 있어서는 만테냐의 영향이 두드러졌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에서 활약함으로 해서 이 도시의 롬바르드 양식 회화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로부터 수학한 도나토 브라만테Donato Bramante(Donato di Angelo, 1444년경-1514)가 밀라노에 있었지만, 그는 회화보다는 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회화를 포기한 듯했습니다. 바사리는 그를 새로운 브루넬레스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밀라노 공작으로부터 청동기마상을 의뢰받고 싶어 했듯이 브라만테 역시 공작으로부터 건축을 위임받고 싶어 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건축가이자 화가인 브라만테는 성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초기에는 회화에 헌신했지만, 건축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우르비노 근처에서 태어나 우르비노의 페데리코 다 몬테펠트로의 궁전에서 수학했고, 라벤나와 만토바를 여행했습니다. 그가 밀라노에 안주한 때는 1480년경이었으며, 1481년에 현존하는 건축에 관한 디자인을 엔그레이빙으로 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의 첫 건축물 산타 마리아 예배당을 디자인했습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프레스코는 밀라노의 브레라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1480-85년경에 그린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입니다. 1499년에 로마로 갔으며, 1506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을 개축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에서 화가로 활약한 기록이 없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건축에만 전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사리에 의하면 바티칸 스탄차에 있는 라파엘로의 프레스코 <아테네 학당>에 보이는 건축적 배경을 브라만테가 디자인했습니다. 라파엘로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를 <아테네 학당>에서 수학자 유클리드로 묘사했습니다.

레오나르도와 브라만테 두 사람 모두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알베르티의 이론을 좋아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건축에 관심이 아주 많았으며, 여덟 살 정도 연상인 브라만테는 류트를 즉흥적으로 연주하기 좋아했고, 또한 음악 감상을 즐겼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갖고 있는 지식을 나눴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브라만테는 시에도 관심이 많아 소네트를 쓰기도 했습니다. 그는 같은 나라 예술가들을 시기하지 않았고, 레오나르도의 재능을 칭찬했으며 훗날 라파엘로를 바티칸에 소개했습니다.


240

레오나르도의 <두 레벨로 구획된 도시 드로잉>

두 지역을 높낮이로 구획하면서 높은 지역은 사람들의 통행지역으로 상류층과 고상한 건물들이 건립되며, 수로 가까이에 있는 낮은 지역은 물품을 보관하고 소매상인과 기술공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의 거주지역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지독한 엘리트주의로 보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지를 따로 정한 건 “끊임없는 고난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강둑을 따라 정돈된 이상적인 밀라노 도시를 구상했습니다. 노트북에 의하면 도시를 5천 채의 집이 있는 마을 다섯 개로 구획하고 각 마을에 3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도시를 계획했습니다. 그는 수로에 의한 십자형의 새로운 도시를 구상하면서 수로가 운하 역할을 하고, 정원에 물을 대며, 풍차칸과 수문으로 거리의 먼지를 닦아내게 했습니다. 건물의 외관을 높이고 거리의 폭을 넓게 해서 가능한 많은 빛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으며, 굴뚝을 지붕보다 높게 만들어서 연기가 위로 흩어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서 하수도를 만들어 사용한 물이 주거지역에서 흘러나가게 했습니다. 노트북에는 건물 내부에 화장실이 넉넉해야 하고, 걸터앉는 시트를 현대화하여 회전문처럼 360。 회전해야 하며, 천장에 많은 구멍을 내어 환기가 잘 되게 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252

레오나르도의 <건축에 관한 습작>, 14.5-21.9cm.


레오나르도는 1484년 밀라노를 강타한 전염병 페스트로 인해 도시계획에 더욱 적극적이었습니다. 이 전염병은 15세기에 유럽의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인구를 크게 감소시켰습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격리되었고, 그들이 사용한 옷과 침구는 사망 후 불에 태워졌습니다. 매장 인부들은 페스트로 죽은 사람을 매장할 때는 많은 돈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의 시신은 방치되었고, 자치 단체에서 구덩이를 파고 이들을 묻어주어야 했습니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 Decameron』에서 적은 대로 “형제가 형제를 떠나고, 삼촌이 조카를 남겨두고 떠나며, 종종 아내가 남편을 두고” 떠났듯이 최상의 방법은 모든 것을 두고 공기 좋은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울부짖으며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검은 죽음’으로 불리는 페스트는 1479년 피렌체에서도 퍼진 적이 있었지만, 수주 후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나 밀라노의 경우 전지역의 4분의 1에서 2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사망자의 수는 수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전염병의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도시계획을 도심과 도시 밖으로 넓게 확장해 구상했습니다. 그는 지도와 밀라노에 관한 책자를 참조했는데, 그만이 도시계획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알베르티, 비트루비우스, 필라레테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당대에는 브라만테와 프란체스코 마르티니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도시계획을 누구에게 보여주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노트북에는 ‘존귀하신 루도비코 경에게’라고 적혀 있지만 미완성의 편지입니다. 그가 정녕 자신의 도시계획이 실현되리라 믿었고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거대한 작업을 자신이 맡아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도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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