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마비증세



 



 

 

마네의 마비 증세에 관해 1949년 피에르 프린스의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인용해 회고한 말이 당시의 정황을 잘 말해줍니다. 피에르 프린스는 1860년대 마네와 친분이 두터웠던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발코니>에서 베르테와 나란히 포즈를 취한 바이올리니스트 파니 클라우스의 남편입니다.

 



1878년 첫 번째 마비증세로 화실에서 쓰러진 후 마네는 병마와 싸우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그를 괴롭힌 것은 끊임없는 정신적 고통이었다. 혼자 있을 때 그는 더욱 고통을 느꼈는데 그가 스스로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직접 그 말을 아주 많이 들었다. 그는 항상 악령에 쫓기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여자만 나타나면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는 점이다. 이래저래 불쌍한 수잔이 마네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았다. … 열여덟 살 나던 해 브라질에 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뱀에게 물려 치명적인 병에 걸렸다는 잘못된 생각은 이제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시기에 운동실조가 그에게 일어났으며 원인은 익히 알려진 대로였다. … 덕담을 들으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쇠약해 가는 몸 때문에 고통을 받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그의 그림도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그림마저 말을 듣지 않다니! … 기초가 허물어진 그림 앞에서 그는 괴로워하고 두려워했다. …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변덕이 심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네 역시 그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마네는 구석에 ‘병든 고양이처럼’ 웅크려 앉는 법을 익혔다. 희미한 미소를 띤 채 그렇게 앉아 있는 것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로는 그를 지치게 만드는 방문객들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방문객들을 반갑게 맞았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사교계 사람이었다.



 

 

 



마네의 <카르멘으로 분장한 에밀 앙브르의 초상>, 1879-80, 유화, 91.5-73.5cm.

한때 홀란드 왕의 애인이었던 에밀 앙브르는 마네를 초대하여 카르멘으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습니다. 마네는 1879년에 그리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했는데, 치료를 받느라 오래 걸린 것입니다.

 

 



마네 부부는 에밀 앙브르의 별장에 묵었습니다. 마네의 작품을 좋아한 앙브르는 자신의 별장을 빌려주면서 그곳에 머물기를 권했습니다. 파리 근교 벨레뷔에서 마네가 에바 곤잘레스에게 보낸 편지에 “난 다시 작업을 시작했소. 이 지역의 프리 마돈나 에밀 앙브르의 초상을 그리고 있소. 우리는 10월 말까지 이곳에 묵으려고 하오”(1879. 9.)라고 적었습니다.

 

마네는 1879년 10월에 파리로 돌아온 후 다시 건강이 나빠져 계단을 걸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880년 마네는 의사의 권유로 벨레뷔에 있는 병원과 온천장에서 다리치료를 위해 6개월 동안 수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때 레옹도 동행했는데, 스물여덟 살의 레옹은 주식회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마네는 하루 세 차례 온천욕을 하면서 4, 5시간씩 마사지 치료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오래 걷지 말 것을 권했습니다. 이 시기에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 무료함을 토로하면서 어서 파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앙브르는 <막시밀리안의 처형>을 미국으로 가지고 가서 뉴욕과 보스턴의 전시회를 통해 소개했는데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습니다.



 

 

 



마네의 <벨레뷔에서의 마네 부인 Mme. Manet at Bellevue>, 1880

이 그림을 화가 막스 리베르만이 1902년에 마네의 미망인 수잔으로부터 구입했습니다. 이베르만은 나치의 탄압을 받았는데, 그대 취리히의 미술관에 빌려주었습니다.



 

 

 



마네의 <산책 The Promenade>, 1880년경, 유화, 93-70cm.

 

 

'좋은 전망‘이란 뜻의 벨레뷔는 말 그대로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마네는 싱싱한 풀과 여인의 검정색 실루엣을 대조시켜 나무 그들의 서늘함과 여인의 향기가 한데 어우러지게 했습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자신의 소장품으로 화실에 보관했으며, 그가 타계한 후 1884년 그의 화실에서의 경매에서 가수 장 밥티스트 포르가 1,500프랑에 구입했습니다. 이 작품은 몇 사람의 손을 거친 후 1958년 소더비 경매에서 249,200달러에 팔렸으며, 3년 후 소더비 경매에서는 익명의 응모자가 1,309만 달러에 구입했습니다.



 

 

 



르누아르의 <산책 The Promenade>, 1870, 유화, 81,3-65cm.



 

 

마네는 벨레뷔에 머물면서 몇 점 그렸는데 <벨레뷔에서의 마네 부인>은 정원에 앉아 있는 아내를 모자에 눈이 가려진 모습으로 그린 것이고, <산책>은 미망인 감비를 그린 것입니다. 여인의 뒤로는 모래가 깔린 길이 보이고, 그녀가 서 있는 푸른 잎이 무성한 길은 산책하기에 쾌적해 보입니다. 주위의 푸른색으로 여인이 두드러지게 보이지는 않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젊은 여인의 세련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모자를 라일락꽃으로 장식했으며, 최신 유행 의상을 입은 여인을 보기 좋아한 마네에게 감비의 모습은 파리의 여인과 마찬가지로 세련되어 보였습니다. 마네는 부드러운 붓놀림으로 여인의 눈에서 지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했으며, 갸름하고 돌출된 턱과 이목구비를 적절하게 묘사했습니다. 르누아르도 십 년 전에 <산책>을 그렸습니다. 동일한 주제를 그렸지만 마네는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의 여인의 생각에 잠긴 모습을 그린데 반해 르누아르는 연인들의 즐거운 한때를 그렸습니다. 마네가 바라본 인생은 늘 솔직했습니다. 르누아르는 주제를 이상화시켰는데, 즐겨 사용한 영롱한 색채로 인해 실재 인생이라기보다는 미화시킨 인생으로 보입니다.

 

그해 11월 초 다시 파리로 돌아온 마네는 도시의 활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게르부아로 가서 친구들을 만났으며, 게르부아는 그에게 많은 추억을 회상하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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