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이야기: 처세


 

 

 

 

남의 도움으로 살기보다는 가난한 생활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남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자기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사람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지나치게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빵의 이스트, 소금, 그리고 머뭇거림입니다.

항아리 속에 들어있는 한 개의 동전은 시끄럽게 소리를 내지만, 동전이 가득 찬 항아리는 조용합니다.

명성을 얻으려 달리는 자는 명성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명성에서 도망쳐 달리는 자는 명성에 붙잡힙니다.

물건을 훔치지 않는 도둑은 자기를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여섯 개의 쓸모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셋은 스스로 조정할 수 없는 것들이고 다른 셋은 인간의 힘으로 가능합니다. 전자는 눈, 귀, 코이고, 후자는 입, 손, 발입니다.

당신은 혀한테 “난 잘 모릅니다”란 말을 열심히 가르치십시오.

공짜로 처방전을 써 주는 의사의 충고를 듣지 마십시오.

항아리의 겉을 보지 말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걸 보십시오.

나무는 그 열매에 의해서 알려지고, 사람은 업적에 의해서 평가됩니다.

열리기 시작한 오이를 보고 그 오이가 장차 맛있게 자랄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행동은 말보다 그 소리가 큽니다.

남에게 자기를 칭찬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 입으로 자기를 칭찬해서는 안 됩니다.

노화를 재촉하는 네 가지 원은은 공포, 분노, 자식, 사악한 아내입니다.

사람에게 자신을 갖게 하는 세 가지는 훌륭한 가정, 훌륭한 아내, 훌륭한 의복입니다.

한 개의 촛불로써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의 빛은 약해지지 않습니다.

달콤한 과일에는 그만큼 많은 벌레들이 꼬입니다.

다른 사람들 모두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벌거숭이가 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 모두 벌거숭이일 때에는 옷을 입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 모두 앉아 있을 때에는 일어서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 모두 서 있을 때에는 앉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 모두 울고 있을 때에는 웃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 모두 웃고 있을 때에는 울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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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와 <로렌초> <낮>과 <밤> <황혼>과 <새벽>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 안의 무덤을 위해 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를 중지해야 했던 미켈란젤로의 선택은 당시 메디치 가의 명성을 감안한 정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막내아들 줄리아노와 그의 조카 로렌초(장남 피에로의 아들)는 피렌체를 지배했던 인물로서 레오 10세와 프랑스와의 정치적 관계를 위해 정략 결혼했습니다. 로렌초는 우르비노의 공작이고 줄리아노는 느무르의 공작으로, 두 사람 모두 유명한 군인은 아니었지만 당시 레오 10세의 교황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었습니다. 로렌초는 피렌체의 민병대장이 되어 피렌체를 독재체제로 다스렸기 때문에 나쁜 평판을 자초했습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조상을 벽감에 장식했을 때 사람들은 조상이 두 사람을 닮지 않았다고 비평하자 미켈란젤로는 “천 년 후 누구도 두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이것도 그가 물리적으로 닮은 형상을 창조하기보다는 내재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음을 알게 해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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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예배당의 내부. 제단 뒤에서 바라본 모습, 1520-34년, 대리석.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얼굴은 각각 예배당 입구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입구 쪽 벽에는 성 모자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코스마스>와 <다미안> 상이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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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무덤의 구상>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예배당 안의 무덤을 장식한 조각은 여덟 점으로 14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는 쏜 살과도 같은 시간의 흐름을 대리석으로 비스듬히 기댄 누드로 의인화하여 묘사했는데, 그것이 <밤>, <낮>, <황혼>, <새벽>입니다. <낮>과 <밤>으로 줄리아노의 석관 위를 장식했으며, <새벽>과 <황혼>으로 로렌초의 석관 위를 장식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시간이란 육체에 종속된 인간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억누르는 실질적인 고통의 상태를 상징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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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무덤, 밤과 낮>

무덤의 도식은 세 인물의 그룹입니다. 잠든 모습이 아니라 앉아 있는 고인, 그리고 급경사를 이룬 관 뚜껑 위에 누운 두 동반자입니다. 이들은 당시 죽은 사람의 경호인으로 선택된 인물들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입니다. 배치의 특이함이 눈에 띄는데, 무덤이 인물들을 동반한 독립된 건축물로 벽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무리 장식이 붙은 관만 벽 앞쪽으로 나와 있고, 주인공은 벽 속에 들어앉은 모습입니다. 공간적으로 완전히 상이한 두 요소가 합쳐져서 하나의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삼각형 구조를 이루도록 의도되었으며, 건물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일치감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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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로렌초 무덤, 황혼과 새벽>

벽감 속의 인물은 누운 인물들의 머리 사이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내려앉은 모습입니다. 누운 인물들은 그들이 자리 잡은 토대와 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 뚜껑은 두 사람이 눕기에 매우 비좁으며, 표면 또한 몹시 가팔라서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배치를 한 것으로 봐서 미켈란젤로가 자신감에 넘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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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낮>,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85cm.

<낮>은 석관을 장식한 네 조각상들 가운데 가장 늠름하면서 심하게 왜곡되어 뒤틀린 모습입니다. <낮>과 <밤>의 자세는 대비가 됩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낮>의 얼굴은 거대한 어깨 뒤로부터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고, 미오나성의 얼굴은 불명료한 형상의 빛과 시간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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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황혼>,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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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황혼>의 부분

<황혼>에서도 얼굴이 불명료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완성으로 남긴 거친 얼굴과 손발은 매끈하게 연마된 몸과 대비를 이룹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대위법을 통해 표현을 극대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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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새벽>, 1524-27년경, 대리석, 길이 206cm.

<황혼>의 눈은 아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새벽>의 우아한 손발은 석관 뚜껑의 유연한 선과 일치를 이룹니다. 줄리아노의 <밤>과 <낮>, 그리고 로렌초와 <황혼>과 <새벽>은 의도적으로 거울처럼 대비가 되도록 구성한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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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밤>,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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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밤>의 부분


<낮>과 <황혼>은 고대 조각들처럼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새벽>도 당대 기록에 의해 그렇게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내용을 짐작할 만한 표현요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밤>은 별과 달로 장식된 관을 쓰고 꿈을 연상시키는 일그러진 두상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습니다. 발치에는 밤의 여신을 상징하는 양귀비와 올빼미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밤>은 자연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지만 자연주의 자체는 아니며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 관념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새벽>의 경우 그녀의 입, 길게 늘어진 배, 어뢰처럼 생긴 젖가슴, 둥글고 부드러운 다리가 빚어내는 미끈한 곡선은 후대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관능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와 달리 <밤>의 어깨와 엉덩이는 야위고 작으며 늘어진 젖가슴과 배에 깊이 패인 주름은 출산과 육아를 두루 경험한 여성임을 알게 해줍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밤>은 모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작품은 다른 것에 비해 많은 주목을 끌었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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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3cm.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프랑수아 1세로부터 느무르 공작 칭호를 받았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후원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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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로렌초>,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8cm.

우르비노 공작인 로렌초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종손입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조각은 각각 석관 위 벽감 안에 있습니다. 윤곽선이 뚜렷한 줄리아노의 조상은 최종적인 마무리 손질을 통해 기민한 자세가 더욱 살아났습니다. 이에 비해 로렌초의 조상은 미완성이지만, 작품의 성격과 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표면에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조각칼 자국이 빛을 흡수하여 광택이 적게 나기 때문에 인물은 사색에 잠긴 사상가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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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큰 촛대 주각>, 1531년경, 대리석

미켈란젤로는 1531년경에 두 개의 <큰 촛대 주각>을 제작해 제단을 장식했습니다. 여기에는 희생을 상징하는 사다새로 장식되었고, 다른 하나에는 부황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불사조가 장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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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강의 신을 위한 모델>, 1524-27년경, 찰흙, 나무, 양털, 길이 180cm.

미켈란젤로는 새로운 성물실을 장식하려고 1524년경 <황혼>과 <새벽> 아래 망각을 의미하는 강의 신을 제작하기 위해 찰흙으로 모델을 두 점 만들었습니다. 코시모 1세가 이 모델을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에게 선물로 주었고, 암마나티는 현재와 같이 받침대를 만들어 보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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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은 괴로움에 대한 자연적인 반응이다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를 긍정적인 것보다 더 빨리 감지합니다. 인간과 같은 사회적 동물에게 있어 위협이나 기회를 알리는 일차적 신호인 표정을 보면, 공포의 표정은 행복이나 중립적 감정을 나타내는 표정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인식되는데, 이는 편도체에 의한 빠른 인식 때문으로 보입니다. 연구 결과 뇌는 부정적 신호에 이끌립니다. 편도체는 측뇌실 하각의 전단에 있는 대뇌핵의 하나로 편도를 닮은 점에서 이런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비록 부정적인 경험을 잊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뇌에는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남습니다. 이들 잔재들은 남아 있다가 이전의 기억과 유사한 두려운 사건에 마주치면 즉시 다시 점화할 준비를 합니다.

부정적 기억은 우리를 염세주의자로 만들고, 과잉반응을 하게하며 점점 더 부정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우리의 뇌에는 부정적 경향이 원초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회피 태세가 되어 있습니다. 부정적 경향은 다양한 방법으로 괴로움을 야기합니다. 먼저 항상 일정 수준의 불쾌한 긴장 상태를 일으키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상당히 강한 수준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기 성찰이나 명상 수련 등의 내적 주의집중은 긴장 상태에서는 어려워지는데, 이는 뇌가 항상 주변을 살펴서 문제가 없는지를 확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경향은 여타 불쾌한 감정들, 즉 분노, 슬픔, 우울, 죄책감, 수치심 등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지나간 상실과 실패를 강조하고, 현재의 가능성을 폄하하며, 미래의 장애를 과장합니다. 그 결과 마음은 계속해서 사람의 성격, 행동, 가능성에 대해 부당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판단의 무게 때문에 우리는 약화되고 지쳐 떨어집니다.

불교에서는 괴로움을 갈망이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세 가지 번뇌인 탐욕貪慾, 진에瞋恚(화냄), 우치愚癡(어리석고 못남) 삼독三毒(탐진치)을 통해 나타난 결과로 봅니다. 삼독은 넓은 범위와 사고, 그리고 말, 행동, 특히 스쳐 지나가는 숨은 것들을 모두 포괄하는 강력하고 전통적인 개념입니다. 탐貪이 당근을 움켜쥐려는 것이라면, 진瞋은 채찍에 반발하는 것입니다. 양자 모두 더 큰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치癡는 사물의 객관적인 실재를 파악함에 있어 무지한 것입니다. 예컨대 사물의 연관과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 등입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때로 삼독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대개는 우리의 의식 기저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회로를 조정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의 뇌가 내적 경험과 외부 세계 모두를 묘사할 수 있는 방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활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시각에는 좌우 모두 맹점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시각적 구멍이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뇌는 맹점의 결여된 정보를 보충하여 시각을 완성하는데 이는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보정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외부에 실재한다고 보고 있는 것의 대부분이 실은 우리 뇌 속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낸 영화 장면처럼 처리된 정보입니다. 후두엽으로 보내진 정보 중 극히 일부만이 직접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시각정보입니다. 나머지는 뇌 내부의 기억 저장고와 인지-처리 모듈에서 오는 정보입니다. 우리의 뇌는 세계를 시뮬레이션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실재와 매우 유사한 가상현실인 셈입니다.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전전두엽의 위쪽 가운데에 위치한 시뮬레이션 장치 내부에서는 짧은 영화가 계속 상영되며, 이러한 작은 영화 조각들이 우리의 의식적 정신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300여 만 년에 걸쳐 뇌는 그 크기가 세 배로 증가했는데, 그 대부분은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영역으로, 이는 생존에 시뮬레이션 능력이 매우 크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시사합니다.

시뮬레이션 장치가 상영하는 단편 영화들은 제한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게다가 고통스러운 감정에 집착하여 실제로는 일어나지도 않거나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고통을 과장합니다. 그리고 이 시뮬레이션 장치는 매 순간, 매일, 우리의 꿈속에서까지도 신경 구조를 형성하여 괴로움을 더해 갑니다.

우리 모두는 때로 괴로워하며, 많은 이들은 크나큰 괴로움 속에 살아갑니다. 연민은 괴로움에 대한 자연적인 반응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도 포함됩니다. 자기 연민은 자실을 불쌍하게 여겨 동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연민은 순수한 온정, 배려, 그리고 선의로 타인에 대한 연민과 근본적으로 흡사합니다. 자기 연민은 자긍심보다 더 정서적이므로 어려운 상황의 영향력을 줄이고, 자기평가를 유지하며, 괴로움에서 회복하는 데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자기 연민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스스로의 괴로움에 마음을 닫고 있는 사람이 타인의 괴로움을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일상 속의 괴로움에 더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과정 중에 부딪히는 어려운 경험들도 연민의 대상이 되어 마땅합니다. 더욱 행복하고 현명하며 사랑에 넘치는 존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신경계 내의 오래된 본능에 거슬러가야 합니다. 때로 계, 정, 혜 삼학三學 수련은 자연스럽지 않은데, 계는 효과적으로 작동하던 정서적 반응을 제한하며, 정은 외부에 대한 경계를 감소시킵니다. 또한 혜는 한때 우리의 생존을 돕던 믿음들을 단절시킵니다.

삼학은 괴로움의 원인을 끊기 위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를 느끼기 위해, 변화하는 순간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쾌와 불쾌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게 하기 위해 진화적 틀에 역행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삼학을 중단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무엇을 거스르고 있으며 어떤 자기 연민을 가져야 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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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 메디치 가의 화려한 무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메디치 가가 1512년 다시 피렌체의 실권자가 되자 미켈란젤로는 1514년부터 1534년까지 피렌체에 거주했으며, 메디치 예배당의 무덤 장식을 마친 후부터 사망하는 1564년까지는 로마에 거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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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궁전 창문>, 1517년경

창문은 벽 위 아치 모양으로 아래로 길게 직사각형으로 늘어진 벽감 속에 있습니다. 창문은 바닥에서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어 마치 문처럼 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1517년경 한때 메디치 은행이었던 피렌체의 메디치 궁전150에 낮은 창문들을 디자인했습니다. 창문과 문의 형태를 혼용해서 문과 같은 창문이 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지면으로부터 까치발처럼 생긴 가늘고 긴 받침대를 벽에 장식하고 그 위에 창턱을 놓고 난 후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문 위를 삼각형 지붕 모양으로 장식하면서 지붕을 얼굴, 창문을 몸통, 까치발을 다리로 의인화했습니다. 다양한 활용법으로 보아 그는 건축의 기능과 건축적 요소의 활용에 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1520년, 마흔다섯 살의 미켈란젤로는 산 로렌초 성당 내 메디치 예배당에 메디치 가를 위한 무덤을 장식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작업은 메디치 가의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막내아들 줄리아노와 그의 조카 로렌초(우르비노 공작)가 5월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으로 그는 율리우스의 무덤 장식을 계속할 수 없었으며, 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 작업도 서서히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메디치 가의 두 교황인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는 미켈란젤로가 자신들이 의뢰한 작업에 전념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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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제등은 여덟 개의 창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덟이란 숫자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제등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망자를 깨우는 부활의 전령사처럼 무덤을 장식한 조각상들을 생동감 있게 깨웁니다. 해가 지고 빛이 사라지면 어둠 속에서 예배당은 다시금 고요한 무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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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1524-25

돔은 로마에 있는 유명한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중한 고대의 판테온 지붕과는 달리 메디치 예배당 지붕은 가뿐해 보이도록 가볍게 처리하면서 빛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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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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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천장>


메디치 예배당은 브루넬레스키의 옛 성물실 맞은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1519년부터 1534년 사이에 예배당 건물을 더욱 높게 했으며, 벽과 벽이 연결되는 부분을 더 밀도 있게 표현했습니다. 예배당 전체가 돌과 대리석만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돔 아래 예배당 벽은 내구력이 있는 질 좋은 회록색 사암 뒤로 사라졌고, 벽기둥과 벽 윗부분 장식으로 두른 돌출부가 우유 빛 대리석 무덤을 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목수의 복잡한 나무장식처럼 제작해 돌과 돌 사이를 장식했는데, 이런 식의 건축은 조각에 더 가까우며 유기적이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예배당의 돔 위에는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우아한 대리석 제등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지붕은 구리로 되었으며 여덟 면의 창문틀은 금으로 도금되었습니다. 가늘고 높게 솟은 하얀 대리석 제등은 붉은색 타일을 덮은 지붕 위에서 색의 대조를 이루며 마치 피렌체 거리에 봉화대를 세워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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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헐뜯음


남을 헐뜯는 건 살인보다 위험합니다. 살인은 한 사람만 죽이지만, 중상모략은 반드시 세 사람을 죽입니다. 즉 퍼뜨리는 사람, 그것을 반대하지 않고 듣는 사람, 그 화제가 되고 있는 사람이 그들입니다.

남을 헐뜯는 자는 무기를 사용해 사람을 해치는 것보다 죄가 무겁습니다. 무기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상대를 해칠 수 없지만, 중상은 멀리서도 사람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타고 있는 장작에 물을 뿌리면 불씨까지 차갑게 되지만, 중상으로 크게 노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사죄한다 해도 마음속의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선인이라도 입버릇이 나쁜 인간은 훌륭한 궁전 옆에 있는 악취가 심하게 풍기는 가죽공장과 같습니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입니다. 이는 듣는 쪽을 두 배로 하라는 뜻입니다.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건 뜬소문을 듣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뜬소문이 들리면 얼른 귀를 막아야 합니다.

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입니다. 인간도 입으로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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