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 파리의 명물



 



 

 

마네는 10월 초에 파리로 돌아갔습니다. 육체적 고통은 여전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안정된 편이었습니다. 공기 좋은 시골이 그에게 신체적으로 낫겠지만 파리의 공기가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가야 할 곳이 있고 친구들을 만나고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아름다운 여인과 대화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활력이 되었습니다. 발목이 뒤틀리고 근육통이 있고 보행이 어려워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지만, 그는 카페에도 가고 카바레에도 갔습니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 The Bar at the Folies-Bergere>, 1882, 유화, 97-130cm.

마네가 살롱에 출품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웨이트레스의 뒤 거울에 술집 내부가 비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임을 알 수 있으며, 모자를 쓴 남자가 거울에 비친 웨이트레스와 마주하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거울에 의해 환상적인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작품입니다. 거울에 비친 화려한 파리의 세계, 불빛 아래 서성이는 남자와 여자들의 실재감을 느끼게 하는 술병과 과일의 대비 등 마네의 회화가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거울 속 웨이트레스의 뒷모습과 오른편 남자의 앞모습이 원근법으로는 일치하지 않지만, 마네는 이런 모순을 개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회화적 구성을 위해 자유롭게 그렸습니다.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 술집>의 부분



마네가 카페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린 대작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그의 대표작들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폴리 베르제르 술집은 카페, 카바레, 서커스 공연장이었으며, 입장하는 데 2프랑만 내면 되었습니다. 1869년에 영업을 시작하여 부르주아들의 매춘 장소 또는 불륜의 커플이 만나서 즐기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상점 점원, 가수, 배우, 댄서, 한량에서 예술가, 작가, 사업가, 은행가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출입했으며, 매춘하는 창녀들의 연령도 다양했습니다. 각종 술이 진열되어 있는 내부에는 밝은 등이 켜져 있었고,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담배연기가 가득했습니다. 마네는 그 명소에서 몇 시간씩 앉아 스케치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마네가 웨이트레스 쉬종에게 유니폼을 입은 채 자기 화실로 와서 포즈를 취해줄 것을 청하자 그녀는 선뜻 응했습니다. 그녀는 목에서 가슴까지 사각으로 파진 기다란 드레스에 꼭 끼는 벨벳 조끼를 걸치고 마네의 화실로 왔습니다. 마네는 대리석으로 카운터를 만들고 그녀에게 카운터 뒤에 서서 포즈를 취하게 했습니다. 마네는 술집의 세 카운터 가운데 하나를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꽃과 술병들은 마네에 의해 연출되었습니다. 마네는 그녀로 하여금 웨이트레스에게 어울리는 화장을 하게 했으며, 적당한 헤어스타일, 귀거리, 목걸이를 하게 해서 중산층이나 노동자 출신으로 보이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습니다. 마네는 쉬종의 가슴에 작은 꽃다발을 달게 하고 관람자를 향해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쉬종의 멍한 시선과 꽃다발이 심한 대조를 이룹니다. 쉬종 앞에 두 송이 장미가 유리잔 안에 있는데, 장미는 고대에 비너스에게 헌화한 꽃이라서 술집의 웨이트레스를 현대판 비너스에 비유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흰 장미는 순결을 상징하고, 핑크 장미는 신성한 사랑을 상징하며, 꽃병은 순결을 상징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모파상은 『벨 아미』에서 이 술집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분칠을 덮어쓴 한물간 여인들이 홀 주위의 카운터에 우두커니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바로 술과 사랑의 상인이었다.

 

올랭피아의 차세대라 할 수 있는 금발의 쉬종 뒤에 거울이 사용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림이 관람자의 인식에 혼돈을 주는 이유는 거울이 아니라 그림 오른쪽에 나타난 쉬종의 뒷모습과 모자를 쓴 남자의 모습입니다. 거울이 쉬종의 등 뒤에 가로로 길게 부착되어 있으므로 거울에 반사된 모습을 통해 관람자는 카페 내부의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병렬된 그녀의 뒷모습은 거울에 반사된 모습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림의 구성상 뒷모습은 또 다른 여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모자를 쓴 남자 모델은 실재하는 모습이라기보다는 거울에 반사된 모습처럼 보이며, 두 사람의 위치를 설명해줄 만한 거울이 그곳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인식으로는 이 그림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네는 불가해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우리의 인식세계에서는 불가능하지만 회화에서는 이 같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마네가 살던 당대 파리의 삶을 기념비적으로 그렸다는 의의를 지닙니다. 그는 이 작품에 모든 기교와 폭넓은 주제 그리고 마지막 열정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자를 쓴 남자는 앙리 뒤프레이이며, 거울에 반사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마네의 친구들이 있는데, 화면 왼쪽 끝에 모자를 쓴 남자는 화가 가스통 라투세이고, 그 옆에 흰 옷을 입은 여인 메리 로랑과 잔 드 마르시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 작품이 1882년 살롱에서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도저히 인식될 수 없는 세계가 실재처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네의 인생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 기념비적 해석은 항상 관람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제공했습니다.



 

 

 



마네의 <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 마네 부인 La Femme Au Chat: Madame Edouard Manet>, 1882, 유화, 92-73cm.



 

 

1882년 여름 그는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복숭아, 딸기, 자두 등의 과일을 그리거나 탁자에 몸을 기대고 반쯤 누운 자세로 꽃병에 꽂힌 장미를 그렸고, 고양이 지지를 안고 있는 수잔을 스케치하기도 했습니다. 10월에는 그려 놓은 작품도 없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도 또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아 1883년 살롱은 포기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12월에 포르의 주문대로 포즈를 달리 한 그의 초상 두 점을 완성했지만, 포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구입하지 않고 다른 그림 <온실>, <로세포르의 초상>, <배를 들고 있는 레옹>, <뤼엘의 빌라> 등 네 점을 1만1천 프랑에 구입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