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이야기: 유대인의 유머


 

 
부자 유대인이 임종을 맞았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랍비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랍비가 자기 집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괴로운 듯 말했습니다.

랍비가 날 위해 기도하면 내가 틀림없이 천당에 가겠느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천당에 가실 겁니다.

부자는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상당한 돈이 들겠지?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천당에 가시기 위해선 만 달러는 필요할 것입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가톨릭 신부도 불러라. 유대교에 천당이 없다면, 가톨릭의 천당에 가야 하지 않겠느냐?

신부가 자기 집으로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괴로운 듯 말했습니다.

“신부가 날 위해 기도하면 내가 틀림없이 천당에 가겠느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천당에 가실 겁니다.

부자는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상당한 돈이 들겠지?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천당에 가시기 위해선 만 달러는 필요할 것입니다.



부자가 말했습니다.

유대교도 가톨릭에도 천당이 없으면 어떡하지?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럼 프로테스탄트 목사를 초청하는 것이 어떨까요?

부자는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상당한 돈이 들겠지?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천당에 가시기 위해선 만 달러는 필요할 것입니다.

부자는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습니다.

알았다.



이윽고 랍비, 신부, 목사가 병실로 와서 각각 장시간 기도를 했습니다. 부자는 평온한 가운데 미소를 띠면서 세 천당 중 한 곳으로 조용히 오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그는 갑자기 눈을 뜨고 말했습니다.

랍비님, 신부님, 목사님.

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말했습니다.

전 세 분께 드릴 3만 달러를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천당에 가서도 돈이 필요할지 모르니 제가 죽거든 여러분들이 각각 받는 만 달러 가운데 2천 달러만 제 관 속에 넣어주시지 않겠습니까?

랍비, 신부, 목사 모두 만 달러를 받게 되어 있으므로 그중 2천 달러를 관 속에 넣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 모두 그에게 “당신은 틀림없이 천당에 가실 겁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장례식을 치르던 날, 신부가 와서 관 속에 현금 2천 달러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목사가 와서 관 속에 현금 2천 달러를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랍비가 관으로 다가와서는 안주머니에서 수표책을 꺼내 6천 달러라고 적고 그것을 관 속에 넣은 후 그곳에 있던 현금 4천 달러를 거스름돈으로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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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작품을 Daum '광우의 문화읽기'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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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1538년경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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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


카피톨리노 언덕은 원래 로마 공화정 시대 일곱 개 언덕 중 하나로 로마의 요새였으며 현재도 주피터와 주노, 미네르바에게 봉헌된 대신전의 터가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집정관들이 서약을 하고 관례에 따라 군사적 승리를 감사하는 제물을 바치고 축제를 벌이던 곳입니다. 또한 1513년, 원로원과 콘세르바토리(로마의 선출직 행정관들)가 메디치 가의 줄리아노와 로렌초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 곳이기도 합니다. 미켈란젤로는 1537년 바오로 3세의 제안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을 캄피돌리노 광장 중앙에 옮겼고, 광장과 원로원을 품위 있게 건립하도록 위임받았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동상>은 한동안 최초의 기독교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로 잘못 인식되어 중세를 거쳐 숭배의 대상으로 보존되어오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동상의 주인공이 아우렐리우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로 『명상록 Meditations』을 썼고, 기독교 사상가의 전형으로 여전히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가 이 동상을 광장 중앙에 세운 건 고대에 대한 존경과 기독교 시대의 로마를 상징하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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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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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카피톨리노 언덕>

고아장의 바닥은 별모양의 열두 개 끝이 뾰족한 곳으로부터 연거푸 원으로 그려져 있어 끊임없이 원형들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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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텐 판 헴스커크의 <카피톨리노 언덕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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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두페라크의 <카피톨리노 전경>, 미켈란젤로의 고안대로 그림, 엔그레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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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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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앞 계단>

원로원 건물 중앙 위에는 종탑이 있고, 건물 입구에는 양옆으로 오를 수 있는 두 개의 계단이 있습니다. 건물 외관은 값비싼 담황색 벽돌로 현란하게 장식되었습니다. 창문들은 잘 정비된 외관 벽으로부터 툭 튀어나온 느낌을 줍니다. 장식은 미켈란젤로의 건축적 언어로서, 그는 장식으로 건축의 조화와 강렬한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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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원로원 건물 앞 계단>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을 살펴보면 다섯 통로로부터 광장에 오를 수 있는데, 광장이 보호를 받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 점점 좁아지는 기다란 경사로를 오르면 타원형으로 바닥을 장식한 광장과 그 안의 별모양의 바닥 장식에 이르게 되고 별모양 장식 중앙의 아우렐리우스 동상에 이르게 됩니다. 이 광장은 12세기에 로마 정부와 행정기관들이 자리 잡았습니다. 기존 건물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2세기 고대의 타불라리움(기록보관소) 자리에 세워진 원로원입니다. 이 궁전은 우아한 종탑이 있는 시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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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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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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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콘세르바토리 궁전>, 카피톨리노 언덕

외관 벽 윗부분에 장식으로 두른 돌출부 난간에 조각들이 있어 수직적 리듬이 계속 반복됩니다. 지금은 로마 시립미술관입니다.


그가 디자인한 원로원은 소박하면서도 새로운 공공의 기능을 지닌 건물로, 천 년 전의 건물에 적합한 외관이지만 우아하게 보입니다. 세 건물 모두 단순하지만 운율에 변화가 있는 듯합니다. 오른편의 콘세르바토리 궁전은 15세기 초 길드의 사무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었습니다. 광장 입구에서 보면 콘세르바토리 궁전과 브라치오 누오보가 부등변 삼각형 모양으로 양편에 있고, 두 건물은 중앙의 원로원을 향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황폐해진 콘세르바토리 궁전 외관을 브라치오 누오보가 거울에 반사된 것 같은 형태로 건립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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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상태를 부정하는 증거들


프레드 호일은 아무런 변화 없는 새로운 물질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는 우주를 주장했으므로 그의 이론에 따르면 까마득한 과거의 우주는 현재의 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의 은하가 수십억 년 전의 은하와 거의 동일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지난 수십억 년 사이에 어떤 역동적인 변화가 단 한 건이라도 있었다는 것이 증명될 경우 정상상태우주론은 당장 폐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주 저편에서 엄청난 빛을 발산하는 미지의 천체가 1960년대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천체에 퀘이사quasar, 혹은 준항성체quasi-steller object라는 명칭이 붙여졌습니다. 별처럼 작게 빛나 보이지만 강하고 폭넓은 휘선輝線 스펙트럼을 나타내는 천체인 퀘이사는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커다란 적색편이red shift를 보이고 있는데, 이로부터 추정되는 거리는 무려 수십억 광년이나 됩니다. 즉 지금 보이는 퀘이사의 모습은 우주가 젊었을 때의 모습인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은 이 천체의 중심부에 거대한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정상상태우주론이 옳다면 오늘날에도 퀘이사가 수시로 발견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드물게 발견됩니다. 수십억 년이 지나면서 대부분의 퀘이사들이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호일의 이론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헬륨의 양이 정상상태우주론에서 예견된 양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헬륨은 범우주적인 규모에서 볼 때 수소 다음으로 많은 원소이지만 지구 근처에서는 매우 희귀한 원소에 속합니다. 과학자들이 헬륨을 처음 발견한 곳은 지구가 아닌 태양이었습니다. 1868년 여름 과학자들은 개기일식을 관측하던 중 태양빛을 프리즘을 통과시켜 얻은 스펙트럼을 분석하던 중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587.6nm의 새로운 스펙트럼선spectral line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어떤 금속으로부터 방출된 빛이라고 생각하여 그리스어로 태양을 뜻하는 헬리오스helios(태양의 신)에 금속을 의미하는 접미어 -ium을 붙여 헬륨helium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러나 1894년 영국의 프랭크 램지Frank Plumpton Ramsey(1903~30) 및 스웨덴의 화학자 클레베Per Teodor Clever(1840~1905)는 각각 독립적으로 우라늄 광물의 일종인 클레베석으로부터 헬륨을 분리하여 스펙트럼선이 일치하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발견하고 보니 헬륨은 금속이 아닌 기체였습니다. 과학자들은 명칭이 잘못 붙여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사용 중인 명칭을 바꾸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 헬륨을 계속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호일의 주장대로 우주 초창기에 헬륨이 별의 내부에서 생성되었다면 오늘날 헬륨은 별의 중심부에서만 발견되는 지극히 희귀한 원소로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헬륨은 전체우주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별의 중심부뿐만 아니라 우주전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습니다. 이 점은 조지 가모브의 주장과 일치합니다. 핵합성(핵융합)에 관한 한 가모브와 호일 모두 진실의 일부만 본 것입니다. 가모브는 모든 화학원소가 빅뱅의 잔해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았으나 그의 이론에서 질량수가 5 혹은 8인 원소들이 연쇄적 창조의 가교역할을 하지 못해 설득력을 잃었고, 호일은 빅뱅이론 자체를 부정하면서 모든 원소가 별의 중심부에 있는 용광로에서 조리되었다고 주장했지만 헬륨이 우주의 25%나 차지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모브와 호일이 상호보완적인 이론을 주장했던 셈입니다. 가모브가 생각한 질량수가 5 혹은 8 이하의 가벼운 원소들은 빅뱅으로부터 탄생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헬륨-3과 헬륨-4 그리고 리튬-7 등은 빅뱅의 잔해로부터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무거운 (그리고 철보다는 가벼운) 원소들은 호일의 주장대로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인 구리, 아연, 금 등은 초신성에서 생성되어 폭발과 함께 우주공간으로 흩어져 나왔습니다. 현재의 우주론에 반대하는 다른 이론들은 100종 남짓한 원소들과 동위원소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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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 강의 노트 2


 

 

 

 

개념미술Conceptual art

조지프 코수스는 논문 「철학 이후의 미술」(1969)에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외관’에서 ‘개념’으로 이행하는 혁명을 이룬 것으로, 결국 “현대 미술의 출발이자 개념미술의 시작”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에게 예술가가 된다는 건 미술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념미술의 선구자는 특유의 말장난을 즐긴 뒤샹이었습니다. 해학은 그에게 중요했는데, <기차를 탄 슬픈 젊은이>(1911)를 예로 들면 그렇게 제목을 붙인 이유로 그는 “젊은이가 슬픈 이유는 기차가 뒤를 따라오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하고 과거의 작품들을 집대성한 <그녀의 독신남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1915~23)는 특유의 말장난이었습니다. <그녀의 독신남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에 관해 “사람들은 <그녀의 독신남자들에 의해조차 벌거벗겨진 신부>에서 ‘조차’란 말의 뜻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나는 제목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때는 특히 문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단어들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콤마를 찍은 후 ‘조차even’라고 적었는데, 부사 ‘조차’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으며 제목 또한 회화와 무관하다. ... 좀 더 벌거벗길 수 있는 가능성들 모두란 뜻은 당치도 않다”고 했습니다.

뒤샹의 말장난은 1912년에 그린 <처녀로부터 신부에 이르는 길>, <빠른 누드들에 에워싸인 왕과 왕후>에서도 나타났으며, 이런 식의 유머는 평생 지속되었습니다.

뒤샹은 예술가가 지식인의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불쾌해했습니다. ‘화가처럼 멍청하다’는 프랑스 속담을 언급하면서 그는 사람들이 화가는 사교계의 신사보다 덜 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그가 망막적 회화를 비난한 것은 화가의 수공적 예속에 반대하고 지적 입장을 취하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회화는 그 자체 목적이 아니라 표현의 수단으로서 오로지 시각적이거나 망막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예외적이었던 유머, 조롱, 혹은 패러디, 즉 풍자적 개작은 시각예술에서 유례없는 중요성을 띠게 되었습니다. 개념미술은 사상이나 개념을 미술품의 본질적 구성요소로 간주하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합니다. 개념미술이 처음 표명된 것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통해서였습니다. 1940년대에 그는 25년 전 자신이 레디메이드로 의도했던 것은 감각에 얽매인 미술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미술을 지적 행위로 돌리기 위해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개념미술이 직접적으로 미니멀아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특히 미국에서는 공공연하게 논의되어 왔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분명히 미술을 제작하고 경험하는 데서 고도로 개념화된 방식이었습니다. 미니멀아트 예술가들은 작품의 의미보다는 물성 자체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관람자가 보고 있는 것이 표현이나 상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임을 주지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최소한의 것이라고 해도 작품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마이클 애셔는 1974년 로스앤젤레스의 클레어 코플리 갤러리에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통상적으로 갤러리 사무실과 대중의 관람공간을 구별하던 칸막이도 치워버렸습니다. 전시된 것은 전시 기획자와 그녀의 책상, 갤러리의 재고품들이었으며, 누군가가 볼 일이 있어 그곳에 들어가면 그 또한 전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팝 아트Pop art

미국 팝 아트의 특징은 표면상의 냉정함으로 인해 주제에 대한 참여의식이 결여되어 보이는 점입니다. 일견 거기에는 다다의 기교와 다다의 수법이 재생된 듯 보이나 그 이면에서 다다의 정신을 발견하기란 어려운데, 아티스트들이 반미술을 표방한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 새로운 미술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표면상의 경박함을 보고 팝 아트를 비지성적인 것으로 판단하거나 표면상의 초탈함을 보고 참여의식의 결여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팝 아트는 고도의 자의식 운동이었으며, 과거의 미술 개념이 아티스트들에 의해 해체되었습니다. 앤디 워홀은 미술품이 수공의 산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많은 그의 작품들이 형판 인쇄를 통해 캔버스에 직접 옮겨졌습니다.



아상블라주Assemblage와 정크 아트Junk art

아상블라주란 명칭은 1961년 뉴욕 모마에서 개최한 ‘아상블라주’ 전시회에서 정식으로 채택되었습니다. 아상블라주와 정크 아트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없는데, 정크 아티스트들은 종종 산업쓰레기들을 조립하여 표현적 구성물을 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상블라주는 표현적 목적을 위해 비미술의 재료를 조각적 구성물 안에 모으거나 결합시키는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용어이므로 팝 아트, 표현주의 미술, 정크 아트, 혹은 펑크 아트의 범주에 속할 수도 있으며, 추상적일 수 있지만 사실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장르에 이미지의 범람으로 관람자의 정신을 분산시켜 명상적 분위기를 야기해야 한다는 존 케이지John Cage(1912~92)의 기본 사상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체론적 구성all-over을 예로 들면 하나 혹은 둘의 주제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이미지들의 나열로 우리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전체의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상황 미술Situation art과 설치Installation art

상황 미술은 관람자를 단순한 외부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게 하나의 사건, 혹은 상황 속으로 개입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해프닝과 그 목적이 같습니다. 상황 미술은 곧 설치입니다. 일종의 무대장치입니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동원됩니다.



펑크 아트Punk art

펑크 아트는 1960년대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아티스트 그룹이 시작한 것으로 천박하고 기분 나쁜 주제를 의도적으로 불쾌하게 다룬 미술을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시크 아트Sick art로도 불립니다. 불쾌감을 유발하고자 하는 욕구와 병적 자기 현시욕을 다다, 팝 아트와 결합시킨 것입니다. 펑크 아트의 특징은 감정이 배제된 비인간적인 순수성에 반발해 혼합물, 병적인 것, 싸구려, 기이한 것, 모조품, 사악한 것, 공공연하게, 혹은 은밀하게 성적인 점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펑크와 ‘냄새나는’, 혹은 ‘더러운’이란 뜻의 펑키라는 용어는 재즈 용어에서 온 것으로 모순되고 이상야릇한 것에 대한 집착을 암시합니다.



비디오 아트Video art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창출하는 비디오 아트는 반문화, 특히 1960년대 초 일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의 작업 중에 생겨난 해악적 상업 TV에 반대하는 경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해프닝Happening

1960년대에 새로운 미술 형태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한 해프닝은 1959년 앨런 캐프로Allan Kaprow(1927~)가 창안해낸 것입니다. 이는 천재를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관람자, 혹은 참여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려는 아티스트들이 선택한 방식이었습니다. 캐프로는 해프닝에서 참여자로서의 관람자는 오브제나 회화와 같으며 도구와 지침서는 캔버스의 천과 같다고 했습니다. 관람자는 사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적극적인 참여는 정신적인 수준에서 요구되었습니다. 캐프로는 해프닝의 가능성을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발견했습니다. 캐프로는 해프닝을 궁극의 실존적 참여라는 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인간적 자세로 보았습니다.

존 케이지는 예술 창조에 있어서 우연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이론을 펼쳤는데, 그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해프닝은 ‘자발적이며 줄거리가 없는 연극적 이벤트’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해프닝의 개념에는 화가들이 화랑과 미술관과 같은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세계에서 탈피하여 거리나 시장으로 뛰쳐나와 한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지만 이 명칭은 요제프 보이즈가 벌인 많은 해프닝들과 같이 정치-사회적인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시위나 기존의 도덕 체계에 충격을 가하기 위한 표현을 다루는 데 이용되었습니다.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

해프닝과 관련 있지만 보다 철저하게 계획되며 관람자의 참여를 수반하지 않는 퍼포먼스 아트의 전통은 자신들의 작품이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익살스럽거나 도발적인 이벤트를 무대에 올린 미래주의자, 다다주의자, 초현실주의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1950년대에 관람자 앞에서 그림을 그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마티외나 1960년대 초 물감을 몸에 바른 누드모델들을 지휘한 이브 클랭의 작업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퍼포먼스 아트가 그 자체로서 미술의 한 범주로 인식되게 된 건 1960년대 이후, 특히 1970년대였습니다. 해프닝이 의도적으로 내건 것과는 달리 퍼포먼스는 관객과의 즉흥적 협동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퍼포먼스는 ‘재연’, ‘구경거리’를 의미합니다. 이벤트도 퍼포먼스의 한 형태이며, 신체적 출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바디 아트Body art

사람의 몸을 재료로 이용하는 바디 아트는 때때로 다른 사람의 신체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자신의 신체를 사용합니다. 처음 몇몇 작품의 경우 이벤트나 퍼포먼스 아트에 가까웠고 1950년대 말부터 여러 해프닝 속에 바디 아트의 일종이랄 수 있는 것들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후반 바디 아트는 독립적 장르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개념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 아트는 표현주의나 사실주의 노선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디 아트 작품은 아티스트의 감정이나 개인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후기 회화적 추상이나 미니멀 아트만큼 비개성적입니다. 윌러비 샤프가 말한 대로 바디 아트는 대체로 신체에 관한 진술입니다. “그것은 자전적인 예술이라기보다 신체의 사용과 관련된 예술이다.”



프로세스아트Process Art

작품에서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로부터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다양한 유형의 비자연주의 미술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형식주의formalism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프로세스아트입니다. 작품이 제작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루미니즘Luminism

윌러비 샤프는 1967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워커아트센터에서 열린 ‘광선, 운동, 공간’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처음 루미니즘이란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루미아Lumia란 용어를 덴마크계 미국의 실험예술가 토머스 윌프리드가 20세기 전반에 자신의 광선 구조물을 설명하며 이미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덴마크, 런던, 소르본대학에서 음악과 미술을 공부한 뒤 1916년 미국에 정착 윌프리드는 광선주의에 관심이 많았고, 빛의 패턴을 음악작품의 울림이나 해석으로 여기지 않고 빛 자체를 하나의 독립된 미술의 매체로 간주한 최초의 예술가였습니다.

광선을 미적으로 사용한 또 다른 방식은 광선 스펙터클로 이는 광선 환경에 포함됩니다. 광선 스펙터클의 원형은 베를린의 건축물에 조명을 비추는 것을 내용으로 한 나움 가보의 <광선 축제>(1929)였습니다. 가보의 제안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나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1938년에 <빛의 대성당>을 제작하면서 가보의 아이디어를 이용했습니다. 이 작품은 근대의 ‘소리와 광선’ 퍼포먼스의 효시가 됩니다. 2차 세계대전 후 광선 환경과 광선 스펙터클은 일본, 유럽,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실험예술가들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치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루초 폰타나와 브루노 무나리가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고, 독일에서는 제로 그룹으로, 특히 오토 피네, 하인츠 마크, 귄터 위케르 등이 광선 연구에 전념했습니다.

고밀도의 강력한 광선 빔을 산출하는 레이저를 사용함으로써 광선 환경은 더욱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레이저LASER라는 말은 방사의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머릿글자의 집합에 의한 합성어입니다. 레이저의 중요한 성질은 간섭성을 가지며 단색성을 나타내고, 강력한 가는 빛을 방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레이저빔은 처음에는 군대에서 사용되었으나, 농축된 가는 빛으로 흩어지지 않고 곧게 나가는 특성 때문에 예술가들이 재료로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레이저빔이 처음 사용된 때는 1965년이었고, 그때부터 설치, 거대한 규모의 환경미술, 그리고 홀로그래피라는 특수한 영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렌즈를 사용하지 않고 독특한 영상을 생성하는 기술로서의 홀로그래피는 레이저 입체영상으로 불리며, 사물을 깊이, 관점, 시차적 영상의 재현, 모양, 크기 컬러 안에서 실물과 똑같이 그려내는 첨단 영상매체로서 레이저 개발과 더불어서 실물을 재생산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발명되었습니다. 레이저를 포함한 입체영상의 발명은 현대의 테크놀로지 분야에 그 사용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표현방식을 넓혀주는, 표현 가능성을 무한정 확장시켜주는 적극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옵아트Optical art

광학, 혹은 망막에 기반을 두는 옵아트는 옵티컬 아트를 줄인 용어로 1965년 뉴욕의 모마에서 열린 ‘감응하는 눈’ 전시회에 관한 『타임』지의 비평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평행선이나 바둑판무늬, 동심원 같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형태의 화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명도가 같은 보색을 병렬시켜 색채의 긴장상태를 유발했습니다. 그 결과 관람자는 그림이 움직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키고 한 부분을 오래 바라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옵아트는 지각적 모호함과 최소한의 시각적 장치를 이용해 시각에 충격과 혼란을 줌으로써 작품이 진동하거나 점멸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환각적 운동을 창출하는 기하학적 추상의 한 갈래를 가리킵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옵아트의 목적은 망막에 매우 강력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관람자의 생리적 시각반응을 활성화시키는 것입니다.

팝아트의 상업주의와 지나친 상징성에 대한 반동적 성격으로 등장한 옵아트 대부분의 작품은 지각 심리학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잘 알려진 착시현상이나 시각적 놀이에 바탕을 둔 것들입니다. 옵아트 예술가들은 화면이 진동하거나 뒤틀리는 듯한 착시현상을 유발하기 위해 크기, 형태, 방향, 명암, 많은 연속 단위들 등을 체계적으로 변형시키기도 하고, 화면의 팽창과 확대 등과 같은 착시현상을 야기하기 위해 주기적 패턴 체계 속에서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확대, 혹은 축소시키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과 그 밖의 또 다른 매우 미묘하고 복잡하게 조작된 패턴들은 움직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켜 모호하고 대립적인 착시를 유발하는 걸 목적으로 개발된 것들입니다. 패턴이 전면에 걸쳐 그려진 화면에서 형태들은 흔들리거나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때로는 무한히 후퇴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종종 가상의 비현실적 공간을 창출하기도 합니다.



키네틱아트Kinetic art

그리스어 키네시스kinesis(운동성), 키네티코스kinetikos(움직임)에서 유래한 키네틱아트란 운동을 수반하는 미술을 말합니다. 키네틱아트는 운동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 그 자체, 즉 작품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로서의 운동을 나타내는 미술로 미술품 자체가 반드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키네틱아트 특유의 효과는 작품 앞에서 움직이는 관람자에 의해서, 혹은 작품에 손을 대거나 조작하는 관람자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키네틱아트라는 명칭이 비평적 분류 기준으로서 첨가되고 승인된 것은 1950년대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명칭은 광범위한 양식과 기법을 망라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을 처음 사용한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등받이 없는 걸상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는 반미술의 원칙을 보여주기 위한 레디메이드 중 하나였습니다. 뒤샹은 또한 1920년대 초 뉴욕에서 <회전 부조>와 <회전 반구>를 제작했으며, 그것들은 회전할 때 양감의 환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동심원들이 그려진 평편한 원반이 빠르게 회전하면서 입체적 외형을 띤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아르테 포베라 작품은 자의적으로 보잘것없고 진부한 재료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대개 환경미술의 성격을 띠고 종종 강하게 극적인 요소를 지녔습니다. 아르테 포베라의 첫 전시회가 1967년 9월에 열렸습니다. 포베라는 이탈리아어로 ‘가난한’이란 뜻입니다. 아르테 포베라의 특징은 미국 미니멀리즘 조형물의 기본 방향, 혹은 제작방식을 테크놀로지로 잘못 이해했으므로 반테크놀로지의 자세를 표방한 것입니다. 1970년 6월 첼란트가 기획한 토리노 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회 ‘개념미술, 아르테 포베라, 대지미술’에는 코수스, 웨이너 같은 언어 중심의 개념미술 예술가들과 마리아 스미스슨 같은 대지미술 예술가들 그리고 피스톨레토와 쿠넬리스 같은 아르테 포베라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경향은 상호배타적이기보다는 중첩되면서 전시되었습니다. 만초니와 클랭의 작품이 포함된 것은 특별히 후대 작품들에 대한 유럽의 계보를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첼란트는 전시회 카탈로그에 "아르테 포베라는 주로 매체의 물질적 속성 및 재료의 변하기 쉬운 성질과 관련이 있는, 근본적으로 반상업적이고, 불안정하며, 평범하고, 반형식의 미술을 표방한다. 이는 실제 재료와 전체 현실에 대한 미술가들의 참여를 중시하며, 또 그런 현실을 비록 이해하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민감하고 지적이며 교묘하고도 사적인 강렬한 방식으로 해석해내려는 미술가들의 시도를 강조한다"고 적었습니다.

만초니는 1960년대 초에 긴 종이에 붓질을 끊어뜨리지 않고 한 번에 길게 긋는 그림을 그렸으며, 그 길이가 명시되지 않은 것도 있고 명확한 길이로 된 것도 있습니다. 뉴욕의 모마가 소장하고 있는 <선 1천 미터>는 만초니가 1961년 6월 24일에 제작한 것으로 그 길이가 1천 미터에 달합니다. 그는 이런 작품을 돌돌 말아 판지로 만든 통에 넣어 보관했습니다. 이런 작품은 미니멀아트에 대한 충동을 표현한 것이며 동시에 미니멀아트에 대한 장난기 어린 풍자로 보였습니다. 자신의 배설물을 담은 깡통에 서명하고 표시해놓은 <예술가의 똥> 연작은 현대 미술의 개성 예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깡통에는 ‘예술가의 똥, 내용물, 30g,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되고 저장됨’이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클랭과 마찬가지로 만초니는 다다에서 취한 개개의 개념들을 되살렸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철저한 미학적 허무주의도 소생시켰습니다. 그는 클랭보다 더 조야한 유머 감각과 아이러니한 것을 즐길 줄 알았습니다.



대지미술Land art(Earth art, 혹은 Earthworks)

대지미술은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예술가마다 사용한 기법과 내세운 의도가 현저히 다를 뿐만 아니라 작품도 매우 다양합니다. 건물을 반쯤 허물기, 바윗덩어리와 수 톤에 이르는 흙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 구덩이, 전망대,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경사로 만들기, 단층을 파헤치기, 산허리를 절단하기, 화산을 구획하기, 사막의 바닥에 드로잉하기, 눈 위에 자취 새기기, 돌개바람 추적하기, 염분이 높은 호수 위에 번개 부르기, 공공쓰레기장에 아스팔트 붓기, 커튼으로 계곡 막기 등 다양합니다. 이러한 작업은 비용이 많이 들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월터 드 마리아는 대지미술을 고립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고립을 타파해야 하고 사진은 이런 시도에서 주요한 매체였습니다. 대지미술의 대부분 예술가들이 의식적으로 사진매체의 가능성을 활용했습니다. 그들은 공간감과 거대한 크기를 복구시키려고 화면 구성을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사진은 책과 잡지로 유포되는 단순한 기록, 작품과 그 과정을 이해시키려는 교육적 몽타주의 요소, 전시 대용품, 혹은 상시적이거나 지속 가능한 설치일 경우 그 현장을 방문하도록 자극하는 것 등 다양한 기능을 띱니다. 대지미술품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마이클 하이저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구의 반대편, 이집트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러갈 수 없다고 불평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가세오, 가서 보면 될 것 아닙니까.

미니멀아트에서 비롯된 대지미술의 초기 양상인 극도로 단순한 점은 미니멀아트를 단지 거대한 규모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작품은 1960년대 후반에 등장했으며 미니멀아트 외에도 다양한 경향의 미술과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재료를 사용한 점에서는 아르테 포베라와 관련지을 수 있으며, 작품이 일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보면 해프닝이나 퍼포먼스아트와 관련지을 수 있고, 거창한 작업에 관한 계획안은 단지 계획으로만 존재하므로 개념미술과도 관련지을 수 있습니다. 또한 도시문화의 세련된 기술에 대한 혐오를 반영한 히피문화의 자연 회귀 정신의 한 부분으로서 선사시대의 흙무더기와 목초지 경계선에 대한 연구에 열광했던 당시의 상황과 관련되는 점도 있습니다. 전통 엘리트 미술과 상업성을 지향하는 갤러리 중심의 미술계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또한 현대의 전형적 모습 중 하나였지만, 사실 거대한 대지작품은 막대한 경비를 필요로 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닌 외진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아 대중적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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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이야기: 섹스


 

 

 

 

섹스란 올바르고 깨끗하게 행하면 곧 기쁨입니다. 섹스란 결코 혐오스런 것이 아닙니다.

탈무드는 ‘교사와 랍비는 반드시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내가 없는 자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탈무드는 섹스를 가리켜 ‘생명의 시냇물’이라고 말합니다. 시냇물은 때에 따라 엄청난 홍수를 일으킴으로써 온갖 것들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평온하게 흐름으로써 온갖 것들을 열매 맺게 하고 세상에 이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남자에게 있어서의 성적 충동은 식가에 의해 자극되며, 여자에게 있어서의 성적 충동은 피부 감각에 의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남자들에게 ‘여자를 스칠 때에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 여자들에게는 ‘옷매무새에 신경 쓰라’고 경고합니다. 유대사회에서는 상점에서 거스름돈을 줄 때에 여자 손님에게는 남자가 손으로 직접 주는 법이 없고, 일정한 곳에 놓은 뒤 여자 손님 스스로 집어가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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