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 메디치 가의 화려한 무덤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메디치 가가 1512년 다시 피렌체의 실권자가 되자 미켈란젤로는 1514년부터 1534년까지 피렌체에 거주했으며, 메디치 예배당의 무덤 장식을 마친 후부터 사망하는 1564년까지는 로마에 거주했습니다.
567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궁전 창문>, 1517년경
창문은 벽 위 아치 모양으로 아래로 길게 직사각형으로 늘어진 벽감 속에 있습니다. 창문은 바닥에서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 있어 마치 문처럼 보입니다.
미켈란젤로는 1517년경 한때 메디치 은행이었던 피렌체의 메디치 궁전150에 낮은 창문들을 디자인했습니다. 창문과 문의 형태를 혼용해서 문과 같은 창문이 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지면으로부터 까치발처럼 생긴 가늘고 긴 받침대를 벽에 장식하고 그 위에 창턱을 놓고 난 후 창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창문 위를 삼각형 지붕 모양으로 장식하면서 지붕을 얼굴, 창문을 몸통, 까치발을 다리로 의인화했습니다. 다양한 활용법으로 보아 그는 건축의 기능과 건축적 요소의 활용에 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1520년, 마흔다섯 살의 미켈란젤로는 산 로렌초 성당 내 메디치 예배당에 메디치 가를 위한 무덤을 장식하기로 계약했습니다. 이 갑작스러운 작업은 메디치 가의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막내아들 줄리아노와 그의 조카 로렌초(우르비노 공작)가 5월에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 작업으로 그는 율리우스의 무덤 장식을 계속할 수 없었으며, 산 로렌초 성당의 파사드 작업도 서서히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메디치 가의 두 교황인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는 미켈란젤로가 자신들이 의뢰한 작업에 전념하게 했습니다.
595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제등은 여덟 개의 창문으로 되어 있는데, 여덟이란 숫자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제등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망자를 깨우는 부활의 전령사처럼 무덤을 장식한 조각상들을 생동감 있게 깨웁니다. 해가 지고 빛이 사라지면 어둠 속에서 예배당은 다시금 고요한 무엄이 됩니다.
568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1524-25
돔은 로마에 있는 유명한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중한 고대의 판테온 지붕과는 달리 메디치 예배당 지붕은 가뿐해 보이도록 가볍게 처리하면서 빛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594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위의 제등>
569
미켈란젤로의 <메디치 예배당의 작은 돔 천장>
메디치 예배당은 브루넬레스키의 옛 성물실 맞은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는 1519년부터 1534년 사이에 예배당 건물을 더욱 높게 했으며, 벽과 벽이 연결되는 부분을 더 밀도 있게 표현했습니다. 예배당 전체가 돌과 대리석만으로 건립되었습니다. 돔 아래 예배당 벽은 내구력이 있는 질 좋은 회록색 사암 뒤로 사라졌고, 벽기둥과 벽 윗부분 장식으로 두른 돌출부가 우유 빛 대리석 무덤을 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을 목수의 복잡한 나무장식처럼 제작해 돌과 돌 사이를 장식했는데, 이런 식의 건축은 조각에 더 가까우며 유기적이고 생동감이 있습니다. 예배당의 돔 위에는 빛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우아한 대리석 제등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지붕은 구리로 되었으며 여덟 면의 창문틀은 금으로 도금되었습니다. 가늘고 높게 솟은 하얀 대리석 제등은 붉은색 타일을 덮은 지붕 위에서 색의 대조를 이루며 마치 피렌체 거리에 봉화대를 세워놓은 듯한 느낌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