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현실주의Surrealism
분석-입체주의에 의한 작품은 각양각색으로 나타났으며, 이탈리아 미래주의 예술가들 움베르토 보초니Umberto Boccioni(1882~1916), 카를로 카르라Carlo Carra(1881~1966), 안토니오 상데리아Antonio Sant’Elia 등은 이를 동시성과 조형적 다이나미즘으로 발전시켰다.
입체주의의 영향은 재현으로서의 형체의 가치를 일체 부정하고 예술의 가치를 순수 창조행위에 귀속시킨 것으로 이런 점에서 입체주의자들은 여러 예술 장르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초현실주의는 입체주의의 제 전제의 필연적 발전이었다.
초현실주의가 입체주의의 이론가 아폴리네르에 의해서 발견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당연했다.
초현실주의란 말은 아폴리네르가 1917년에 쓴 희극 『티레시아의 유방 Les Mammelles de Tiresias』의 부제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부제에서 ‘초현실극drams surrealiste’이란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초현실주의는 미술, 문학 운동을 넘어선 삶의 방식이자 철학적 견해의 표현이었다.
몇몇 비평가들과 미술사학자들은 초현실주의를 양차 대전 사이에 일어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정신적 표현으로 간주한다.
초현실주의의 핵심은 현실이란 논리적인 사고에 의해 이해 가능한 사건들의 질서 잡힌 체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도 가능하게 하는 ‘객관적인 우연’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현실은 무의식에 대한 비논리적인 통찰을 통해서만 알 수 있으며, 이런 통찰은 특정한 비논리적인 자동주의sutomatism 방법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자동주의란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가 손의 움직임에 대한 의식적 통제를 억제하는 방법으로 회화나 드로잉 또는 저술이나 그 외 여러 작품의 제작에 사용되었다.
여러 가지 선례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18세기 영국 수채화가 알렉산더 코즌스의 ‘얼룩 드로잉’이다.
코즌스는 풍경의 형상을 암시하기 위해 종이 위에 우연히 생긴 얼룩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1896~1966)은 1924년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초현실주의를 정의했다.
“초현실주의: 남성 명사. 순수한 심리적 자동주의로 이를 통해 말이나 글, 혹은 다른 방법으로 사고의 진정한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것은 이성의 통제가 없는 곳에서 그리고 모든 미학적 혹은 도덕적 선입견의 박에서 이루어지는 사고의 받아쓰기, 백과사전: 철학 용어. 초현실주의는 이제까지 소흘히 해왔던 연상 작용과 관련된 최상의 사고 작용을 믿는다.
그것은 모든 다른 정신적인 메커니즘을 없애고, 그 대신에 삶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초현실 그 자체를 해결방법으로 제시하려 한다.”
초현실주의는 브르통을 비롯하여 루이 아라공Louis Aragon(1897~), 폴 엘뤼아르Paul Eluard(1895~1952), 장 콕토Jean Cocteau,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 등에 의해 이론으로 무장되었고 시인 브르통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져 그는 ‘초현실주의의 교황’으로 불리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원리를 비합리주의의 이론인 베르그송, 프로이트 및 실존주의로부터 끌어왔다.
브르통은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에서 초현실주의를 “구두로, 기술로, 혹은 기타 수단으로 사고의 실제 과정을 표현하려고 의도하는 순수한 심적 자동주의Automatisme”로 규정했다.
그는 “사고를 직접 받아 쓴 것dictee이므로 이성의 작용을 일체 받지 않고 심미적이거나 도덕적인 배려도 일체 떠나 있다”고 했다.
현실과 상상의 두 극을 연결시키는 밀접한 관계를 실제로 보여줌으로써 브르통이 기대한 것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구별을 재정의하고 너무 오랫동안 접속되어 있지 않았던 의식세계와 무의식세계, 외부적 현실세계와 내부적 현실세계, 이성세계와 광기의 세계, 인식의 고요한 세계와 사랑의 세계, 생활의 세계와 혁명의 세계라는 두 세계 사이에 어떤 고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벤투리는 이를 구상 미술 최후의 위기로 보고 자신 속에서 일체의 인습에 대항할 적극적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은 총괄적인 혁명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비평은 더 이상 재현에 관한 비평이 아니라면서 예술의 가치가, 재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인 표시된 사물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표징sign의 존속성을 보증하는 능동적인 원리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고, 대신 비평은 물상이 파괴된 후에도 오래 존속되는 표징의 이런 존속성의 인식, 즉 그 표징의 영원한 활동성과 현재성의 인식에서야말로 존재하게 된다고 했다.
브르통은 순수 이론적·논쟁적 논술로부터 예술작품의 직접성이라든가 내적·혁명적 힘 가운데서 예술작품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것에 전념하는 비평문을 썼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데 키리코De Chirico(1888~1973)의 작품은 진정 초현실주의적이었으며, 샤갈의 기여가 평가받지 못한 사실은 시와 조형미술의 융합의 실현을 지향하는 제 운동 다다주의와 초현실주의에서의 중대한 과실이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에 관해 말했다.
“초현실주의의 본질적인 발견은 미리 생각해 둔 의도가 없이 펜이 자동적으로 움직이고 연필이 자동적으로 묘사하면서 극히 귀중한 본체substance를 조직해 낸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 본체 모두가 정곡일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최소한 시인이나 화가가 자신의 감동에서 도출한 광휘를 발산하는 듯하다.”
브르통은 초현실주의자가 예술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정신물리학적 영역 전체에 도달하려고 애썼을 때라고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이 심층이 모순의 부재, 억압에 의한 감정 전도의 유동성, 영겁성 및 쾌락의 원리에 의해서만 다스려지는 심리적 현실의 외적 현실로의 치환 등에 의해 지배된다고 했다.
자동주의는 이 영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가 이 영역에 도달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한 방법은 현혹될 정도로 정확하게 꿈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는 그들에게 약점이지만, 그것은 경험을 확신하는 데는 훨씬 덜 확실한 방법이며 함정투성이다.
따라서 브르통은 이브 탕기Yves Tanguy의 작품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달리의 작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는 탕기의 작품에서는 시적 원리를 간파하려고 했지만 달리의 표현 기법이 메소니에Meissonier로 돌아간 것을 후퇴로 보면서 그의 양식을 아카데믹으로 간주하면서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