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그림으로 배우기



  길그림으로 익히고서 일본으로 온다. 길그림하고 똑같은 곳도 많을 테지만, 아니 길그림이란 삶자리를 단출히 담아낸 그림이니, 길그림을 익히면 헷갈릴 일이 적을 테지만, 막상 두 다리로 삶자리를 거닐면 길그림이 아주 달리 보인다. 처음에는 길그림에 기대야 할 수 있으나, 어느새 머리에 새로 길을 그린다. 다리하고 눈하고 마음하고 몸이 느끼는 새 길그림을 새긴다고 할까. 내가 찾아보는 길그림은 다른 이들이 마련해 놓기 마련이다. 내가 찾아가려는 곳을 ‘길그림 지음이’가 살뜰히 알아서 나타내 주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내가 보고 싶은 곳이 길그림에 나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다른 이가 지은 길그림을 곁에 두지만, 어느새 ‘내 나름대로 새로 지은 길그림’을 머리에 새긴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글을 쓸 적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이란 없기 마련이다. 모든 낱말은 ‘다른 누구인가 지은 말’이요, 이처럼 다른 이가 지은 낱말을 가만히 눈앞에 놓고서 하나하나 엮어 ‘내 나름대로 새롭게 뜻을 들려주는 이야기’로 엮는다고 할 수 있다. 일본 도쿄 진보초에서 하치오지로 처음 가 보는 길을 나서려고 한참 길그림을 익혔다. 이제 떠나면 된다. 한 걸음을 내딛으면 나는 내 새로운 길그림을 그려서 곁님하고 아이들하고 이 길을 느긋하게 누릴 수 있겠지.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東京都八王子市片倉町706-7 Gコ-ト片倉 B棟1號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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