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카페의 실내>


마네의 <카페의 실내 Interior of a Cafe>, 1880년경, 리넨에 유채와 파스텔, 32-45cm.
그림의 배경이 2년 후에 그릴 걸작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을 상기하게 합니다.

에드가 드가의 <카페 앞에 있는 여인들 Women in Front of a Cafe>, 1877, 종이에 파스텔, 40.95-59cm.
<카페의 실내>는 이때 그린 그림입니다. 육체적 고통이 그로 하여금 오래 선 채 그림을 그릴 수 없게 했으므로 짧은 시간 내에 그릴 수 있는 것들만 그렸고 물감이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는 유화로 그림을 마칠 수 없을 때는 파스텔을 혼용하여 서둘러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은 파스텔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그림으로 기법과 내용면에서 드가의 파스텔화와 비교되는 작품입니다. 드가의 파스텔 기교는 매우 뛰어나서 그 자체가 한 점의 파스텔화로 손색이 없는데 반해, 마네의 파스텔화는 서둘러 대충 마치려고 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마네의 <졸라 부인의 초상>, 1879년경, 파스텔, 55.6-46cm.
졸라 부인은 마네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말하기가 부끄러워 남편을 통해 부탁했습니다.

마네의 <검정 모자를 쓴 이르마 브뤼너 Irma Brunner a la Voilette>, 1882, 종이에 파스텔, 57-36.5cm.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르마는 밤의 세계에서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르마를 마네에게 소개한 사람은 이르마의 친구 메리 로랑이었습니다. 이르마는 마네의 화실을 자주 방문하면서 이 그림과 또 한 점의 파스텔 초상화를 마네로부터 받았습니다. 마네는 에로틱한 이르마에 마음을 빼앗겼으며, 이르마도 마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화실로 와서 포즈를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마네가 파스텔로 그린 그림 중 가장 훌륭한 것들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마네가 파스텔을 사용해서 그린 그림은 모두 89점이며, 그중 70점이 여인의 초상화로 1879년부터 1883년 사망하기 전까지 그린 것들입니다. 1879년부터 그에게 모델이 되어준 아름다운 여인들은 졸라 부인, 프루스트의 애인 로지타 모리, 백작 부인 루이즈 발테스, 이르마 브뤼너, 기유메 부인, 에밀 앙브르,잔 드 마르시, 유명인사의 딸 쉬제트 르메르, 이자벨 르모니에 등입니다.
마네는 모델들에게 “말하시오, 웃으시오, 움직이시오, 당신이 자연스러울 때만 당신의 모습이 실제처럼 나타나게 됩니다”라고 주문했습니다.

마네의 <흰 리본을 맨 이자벨 르모니에>, 1879, 유화, 86.5-63.5cm.
마네는 특히 이자벨 르모니에의 초상화를 연속적으로 그렸고, 짧은 편지에 그녀를 묘사한 유머스러운 스케치, 복숭아, 자두, 깃발 등을 그려 넣어 장식했습니다. 그녀의 언니와 아이들은 르누아르의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네의 <이자벨 르모니에의 초상 Portrait of Isabelle Lemonnier>, 1879, 유화, 101-81cm.
마네와 바티뇰 그룹 화가들이 샤르팡티에의 ‘현대의 삶’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이런 와중에 샤르팡티에의 처제 르모니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파리의 유명한 보석상의 딸로 아버지는 카르티에만큼이나 유명했습니다. 미혼인 르모니에는 마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의 화실에 즐겨 가곤 했습니다. 마네는 1879년에만도 그녀의 초상을 여섯 점이나 그렸습니다.
이 시기에 마네는 갑작스러운 고통이 엄습하면서 정신을 잃고 길에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프루스트는 1879년에 마네가 건강했다고 적었지만, 마네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네의 <뱀장어와 붉은 숭어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Eel and Red Mullet>, 1864, 유화, 38-46cm.

마네의 <햄 The Ham>, 1880년경, 유화, 32-42cm.
흰 테이블 위 은접시에 커다란 햄 덩어리가 칼로 잘라진 면이 앞으로 보이도록 놓여 있고, 그 앞에는 은접시와 평행해서 상아 손잡이의 나이프가 있으며, 배경은 금색이 있는 식물 형태의 붉은색 벽지입니다. 마네는 평범한 오브제를 평범하게 그렸는데,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취한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라면 모든 것이 그에게는 모티프가 되는 것입니다.
마네는 이제 병마와 싸우느라고 대작을 그리는 대신 꽃이나 과일 주변에 있는 정물들을 그렸습니다. 1864년 여름 불로뉴에서 <뱀장어와 붉은 숭어가 있는 정물>을 그린 적이 있는 그는 1880년에는 햄을 주제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마네의 <수정 화병의 클레마티스 Clematis in a Crystal Vase>, 1881년경, 유화, 56-35.5cm.
마네는 말년에 과일이나 꽃을 즐겨 그렸습니다. 그는 리라, 장미, 카네이션 등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병이 심해지고 통증이 그치지 않자 앉아서 그릴 수 있는 작업을 선호했으며, 정물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메리 로랑이 꽃을 가지고 마네의 화실을 자주 방문했습니다. 마네의 친구는 그의 정물화에 관해 말했습니다. “한 번 그려지면 그의 장미나 리라 꽃은 불멸의 작품이 되었다. 삽시간에 그린 것이 영원한 것으로 변했다. 이 꽃들의 선선함을 보라. 너무도 완벽하고 탐스러워 그림이 아직도 젖이 있는 듯하다.” 마네는 이 화병에 꽂힌 꽃들을 여러 점 그렸는데, 이것이 맨 처음 그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마네의 <화병의 장미와 튤립 Roses and Tulips in a Vase>, 1882년경, 유화
1881년 살롱은 1등은 없고 9명의 화가에게 2등 메달을 수여했으며, 마네가 포함되었습니다. 메달 수여식에 마네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해 살롱에 마네는 <사자사냥꾼 페르튀제>를 소개했습니다. 그해의 심사위원은 모두 90명으로 살롱에 당선된 적이 있는 예술가들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카데미 데 보자르나 에콜 데 보자르, 정부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된 가운데 예술가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심사위원들이 선출된 것입니다. 이 작품이 출품되자 평론가들의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이제 살롱의 심사를 받지 않고 출품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가 거의 다해 가고 있었으므로 심사 없이 출품할 수 있는 기회는 1882년의 살롱뿐이었습니다. 이는 마네가 마흔아홉 살 때의 일입니다.

마네의 <사자사냥꾼 페르튀제 Portrait de Petruiset, Le Chasseur de Lions>, 1880-81, 유화, 150-170cm.
마네는 모험가이자 수렵가이며 한 대 화가였던 페르튀제의 초상을 그리려고 했습니다. 페르튀제의 포즈는 마네의 화실에서 취해진 것이며, 배경은 파리의 베드류이제의 집 정원이라서 맹수 사냥의 무대로서는 박력이 떨어집니다.

마네의 <베르사유의 예술가 정원 The Artist's Garden in Versailles>, 1881. 유화, 55.1-80.5cm.
격자모양의 높은 울타리 안에 있는 벤치에 마네가 남겨둔 노란색 옷이 있어 그의 부재를 시사하며, 그의 감성이 느껴집니다. 정원의 붉은색 장미가 여기저기 피어 있어 여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당시 마네의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정원은 매력적인 여름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모네를 비롯하여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정원을 그렸지만, 그들의 정원에는 인간의 혼이 내재해 있지 않은데 마네의 이 정원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해 마네는 더 이상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81년 여름 목재상 마르셀 번스타인이 베르사유에 있는 정원이 딸린 별장을 빌려줘 마네는 어머니와 수잔과 함께 6월 말에 그곳으로 가서 지냈습니다. 레옹은 일요일이면 그들을 방문했는데, 이제 그는 은행 브로커가 되어 제법 돈도 잘 벌었고 큰 사무실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네는 그곳에서 한 달 반을 지내면서 르 노트르가 루이 14세를 위해 베르사유에 만든 공원에도 가고 그림도 여러 점 그렸습니다. 그는 9월 23일 에바 곤잘레스에게 보낸 편지에 정물화 몇 점과 정원 몇 점을 그렸다고 적었습니다. 그가 그린 <베르사유의 예술가 정원>은 문을 열고 나오면 작은 통로 끝에 있는 것으로 그림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서 쉬곤 했습니다. 그는 정원을 가리켜서 자기가 그린 정원들 중 가장 추한 정원이라고 했지만, 인상주의 작품들 중 걸작으로 꼽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