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와 <로렌초> <낮>과 <밤> <황혼>과 <새벽>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 안의 무덤을 위해 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를 중지해야 했던 미켈란젤로의 선택은 당시 메디치 가의 명성을 감안한 정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막내아들 줄리아노와 그의 조카 로렌초(장남 피에로의 아들)는 피렌체를 지배했던 인물로서 레오 10세와 프랑스와의 정치적 관계를 위해 정략 결혼했습니다. 로렌초는 우르비노의 공작이고 줄리아노는 느무르의 공작으로, 두 사람 모두 유명한 군인은 아니었지만 당시 레오 10세의 교황군을 지휘하는 사령관이었습니다. 로렌초는 피렌체의 민병대장이 되어 피렌체를 독재체제로 다스렸기 때문에 나쁜 평판을 자초했습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조상을 벽감에 장식했을 때 사람들은 조상이 두 사람을 닮지 않았다고 비평하자 미켈란젤로는 “천 년 후 누구도 두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응수했습니다. 이것도 그가 물리적으로 닮은 형상을 창조하기보다는 내재한 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겼음을 알게 해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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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예배당의 내부. 제단 뒤에서 바라본 모습, 1520-34년, 대리석.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얼굴은 각각 예배당 입구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입구 쪽 벽에는 성 모자상을 중심으로 양 옆에 <코스마스>와 <다미안> 상이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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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메디치 무덤의 구상>
미켈란젤로가 메디치 예배당 안의 무덤을 장식한 조각은 여덟 점으로 14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그는 쏜 살과도 같은 시간의 흐름을 대리석으로 비스듬히 기댄 누드로 의인화하여 묘사했는데, 그것이 <밤>, <낮>, <황혼>, <새벽>입니다. <낮>과 <밤>으로 줄리아노의 석관 위를 장식했으며, <새벽>과 <황혼>으로 로렌초의 석관 위를 장식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시간이란 육체에 종속된 인간의 영혼을 어지럽히고 억누르는 실질적인 고통의 상태를 상징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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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무덤, 밤과 낮>
무덤의 도식은 세 인물의 그룹입니다. 잠든 모습이 아니라 앉아 있는 고인, 그리고 급경사를 이룬 관 뚜껑 위에 누운 두 동반자입니다. 이들은 당시 죽은 사람의 경호인으로 선택된 인물들이 아니라 ‘하루의 시간’입니다. 배치의 특이함이 눈에 띄는데, 무덤이 인물들을 동반한 독립된 건축물로 벽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무리 장식이 붙은 관만 벽 앞쪽으로 나와 있고, 주인공은 벽 속에 들어앉은 모습입니다. 공간적으로 완전히 상이한 두 요소가 합쳐져서 하나의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인물들이 삼각형 구조를 이루도록 의도되었으며, 건물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일치감을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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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로렌초 무덤, 황혼과 새벽>
벽감 속의 인물은 누운 인물들의 머리 사이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내려앉은 모습입니다. 누운 인물들은 그들이 자리 잡은 토대와 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 뚜껑은 두 사람이 눕기에 매우 비좁으며, 표면 또한 몹시 가팔라서 아래로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배치를 한 것으로 봐서 미켈란젤로가 자신감에 넘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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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낮>,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85cm.
<낮>은 석관을 장식한 네 조각상들 가운데 가장 늠름하면서 심하게 왜곡되어 뒤틀린 모습입니다. <낮>과 <밤>의 자세는 대비가 됩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낮>의 얼굴은 거대한 어깨 뒤로부터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고, 미오나성의 얼굴은 불명료한 형상의 빛과 시간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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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황혼>,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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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황혼>의 부분
<황혼>에서도 얼굴이 불명료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미완성으로 남긴 거친 얼굴과 손발은 매끈하게 연마된 몸과 대비를 이룹니다. 미켈란젤로는 이런 대위법을 통해 표현을 극대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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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새벽>, 1524-27년경, 대리석, 길이 206cm.
<황혼>의 눈은 아래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새벽>의 우아한 손발은 석관 뚜껑의 유연한 선과 일치를 이룹니다. 줄리아노의 <밤>과 <낮>, 그리고 로렌초와 <황혼>과 <새벽>은 의도적으로 거울처럼 대비가 되도록 구성한 작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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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밤>, 1526-31년경, 대리석, 길이 19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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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밤>의 부분
<낮>과 <황혼>은 고대 조각들처럼 명확한 의미는 알 수 없습니다. <새벽>도 당대 기록에 의해 그렇게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 내용을 짐작할 만한 표현요소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밤>은 별과 달로 장식된 관을 쓰고 꿈을 연상시키는 일그러진 두상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습니다. 발치에는 밤의 여신을 상징하는 양귀비와 올빼미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밤>은 자연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지만 자연주의 자체는 아니며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전통적 관념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새벽>의 경우 그녀의 입, 길게 늘어진 배, 어뢰처럼 생긴 젖가슴, 둥글고 부드러운 다리가 빚어내는 미끈한 곡선은 후대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관능적 모델이 되었습니다. 이와 달리 <밤>의 어깨와 엉덩이는 야위고 작으며 늘어진 젖가슴과 배에 깊이 패인 주름은 출산과 육아를 두루 경험한 여성임을 알게 해줍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밤>은 모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측되며, 이 작품은 다른 것에 비해 많은 주목을 끌었고 찬사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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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줄리아노>,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3cm.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프랑수아 1세로부터 느무르 공작 칭호를 받았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후원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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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로렌초>, 1525년경, 대리석, 높이 178cm.
우르비노 공작인 로렌초는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종손입니다.
줄리아노와 로렌초의 조각은 각각 석관 위 벽감 안에 있습니다. 윤곽선이 뚜렷한 줄리아노의 조상은 최종적인 마무리 손질을 통해 기민한 자세가 더욱 살아났습니다. 이에 비해 로렌초의 조상은 미완성이지만, 작품의 성격과 묘하게 조화를 이룹니다. 표면에 전체적으로 남아 있는 조각칼 자국이 빛을 흡수하여 광택이 적게 나기 때문에 인물은 사색에 잠긴 사상가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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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큰 촛대 주각>, 1531년경, 대리석
미켈란젤로는 1531년경에 두 개의 <큰 촛대 주각>을 제작해 제단을 장식했습니다. 여기에는 희생을 상징하는 사다새로 장식되었고, 다른 하나에는 부황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불사조가 장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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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강의 신을 위한 모델>, 1524-27년경, 찰흙, 나무, 양털, 길이 180cm.
미켈란젤로는 새로운 성물실을 장식하려고 1524년경 <황혼>과 <새벽> 아래 망각을 의미하는 강의 신을 제작하기 위해 찰흙으로 모델을 두 점 만들었습니다. 코시모 1세가 이 모델을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에게 선물로 주었고, 암마나티는 현재와 같이 받침대를 만들어 보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